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4화
443화-역전 (6)
영력이 역류하는 공간 속에서.
설천위와 궁주는 미친 듯이 손을 뻗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손을 뻗은 것은 아니지만.
의념을 담은 손이 수십 갈래 뻗어 나와 영력의 흐름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손을 뻗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영안(靈眼)이 없는 북존조차 기감(氣感)으로 느껴진 영력의 미세한 존재감이 시각화될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 시작됐다.
뺏고 뺏기고.
궁주를 향해 휘몰아치던 영력의 흐름이 역류하는 순간부터 영력의 통제권은 극히 불안정한 상태가 됐다.
설천위의 의지로도 얼마든지 긁어모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을 토해낼 여력도 없이 양쪽 술사들이 미친 듯이 영력을 끌어모으는 싸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패다.’
북존과 설천위의 생기와 영력을 빨아들였어야 할 술법의 공능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었다.
궁주의 곁에서 북존을 막는 역할을 맡은 오련은 궁주가 세운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설천위와의 영력 다툼 속에서 궁주님이 설령 우위를 점한다고 한들 이 과정에서 소실되는 영력은 되돌릴 수 없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북존과 설천위의 영력을 아예 흡수하지 못하는 이상, 계획은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대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 얼마나 긴 시간 준비를 해 왔던가.
들어간 시간도, 자금도, 인력도 다시 준비하기 위해선 족히 두 세대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궁주님이 술법으로 영생에 가까운 시간을 얻었다고는 해도, 시간이라는 풍파 속에서 약해지는 것만큼은 완벽히 막을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겉을 채우는 힘은 강해질지 몰라도 근간이 되는 뿌리는 곪고 썩어 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음 기회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최고, 최선의 기회인데……!
이미 패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입술을 깨문 오련은 도를 들고 일어섰다.
미친 듯이 요동치는 영력은 그녀의 몸을 휘청거리게 했지만,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힌 명령은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요동치는 영력에 피부가 찢기고 근육이 갈라졌지만, 움직인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위해.
설천위의 목을 치는 것.
그게 이 상황을 최선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몸을 이끄는 강렬한 의지를 따라 오련은 앞으로 나아갔다.
이 끝엔 반드시 죽음이 있을 것이지만.
자신은 애초에 죽음을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에.
‘반드시!’
명령만은 이뤄낼 것이다.
영력의 폭풍을 뚫고 걸어오는 오련의 모습에 가만히 서 있던 북존이 검을 뽑으려는 순간.
“…….”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설천위의 손에 북존은 순순히 검을 거두었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이 검집으로 들어가고, 북존은 오련에게서 관심을 거뒀다.
설천위를 믿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냉정한 것인지 모를 반응이었지만.
설천위는 안타깝게도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빡세네……!’
애초에 이쪽의 몸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지만……. 이왕이면 악인에게 제대로 엿을 먹이는 게 정파 협객으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아님 말고.
뭐 어쨌든.
까득.
이를 악물고 설천위는 영력을 움직였다.
흡수?
그런 분에 넘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수십, 아니 백 년을 넘는 세월 동안 그릇을 준비한 괴물이나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영력이다.
어쭙잖게 흡수를 시도했다가는 역으로 몸이 터진다.
영력을 끌어모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북존과 자신의 영력을 뺏기지 않으려고.
궁주를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려고.
마지막으로.
“후우…….”
처음으로 배운 술법을 써 보려고.
[괴물 놈.]
숨을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황당하다는 손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집중이니까.
흐르는 영력 속에서 설천위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중요한 것은 흐름과 연결이다.
궁주가 가져가려는 것을 막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조차 뜯어내야 머리 싸매고 술법을 배운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손휘에게 배운 단 하나의 술법.
구태여 천희만락궁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니며 사전 준비까지 한, 단 하나의 술법.
손휘의 도움으로 시작된 술법이 완성되어 그 형태를 이룬다.
천라지망(天羅地網)조차 역행하는 힘이니.
그것은 하늘과 대지에 펼쳐진 재앙조차 뒤집는 힘이 될지어다.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설천위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천라역행(天羅逆行).”
수많은 영력의 흐름으로 만들어진 연결.
그것으로 생겨나는 영력의 실.
뒤엉키고 뒤엉켜 이 공간 전체와 천희만락궁 전체를 메우고 있는 영력을.
“단(斷).”
단숨에.
모든 영력의 연결을.
끊어 낸다.
설천위가 손바닥을 비틀며 눈을 뜨는 순간.
풀썩.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며 걸어오던 오련이 픽하고 쓰러졌다.
양팔을 잃은 고통에 침을 흘리며 바닥을 기던 요려 또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고요의 세계.
갑자기 끊겨 버린 모든 영적 연결에 궁주의 동공이 격하게 요동쳤다.
“일대일로 붙자고, 위건.”
입꼬리를 비틀고, 양팔을 벌리는 설천위.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흑도와 흑검.
단숨에 거리를 좁혀 오는 설천위의 돌진에 두 눈을 부릅뜬 궁주가 손을 뻗었다.
[설천위이이이이이!!]
쾅!!
여태까지 궁주의 영력으로 보호되고 있던 지하실의 벽이 단숨에 무너지고, 양팔을 교차시킨 궁주의 몸이 허공에 멈춘다.
가장 정상에 있는 궁의 바로 아래.
흙을 뚫고 나와 먼지투성이가 된 궁주가 흐트러진 머리를 흔들며 악을 썼다.
[네노오오오오오오오옴!!]
궁주의 손에서 피어오른 분홍색의 연기가 그의 전신에서 솟구치는 검은 연기와 뒤섞여 칙칙한 검붉은색으로 변한다.
마치 오래된 피를 보는 것 같은 꺼림칙한 색.
“왜 도망치고 그래? 너희 집 안방은 이쪽이잖아?”
흉흉할 정도로 살의를 드러내는 궁주를 보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가 손가락으로 절벽 쪽을 가리켰다.
자신이 직접 그 안방의 술법들을 부숴 놓고 왜 도망치느냐고 묻는 행태.
그 꼴에 다시 한번 날아갈 뻔한 이성을 붙잡은 궁주는 씹어 뱉듯 말을 뱉었다.
[네노오옴……! 감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으르렁거리는 궁주의 물음에 담긴 진득한 살기에 설천위는 히죽 웃었다.
“알 바임?”
* * *
설천위가 궁주를 데리고 빠져나간 지하실.
그곳에 남은 북존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인물을 가만히 바라봤다.
“왜, 왜요…….”
그 살벌한 시선에 한껏 긴장한 청아가 되물었으나, 북존은 말없이 그녀를 지켜만 볼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청아는 조심스럽게 오련과 요려를 한곳에 모았다.
요려는 대체 왜 무거운지는 모르겠…….
‘알 것 같기도…….’
나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유독 흔들거리는 언덕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며 요려를 두고, 이번에는 오련을 들었다.
“헉!”
더럽게 무겁네!
이게 근육인가?
흑룡단의 그 여웅인가 하는 그 여자가 이 정도 무게일 것 같은데?
아니, 겉으로 보기에는 서하영 정도밖에 안 되는 근육질인데 왜 이렇게 무거워?
“……설마?”
붕대로 묶어 놓은 저곳에 비밀이 있나?
사실 엄청난 그……. 응? 그건가?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오련을 들기를 포기한 청아는 결국 그녀를 질질 끌어다가 요려의 곁에 눕혔다.
“무슨 짓이지?”
“네, 넷?!”
“묻는 말에 대답하도록.”
“그, 그게! 주인님이 일단은 살려 두라고 하셨거든요!”
청아의 대답에 북존의 미간이 눈에 보일 정도로 좁아졌다.
명백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증거.
“그, 그! 궁주라는 인간과 연결을 끊어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예요! 주인님이라면 수하로 거둘 수 있어요!”
“그만한 충심으로 움직이던 이들을 말이냐?”
“그게…… 술법으로 세뇌된 충심은 술법으로 지울 수 있거든요.”
설천위는 쓰지 않지만, 사실 대부분의 술사들이 식령(式靈)에게 쓰는 방식이다.
애초에 식령으로 받아들이는 혼은 대부분이 악귀다.
술사가 굳이 영력과 심력을 소모해 다루고 싶을 정도로 힘을 쌓는 건 대부분이 악귀니까.
자유의지를 제거하는 것 정도야 기본인데, 세뇌된 타인의 의지를 지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아예 초기화가 될 수도 있지만…….
‘그거야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긴 하지.’
애초에 적이었던 녀석들이니까.
인간도 아니고 마(魔)에 들어선 녀석들이 어찌 되든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며 청아가 요려와 오련 사이에 쪼그려 앉는 순간.
“……난잡한 자식 놈이군.”
난잡하다는, 상당히 묘한 단어 선택이었지만 청아는 단숨에 북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 아니에요! 주인님은 딱히……!”
“됐다. 녀석이 어떻게 살든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니까.”
청아의 반론에 고개를 저은 북존은 이내 청아 쪽엔 관심을 끄고 설천위와 궁주가 빠져나간 구멍 쪽으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입구.
바로 앞, 허공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허공답보…… 는 아니군.’
발밑에 술법으로 발판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나.
상대는 그냥 허공을 날고 있지만, 힘의 소모를 막으려면 발판을 만드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겠군.
단숨에 설천위의 상태를 파악한 북존은 검을 잡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군.”
* * *
[크아아아아!!]
여태까지 보여 줬던 고상한 모습 따위 개나 줘 버렸는지 괴성을 지르며 날뛰는 궁주의 공격이 설천위를 향해 쏟아졌다.
영력으로 만든 무형무색의 암기.
그것의 모양은 창일 수도, 검일 수도, 도일 수도, 바늘일 수도 있었다.
언뜻 손휘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완성도는 차원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공격은 궁주가 살아생전 평생을 감내해 온 암투(暗鬪)를 형상화한 것이니까.
보이지 않는 날붙이가 끊임없이 목을 노리는 황궁의 세계.
혓바닥이 만들어 내는 도검은 그 무엇보다 날카로웠고.
황제의 침실에서 피어나는 달콤한 향은 그 무엇보다도 지독했다.
끊임없이 암투를 반복하며 살아남고 살아남았지만, 끝내 믿음을 주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존재.
그게 바로 위건, 천희만락궁의 궁주이다.
위건은 영생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제물과 희생으로 쌓아 올린 술법을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사용해 겨우 황궁을 탈출했다.
황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희생된 수많은 목숨을 발판으로 또 다른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 뒤에 위건은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황실에서 얻은 지식으로 약과 술법을 만들고 개량했다.
인간은 쾌락과 절망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이용해 천천히 세력을 넓혀 갔다.
허나, 그럼에도 그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다.
내시가 될 때 잘라 냈던 하물과 진정한 쾌락이었다.
하물이 없으니 성욕이 없었고.
약과 술법에 통달한 노쇠한 육체는 그 무엇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천천히 확실하게, 존재적 죽음에 다가가는 시간.
그 속에서 위건은 더더욱 목적을 높게 세웠다.
육체를 새로 손에 넣고, 진정으로 하늘에 서리라.
하늘과 지하에 있는 저 괴물들조차 짓밟고, 진정한 만인지상의 위치에 오르리라.
그리 다짐하며 걸어온 시간이 수십 년이거늘.
그렇게 인내해 온 세월이 수십 년이거늘!!
[네놈이!! 네깟 놈이 감히!!]
영력과 생기를 흡수해 만들어 낸 육체는 불안정해 완전히 인간을 벗어나 버렸고, 당연하게도 원하던 하물은 생기지 않았다.
설천위를 미끼로 북존까지 끌어들여 완전한 힘을 얻으려고 했던 계획도 어그러졌다.
언젠가 오존급의 강자를 잡기 위해 키워 놓은 오련과 가장 상성이 좋은 북존이 온다는 사실에 그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런데.
그런데……!
[네놈이 모든 것을 망쳤다!!]
히죽 웃는 얼굴로 자신을 비웃고 있는 설천위를 향해 화를 토해내던 궁주는 급격하게 허리를 꺾어 설천위의 도를 피했다.
그리고.
“그게 왜 내 탓이냐? 조급해져서 제대로 계획 실행을 못 한 네 탓이지. 뭐, 그래도 덕분에.”
히히 웃음을 흘리며, 설천위는 검을 쥔 왼손으로 배를 두들겼다.
“꺼억! 잘 먹었습니다!”
[크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