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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41화 (441/624)

제441화

440화-역전 (3)

검과 도가 부딪치며 울려 퍼지는 충격이 지하실을 뒤흔든다.

압도적인 힘의 충돌.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곤 믿기 힘든 그 충돌 속에서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린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요려도 소중한 딸이니라.”

“소중은 개뿔.”

죄다 장기말로 쓰고 있는 주제에.

술법으로 오련을 지원하면서도 느긋함을 잃지 않은 궁주는 여유롭게 대답하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뭐, 도망치려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후회하게 되겠지.”

“술법으로 웬만한 건 다할 수 있다더니 입만 산 건 아니었네.”

궁주의 협박에 이죽거린 설천위는 영력을 운용하며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조금 전에 탈출을 감행했을 때 느껴진 반발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맨몸으로 계속 들이밀었다가는 그대로 몸을 아작 낼 것 같은 힘이 결계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런 결계를 북존은 너무도 쉽게 통과해 넘어왔다는 점이다.

‘역시 미끼인가.’

궁주가 굳이 이런 장소로 자신을 납치한 이유.

북존을 끌어들여 처리할 생각이었다면 납득이 갔다.

저쪽은 북존의 접근을 훨씬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을 테니까.

다만, 걸리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왜 북존을 외부에서 처리하지 않았는가?

왜 굳이 북존을 처리할 필요가 있는가?

왜 북존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는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점들이면서 동시에 의외로 간단하게 해답에 도달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필요하니까.

북존이라는 거대한 리스크를 감내해야 할 정도로 그가 필요하니까.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이고, 해답이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고 몇 개의 정보를 종합한 설천위는 결론을 내렸다.

궁주는 자신을 미끼로 북존을 끌어들였다.

소궁주들을 보내 자잘한 이들은 떨어트리고, 북존만을 이곳에 접근시켰다.

북존을 노리고.

그렇다면, 궁주가 북존을 노리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게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너무 안일하다는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현경급의 고수다.

완전히 제압하는 게 아닌 이상, 웬만한 술법으로는 제물로 사용할 수도 없다.

육신을 죽이고 혼을 빼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보통의 술법으로 그게 가능했다면 현경급 고수는 술사들한테 다 죽었겠지.

철옹성과 같은 정신력과 혼을 가진 현경급 고수를 죽이는 데는 어마어마한 준비와 힘이 필요하다.

만약 궁주가 그런 준비를 했다면 북존이라고 할지라도 위험하다.

“내가 없다면 말이지.”

제압한 요려를 대충 던지듯 내려놓은 설천위는 머리가 땅에 부딪히며 깨어난 요려를 발로 꾹꾹 누르며 부적을 꺼냈다.

적이 오련을 강화시키고 있으니 이쪽도 강화시킨다는 선택지를 취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북존은 순수한 인간이다.

술법으로 강화가 되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거기다 현경급 고수는 적이라 인식하는 이들의 술법에 상당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

정신이 알아서 튕겨 낸다고 해야 하나.

확실하게 자신의 심신을 맡길 수 있는 아군이라는 판단이 서지 않는 이상, 버프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친아들이니까 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뭐,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긴 하지.

어차피 버프를 줄 생각 따윈 없으니까.

부적을 뿌리는 것과 함께 설천위는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천희만락궁에서 지냈던 몇 주간.

설천위는 손휘에게서 술법을 배웠다.

그것도 집중적으로.

아예 며칠씩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던 적도 많았다.

백화단주 성화린에게서 겉핥기식으로 몇 가지 배운 술법만으로 여기까지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렸던 설천위다.

그런 설천위가 성화린보다도 훨씬 이름 높은, 이 무림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대단한 술사에게 집중 과외를 받았단 소리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술법을 쓸 수 있게 됐겠는가?

답은 무려……!

“흑관.”

하나다.

설천위는 안타깝게도 이번 과외에서 단 하나의 술법만을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술법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뭐 어쩌겠는가.

쓰던 거 써야지.

설천위가 만들어 낸 흑관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공간을 메운다.

그리고.

촤아악!

차례대로 열리기 시작하는 흑관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력으로 만든 물.

순식간에 지하실을 채우기 시작하는 물은 금세 발바닥을 넘어 발목에 닿을 정도까지 차올랐다.

발에서 느껴지는 물의 감촉에 오련이 의아해하고, 궁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질 때.

“훗.”

살짝 들린 웃음소리와 함께 압도적인 냉기가 지하실 전체를 휩쓸었다.

여태껏 북존이 보인 적 없었던 폭력적인 냉기의 폭발.

살을 에는 냉기가 단숨에 뻗어나가고.

“끕! 끕!”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반쯤 물에 잠겨 있던 요려가 몸의 절반이 얼어붙어 괴성을 내지르며 팔딱였다.

그런 요려의 머리를 지그시 발로 밟으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오련과 궁주는 확실하게 반응해 물이 얼어붙으며 함께 어는 머저리 같은 상황은 피했지만.

“……부자지간이 괴물 같은 건 똑같구려.”

빙판으로 변한 바닥 위에 착지한 오련의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버린 상태였다.

얼음으로 뒤덮인 지하실.

단순히 미끄러워서 위험하다.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빙공이 고수, 그것도 북존급 되는 고수를 상대로 이런 환경은 극히 위험했다.

냉기란 것은 공기를 타고 뻗어 오면 눈으로 포착해 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기(氣)를 통해 느껴야 하는데, 이렇게 사방이 얼음으로 들어찬 곳에서 북존의 냉기를 느끼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북존은 자신의 힘을 더 쉽게 감출 수 있고, 이쪽은 더 어렵게 찾아내야 한다.

거기다.

‘……냉기에 영력이 섞여 있다.’

애초에 북존이 얼린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설천위가 만들어 낸 영력으로 이루어진 물.

얼음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미세하게 영력이 섞여 흐르고 있었다.

이 지하실 전체에 설천위의 손이 뻗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서로 대화 한마디 없이 단숨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내다니.

과연 부자지간은 부자지간인가.

작게 감탄한 오련은 고개를 끄덕이고 도를 세웠다.

“궁주님.”

“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오련의 부름에 한숨을 내쉰 궁주가 부적을 꺼냈다.

그리고.

“재행지운(災幸止雲)…….”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궁주의 몸에서 은은한 영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즉시 반응한 북존이 곧바로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힌다.

순식간에 궁주와 오련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북존이 단숨에 검을 휘둘렀다.

강기를 머금고 휘두른 검에 담긴 거력은 이대로 오련은 물론이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궁주까지 휩쓸어 버릴 수 있는 수준.

막아 내지 못하면, 궁주가 위험하다.

그 명백한 진실 앞에서 오련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방어를 선택했다.

명백하게 자신보다 격이 높은 상대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회피를 포기하고, 도(刀)를 세워 막아선다.

단숨에 도달한 일격이 도를 때리고,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오련을 밀어붙인다.

훤히 드러난 오련의 팔과 어깨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힘을 쥐어짠다.

필사적으로 땅을 지탱하는 다리는 얼음을 파고들어 가면서 그 파편에 살과 옷이 베였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세 걸음.

그 정도의 거리만을 밀린 채 방어에 성공한 오련은 고개를 들었다.

막아 냈다.

자, 어떠냐.

그런 눈빛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있는 오만을 행하기 위해.

허나.

말없이 검을 당기는 북존과 눈을 마주친 오련은 자신이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북존은 단 한 번도.

조금 전의 일격으로 끝낸다고 한 적이 없다.

쾅!!

천지가 뒤흔들리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또다시 떨어진 검을 받아 낸 오련은 이를 악물었다.

너무 세게 악물어서인지 아니면 검을 받아 낸 충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잇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입술을 타고 흐른다.

“끄으으으읍!!”

썩 듣기 좋지 않은 기합성과 함께 견뎌 내는 오련.

이번에는 두 걸음.

쾅!!

또다시 검을 회수하고 내려치는 일격에 또 한 번 폭음이 터져 나온다.

이번에도 방어를 선택한 오련의 몸이 휘청거리며 물러서지만.

한 걸음.

오련은 이번에는 고작해야 한 걸음 정도밖에 물러서지 않았다.

분명 북존은 위력을 낮추지 않았고, 오련은 부상이 점점 더 심해졌을 텐데.

그러니 점점 더 먼 거리를 밀려나야 정상인데, 똑같은 거리를 밀려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밀려나는 거리가 줄었다.

그것에 이상함을 느낀 북존이 미간을 찡그리는 순간.

어느새 주문을 전부 외운 궁주의 두 손이 오련을 가리켰다.

“煉(련)!”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오련의 육체에 궁주의 영력이 깃들었다.

북존으로서는 막을 수 없는 종류의 힘.

그렇기에 순식간에 오련에게 깃든 술법에 북존은 즉시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적은 몇 번이나 거듭된 공격을 방어해 내면서도 점점 더 밀리는 거리가 줄어들었다.

숨겨 둔 한 수가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체 모를 술법이 더해졌다면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적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스스로를 과신해도 될 정도의 놀라운 실력을 가진 북존이 몰아붙이던 이점을 과감히 포기하고 신중한 길을 선택했을 때.

오히려 오만한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흐읍!”

단숨에 돌진한 오련이 거침없이 도(刀)를 휘둘렀다.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거침없이 그어 내는 사선 베기.

하지만.

북존의 방어는 굳건했다.

검으로 가볍게 공격을 흘려 낸 북존의 반격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어깨를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낸 오련이었으나, 약간 갈라진 피부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허나, 그럼에도 오련은 멈추지 않았다.

“흐읍!!”

거친 기합성과 함께 다시 한번 도(刀)를 휘두른다.

사선으로, 가로로, 세로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모든 공격이 북존에게 막혔지만, 어느 순간부터 북존이 반격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온전히 방어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순식간에 수십 합의 공방을 나누고.

“흠.”

오련의 공격을 쳐 낸 북존이 처음으로 물러났다.

거리를 벌려 시간을 만들어 낸 북존은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과연, 련(煉)인가.”

쇠를 불에 달구어 정련하듯이.

다듬고 다듬어 더욱 굳건해지는 것인가.

충돌은 불이 되고.

그 육체는 쇠가 되는 것인가.

붉게 달아오른 오련의 육체를 보며 북존은 어째서 그녀가 상의를 입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치이이익!!

아마 답답해서 그랬을 것이다.

저 상태에 들어가면 전신에서 땀이 증기가 되어 뿜어질 정도로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상의를 입고 있으면 그 열기가 갇혀 답답함이 배가될 터.

하의는 품이 넓은 치마이니 그나마 입고 있는 것이겠지.

“후욱! 후욱!”

거친 숨을 토해내며 움켜쥔 오련의 도(刀) 위로 거친 불꽃이 일렁인다.

불꽃의 형태를 한 강기(罡氣).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한 북존은 냉기를 휘감은 검을 들었다.

바닥의 얼음조차 녹여 내고 있는 적의 열기.

마치 자신이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준비한 상대 같았다.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애초에 이곳으로 오면서 그 정도는 각오하지 않았던가.

설령 이런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왔을 거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눈앞의 적을 제거하는 것…….

“화끈하네.”

적절한 긴장감을 되새기려던 순간,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북존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어린 나이에 흑룡단주가 되더니 애가 오만해졌나?

이런 전장에서 저런 태도라니.

죽기 딱 좋은 오만함 아닌가.

북존이 설천위의 오만함을 걱정하는 사이, 설천위는 삐딱하게 선 상태로 웃고 있었다.

“근데 그거 알아?”

설천위의 앞.

검을 뽑으며 선 중년의 사내가 담담한 걸음으로 오련의 앞에 선다.

[귀령현신(鬼靈現身) 소적검(消跡劍)]

무흔의 검이 오련의 몸에 몇 개의 생채기를 만들어 낸다.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에 오련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며 웃고 있었다.

“철은 너무 가열하면 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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