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43화 (443/624)

제443화

442화-역전 (5)

흑도를 겨누는 설천위를 지그시 바라보던 궁주는 덤덤한 손짓으로 오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망가진 몸을 겨우 회복하고 북존의 공격을 받아 내던 오련의 움직임에 다시 힘이 깃든다.

육체는 더욱 단단하게, 힘은 더욱 강하게.

무너지던 육체는 다시 굳건히 서서 적의 공격을 받아 낸다.

거만하게(傲),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련한다(煉).

그녀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흐아아아아아!!”

물러서는 법 따윈 몰랐다.

북존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오련에게서 손을 거둔 궁주는 다시 덤덤한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네 녀석의 오만함은 하늘을 찌를 정도구나.”

“칭찬까지야.”

“허나, 그 오만함이 결국 하늘을 열고 네 숨을 끊어 낼 것이다.”

부채를 아래로 향하며 싸늘한 한기를 풍기는 궁주의 눈을 마주한 순간, 설천위는 움직였다.

땅을 박차는 순간, 그곳을 꿰뚫는 무형의 검이 일렁였다.

허공을 꿰뚫는 공격은 그야말로 무형무색의 공격.

“에헤이, 이렇게 티 나는 공격을 하면 되나? 그러니까 아랫놈들한테 밀렸지.”

히죽 웃으며 비웃는 설천위의 말에 궁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떻게?’라고 묻는 것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 궁주의 모습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크게 비틀며 양손을 합장했다.

“추악하게 늙은 괴물이 탄생할 만한 곳이라곤 그곳밖에 없지.”

비웃음과 함께 나타난 흑관들이 궁주를 압박했다.

손을 휘젓는 것으로 단숨에 흑관들을 부숴 버린 궁주는 점점 더 깊게 가라앉아 가는 눈동자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네놈은 그 끝을 알기 어렵구나.”

오만한 그 눈동자에 경계의 빛이 섞인 것을 눈치챈 설천위는 히죽 웃었다.

“끝을 보이면 개처럼 밀려서 이런 오지에 처박히는 거야. 너처럼.”

허공에 나타난 무형의 창을 흑도로 베어 내며, 설천위는 달렸다.

궁주의 술법은 고절하다.

무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강도와 물리력을 크게 올린 설천위의 술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술 수 있을 정도니까.

거기다 오랜 세월 쌓아 온 힘까지.

솔직히 말해서 술사로서의 역량은 설천위에게 이기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적이다.

애초에 쌓아 온 힘 자체가 다르니까.

백화단주라고 해도 상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적인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설천위에겐 승산이 있었다.

술사로서의 역량은 부족해도 그에겐 궁주보다 훨씬 앞서는 영역이 있었으니까.

“흡!”

단숨에 거리를 좁힌 설천위가 망설임 없이 흑도를 휘둘렀다.

[살악(殺握)]은 꺼내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물리적 폭력이니까.

“흥.”

그렇기에 설천위의 생각을 뻔히 읽은 궁주는 설천위를 비웃으며 손을 들었다.

흑도가 그를 베기 전에 설천위의 도가 그의 손과 닿는다.

동시에 궁주의 손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설천위의 흑도를 분쇄한다.

술법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지금, 결국 술법으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다니.

어리석음에도 정도가 있다.

설령 기술에 가까운 놈의 자작(自作)이라고 해도.

뿌리를 영력에 두고 있다면 얼마든지…….

“……놈!!”

분쇄되는 도(刀)의 중심.

결코 흔들리지 않는 형태로 일렁이는 것은 은은한 벚꽃과 같은 선홍색을 품은 백색의 화염.

연기를 뚫고 들어온 얇은 화염의 도(刀)는 거침없이 궁주의 손을 잘라 내고 그 목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캬학!”

몸을 날린 요려의 양팔이 잘려 나가고, 그로 인해 생긴 찰나의 틈이 궁주가 몸을 뺄 기회를 만들어 줬다.

“잘했구나!”

잘린 손에서 피를 쏟아 내며 훌쩍 물러선 궁주는 팔이 잘린 요려를 칭찬한 후 영력을 움직였다.

궁주의 잘려 나간 손이 회복되고, 그 눈은 날카롭게 설천위를 향한다.

그리고.

“참…….”

양팔이 잘려 무릎을 꿇고 고통을 삼키고 있는 요려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궁주의 모습에 설천위는 혀를 찼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 지독한 놈일세.

“요려 정도면 꽤나 쓸 만한 녀석 같은데, 너무 매정하네.”

“그 아이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포상은 일이 전부 마무리된 뒤에 얼마든지 쥐여 줄 것이다.”

“그사이에 뒈지면 어쩔 수 없고?”

“대업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다.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을 것이니라.”

빠른 속도로 수인을 맺으며 술법을 펼치는 궁주의 대답에 설천위는 혀를 차며 도를 어깨에 걸쳤다.

화염의 도는 어느새 다시 검은색 흑관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내 사람을 아끼는 편이라서.”

솔직히 말해서 너무 욕심이긴 하다.

이 미친 세계에서 모두를 살릴 순 없다.

모두가 강해질 순 없으니까.

하늘이 열리면 오존조차 위협하는 괴물들이 이 땅에 강림한다.

그 지옥 속에서 철백처럼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강해져서 살아남는 이가 있는 반면, 그 압도적인 폭력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다.

전자보다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게 문제지.

이대로 가면, 아무리 열심히 부하들을 굴리고 노력해도 흑룡단의 생존율은 채 1할이 되지 않을 거다.

대주급 이상에서 8할, 일반 단원에서 2할 정도 살려나.

두 집단의 인원 차이를 생각하면, 일반 단원 쪽은 전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그렇기에…….

멈출 수 없다.

균열을 키우는 괴물들을 정리하고 정리하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무림학관의 갑(甲) 졸업.

기어코 달성해 버린 화경(化境).

이제 미친 듯이 성장할 일만 남은 술법(術法).

꽤나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는 주인공급의 인사들.

몇 명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핵심 인물들은 확인했고, 그 성장은 확실했다.

조건은 충분히 갖춰지고 있다.

남은 것은 막아 내는 것뿐.

그래서 이 악물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조금 짜증 나네?”

저 녀석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낸 부하를 저렇게 쓰고 버리는 용도로만 쓰네.

참 더럽게…….

“마음에 안 들어.”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도를 단숨에 내리긋는다.

강기(罡氣)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흑도(黑刀)는 단숨에 검은 화염을 검기처럼 쏟아 냈다.

거대한 반월 형태의 검기가 단숨에 궁주를 덮친다.

하지만, 아무리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검기라고 한들 거리만 있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것이 강자.

손을 뻗어 분홍 연기로 방패를 만들어 낸 궁주는 연기로 단숨에 검기를 휘감아 설천위의 공격을 막아 냈다.

“대의(大意)를 이해하지 못하는 네놈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 그딴 거 몰라. 사람이 잘 살 수 있으면 됐지, 대의 같은 게 왜 필요해?”

거창한 목표 의식 같은 거 없어도 사람은 잘만 산다.

살아가는 데 행복한 요소만 갖춰져 있다면 얼마든지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다가 죽을 수 있다.

하늘을 열지 않아도.

수천만의 머리 위에 서지 않아도.

수백의 산해진미를 맛보지 못해도.

수십의 이성과 하룻밤을 보내지 않아도.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궁금해서 그래. 너는 왜 굳이 하늘을 열려고 하지?”

옆에 바라는 사람이 함께한다면.

그 사람과 웃고 떠들 수 있다면.

사람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지 않나?

굳이 수만, 수십만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하늘을 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열고 난 뒤에 영생을 얻고 수천만의 머리 위에 선들, 무슨 의미가 있지?

특유의 장난스러운 기색 없이 날카롭게 눈을 뜬 설천위가 궁주를 향해 물었다.

“위건(慰乾), 대체 너는 무엇을 원하지?”

순간.

공간이 깨어진다.

여태껏 궁주의 힘으로 유지되던 공간이 일그러지고 부서진다.

그리고 그 순간, 북존은 망설임 없이 오련과 거리를 벌렸다.

이상함은 진즉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힘을 쏟아 내고 있는데, 고작 지하실 따위가 견뎌 내다니.

약간의 고생 정도는 할 각오로 지하실이 충분히 무너질 정도의 힘을 썼음에도 지하실은 멀쩡했다.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이변이 일어난 순간, 북존은 망설임 없이 거리를 벌려 설천위에게 붙었다.

북존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만 집중하던 오련은 허무하게 그를 놓치자마자 마찬가지로 즉시 궁주를 향해 붙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지만, 궁주님이 만든 이 영역(靈域)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계획이 가까워졌다는 증거.

옆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오련과 북존이 순식간에 일행과 합류하는 사이.

“네, 놈…… 어떻게?”

뚝뚝 끊기는 목소리로 되묻는 궁주를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네가 어디 출신인지도 아는데, 이름을 모를까 봐?”

“헛소리 집어치워라! 네놈의 애비가 그 어미의 배 속에 있기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모든 기록이 말소된 일이다.

현대의 황제조차 알지 못하는 일을 대체 어떻게?

당황한 궁주의 눈동자가 격하게 요동쳤지만, 설천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그걸 왜 알려 줘?”

“이 망아지 같은 놈이……!”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 궁주의 얼굴에서 분가루가 떨어져 내린다.

“에이, 제대로 된 연단술도 익히지 못해 얼굴을 화장으로 가린 주제에 뭘 다 숨긴 척을 해.”

궁주를 비웃으며, 설천위는 도(刀)를 휘둘렀다.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갈라지고, 그의 옆에 선 북존이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전음은 보내지 않는다.

그저 눈빛으로 물을 뿐.

“……뭐, 지켜봐 주세요.”

그런 북존의 눈빛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끊임없이 요동치는 영력을 뿜어내고 있는 궁주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니, 슬슬 그만하고 끝내자고. 가진 수는 다 꺼내야지?”

까득!

“오냐, 좋다! 네놈이 그리 바란다면! 그리해 주마!”

“궁주님!”

술법의 준비 자체는 끝났지만, 아직 제물의 상태가……!

드물게 오련이 궁주의 뜻에 이견을 내비쳤지만, 이미 궁주는 그런 말 따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본래 이름을 설천위가 알고 있다.

‘연옥! 연옥 놈들이 보낸 것이다……!’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괴물 놈들이 손을 쓴 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그놈들은 자신을 완전하게 먹어 치우는 방법까지 설천위에게 알려 줬을 터.

이대로 시간을 끌면, 열세로 몰리는 건 자신 쪽이다.

어떻게 해서든 빠르게 상황을 끝내야 했다.

두 눈을 부릅뜬 궁주가 양손을 펼치자, 요동치던 지하의 영력이 빠른 속도로 재배열되기 시작했다.

혼잡하게 공간을 먹어 치우고 있던 힘이 순식간에 정돈되어 수십 개의 도형을 그린다.

오행과 구궁.

이극과 칠성.

일원과 삼재.

사상과 팔괘.

그리고 육효.

수많은 도형이 난립하고, 수만 자의 글귀가 도형을 채우는 것으로 술법은 완성된다.

궁주가 계속해서 펼치고 있던 영역(靈域)이 완성된다.

단숨에 폭발적으로 뻗어나간 술법이 완성을 향해 치닫고.

육체의 틀을 벗어 버린 궁주의 몸이 점점 더 영체로 변해 갔다.

동시에.

“……으음.”

자신을 먹어 치우는 영력의 맹공에 북존마저 신음을 삼키며 내공을 끌어올리는 그 순간.

[괴물 놈.]

설천위의 등 뒤로 등장한 혼이 질린 얼굴로 혀를 찼다.

노인.

인간으로서 술법의 끝에 도달했다고 여겨지는, 득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여겨지는 술사 중 하나.

손휘.

추악한 욕망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렸던 그 술사가 질린 얼굴로 혀를 차며 설천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놈이 이겼다.]

순순히 설천위의 승리를 인정하며, 손휘는 양손을 천천히 설천위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듯 뻗었다.

그리고.

[역행(逆行)]

손휘의 한마디와 함께 공간에 가득한 영력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아니.

천희만락궁 전체에 퍼져 이곳을 향하던 영력 전부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방향을 바꾼다.

곳곳에 숨어 있던 제물들의 생기와 영력을 궁주가 아닌 다른 곳으로.

요동치는 영력의 중심에서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궁주를 보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