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48화 (448/624)

제448화

447화-설천강 (1)

강소성.

중원의 동쪽, 바다를 접한 이 성은 대부분이 평야로 이루어진 비옥한 땅이다.

상당히 발전된 관개시설에 힘입은 쌀의 생산과, 바다라는 물류 운송에 큰 도움이 되는 지리적 조건까지.

이 나라의 초대 황제가 이 강소성의 남경을 수도로 삼았을 만큼 크게 발전한 곳이기도 하다.

동시에, 무림(武林)의 오지이기도 한 곳이다.

관(官)의 힘이 강하니, 무림인들이 활동하기 힘들다는 점이 첫째 이유이고.

중원(中原)이라는 무림의 중심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둘째 이유다.

무림맹의 힘이 잘 닿지 않는, 무림의 오지.

문제는 이런 오지라고 해도 적은 있다는 점이다.

강소성의 바로 아래, 절강성.

그곳은 명백하게 사파의 영역인 곳이다.

강소성과 절강성은 둘 다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

무림인들에겐 먼 곳이지만, 이 나라의 높은 사람들에게는 꽤나 중요한 곳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 흐르는 재물의 양 또한 다른 성들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크기가 조금 작은 편인데도 흐르는 재물의 양은 비슷하거나 더 많으니 이곳에서 손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무림맹에서도 강소성의 지부장으로는 꽤나 능력이 있는 사람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충분한 연륜이 있어 관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서도, 탁월한 안목을 발휘해 스멀스멀 넘어오려는 사파의 세력을 막아 낼 수 있는 능력자.

그런 능력자를 보통 강소성의 지부장으로 앉힌다.

“……더럽게 바쁘네.”

그런 지부장의 자리에 새파란 청년이 앉아서 온갖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고…….”

짜증을 가득 담아 이를 악문 청년, 설천강은 올라온 보고서를 보며 한 손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지부장은 실종, 함께 데려갔던 운천대도 깜깜무소식.’

상황으로 봐선 전멸이 거의 확실하다.

무려 나흘이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으니까.

만약 무슨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든 보고하려 했을 테니, 운천대와 지부장은 끝났다고 보는 게 맞았다.

‘……짜증 나는 인간이었지만, 이렇게 빈자리가 클 줄이야.’

강소성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관의 손을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해도 그런 문제가 반복되면 관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는데, 지부장은 뛰어난 처세술로 관과 무림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시켰다.

뭐, 그 과정에서 접대나 뇌물이 들어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야 하나.

몇 번 술자리를 따라갔다가 달라붙는 기녀들을 떼어 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 모습을 보고 꼴에 얼굴값 한다고 지부장이 이죽거리기까지 했으니 그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전부 얼려 버렸을 거다.

지부장을 떠올리니 그와 함께 따라온 쓸데없는 기억에 한숨을 내쉰 설천강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다른 걸 생각하지 마라. 설천강.”

떠오르는 사람의 얼굴을 지워 내며, 설천강은 보고서를 훑었다.

능글맞고, 적당히 때가 묻은 인간이었던 지부장이지만 그래도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인간이었다.

선도 정확하게 지킬 줄 알았고.

지부 내에서도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그를 따르지 않더라도 능력만큼은 인정하는 인물들이 많았다.

자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고.

그런 사람이 부재중인 지금.

“이 개자식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파가 송곳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관이 무림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관의 권위가 침해되었거나,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거나.

그리고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관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특히, 최근 황실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인지 강소성의 관리들은 잔뜩 몸을 사리고 있었다.

자잘한 문제는 쉬쉬하면서 덮거나 무시했고, 무림과의 일에는 아예 본인들 입으로 관무불가침을 말하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기습과 암습을 벌인 사파 탓에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고 피를 흘렸는데도 관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평소라면 민심의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는 시늉이라도 했을 녀석들이 마치 굼벵이처럼 꾸물거리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사파는 지금 맹주가 바뀌어 혼란스러운 상황. 그 틈을 이용해 보려는 수작 같은데…….’

절강성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놈들이 몸집을 키우려는 건지 아니면 이참에 새롭게 자리를 잡으려는 녀석들인지.

영 감이 잡히질 않았다.

“쯧.”

직접 가서 보질 못했으니 보고서에만 의존해야 했는데, 무공의 흔적을 봐도 잘 모르겠다는 내용밖에 없으니…….

‘용케 굴리고 있었네, 지부장.’

이런 놈들을 데리고 어떻게 지부를 굴린 거지.

쓸 만한 내용이라곤 보이지 않는 보고서의 상태에 한숨을 쉬면서 미간을 꾹꾹 누르던 설천강은 결국 긴 한숨과 함께 보고서를 내려놨다.

“……일단 움직이는 게 낫겠군.”

지휘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애꿎은 문파만 습격당하고 있을 거다.

말이 문파지 거의 도련님들에게 무술이나 가르치는 무관 수준의 문파들인데, 마음먹고 세력을 넓히려는 사파의 손길을 어떻게 막겠는가.

버티다가 전멸이나 안 당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거기다.

‘이상할 정도로 독해.’

개인이 아닌, 집단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주위의 시선뿐만 아니라, 집단 내부에 속해 있는 개인도 납득할 수 있는 명분.

보통 공격하는 쪽보다 수비하는 쪽의 사기가 더 높은 이유도 바로 이 명분 때문이다.

수비하는 쪽은 당장 밀리면 자신과 가족, 재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다.

반면, 공격하는 쪽은 목숨을 걸고 적을 밀어내도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이득이 많지 않다.

이득을 보는 건 결국 윗대가리지 아래에서 창이나 칼을 들고 싸우는 병사들이 아니니까.

집단 간의 전투에선 공격하는 쪽이 이 명분을 얼마나 잘 챙기느냐가 사기를 좌지우지했다.

막말로, 윗대가리가 내가 백의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십의 재산을 더 얻고 싶으니 네가 나가서 뒈지게 싸워라.

이런 식으로 말하면 누가 기를 쓰고 싸우겠는가.

공격하는 쪽에도 나름 합당한 명분이 필요하다.

혈교 같은 광신도들이 무서운 이유도 이런 명분이 손쉽게 채워져 맥락 없는 공격을 가한다는 점이다.

신의 뜻이다.

이 말 한마디로 내적 명분이 완벽하게 충족되어 전장으로 쏟아져 나오니 어디 예측이나 할 수가 있겠는가?

사파와의 전투는 이 명분을 읽는 싸움이다.

실질적인 전투를 최대한 피할 수 있게 명분을 조작하며, 설령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적들이 제대로 된 명분을 갖지 못하게 해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

“지부장이 그건 끝내주게 잘했는데.”

절강성의 사파 놈들이 기웃거릴 때마다 끝내주게 쳐냈는데 말이야.

한숨과 함께 지부장실을 나선 설천강은 거침없이 걸어갔다.

일단, 자신에겐 그런 정치력은 없으니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조사대를 꾸리고 직접 움직이는 게 낫겠어. 일단 내정은 우 총관에게 맡기고…….’

머릿속으로 침착하게 계획을 세워 나가던 설천강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부, 부지부장님!”

다급한 우 총관의 목소리에 설천강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런 미친.”

옛 수도였던 남경.

수도가 되기 전의 이름은 금릉으로, 먼 옛날 존재했었다는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삼고 성을 세웠다.

그 이름은 금릉성.

이 나라의 초대 황제가 수도로 삼으며 황궁으로 잠깐 사용했던 적도 있던 그 고성(古城)이.

“금릉성이 불타고 있습니다!”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꽤나 순조롭군.”

불타오르는 금릉성의 위.

밑에서부터 치솟는 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던 사내는 시끄러워지는 성 밖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위건, 그놈이 왜 갑자기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견제해야 할 놈이 하나 사라졌으니 굳이 이 이상 계획을 미룰 필요가 없어졌다.

황궁에서 그 녀석이 황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지금.

이 계획의 걸림돌이 될 존재 따윈 없었다.

유일하게 거슬리는 것은 위건을 처리했을 의문의 강자이지만…….

놈의 궁은 이 금릉성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

설령 축지를 쓸 수 있는 괴이나 술사가 위건을 처리한 거라고 해도 그 위건을 상대한 다음이다.

한동안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터.

아무리 빠르게 오더라도 자신이 이곳에서 일을 마치기 전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다.

“완벽한 순간이군.”

무림맹은 평소처럼 자신들끼리 물어뜯기 바쁘고, 사천맹은 웬 새파란 어린것이 꼭대기에 올라서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양쪽 다 이쪽에는 제대로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

위건 놈이 죽어 그놈이 뿌려 놨던 씨앗들은 발아도 하지 못한 채 썩어 버렸다.

지금이다.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열고, 본래 있어야 할 세상이 도래할 시간이다.”

* * *

금릉성이 불타오른다.

그 비현실적인 현실을 인지한 순간, 설천강은 즉시 움직였다.

“주민들을 대피시켜라! 관청에 협력을 구하고 흩어져 있는 무인들 전원을 유시(酉時, 오후 5시~7시)까지 대연무장으로 집결시켜라!!”

내공을 담은 설천강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무림맹 남경 지부는 물론, 그 밖의 저잣거리까지 닿을 듯 크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빠르게 지시를 내린 뒤 설천강은 즉시 검을 쥐고 도약했다.

“부지부장님!”

“우 총관! 지부에서 전체적인 조율을 부탁드립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원인의 파악이다.

혼란에 휩쓸려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전전긍긍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용 인원이 아예 없다는 건 아쉽지만…….’

믿을 만한 녀석들은 지부장의 실종을 조사하기 위해 외부로 돌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지시 사항이 빠르게 전파될 테니 있다가 해가 질 때쯤에는 지부에서 만날 수 있겠지.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는 거다.

‘금릉성만이 아니야.’

금릉성에서 치솟은 불길에 정신을 빼앗겨 놓치기 쉬웠지만, 지금 시내 곳곳에도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즉, 이 도시 전체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리였다.

대체 어떻게 성의 경비를 뚫고 이런 대규모 습격이 일어난 건진 모르겠지만…….

‘관이 움직이면 끝이다……!’

관이 이 사태의 원인을 무림으로 규정하고 그 책임을 묻는 순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거다.

무림이 원인일 확률이 높지만, 그리고 습격자는 거의 무조건 무공을 익히고 있을 테지만!

‘절대 정파와 연관이 있어선 안 된다……!’

만약 연관이 있다면 자신의 손으로 끌어내서 없게 만들어 주마.

이를 악문 설천강은 최대한으로 경공을 펼쳐 금릉성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금릉성의 성벽에 도착한 설천강은 잠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정문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설천강이 담을 넘는 그 순간.

“어라? 우리 천위의 형님 아니야?”

키이이잉!!

순간적으로 휘두른 설천강의 검이 허공에 나타난 벽에 막혀 섬뜩한 소리를 토해 냈다.

“꺄하하하! 반응 한번 좋네! 형제라서 그런가?”

가볍게 손을 뻗어 만들어 낸 방벽으로 설천강의 검을 막아 낸 소녀, 언여휘가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 웃음을 지켜보는 설천강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지만.

“네년이 한 짓이냐? 언여휘.”

“어머? 이번에는 억울하네. 난 아니야. 이 무림에 불 지르는 취미를 가진 괴짜가 어디 한둘인가?”

나는 뭐, 불 지르는 취미만 있는 건 아니지만.

실없는 농담을 하며 히히 웃는 언여휘를 보던 설천강은 망설임 없이 검을 거뒀다.

“어머? 끝?”

“네년의 혓바닥에 놀아날 시간 따위 없다.”

믿을 만한 정보원이 없다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면 될 뿐.

그대로 등을 돌린 설천강은 담을 넘어 성안으로 달려갔다.

“흐응? 과연 설가(雪家)의 핏줄이라 이건가?”

냉정함을 유지하는 능력이 참 탁월하네.

달려가는 설천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언여휘는 이내 히죽 웃으며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었다.

어차피 정찰을 위해 온 것뿐이니, 깊게 관여할 생각은 없었지만…….

“조금 재미있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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