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60화 (460/624)

제460화

459화-무림맹에서 (1)

“이게 무슨……!”

백화단의 장원.

급히 마당으로 나온 성화린은 하늘을 뒤덮은 요기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보고하세요!”

드물게 목소리를 높이는 성화린의 모습에 허겁지겁 달려왔던 이들이 재빨리 보고를 시작했다.

“장원 전체가 결계로 막혔습니다.”

“외부와의 연결은 현재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속속 들어오는 정보.

그리고 그 속에서 빠진 보고에 성화린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적의 병사가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예. 결계 내부에서 적의 것으로 보이는 식령이나 괴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최대한 빨리 결계의 해제에 집중해서…….”

“불행 중 다행?”

한 대주의 발언에 성화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이런 짓을 저지른 적들이 고작 실수로 병력을 넣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 그것이…….”

“총력을 기울인 겁니다. 우리 백화단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을 묶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시나요?”

이를 악문 성화린이 살벌한 눈으로 대주를 노려봤다.

“우리 백화단의 발만 묶을 수 있다면, 밖에서의 일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겁니다.”

아무리 무림맹의 무인들이 강하다고 해도 괴이를 상대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독(呪毒), 저주(詛呪), 침식(浸蝕).’

술사든 악귀든 시간을 들일 수만 있다면 무인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급 무인들은 길게 버티지 못할 게 뻔하고, 이만한 규모의 술식을 펼칠 수 있는 적들이라면 단주급도 위험할 수 있다.

거기다.

‘배신. 우리 아니면 만귀단이다.’

경계 태세를 높인 무림맹 안에서 기습적으로 이만한 술식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부의 조력뿐이다.

만귀단이든 백화단이든.

배신자가 있다.

두 눈이 무겁게 가라앉은 성화린은 자신의 앞에 모인 대주들을 바라봤다.

수십 년을 악귀와의 싸움에 헌신해 온 이들.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이겨 내고, 이 자리에 서서 여전히 악귀와의 싸움을 견뎌 내고 있는 이들.

자신을 지탱해 주는 기둥.

믿고 싶다.

의심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과연, 이 기둥들 중에서 단 하나도 썩은 기둥이 없을까?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빗물의 습기를 견뎌 내지 못하고 썩어 버린 기둥이.

……정녕 단 하나도 없을까?

불안은 의심이 되고, 의심은 불신이 된다.

이것이 적이 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성화린은 자신의 곁에 모인 이들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스승님.’

단주라는 자리가 오늘처럼 무거운 적은 없었습니다.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고, 성화린은 걸었다.

“결계의 해제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각 대주는 자신들이 맡고 있는 대의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하고, 결계 해제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세요!”

“예!”

“예!”

순식간에 흩어지는 부하들.

그들의 빈자리를 짧게 바라본 성화린은 차분한 걸음으로 나아갔다.

몇 개의 문을 지나 백화단 장원의 가장 끝에 도달한다.

백화단의 정문.

그곳에 도착한 성화린은 천천히 손을 뻗어 결계를 만졌다.

지독할 정도의 사기(邪氣)와 악의(惡意)가 흘러 들어온다.

금방 손을 뗀 성화린은 가볍게 손을 털어 더러운 것들을 떨쳐 냈다.

“……너무 노골적이라 치욕적일 정도네요.”

만귀단주도, 자신도 무림맹 안에 있다.

그런데 이런 술법적인 습격을 가해 오다니.

만귀단도, 백화단도 자신들의 계획에 별다른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무시를 해도 정도가 있거늘.

“……후우.”

이를 악물려던 턱에 억지로 힘을 푼 성화린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오로지 하나.

냉철한 이성.

분노도, 수치심도, 걱정도, 슬픔도 모두 억눌러라.

빙판 아래에 가둬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한 호수의 수면을 유지하라.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지요.”

부적을 꺼내며 성화린은 오랜만에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힘으로라도 부수고 나가 드리겠습니다.”

성화린의 몸 주위로 번개와 바람, 화염이 무섭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꺄하하하! 무식하네! 무식해! 응. 전대 백화단주랑은 아주 딴판이야!”

전대 백화단주는 식물을 이용한 술법에 능했는데 말이야.

어째 제자는 오로지 파괴에만 몰두하는지.

참, 제자 교육이란 건 신기해.

완전히 어린 소녀의 모습이 아닌 15세 정도 되는 소녀의 모습을 한 언여휘는 정근각(正根閣) 지붕 위에 앉아 당과를 흔들었다.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하네. 하긴, 무인 나부랭이들이 그렇지 뭐.”

히히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언여휘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해? 애들 교육 수준이 너무 처참한 것 같지 않아, 맹주?”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뭐가 나쁜가.”

“할 줄 아는 게 무식하게 검을 휘두르는 것밖에 없다는 게 문제지.”

허허롭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맹주의 모습에 입술을 삐쭉인 언여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그나저나 이 일이 끝나면 백화단주는 경질인가?”

이 정도 상황이 올 때까지 눈치 못 챘으면, 그건 무능의 증거 아닌가?

“너 같은 괴물 놈들이 작정하고 수작을 부렸는데, 알아채면 그게 더 대단한 거겠지.”

“에이, 천위라면 알았을 것 같은데?”

“……흑룡단주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군.”

언여휘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귀단주와 백화단주가 있음에도 굳이 오늘로 날을 정한 건 그 때문인가?”

“응, 사실 맞아. 천위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배웠더라고.”

진짜 괴물 같은 녀석.

원래 좀 천천히 할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일정을 앞당겼잖아.

“그건 참 부끄러운 일이군.”

“응? 뭐가?”

“단주들이 대부분 있고 나까지 있지만 일을 벌인 것이 단순히 흑룡단주가 이곳에 없기 때문이라는 소리라면.”

천천히, 공기가 억눌린다.

허허로운 웃음을 짓던 맹주의 눈동자가 살갗을 에는 북풍처럼 차가워지고.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나?”

수십 갈래의 바람이 언여휘를 집어삼켰다.

“어머, 급하기는.”

맹주가 만들어 낸 바람의 칼날을 전부 막아 낸 언여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때? 그 아이를 따라 해서 만든 건데.”

“흑관이라는 기술인가.”

“그 아이의 것만큼은 아니지만, 내 것도 꽤 쓸 만해.”

설천위가 사용하는 흑관은 기초적인 방어 술식을 극한의 정신력과 뛰어난 영력 제어 능력으로 쥐어짜서 강도를 크게 높인 것이다.

설천위의 술법 실력이 발전하면서 그런 원시적인 형태는 차츰 벗어났지만.

여하튼 다른 술사들도 흉내 내려고 하면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는 쉬운 술법이란 소리다.

설천위만 한 강도가 안 나와서 문제지.

그러니 언여휘쯤 되는 술사라면 그 강도마저도 흉내 내는 게 가능했다.

지금처럼.

검은 방벽 뒤에 숨어 어깨를 으쓱인 언여휘는 점점 더 기세가 강해지고 있는 맹주를 보며 웃었다.

“이렇게 살벌하게 굴 거야? 우리가 안 세월이 얼만데.”

“그 세월이 너무 길다는 게 문제지.”

냉정한 얼굴로 맹주는 손을 뻗었다.

세는 것도 힘들 정도의 무수한 권격이 순식간에 언여휘를 덮쳤지만, 언여휘가 세운 방벽은 거세게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냈다.

“에이, 이런 식으로 시간 낭비나 하고 있을 거야? 우리 계획이 뭔지는 알고?”

“관심 없다.”

짧게 대답하며 맹주는 무림맹 전체를 눈에 담았다.

“내가 중심에 선 무림맹은 결코 나약하지 않으니.”

* * *

“이것 참……. 선검단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이런 일이 터지냐.”

창천단 건물.

밖으로 나와 달려드는 괴물들을 썰고 있던 남궁선은 하늘을 가득 메운 기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상당히 곤란한데.”

이만한 술법이 펼쳐졌는데도 백화단도, 만귀단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백화단도 만귀단도 완전히 발이 묶였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머릿속으로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며 남궁선은 검을 앞으로 세웠다.

“역시 베어 버리고 나가는 게 빠르겠어.”

* * *

“아미타불…….”

적수단의 단주, 무진은 허허롭게 웃었다.

상황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이곳을 나가야 한다.

“결계를 부수겠습니다.”

하체를 굽히고 자세를 잡은 무진의 주먹이 거칠게 대문을 때린다.

결계의 시작점이자 중심.

다른 곳을 부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직감한 무진은 망설임 없이 정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비단 적수단이나 창천단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패력단도, 선검단도, 초생단도, 만독단도.

각자의 방식으로 결계를 부수기 위해 움직였다.

유일하게 암은단만이 결계를 부수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외부로 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결계의 빈틈을 찾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게 무림맹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력들이 결계의 파괴 혹은 파훼에 집중하는 사이.

“이건 생각보다 아찔하네요~.”

만귀단 건물에서 주현운은 어깨에 걸친 검을 흔들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단주님 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헛소리할래?”

문율의 뒤통수를 딱 하고 때린 소윤혜는 울먹이는 문율을 뒤로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리 오너라!”

당당하게 소리치는 소윤혜의 모습에 문율과 주현운이 기겁을 했다.

“아니, 누님 지금 뭐 하는 짓이당가요!”

“우릴 다 죽일 셈이에요?!”

“우우! 과격한 독재 권력 물러나라!”

“……독재 권력이 뭐야?”

“나도 잘 몰라. 전에 설 형이 나쁜 거라고 했던 건 기억나는데. 대충 독선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 같던데?”

“아하.”

고개를 끄덕인 문율은 주현운을 따라 엄지손가락을 세워 바닥을 향했다.

“우우! 독재 권력 물러나……. 억!”

날아온 지풍에 고개가 꺾인 문율이 몸을 비틀거렸지만, 소윤혜는 싸늘한 눈으로 문율을 한 번 바라보곤 그대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쿵!

소윤혜가 나아가는 것에 맞춰 거대한 발이 떨어져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발부터 허벅지까지의 길이가 소윤혜의 키보다 더 큰 거대한 발.

명백하게 인간의 것이 아닌 그 다리의 주인은 만귀단 건물과 비슷할 정도의 높이에서 소윤혜를 내려봤다.

[인, 간. 물러, 나라.]

살의도, 적의도 없지만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 목소리.

누가 봐도 싸워선 안 되는 괴물의 형상이었지만, 소윤혜는 물러서지 않았다.

“비켜. 번견한테 볼일 없어.”

[불, 가.]

거절의 말과 동시에 거한이 움직이자, 소윤혜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늘이 생겨났다.

거대한 주먹.

크기는 곧 힘이라.

이대로 떨어지면 소윤혜 정도는 가볍게 짓뭉개 버릴 거대한 주먹은 그리 긴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낙하했다.

그리고.

촤악!

검은 피가 솟구친다.

단숨에 거인의 팔이 주먹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두 갈래로 갈라져 흉측하게 벌어지고.

서걱!

소윤혜의 뒤에서 솟구친 두 사람이 두 갈래가 된 거인의 팔을 단숨에 잘라 냈다.

[그어어어어어!]

“비명은 끊기질 않네.”

뒤늦게 고통을 느끼고 괴성을 지르는 괴물을 보며 비웃은 소윤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할아버지께 배운 게 있지.”

어느새 상체를 비틀어 반대쪽 주먹을 날리는 거인을 향해 소윤혜는 또다시 도를 휘둘렀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건 아니지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린 것도 아닌 속도로.

담담하게 궤적을 그려 낸 도(刀)를 지나.

쿵!

잘려 나간 거인의 팔이 땅으로 떨어진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 가장 높아 보이는 녀석의 목을 베라고.”

[그아아아아!!]

순식간에 접근한 주현운과 문율의 검이 거인의 다리를 베고 지나간다.

허무하게 무너지는 거인의 몸.

그대로 떨어지는 목을 향해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쿵!!

등 뒤로 떨어지는 거인의 거대한 머리를 뒤로한 채, 소윤혜는 나아갔다.

고오오오오오오!

기이할 정도로 지독한 사기가 휘몰아치는 만귀단의 본 건물을 향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