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3화
462화-무림맹에서 (4)
“뭐, 그리 강한 것도 아닌 것 같긴 하네요.”
“……이, 괴물 놈이!”
“어휘력도 많이 부족한 것 같고. 아, 이건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요?”
잔잔하게 웃으며, 주현운은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위령천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능력도 좋네요. 그 순간에 몸을 지키다니.”
주현운은 칭찬할 의도로 던진 말이었지만, 듣는 위령천은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강기를 잘게 쪼개 말뚝처럼 때려 박아서 타인의 강기를 쪼개는 놈이다.
그렇게 이쪽의 무기를 쪼개 놓고 하는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를 악문 위령천은 부러진 창을 들고 비척이며 일어섰다.
강기로 몸을 지키긴 했으나 급하게 만들어 낸 호신강기로는 한계가 있었다.
하얀 뼈가 드러날 정도의 깊이로 베인 중상.
하지만.
“이야,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네요.”
그새 이쪽의 상태를 파악한 주현운이 웃으며 검을 어깨에 걸친다.
경박한 그 태도에도 위령천은 말없이 부러진 창을 버리고 자세를 잡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권각술에도 나름 자신이 있나 보네요?”
“이 몸뚱이로 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말을 짧게 하고, 기세를 끌어올리는 위령천의 모습에 어깨에 검을 걸치고 웃던 주현운은 미소를 지웠다.
위령천의 상처는 눈에 보일 정도의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보통의 강기로는 안 된다는 증거.
‘이상해.’
말도 안 되는 회복력은 괴이의 상징이다.
실체가 없는 육체이니 이상할 정도의 빠른 회복력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괴이라도 실체가 있는 존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실체를 가진 순간부터 재생에 막대한 힘이 들어간다.
가성비 좋게 회복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소리다.
괴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존재 같지만 그들에게도 넘을 수 없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실체가 없는 괴이는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 대신 괴이 또한 인간에게 간섭받지 않으며, 좀 더 자유롭게 힘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
반면, 실체가 있는 괴이는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대신 인간에게 간섭받기 시작하고, 힘의 형태가 제한된다.
강대한 힘을 가졌다면, 기이한 재생력은 본래 있어선 안 되는 힘이다.
괴이로서의 능력이 힘이었다면 말이다.
“크아아압!”
자세를 낮추고 그대로 파고드는 위령천과 눈을 마주한 주현운은 빙긋 웃었다.
“당신, 살아생전에 무인이었군요?”
쩡!!
주현운의 검이 치고 올라오는 위령천의 주먹과 맞부딪친다.
검과 주먹.
하나씩 마주쳤으니 위령천에게는 아직 한쪽 팔이 더 남아 있다.
우드득!
뼈가 비틀리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리와 함께 기이할 정도로 몸을 비튼 위령천의 반대쪽 손이 주현운의 안면을 노리고 파고든다.
기이할 정도의 각도로 꺾여 옆에서 파고드는 주먹.
사람의 얼굴 정도는 우습게 분쇄해 버릴 주먹이었지만.
“참신하네요.”
주현운은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받아 냈다.
“무슨?!”
“답을 알면, 해법이 보이죠.”
당황해하는 위령천을 보며 웃음 지은 주현운은 말과 달리 몸을 비틀어 발을 밀어 넣는 위령천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독하기가 참 장수답네요.”
“네놈!”
위령천의 발이 지나간 자리로 환영이 흩어진다.
이형환위(移形換位).
흩어지는 잔상을 허무하게 가른 발이 땅에 닿고.
“생전에 꽤나 강했던 무인이 마(魔)가 되며 재생력과 영력을 손에 넣었고 그때 강기도 손에 넣었겠네요.”
웃으며 검 끝을 바닥으로 향한 주현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느꼈던, 흘려선 안 된다는 직감은 아마 당신의 능력 때문이겠죠?”
흠칫.
흘려선 안 된다는 직감.
그 말에 흠칫한 위령천의 눈이 격하게 떨렸다.
‘……단순히 감 때문에 쓰지 않았던 거라고?’
위령천이 마(魔)가 되며 손에 넣었던 힘.
위폭(僞爆).
강한 힘을 실은 공격을 상대방이 흘리는 순간, 창에 담은 강기를 터트리는 기술이다.
살아 있는 무인이라면 쓸 수 없는, 혈도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수법.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트려야 하기에 여태껏 참고 있던 것인데…….
그걸 고작 감 때문에 피하고 있었던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주현운의 말에 위령천의 눈이 흔들리는 사이.
주현운은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생전에 꽤나 힘 좀 쓰던 무인이셨던 것 같네요. 거기다 단순하고 우직한 형태의 무술. 아마도 군부 쪽이겠죠?”
그렇다면 이 정도 무인에 대해 아예 정보가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군부 쪽 무인은 아무리 강해도 소문이 별로 안 나니까.
“아쉽네요.”
정보 파악을 끝낸 주현운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검을 그었다.
“반쪽짜리를 상대로는 이 정도까지 보여 주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무명검(無名劍) 제1식]
허공에 그어진 선이 사라지고.
이를 악문 위령천이 포효했다.
“누가 반쪽짜리라는 거냐!! 애송이이이!!”
속을 토해내는 듯한 포효와 함께 도약하는 위령천.
그 압도적인 근력을 이용한, 단순 무식한 도약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리라.
현란한 보법을 밟지는 못하더라도, 그 속도만큼은 확실하게 적에게 도달할 수 있는…….
“거봐요. 반쪽짜리잖아요?”
왜.
닿지 않지?
왜.
가까워지지 않지?
의문이 머릿속에 차오르고.
아쉬움이 담긴 얼굴로 주현운은 검을 거뒀다.
“이 정도도 보지 못하는 적은 필요 없어요.”
이 검의 완성을 위한 발판이 되기엔 부족하니까.
몸을 돌리는 주현운의 모습에 위령천이 손을 뻗었다.
닿아라.
‘닿아…… 라!’
저 오만한 애송이의 목을……!
“그럼, 편안한 영면에 드시길.”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주현운의 모습이 흐려지는 것을 끝으로, 위령천의 의식은 완전히 단절됐다.
몸과 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있는 그의 목처럼.
* * *
“괴물들이네.”
만귀단의 단주실.
그곳에 앉은 언여휘는 이리저리 발을 흔들며 어른 머리만 한 구슬을 바라봤다.
“천위가 아끼는 애들이란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괴물이네~!”
위령천의 목을 친 주현운을 보며 언여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는 진짜 무섭겠어.”
담담하게 돌아서서 출구를 찾는 주현운을 보며 살짝 부르르 몸을 떤 언여휘는 마찬가지로 출구를 찾고 있는 문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장난 없네.”
재능이란 이런 거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녀석들을 모아 놓은 것 같네.
천위, 걔는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으면서 용케 주위엔 재능 있는 애들만 모아 놨네.
“아니, 재능에도 종류는 상관없다는 건가? 후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소!”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던 언여휘는 옆에서 들려온 고함에 고개를 돌렸다.
불안한 안색으로 떨고 있는 사내.
만귀단의 부단주, 모영훈을 보며 언여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중요한 게 뭔데?”
“지금 이자들이 경비로 세워 둔 병력을 이리도 간단히 쓰러트리고 있지 않소! 이대로 가면 계획이……!”
“걱정 마. 고작 저런 애송이들에게 방해받을 계획은 아니니까.”
암, 이쪽이 준비한 게 얼만데.
“소어(訴圄)였나? 그 아이를 놓치고 얼마나 힘겹게 손에 넣은 아이인데. 이 아이만 있어도 시간 정도야 충분히 벌어.”
“그, 그건 그렇지만…….”
공간을 다루는 악귀.
상대로 만나면 얼마나 까다로운지는 모영훈도 잘 알고 있었다.
한두 번 정도 상대해 본 적도 있으니까.
그런 악귀가 지키고 있으니 솔직히 어느 정도는 안심해도 되는 건 사실이다.
“귀병도 잔뜩 움직이고 있잖아?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으음.”
“우리 모 단주 걱정도 많네~.”
히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언여휘는 사뿐사뿐 걸어서 방의 구석에 도착했다.
“그렇지? 은퇴할 예정인 우리 할배도 그리 생각하지?”
“가증스러운 목소리군요. 아주머니……!”
“꺄하하하! 그렇게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쓰나~. 그리고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할머니가 더 맞지 않겠어?”
웃음을 실컷 터트리고, 이내 웃음이 멎는 것과 동시에 언여휘는 발을 휘둘렀다.
“커헉!”
아무리 인형의 몸뚱이라고 해도 늙은 몸에 타격을 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복부에 꽂힌 언여휘의 발에 마른기침을 토해낸 만귀단주, 오윤은 뺨을 바닥에 기대며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에잇!”
그런 오윤의 등에 가차 없이 올라탄 언여휘는 그대로 오윤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문질렀다.
“늙은이야, 물러날 때 물러났어야지. 응?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면 물러났어야지. 아니면 나처럼 팽팽하게 유지하든가~.”
킥킥 웃으며, 오윤의 머리채를 잡아당긴 언여휘는 긁혀서 붉게 물든 오윤의 뺨을 때렸다.
“욕심을 부려서 계속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아끼던 부하한테 뒤통수나 맞는 거야~.”
“…….”
언여휘의 조롱에도 오윤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자신의 스승이 비참한 꼴로 조롱받는 모습을 바라보던 모영훈은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어머, 우리 모 부단주는 뭐라고 한마디 안 해?”
“늙은이의 추태에 어울릴 생각은 없소.”
거침없이 방문을 열고 나가는 모영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인 언여휘는 오윤의 등에서 내려왔다.
“뭐, 그럼 나도 이쪽 말고 저쪽에 집중할까. 맹주, 그 인간은 그새 더 강해졌네~.”
시간을 얼마나 더 끌 수 있으려나.
일단 버티고 있긴 한데, 이거 인형한테 집어넣어 놓은 제물이 소모되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차라리 좀 괜찮은 귀병이라도 하나 끌고 갈 걸 그랬나?
“우웅, 뭐 의미 없었겠지?”
괜히 아까운 귀병이나 날리지.
악귀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미련을 깔끔하게 털어 버린 언여휘는 품에서 꺼낸 당과를 물고 단주실을 나섰다.
“그럼 할배, 잘 있어~.”
웃으며 손을 흔드는 언여휘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오윤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입술을 깨물었다.
“……머저리 같은 놈.”
성정이 냉철해 보이기에 제자로 들였다.
재능이야 뭐, 있는 놈들만 골라서 고민했으니 당연히 평균 이상이었다.
수련을 따라오지 못하면 바로 쳐낼 생각이었다.
다른 제자들처럼.
그런데 냉철해 보이는 성격 뒤에 독기까지 있었던 덕에 모영훈은 잘 따라왔다.
어린 시절부터 거의 학대에 가까운 수련을 받으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모습에 차기 단주감을 찾았다고 축배를 들었던 기억도 있었다.
어느 정도 자라고, 공적을 세우며 올라오는 모영훈에게 기꺼이 부단주 자리를 내주었다.
업무를 배우라고.
모영훈이 완전히 단의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외부의 압력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됐을 때.
그때 단주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갑작스레 죽은 백화단주의 자리를 이은 성화린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옆에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 가혹하게 대한 것이 마음에 남아 모영훈에겐 그런 힘든 과정 없이 단주 자리를 넘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머저리 놈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제는 늙은 피부처럼 말라 갈라졌다고 생각했던 가슴이 축축하게 젖어 온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얼굴을 감췄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제자 놈의 결말을.
설령, 지금 맹에서 벌이고 있는 일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허울뿐인 단주 자리에 오르게 될 뿐이다.
거기다 사혈천은 독한 놈들이다.
가진 모든 걸 쥐어짜고도 남겠지.
냉철한 줄 알았더니 그냥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머저리였을 줄이야.
머리가 있다면 이딴 말도 안 되는 거래를 받아들일 리가 없거늘……!
거듭되는 불길한 예감에 입술을 깨문 오윤은 손목을 묶은 동아줄을 풀기 위해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손의 피부가 까지고 손목이 엉망진창이 됐지만, 희미한 내공으로 조금씩 동아줄을 갉아 냈다.
모든 것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