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58화 (458/624)

제458화

457화-뒷수습 (2)

“그래서, 잘 달래 줬어?”

“……어떻게든.”

“뼈 부러진 거 아니고?”

“버텨 냈다.”

여웅을 설득하고 그녀와 포옹까지 했는데, 살아 돌아온 자신의 형을 보며 설천위는 감탄했다.

“형, 단련 열심히 했구나?”

“……이렇게 확인받는 건 예상치 못했는데.”

“아니, 진심으로.”

여웅은 아직 벽을 넘지 못해 절정에 그쳤지만, 근력 하나만큼은 웬만한 초절정 고수의 뺨을 후려치는 수준이다.

내공을 아예 못 쓰는 철백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철봉 정도는 그냥 접어서 조형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포옹을 견디고 살아 돌아왔다는 건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공자, 장난은 그만하죠.”

“흠흠, 알았어.”

유예린의 차분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자리에 모인 이들을 둘러봤다.

설천강과 그의 부하인 소연.

유예린과 여웅.

그리고 주송유.

“먼저, 주 소저…… 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네.”

“그럼 주 소저, 유 매에게 사정은 대충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계획에 동의하십니까?”

“……네.”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이는 주송유를 보고 설천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야기를 진행하죠. 어제, 저희는 금릉성에 찾아왔던 위협을 제거했습니다.”

술법을 이용해 만들어 냈던 영역은 제거했고, 그 영역을 이용해 의식을 펼치던 놈들도 싹 정리했다.

“문제는 그 위협을 제거하기까지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겁니다.”

금릉성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생존자는 1할 이하.

그나마 성 밖으로 나가 있던 이들 중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건 똑같았다.

성 밖까지 영역이 펼쳐져서 괴물이 마구 날뛰었으니까.

영역에 끌려가지 않은 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아 사경을 헤맸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금릉성과 성을 중심으로 상당한 범위까지 엉망진창이 된 상황.

그나마 영역의 범위 밖에 있던 곳은 멀쩡했지만, 그래서 역으로 거기서부터 인심이 흉흉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금릉성을 중심으로 생긴 일이니까.

“우리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도시의 안정입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설천위는 주송유를 똑바로 바라봤다.

“소저께서는 평화를 위해 나서 주셔야 합니다.”

“……네.”

“성주와 그 자식들은 모두 술사들의 모략에 당해 숨을 거뒀고, 겨우 탈출한 당신이 무림맹과 만나 사건을 해결.”

성주가 이 사건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사실은 숨겨야 한다.

자신들의 명예가 떨어지지 않길 원하는 황실의 눈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민심을 서둘러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성주의 자리를 임시로라도 이을 수 있는 명분이 있는 사람은 주송유뿐인데, 그녀의 할아버지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모두 수군거리고 불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이유로 내세워 움직이려는 놈들까지 나타날 거다.

이 큰 남경이라는 도시에서 이번 사태에 휘말린 영역이 무려 5할 가까이 되지만, 반대로 나머지 5할은 무사했다.

그곳의 관리들 중 계급이 높은 녀석들은 명분만 있다면 성주 자리를 노리기 위해 움직일 거다.

주송유는 나라의 관직을 얻은 관리는 아니니까.

명분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주송유를 밀어내고 성주 자리를 차지하는 게 마냥 꿈만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열심히 뇌물을 끌어모아 황실에 잘 비비면 성주 자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런 헛꿈을 꾸는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도시 안이 개판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자신을 지키고 상대의 틈을 노리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려고 애를 쓸 테고, 뇌물에 쓸 자금을 모으기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더욱 쥐어짤 거다.

그게 일 년, 이 년 이어진다면?

황실이 개입해 새로운 성주를 보낸다고 한들 도시는 이미 개판이라는 말로는 끝나지 않을 정도로 치명상을 입을 거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거창한 대의(大義)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치적 공작은 부탁해도 되겠지?”

“그래. 지부 사람들을 모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애초에 무력보다도 정치력을 위주로 움직이던 남경 지부이니 인원만 잘 추스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설천강의 대답에 설천위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골치 아픈 정치적 문제는 남한테 넘기는 게 짱이지.

알아서 잘 해결해 주겠지 뭐.

“다만, 문제가 조금 있다.”

“뭔데?”

“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사파 놈들이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노골적으로.”

“흐음.”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에?

“우연일 리는 없지?”

“아마 8할 이상의 확률로.”

“상당히 노골적이었습니다. 지부장님과 운천대마저 실종됐을 정도입니다. 흑룡단주님.”

덧붙이는 소연의 말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냥 도망친 줄 알았더니,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실종 상태였다고?

“이건 조금 예감이 안 좋은데…….”

“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럴 인간은 아니다.”

배신을 생각하는 설천위의 모습에 설천강은 고개를 저었다.

“속물이고, 셈이 빠르고,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밝히는 쓰레기 같은 지부장이지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평가가 너무 살벌한데?

이거 이 사태가 안 벌어졌으면 반란이라도 일으켜서 지부장 자리를 먹으려 했던 거 아니야?

“최소한의 선은 지킬 줄 아는 남자다. 이 사태를 예견했다면 피해를 줄일 대비를 했지 사파를 핑계로 잠수를 탈 인간은 절대 아니야.”

“흐음, 그래?”

하긴, 그렇겠지?

설천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사파 놈들이 덤비는 거라면 그쪽은 내가 또 손이 빠르지.”

사파 놈들이랑 부대낀 시간이 얼만데.

“그쪽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형은 걱정 말고 이쪽에 집중해. 주 소저도 잘 챙겨 주고.”

“그래.”

“그럼~ 아, 여 조장은 이곳에서 일을 도와줘요. 바깥일은 저랑 유 매가 할 테니.”

“알겠습니다.”

여웅이 고개를 숙이는 것을 확인한 설천위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그런 설천위의 뒤를 따라가는 유예린.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지고, 기묘한 정적이 방 안에 내려앉은 그때.

“근데…… 진짜 둘이 연인 사이인가요?”

“그래.”

“흐음.”

설천강의 대답에 눈을 가늘게 뜬 소연은 지그시 여웅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언니!”

“언니?”

“네! 저보다 나이 많으시잖아요!”

“……제가 동생인데요?”

“아…….”

그러고 보니 설천강이랑 동갑이라고 했지.

“쯧, 네가 그러니까 남자를 못 꼬시는 거다. 외견만으로 사람을 판단…….”

“조용히 해요!”

설천강을 향해 하악질을 한 소연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고 여웅을 바라봤다.

“그럼 여 동생, 우리 이야기 좀 해요.”

“무슨…….”

“제가 긴히 상담할 게 있어서요!”

“저는 할 말이 없…….”

“자자!”

여웅을 억지로 끌고 가는 소연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설천강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 소저, 우리도 움직이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네.”

설천강의 뒤를 따라 조용히 일어난 주송유는 앞서 걸어가는 설천강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봤다.

할아버님과 부모님마저 전부 돌아가신 지금.

‘……가문을 잇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

* * *

“흠, 딱히 흔적은 없네.”

남경시 외곽.

이번 사태에 휘말리지 않은 지역을 돌아다니던 설천위는 들고 있던 꼬치를 튕겼다.

도시는 개판이 됐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일에 종사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어쩔 수 없었다.

하루라도 장사를 안 하면 내일 뭘 먹고살지 걱정하는 사람들인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런 사람들이 장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 줬다는 것 정도?

도시의 안정.

설천강과 주송유는 생각보다 능력이 뛰어났다.

살아남은 관리들을 모으고, 이때다 싶어 능력을 발휘하려는 관리들을 이리저리 잘 활용하여 도시를 빠르게 안정시키고 있었다.

욕심을 드러내는 놈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무림맹의 이름값이 어디 가겠나.

일단 힘으로 억눌러 놓은 상태였다.

성주의 핏줄인 주송유도 있으니 쉽사리 경거망동하진 못하겠지.

도시는 대충 안정되어 갔다.

거기다 이번에 무림맹이 큰 활약을 보였으니 기존에 관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강소성에서 무림맹의 힘이 꽤 커졌다.

일반 백성들의 신뢰가 두터워진 것은 물론이고, 관리들도 무림맹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심지어, 목숨을 걸고 불타는 성에 들어가 주송유를 구하고 끝내 이 사태의 주범인 사악한 주술사들까지 처단한 설천강이 아닌가.

이름을 드날릴 수밖에 없었다.

뭐, 설천강이 싫다는 거 무림맹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억지로 퍼트린 소문이긴 하지만.

여하튼.

남경은 확실하게 이쪽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는데…….

“진짜 있네. 사파 쉑히들.”

백유 마, 일 안 하나.

작은 무관이 있던 곳.

피 냄새가 물씬 나는 대문을 열고 들어간 설천위는 안의 풍경을 확인하곤 미간을 찡그렸다.

“꽤나 이성적인 놈들이네.”

무관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아이들이나 수강생은 일절 건드리지 않고, 정확하게 관주와 사범들만 처리했다.

“무림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람들인데…….”

단순히 무공을 익혔다고 이런 꼴을 당하다니.

유예린이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며 설천위는 차분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백유가 사파를 지배하면서 이런 형태의 영역 확장은 분명 지양하는 방향으로 사천맹이 움직이고 있을 터.

그런데 어떤 겁대가리 없는 놈들이 이런 막무가내 확장을?

거기다.

“지부장과 운천대라면 꽤나 힘 있는 놈들이 움직였단 건데…….”

무림맹의 지부장은 초절정 이상의 고수다.

설천위의 주변에 워낙 괴물 같은 이들이 많아서 그렇지 초절정이면 무림에선 명숙으로 취급해 주는 경지다.

구파일방 같은 대문파에서도 가끔 초절정 고수가 문주가 되기도 할 정도니까.

아무리 정도(正道)를 중시하는 대문파의 특성상 인품을 보고 고른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무력은 필수 조건이다.

초절정 고수만 해도 그런 무력을 충족한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니 초절정을 얼마나 높은 경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초절정 고수를 웬 정체 모를 사파 놈들이 쓱싹했다?

무력대 한 개랑 함께?

그것도 지부에서 아예 정보도 제대로 얻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거 아무래도 칠가(七家)가 움직인 것 같은데?”

“칠가라뇨? 공자가 하나 쓸어버렸고, 백유 고 계집애도 하나 쓸어버렸으니 이젠 오가(五家)겠죠.”

이러다가 신흥삼가처럼 세 곳으로 줄겠어.

유예린의 지적에 헛기침을 한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칠가 걔들 별거 없긴 했어.”

정파로 따지면 오대세가 정도의 위치인데, 생각보다 무력이 너무 약하긴 했다.

사파가 괜히 아직도 밑에 짜져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지.

음음.

“뭐, 그럼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는데?”

“단순히 혼란스러운 시기를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자들일 수도 있겠네요.”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강소성의 일부를 먹어 치우면 사파의 입장에선 공적이다.

지금 백유는 사파 내부의 벌레들을 잡기 위해 한창 바쁜 시기이니 어차피 신경 쓰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결과를 내면 그것을 명분으로 어물쩍 넘어갈 생각이겠지.

백유가 그딴 걸 허용해 줄 인간이 아님을 모르고 말이다.

뭐.

“마침 잘됐네. 재활 치료도 할 겸 둘이서 정리할까?”

“가문 하나를 처리하겠다는 말을 쉽게도 하시네요.”

“전이문도 익혔으니까 후딱 정리하고 돌아오자.”

슬슬 경험치를 모아서 다음을 준비해야 하기도 하고.

전의문에 쓸 영력을 보충하기에도 좋겠어. 무림맹은 뭐……, 맹주 그 양반도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꼴을 더 볼 순 없잖아?”

피로 물든 땅을 바라보는 설천위의 두 눈이 시커먼 살기로 일렁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