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50화 (450/624)

제450화

449화-설천강 (3)

“하늘에 흐르는 붉은 연기는 대법의 증상입니다.”

“증상?”

또 다른 피난처를 찾아 자리를 잡은 설천강은 겨우 들을 수 있게 된 여인의 설명에 미간을 찡그렸다.

“개인의 이변으로 하늘이 저렇게 됐다는 겁니까?”

설천강이 느낀 것과 같은 이상함을 느낀 소연의 물음에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로불사를 향한 욕망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불로불사?”

“강소성 성주는 나이가 꽤 있습니다.”

“알고 있다. 분명 현 황제의 종조부(從祖父)되는 인물이었던가?”

“예.”

종조부라 함은 할아버지의 형제를 칭하는 말이다.

현 황제가 어리다곤 하나 그런 황제의 할아버지뻘이라면 나이가 꽤 있을 수밖에 없다.

권력을 쥔 노인이 추구하는 거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뻔하긴 했다.

죽음조차 잊을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하든가,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든가.

전자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더럽긴 하지만, 그 피해의 범주가 극히 한정된다.

쾌락이란 건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름대로 조건이라는 게 붙어 피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후자.

인간이 죽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다.

단순히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도 말도 못 할 제물이 필요한 일인데, 권력을 쥔 인간이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영생만을 추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랬다면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는 길을 택했겠지.

모든 것을 손에 쥔 인간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영생보다 아득히 많은 제물로 시간을 버는 것.

그 불완전한 영생조차 권력자들의 눈엔 매혹적인 열매로 비친다.

하물며, 무림인이라는 태산조차 무너트리는 초인들이 실존하고, 사람을 홀리고 수천의 피해를 내는 재앙과 같은 악귀가 실존하는 세상이다.

권력을 손에 쥔 자라면 한 번쯤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저 힘을 이용하면 혹시?’

그런 생각을 품었을 때, 누군가가 옆에서 그 의문을 확신으로 바꿔 준다면.

노쇠한 권력자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영생을 노리게 된다.

“……해서, 천통안이라는 자가 성주님의 곁에 붙어 수많은 일들을 벌였습니다.”

“거참, 뻔한 이름이군.”

천통안(天通眼).

하늘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니, 천리를 거스르는 힘을 알 것 같은 이름이다.

“성주님은 천천히 제물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조사하던 사건의 범인이 의뢰자였을 줄이야.”

최근 지부장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니며 무마시켰던 일의 범인이 성주였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제는 행방을 알 길이 없는 지부장의 헛된 노력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설천강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고도 눈감고 있었군.”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저도 이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변명이 맞는군. 이렇게까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성주에게 생긴 변화를 몰랐을 리가 없으니까. 짐작하면서도 눈을 돌린 거겠지.”

“…….”

설천강의 말에 입을 꾹 다문 여인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달리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맞는 말이니까.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안일함이 지금의 이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을 해도 참!”

완전히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여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소연이 설천강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밀어내고 여인의 앞에 앉았다.

“됐어요. 뭐 방화로 산불이 나면 그 산 아래 살던 사람들 잘못인가? 갑자기 찾아와서 불 지른 놈 잘못이지.”

“그건 감시를 소홀히 한 마을 사람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아, 됐어요. 눈치가 없어.”

반론하는 설천강을 발로 밀어낸 소연은 여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뭐, 됐어요. 이런 남자는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얘기 좀 해 줘요.”

“다른 얘기라면…….”

무슨 얘기?

고개를 갸웃하며 말끝을 흐리는 여인의 어깨를 굳게 붙잡은 소연은 입꼬리를 올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아는 거 다 말해 주세요.”

왜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나요?

* * *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설천강은 동료들을 한데 모아 회의를 시작했다.

“금릉성. 이곳이 이번 일이 일어난 중심지다.”

“그거야 다 짐작하던 내용이죠.”

“뭐, 뻔하죠.”

“그래서 타개할 방법이란 건 뭔데요?”

고개를 끄덕인 이들은 어서 빨리 다음 내용을 말하라고 재촉했다.

아니, 상황이 이런데 금릉성이 시작점이라는 걸 짐작 못 하는 머저리가 어디 있겠는가.

“타개법은 간단하다. 이 사태가 일어난 상황 자체를 부수면 돼.”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성주 암살.”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이만 잠자러 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빠르게 물러나는 부하들의 모습에 설천강은 미간을 찡그리고 검집을 휘둘렀다.

따다다닥!

“아오! 아파요!”

“성주 암살이라니! 미친 거냐고요!”

“죽어도 저만 죽어야죠! 가족까지 죽일 순 없어요!”

아무리 늙었다고 해도 성주는 성주다.

그리고 이 나라의 성주는 전부 황족 출신이다.

물론, 성주가 되는 시점에서 황족으로서의 위치는 내려놓고 왕(王)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핏줄이 어디 가겠는가?

그런 성주를 암살한다니.

실행 이전에 입에 담기만 해도 삼족이 멸해질 중죄다.

실행하면 뭐, 구족을 멸하는 걸 피하면 그나마 다행이겠네.

일단 가문 전체가 사라지는 건 확실하다.

그런 성주를 암살하자고?

미친 거 아니야?

난리를 치는 부하들의 모습에 설천강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주를 암살하긴 하지만, 정확히는 다르다.”

“뭐가 다른데요?”

“성주는 이미 죽었어. 우리는 성주님의 시체를 농락하는 악당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것뿐이다.”

“그게 무슨…….”

“아.”

설천강의 말뜻을 전부 이해한 부하들의 눈동자에 스산한 빛이 어렸다.

성주를 죽인다.

다만, 세간에 알리기를 다르게 알릴 뿐이다.

죽고 난 뒤에 시체까지 능욕당하고 있는 성주를 위해 안식을 선물한 것으로.

“우리라면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뒤에 이어지는 설천강의 말에 부하들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

왜 이런 단어를 쓰겠는가.

뻔하지 않은가.

‘……역시 평소에 멍청해 보여도 설가는 설가인가.’

‘독하네.’

이미 한배를 탔다, 이건가.

이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에 빠져나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계획을 알려 주세요.”

“좋아.”

부하들의 동의에 설천강은 여인에게 들었던 정보를 토대로 세운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계획이라고 해도 이런 소수의 인원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최대한 은밀하게, 할 수 있는 데까지 잠입해서 쓱싹.

발각되면 그냥 힘으로 밀고 들어간다.

이 정도가 최선이다.

애초에 지리 정도는 여인에게 들은 설명으로 짐작할 수 있었지만, 경비 병력의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이게 최선이었다.

깔끔하게 계획을 설명한 설천강은 각자 정비에 들어간 부하들을 보내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부터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던 여인이 그 시선에 흠칫 놀랐다.

놀랍도록 차가운 눈동자.

……살인멸구를 할 생각인가!

“……무슨 일이시죠?”

떨리는 손으로 품에 넣고 있던 비수를 쥔 여인이 각오를 굳히는 사이.

“선택하시오.”

“……저는 결코!”

“남겠소, 따라오겠소?”

“순순히……. 예?”

“두 번 말하게 하는군.”

얼빠진 얼굴로 되묻는 여인을 보며 설천강은 다시금 물었다.

“이곳에 남아 사태가 진정되는 걸 기다리겠소? 아니면 우리를 따라오겠소?”

“제가 따라간다고 한들…….”

“한 명쯤은 명복을 빌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뿐이오.”

명복을 빌어 줄 사람.

그 말에 여인은 이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떨리는 눈동자로 설천강을 바라봤다.

“당신…….”

“눈빛을 보니 따라오겠군. 준비하시오. 일단 그 신발부터 바꿔야 할 거요. 소연에게 말해 편한 신발을 받으시오.”

자기 할 말만 내뱉은 설천강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부하들이 준비하는 동안 주위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설천강이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은 여인은 조심스럽게 주먹을 쥐었다.

“……할아버지.”

* * *

“……부지부장님, 진짜 하는 거죠?”

“진짜 한다.”

“정말로?”

“정말로.”

“진짜로?”

“진짜로.”

망설임 없는 대답.

바늘로 찔러도 미동도 없을 냉정한 대답과 표정에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던 부하는 한숨과 함께 물러났다.

“어휴, 각오를 아직도 못 다졌어? 할 땐 해야지! 그게 이 무림맹의 무인인데!”

물러난 부하를 타박하며 설천강의 옆에 선 소연은 설천강을 보며 웃었다.

“준비 끝났어요, 부지부장님!”

“다행이군. 그 여인은?”

“확실하게 준비시켰어요!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거예요!”

“좋아. 출발한다.”

부하들의 준비가 전부 끝나고, 출발한 설천강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목표는 금릉성이지만, 단순히 도착하고 끝이 아니다.

최대한 은밀하게 잠입해 중심부까지 도달할 필요성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은밀함.

그렇기에 설천강은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적의 기척이 느껴지면 바로 숨었고, 최대한 기다려서 적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움직였다.

당연히 진척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귀신같이 이쪽을 눈치채고 적이 찾아오면 한동안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뛰어가면 그리 얼마 걸리지도 않았을 거리를 며칠에 걸쳐 이동했다.

“……부지부장님.”

“그래. 드디어 도착이다.”

“끄읏!”

환호성을 겨우 억누르는 소연의 모습에 피식 웃은 설천강은 조용히 담을 넘었다.

그 뒤를 따라 소연과 여인이 그리고 부하들까지 전부 담을 넘었다.

“일단 경비는 없군.”

기감으로 살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외성 쪽은 경비를 세우지 않은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설천강은 천천히 움직였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지만, 금릉성에 들어온 것만으로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여기서부턴 설령 발각되더라도 아예 힘으로 밀고 지나갈 희망이라도 생기니까.

물론 그 괴물들을 생각하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아니, 전멸당할 가능성이 더 큰가.’

냉정하게 생각하니 역시 지금이 더 위험한 것 같기도 했다.

희망에 차서 좋은 부분만 생각했더니, 이런 안일한 판단을…….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으며 설천강은 더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힘으로 돌파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식이다.

들키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가는 것.

어디까지나 그게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가씨?”

순간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설천강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말을 꺼내는 순간 희미하게 느껴진 인기척.

훈련받은 인간의 것이다.

키잉!

순간 검기와 검기가 맞물리며 섬뜩한 소리가 났지만, 상대가 재빨리 설천강의 검을 흘려내는 것으로 소리를 차단했다.

“뭐 하는 짓이야! 다 들킬 셈이야?!”

작은 목소리로 소리치는.

기이한 모순을 달성한 상대방은 설천강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유사!”

“무사하셨군요. 아가씨.”

상대에게 과감히 접근한 여인은 망설임 없이 유사라고 부른 여인을 끌어안았다.

확실한 아군이라는 듯 거침없는 행동.

그 행동에 설천강은 잠시 미간을 찡그리다가 천천히 검을 거뒀다.

“이 성에 아직도 살아 있는 인간이 숨어 있었나?”

“숨어 있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아가씨가 보여서 인기척이 드러났지만.”

설천강의 물음에 싸늘하게 대답한 유사는 여인을 자신의 뒤로 보낸 채 설천강을 노려봤다.

“그래서 네놈……. 아가씨를 데리고 무엇을 하던 것이냐?”

“성주 암살.”

“……미친 부지부장 새끼야!”

당황해서 설천강의 뒤통수를 때리려 한 소연은 허공을 가른 손으로 설천강의 소매를 붙잡고 당겼다.

‘그걸 말하면 어떻게……!’

“상황이 상황이다. 아군이라 판단되면 숨길 여유 따위 없다. 모든 걸 다 동원해야 한다.”

설천강의 담담한 대답에 소연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이런 답도 없는 인간…….

눈치와 융통성이라곤 개나 준 인간…….

설천강의 부하들이 후회가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그때.

“……그런 거라면, 안내해 주지.”

유사는 여인을 옆에 끼고 등을 돌렸다.

“마침 나 혼자서라도 시도할 생각이었으니까. 칼은 많을수록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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