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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66화 (466/624)

제466화

465화-무림맹에서 (7)

거대한 거인을 앞에 두고, 후덥지근해진 바람을 맞으며 주현운은 몸을 일으켰다.

“만귀단주님.”

“쿨럭, 말하게.”

“상황을 파악하겠습니다. 부단주, 모영훈의 배신이 맞습니까?”

모영훈의 배신.

주현운의 물음에 괴조의 머리 위에 힘겹게 앉아 있던 만귀단주 오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인정해야 하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엄하고 삭막하게 키우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제자다.

제자는 무릇 자식과도 같은 존재.

어찌…….

“대답하실 여유가 없다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오윤이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새 주현운처럼 일어선 소윤혜가 가볍게 도의 손잡이를 두들겼다.

“베는 순간에 방해하지 않겠다는 것만 약속해 주십시오.”

베는 순간.

그 말에 두 눈을 감은 오윤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확인했습니다. 주 공자, 문 공자.”

“예입.”

“네.”

“비상사태입니다. 전력을 꺼내는 것을 허락합니다.”

전력을 꺼내는 것을 허락한다.

그 말에 주현운은 주위를 둘러봤다.

결계가 무너지며 무림맹 전체가 혼란스러워졌다.

저 허공에 뜬 백화단주는 살벌하게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고, 저 너머 멀리는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눈에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온 푸른 무복의 무인들.

창천단이 확실했다.

무림맹의 전력이 모이고 있는 상황.

흑룡단에 들어간다고 미리 선언하고, 실종 상태인 흑룡단주를 기다리겠다며 창천단에 임시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세 사람이.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로 탐스러운 과실이라면, 다른 단은 어떻게 반응할까?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라는 강렬한 예감과 함께 주현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까라면 까야죠.”

“전 상관없어요.”

여유로운 태도의 주현운과 덤덤한 태도의 문율.

함께하는 일 년 사이, 두 사람도 꽤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소윤혜는 도를 뽑았다.

“적은 둘! 거대한 거인! 이 사태를 만든 악귀와 언여휘! 어느 쪽을 상대할지 정해라!!”

소윤혜의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문율이 언여휘 쪽을 보며 손을 드는 그 순간.

[후자의 역할, 제가 하죠.]

하늘을 뒤흔드는 것 같은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벼락이 언여휘를 꿰뚫고 지나갔다.

“꺄가가가가가가갸가각!”

괴로운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며 바들바들 떠는 언여휘.

이윽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과 함께 비틀린 몸을 원래대로 되돌린 언여휘가 삐걱거리는 몸을 이리저리 만졌다.

“아우, 인사 한번 살벌하네. 스승이랑 다르게 무식하기 그지없어.”

[드물게 맞는 말을 하는군요.]

순간, 언여휘가 있던 자리를 꿰뚫고 지나가는 벼락과 함께 허공에서 백화단주 성화린이 천천히 내려왔다.

전신의 뇌전을 두르고, 피부마저 푸른색으로 변한 모습.

“꺄하하하! 이거 대단하네! 원화(元化)의 술(術)이라니! 우리 화린이 죽고 싶어 환장이라도 한 거야?”

신체를 자연의 기(氣)로 바꾸는 술법.

거의 금술로 지정된 술법으로, 웬만큼 인정받지 않으면 익히는 것조차 불가능한 술법이다.

육체 자체를 자연의 기(氣)로 바꾸는 만큼 악귀에게도, 실체를 가진 존재에게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문제는 후유증이다.

원화(元化)를 거친 육체도 상처를 입는다.

금세 회복할 순 있지만 까딱 잘못했다간 회복하지 못하고 육체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당연하게도 그 부위의 신체는 결손된다.

만약 중요 장기가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하고 돌아오면?

죽음이다.

더욱이 상처를 입어 육체의 결손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원화(元化)를 유지하면 육체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인간이 굳건한 의지로 자신의 몸을 이룬 기(氣)를 붙잡고 있다고 해도, 대자연의 거대한 흐름을 어찌 거스를 수 있겠는가.

자연의 기(氣)로 화(化)한 육체는 서서히 대자연으로 회귀하고, 이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진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육체와 일체화되어 몸을 자연의 기로 바꾼 혼 또한 이때 함께 소멸한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확실하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술법.

그게 바로 원화(元化)의 술(術)이다.

[누구 말대로 무식해서 말입니다. 조금 거친 수를 쓸 필요가 있어서 꺼냈지요.]

뇌전을 뿜어내며 살기를 일으키는 성화린의 모습에 언여휘는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나약한 건 여전하지만.”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려 어느새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괴조를 보며 언여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 녀석들이 근처에 있다고 공격하지 않았지? 쏟아 내는 뇌전은 적아를 가리지 않으니까.”

히죽 웃으며 언여휘는 옆에서 떨고 있는 우공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래서 너희 사제(師弟)가 안 되는 거야. 독심이 있어야지, 독심이. 복수를 위해서 가족, 친지, 친구, 타인 모두를 희생할 수 있는 각오.”

뒤틀린 미소와 함께 언여휘는 웃었다.

“네 그 안일함이 이 녀석을 탈출시키는 거다?”

* * *

“……맡겨도 될 게다. 백화단주는 강하니까.”

원화(元化)의 술(術)까지 쓸 줄은 몰랐지만…….

뒷말을 써지는 침과 함께 삼킨 오윤은 이제는 상당히 또렷해진 눈동자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평생을 함께한 자신조차 균형을 잡기 힘들어 머리에 딱 붙어 있는 괴조 위에 태연하게 서 있는 세 사람.

대체 균형 감각이 얼마나 좋으면 그럴 수 있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하지만.

“묻겠네. 전력을 다 꺼내면, 저 괴물을 벨 수 있는가?”

“아마 가능할 겁니다. 높은 확률로.”

“베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죠.”

소윤혜와 주현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오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은 문율을 바라봤다.

오윤의 시선에 흠칫 놀란 문율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괴조를 가리켰다.

“저는 발판은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음, 알겠네.”

오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만귀단주는 허공에 부적을 뿌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생겨나는 괴조 세 마리.

지금 일행이 타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한 사람이 올라타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흑룡단주와 함께한 세월이 있으니 영력은 다룰 수 있겠지?”

“네.”

“가능합니다.”

“예.”

“그럼, 영력으로 이 아이들과 이어 주겠네.”

차례대로 괴조 위로 올라가는 세 사람의 가슴팍에 부적을 날려 붙인 오윤은 이젠 능숙하게 새의 위에 선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이 뜻하는 대로 움직여 줄 걸세. 이거라면 저 거인의 목을 베기에 충분한가?”

“충분하죠.”

“가능합니다.”

“네. 가능해요.”

세 사람의 확답에 고개를 끄덕인 오윤은 진지한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조금 전의 물음에 대한 답일세. 배신자는 내 제자이자 만귀단의 부단주인 모영훈이 맞네.”

“그럼.”

“그러나 그렇기에 목을 베어선 안 되네.”

“단주님의 제자라고 하여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순 없습니다.”

“그 때문일세. 책임을 지기 위해선 살아 있어야 해.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진술은 물론, 이후 처리에 대한 처벌까지 그 끝에는 지금 죽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사형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오윤은 떨리는 눈동자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죗값을 치러야 하네. 그것이 부단주로서 해야 하는 마지막 일이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단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네.”

각오를 다진 오윤의 대답에 세 사람은 지그시 오윤을 바라봤다.

제자를 빼돌리기 위해서 헛소리를 하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저리 말하고 있는 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생포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그냥 죽이고 혼만 속박해서 심문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게 말처럼 쉬우면 누가 일일이 적을 생포한단 말인가? 숙련된 술사의 혼은 결코 쉽게 붙잡을 수 없네.”

……설 공자는 항상 하던데요.

오윤의 대답에 자신의 상식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소윤혜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상태를 보니 저희가 그냥 때려서 데려온다고 될 만한 상태는 아닌 것 같군요.”

“맞네. 저 거인과 서서히 융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네. 술법적 조치를 취해야만 떼어 낼 수 있네.”

“그렇다면 부단주의 건은 단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저희는 저 거인을 처리하는 데 집중하죠.”

소윤혜의 결정에 오윤은 감사를 표하듯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할아버지뻘인 노인이 고개 숙이는 모습에 어색함을 느낀 소윤혜는 주현운과 문율에게 눈짓했다.

“가자.”

“예입~.”

“네.”

소윤혜의 지시에 따라 세 사람을 태운 괴조들이 거인을 향해 날아갔다.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용암이 튀어 오르지만, 괴조들은 능숙하게 피해 흑암지규군(黑巖之叫君)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열기가 장난 없네.”

“이거 술사들이나 저희 단주님의 도움 없이는 힘들 것 같은데요?”

막상 접근하고 나니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가 세 사람을 반겼다.

이대로 접근해서 거인의 몸에 안착해 봤자, 오히려 손발만 불타고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열기였다.

가죽신은 단숨에 녹아 눌어붙을 것이고, 맨살은 순식간에 익어 끔찍한 몰골이 되겠지.

“거인의 몸에 올라서지 않고 벤다.”

“괴조들이 버거워할 텐데요.”

문율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소윤혜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그럼…….”

“말했잖아? 전력을 다하라고.”

담담한 대답과 함께, 소윤혜는 도집에 도(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베어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독할 정도의 살기가 소윤혜의 도신(刀身)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대충 정리는 했나?”

“네.”

금릉성.

며칠 사이에 꽤 안정된 도시와 성의 상태를 살피며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 있네.”

우리 형도 그렇고, 신참 성주도 그렇고.

민심을 안정시키고, 막혔던 물류의 흐름을 터 주는 솜씨가 아주 훌륭하다.

단숨에 가난의 굴레로 떨어졌어야 할 남경 사람들이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면서 살 수 있게 됐으니까.

“성무경이 움직였더군요.”

“백유가 보냈나 보네.”

하긴 백유가 마냥 방치할 타입은 아니긴 하지.

사람 장사나 하던 놈들이니 싹 쓸어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쪽이 먼저 선수를 친 셈인가.

나중에 이걸 핑계로 달라붙는 거 아닌지 몰라.

백유를 떠올리며 살짝 미간을 찡그렸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잡념을 털어 냈다.

“그럼 유 매, 나는 전에 말한 것 좀 해야겠어.”

“전에 말한 거라고 하시면?”

“언여휘, 그 잡것이 남긴 걸 좀 털어 내야 하거든.”

“그런 거라면, 언제나 환영이죠.”

후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유예린은 부드럽게 설천위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확실하게, 지워 주세요.”

“으, 으응.”

확실하게 못 지우면 각오하라는 소리로 들리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유예린이 떨어지고, 홀로 침대로 올라간 설천위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언여휘가 자신에게 이런 걸 심었다면, 노리는 거야 뻔했다.

무림맹.

준비하던 게 있으니 바로 시작하진 못했겠지만, 여태껏 준비한 것을 조금 빠르게 터트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다만.

‘그 세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위험한 상황까진 안 가겠지.’

무려 주현운과 문율이다.

특히 문율은 이쪽의 가르침 덕에 꽤나 성장이 가팔랐으니 기대할 만하다.

거기다 두 사람을 조율해 줄 소윤혜도 있으니까…….

‘안전하게 가자, 안전하게.’

나는 일 다 끝나고 마무리 정도만 해 주면 되겠지, 뭐.

이번에는 편하게 가자고,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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