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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57화 (457/624)

제457화

456화-뒷수습 (1)

“……진짜 축지법이라고?”

“뭐, 정확히는 전이문이지.”

전투가 끝나고.

영역(靈域)이 사라진 금릉성은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는 것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시체들.

지하 곳곳에서 찾아낸 제물들.

성 밖으로 아직 나가 보진 못했지만, 이 성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그치리라.

설천강의 부하들이 일단 휴식을 취할 수 있게 건물 주위를 치우는 사이, 설천위는 설천강과 함께 성의 지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전이문……. 전설 속에나 나오는 술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에이, 실제로 쓰는 괴물들이 좀 있어.”

“사람들 중에선?”

“……나밖에 없을걸?”

어.

나밖에 없겠지?

사천맹의 아줌마는 축지술은 쓰지만, 전이문은 못 열고.

백화단주도 뭐, 그쪽은 파괴 특화라.

사람들 중에는 아마 없겠는데?

“너……. 왜 무림학관에 있었던 거냐?”

“어허, 형까지 그러면 안 되지.”

적들이나 날리던 대사를 똑같이 날리면 쓰나.

혀를 차며 앞서 나간 설천위는 허름한 문 앞에 도달해 걸음을 멈췄다.

“여기 맞나?”

“……으으.”

양손을 잃고, 다리마저 성치 않은 성주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잡고 있던 성주의 뒷덜미를 놓아 준 설천위는 문에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맞는 것 같네.”

음산하게 흐르는 영력.

동시에 그 음산함을 이용해 스스로를 감추기까지.

확실했다.

이곳이.

“씨앗을 봉인한 곳이군.”

흠칫!

설천위의 한마디에 성주가 흠칫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에 설천강의 미간이 좁아지는 사이.

“일단, 천천히 풀어 볼까.”

힘으로 부수고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조심스럽게 영력을 흘려 넣기 시작한 설천위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언여휘가 심어 놓은 악의(惡意)를 견제하며 이 결계를 해제한다.

괜히 설천강을 호위로 데리고 온 게 아니었다.

높은 집중력으로 천천히 문을 감싼 결계를 하나씩 풀어낸 설천위는 일각(약 15분) 정도가 지난 뒤에야 눈을 떴다.

“형.”

“전투냐?”

“아니, 마음의 준비를 해 놓으라고.”

굳이 유예린이 아닌 설천강을 데려온 이유.

이 앞에 펼쳐진 꼴은 결코 연인한테 보여 주고 싶은 광경은 아닐 테니까.

“토할 거면 저 성주 대가리에다가 해.”

* * *

영역이 사라진 뒤.

자신이 도망쳤던 통로의 입구에 도착한 주송유는 무릎을 꿇었다.

“……유사.”

품에 안은 차가운 시체.

꺾인 목이 힘없이 흔들리는 시체에서는 악취가 올라왔다.

하지만.

“흐윽! 미안해! 미안해!”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차가워진 친우의 시체를 붙잡고 주송유는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탈출시켜 줬던 부하이자 친구의 마지막.

죽어서도 남아 자신을 도와줬던…….

“……그만, 병에 걸릴지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분께서 싫어하실 거예요. 자신 때문에 아가씨가 병이 들면 지하에서도 슬퍼할 겁니다.”

함께 온 유예린의 말에 주송유는 입술을 깨물고 조심스럽게 유사를 내려놨다.

“……저희 가문의 묘에 묻겠습니다.”

자신 대신에 죽은 이다.

내가 들어갈 자리 바로 옆에 함께 묻을 거다.

입술을 깨물고 일어서는 주송유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송유의 선택을 그녀가 막을 이유는 없으니까.

“세는 것도 힘들 만큼 사상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아요.”

“……최소 반년. 길면 일 년 이상 걸릴 거예요.”

황실에 보고를 넣고, 황실이 이 성을 다스릴 성주를 보내고, 그 성주를 보좌할 인력을 충원하기까지.

짧아도 육 개월, 길면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도 희망적으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

성주의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고려하면 아마 십 년 정도는 혼란을 피하기 힘들 거다.

남경이라는 대도시 하나가 거의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이런 상황을 쉽게 수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다만.

“중심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망설이는 주송유.

그녀의 모습에 유예린은 쓰게 웃었다.

정파(正派)인 자신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양심인가 혹은 정의인가.

무엇이 그녀를 망설이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녀의 양심을 지켜 줄 수 있을 만큼 녹록지 않았다.

“처음 설천강 아주버님이 이곳으로 온 것과 같은 상황일 뿐입니다.”

진실은 크게 변했으나, 도출되어야 하는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당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도시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위선(僞善)은 악(惡)이에요. 저희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를 속이고 선한 행세를 한들 그 본질은…….”

입술을 꼭 깨무는 주송유.

겨우 품에서 놓은 유사의 시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유예린은 조용히 가져온 천으로 유사를 덮었다.

“위선(僞善)에서 위(僞)라는 글자를 빼면 그것은 선(善)이 되지요.”

중요한 것은 그 위선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결과가 진실로 선(善)하다면, 그 끝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거짓 정도는 얼마든지 떼어내버려도됩니다.”

“그런 안일함이 지금의 참극을 만들었어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주송유.

하지만, 유예린은 너무도 담담한 눈빛으로 그런 주송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그 참극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 안일한 거짓입니다.”

* * *

“더럽군.”

극도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설천강이 손을 뻗어 냉기를 뿌렸다.

“차라리 모두 태워 버리는 게 낫지 않겠냐?”

“남겨 놔야지. 황실에 보여 줄 게 필요하니까.”

이제는 황족이 아니라고 해도 핏줄만큼은 확실한 귀족이 죽었다.

상황에 따라 황제의 자리도 노릴 수 있는 정통성 있는 핏줄이니 황실에서도 꽤나 제대로 된 조사를 벌일 거다.

지금 황실의 꼴이 아무리 개판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 정도는 할 테니까.

“약간의 조작이 필요해.”

이곳에 있는 시신들은 이미 숨이 끊어진 지 꽤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여기에 새롭게 시체를 놓는다고 한들 시체의 상태를 살피면 그 차이를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냉기로 시체들을 얼려 보존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일이 참 복잡해지는군.”

“뭐, 세상일이 다 그렇지.”

어깨를 으쓱이며 주위를 살핀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처참한 시체들.

원한을 품은 악귀라도 하나 있어야 하건만, 어찌나 악랄하게 빨아냈는지 남은 원귀가 하나도 없다.

독하다.

너무 독해.

“역시, 하늘을 아예 못 열게 해야겠는데.”

“뭐? 하늘?”

“아, 별거 아니야. 다음에 말해 줄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설천위는 설천강의 물음에 대충 손을 저은 뒤 주위를 살피다가 걸음을 멈췄다.

“여기로 하자.”

적당하네.

나름 결계의 중심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겠어.

자리를 정한 설천위는 끌고 온 성주를 그곳에 집어던졌다.

“끄으윽!”

억눌린 비명을 토해 내는 성주.

빽빽 소리를 지를까 싶어 미리 아혈을 눌러 놓길 잘했네.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가볍게 흑관을 불러내 엎드린 성주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정도면 되겠지?”

성주를 적당히 자세를 갖춰 앉힌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고 싶진 않지만, 어쩌겠어. 세상이 이런 걸.”

아쉬움에 혀를 찬 설천위는 주위를 쓱 둘러봤다.

설천강의 내공으로 꽁꽁 언 지하.

끔찍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성적 학대를 당한 흔적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끔찍한 얼굴로 죽어 간 시체들밖에 없었다.

성주와 술사 놈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겸, 그리고 정기와 생기를 뽑아낼 겸 사용한 공간.

아마 성주는 술사 놈들의 술법으로 점점 더 왕성해지는 자신의 육체를 이곳에서 실감했을 거다.

술사 놈들은 겸사겸사 같이 놀았을 테고.

굳이 설천강만 데려온 게 단순히 냉동실 셔틀용이 아니란 소리다.

솔직히 연인에게 이런 꼴을 보여 주긴 싫지 않은가.

대충 사정을 들은 설천강도 자진해서 왔을 정도니까.

물론.

“이제 죽이면 되나?”

날카롭게 빛나는 눈깔로 봐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것 같지만.

성주를 패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노려보는 설천강을 보며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겐 못 하지.

결과를 위한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의는 집행되어야 하지 않겠어?

“감찰이 오기까지 아마 족히 한 달은 걸릴 테지.”

굳이 외부로 이어지지 않는 지하실을 고른 이유가 있었다.

“황실에서 오는 관리가 술법에 통달했을 리는 없겠지.”

시체의 상처 정도야 뭐 얼마든지 눈으로 읽어 낼 순 있겠지만, 혼의 상태까진 읽어 내지 못하겠지.

천천히 손을 뻗어 노인의 이마에 손가락을 올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럼, 끔찍한 여생이 되도록.”

시커먼 설천위의 영력이 노인의 이마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패기(覇氣)는 아니었다.

다만.

언여휘의 악의(惡意)를 받아들이며 배운 약간의 응용이다.

“끄, 끄으으으으으으!!”

아혈이 눌려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비트는 성주.

그런 성주의 마혈을 재빨리 짚은 설천강은 격렬하게 떨리는 성주의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결말이라면, 나쁘지 않겠네.”

* * *

“그나저나 의외네.”

“뭐가?”

성주를 처리하고 돌아가는 길.

앞서 걸어가는 설천강을 보며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형이 이런 지부에 처박히고도 얌전히 일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오올.”

당당하게 말하는 설천강을 보며 히죽 웃은 설천위는 뒤에서 손가락으로 설천강의 어깨를 찔렀다.

“형수님까지 두고 굳이 고생길을? 이거 우리 형님 철든 건가?”

“……까불지 마라.”

“에헤이,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히히 웃으며 손가락을 뗀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그 형 부하인 여자, 형을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던데. 이거 출장 나가서 바람이라도 피운 거 아니야?”

“네가 넌 줄 아느냐?”

……아.

[쯧쯧, 반박도 못 하는구나.]

[왜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게냐.]

말문이 막힌 설천위를 놀리는 혼들의 대화를 듣지 못하는 설천강은 이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제수씨한테 잘해라. 네가 머저리처럼 살았을 때도 네 곁에 있던 사람이니.”

“형이 머저리처럼 살았을 땐 아무도 없었지?”

“……이 자식이.”

손을 올렸다가 이내 동생의 경지를 떠올린 설천강은 서둘러 손을 내렸다.

형이 된 처지에 이 이상 동생한테 맞고 다닐 순 없으니까.

“됐고. 여 소저는 잘 지내고 있었느냐?”

“아까 봤잖아?”

“상황이 다급해서 물어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잖아.”

“그것도 그러네.”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잘 몰라. 나도 단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됐어.”

“……하아, 네 녀석이 실종 상태였다는 걸 까먹고 있었네.”

전이문까지 쓰는 놈이 실종은 대체 왜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동생 놈의 행보에 고개를 저은 설천강은 지하실 문을 열었다.

“됐고, 여 소저나 똑바로 챙겨라. 네 형수 될 사람…….”

“……진짜였어요?”

지하실 입구.

여웅과 함께 기다리던 소연은 부들부들 떨다가 빽 소리쳤다.

“이런 거구가 취향이었냐고요! 그래서 안 넘어온 거예요?!”

울먹거리는 소연의 목소리에 뒤따라 나오던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설씨 핏줄 어디 안 가는구먼.”

잘생긴 게 죄지. 암.

솔직히 형도 어디 가서 꿀리는 외모는 아니지.

“소연, 내가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뭐가요!”

“외모로 남자를 유혹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중요한 건 내면, 마음이 통하는 거다.”

당당하게 선언한 설천강이 뿌듯해하는 그때.

“형, 그거 아웃.”

“응?”

아웃? 그게 뭔데?

설천강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살짝 어두운 여웅의 눈빛을 발견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여, 여 소저! 그게 아니오! 여 소저가 아름답지 않다는 게 아니라! 중요한 건 따로 있다는 소리요! 여 소저는 충분히 어여쁜……!”

“이런 근육질 거구 여자가 뭐가 예쁘겠어요? 전 내면으로 승부하는 여인인데요.”

“여, 여 소저! 잠깐! 기다려 주시오!”

살짝 기가 죽어 돌아선 여웅과 그를 뒤따르는 설천강.

그 모습을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여심 어렵네.”

내용도 칭찬이고, 머리로도 칭찬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상처받는 건데?

참, 알아가도 모르겠다.

응.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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