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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32화 (432/624)

제432화

431화-위기일 땐 준비를 (1)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위치군요.”

싸늘할 정도의 살기를 풍기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차분해진 음색.

서하영의 만류로 겨우 진정하고 응접실로 들어온 유예린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갑게 식어 있었다.

“우리 가문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어.”

설천운이 실없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설천위의 행방이니까.

“위치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 설천위 공자를 납치한 세력은 천희만락궁입니다.”

“천희만락궁?”

“천위가 말했던 곳이군.”

“저와 공자가 했던 임무에서 얽혔던 곳이군요.”

고개를 갸웃하던 서하영은 철백과 유예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설 공자께 들었네요.”

“약을 이용해 세력을 넓히는 곳이라고 했나?”

“강력한 환각과 중독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곳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상한 곳이군.”

약을 유통하는 조직은 많지만, 그 약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조직은 많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단순히 약을 유통하는 것보다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

약으로 중독시킨 중독자를 조종하고 이용한다는 것은 그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나간다는 뜻이다.

당연히 적의 추적이 쉬워질 수밖에 없고, 이쪽의 빈틈이 드러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그로 인해 발생할 위협을 줄이려면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는 수밖에 없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이중 삼중으로 계획을 진행해야 한다.

이런 귀찮은 일을 감수해야 하는 데다 두 번째 이유가 더해지면 왜 조직들이 이런 짓을 안 하는지 알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중독자가 생각보다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약에 중독됐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행동과 사고가 오로지 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소리다.

감정은 물론이고, 육체의 감각마저도 전부 약에 의해 좌우된다.

정상적인 판단 능력은 물론, 임무 수행 능력도 기대할 수 없다.

설령 정상적인 일 처리를 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독자라는 사실 자체를 숨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들키는 순간, 요직에서 쫓겨나는 것은 당연하니 중독자를 내부에 심어 놓는다고 한들 큰 이점을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랫사람을 약으로 중독시킨다고 한들 앞서 말한 위험부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잃을 게 적은 아랫사람의 경우는 쉽사리 금단증상에 져서 정체를 들킬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약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이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약을 미끼로 제물을 끌어들이는 건?

보통 음지에 있는 조직이라면 그냥 납치를 하면 된다.

약이 뭐 공짜도 아니고.

적당한 무인 몇 명이면 쉽게 납치할 수 있는 일반 양민을 왜 굳이 돈을 들여서 약물로 납치를 한단 말인가?

“정신 나간 놈들이 모인 곳이란 것은 알겠다만, 위치를 무슨 수로 특정한다는 거지?”

“살궁의 정보력은 음지로도 뻗어 있습니다.”

살존이 언여휘와 거래를 할 때, 그녀는 당연히 음지 조직들을 전부 조사했다.

언여휘에게만 맡길 순 없었으니까.

더 좋은 거래 대상이 있다면 확보하는 것이 당연했다.

“천희만락궁은 어머니께서 특급으로 놓은 곳 중 하나입니다.”

“특급?”

“혈교나 사혈천과 같은 등급입니다.”

“……으음.”

백수아의 말에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는 곳인데, 혈교랑 동급이라니.

혈교가 위험시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혈교주 때문이다.

현재 혈교주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나, 역대 혈교주들은 전원이 현경급 이상의 강자였다.

거기에 더해 특유의 무공을 이용한 압도적인 파괴력과 부하들의 맹신적인 돌격.

광신에 빠져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수만의 적들을 마주하는 순간, 느껴지는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절대자와 그를 추종하는 광신도들의 집단.

그것이 바로 혈교다.

그런데 살존은 천희만락궁을 그런 혈교와 동급에 놓았다.

그 위험도가 혈교만큼 위험하다는 것은.

“천희만락궁의 궁주도 최소 현경급의 강자인가요?”

“어머니께서 직접 정찰하고 얻어 낸 결과이니 맞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백수아는 여태껏 한마디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설주철을 바라봤다.

“가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

그 말에 설주철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백수아를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

마치 꽁꽁 얼어붙은 호수와 같은 그 눈동자에 백수아가 작게 주먹을 쥐는 그 순간.

“소수 정예로 움직이도록 하죠.”

자리에서 일어난 유예린이 백수아를 내려봤다.

“안내해 주세요.”

“하지만…….”

현경급 강자가 있는 곳에 북존 없이 가는 건 아무런 의미도…….

“아버님.”

백수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개를 돌린 유예린의 시선이 설주철을 향했다.

담담하기 그지없는 눈동자가 서로를 응시한다.

“힘을 빌려주세요.”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유예린의 모습에 백수아는 살짝 기겁하며 설주철의 눈치를 봤다.

그 냉혹하다는 북존인데, 별다른 정보도 없이 도와 달라고 하면 도움을 줄 리가…….

끄덕.

“감사합니다.”

……주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북존과 그런 반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유예린.

두 사람의 모습에 백수아가 마음속에 찾아온 혼란을 다스리던 그때.

“나와 서 매도 따라가겠소.”

“맞아요! 이번에는 무조건 같이 갈 거예요!”

철백과 서하영이 합류하고, 상황을 지켜보던 설천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나는 남아야겠군.”

집 지킬 사람은 있어야지.

설천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주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 시진 뒤에 출발하겠다.”

* * *

“흐음.”

천희만락궁의 접객용 방.

차분한 마음으로 부적을 그리던 설천위는 손을 멈췄다.

“드디어 마음이 움직인 거냐?”

피식 웃는 설천위의 물음에 그의 등 뒤로 일렁이는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도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자잘한 주름이 가득했으나 검버섯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은 그야말로 멋진 노년의 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인정한 것이 아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노인 특유의 쉰 소리로 손휘는 설천위를 내려다봤다.

[네 녀석의 조잡한 부적이 거슬렸을 뿐이다.]

“눈대중으로 보고 베낀 것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의념(意念)이다.

의지를 담는 것.

부적의 문양도, 도구의 형태도 결국 그 의념을 더욱 확고한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

[괴물 놈.]

그렇기에 손휘는 설천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대중으로 본 것만으로 부적을 만든다?

보통 사람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실력이 꽤 있는 상급 술사라고 할지라도.

이유는 간단하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술법이란 의지의 학문.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이란 하늘이 내려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술사에게 기적은 자신이 만들어 내는 현실이다.

그런데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기적을 어찌 현실에 구현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술사에게 확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적을 사용하고,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우는 것 전부가 그것을 위한 과정이다.

뛰어난 술사들이 부적을 생략하고, 수인 없이 술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런 것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자기 확신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력(靈力)이라는 불안정한 힘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확신.

그것을 위해 술사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쏟아 왔는가.

조금이라도 영력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길을 찾아내고.

조금이라도 영력이 더 잘 변화하는 형태를 찾아내고.

그런 것들을 하나씩 찾아 만들어 내며 자신을 세뇌하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새긴 것이 현실에 구현되는 것이 바로 술법이다.

평범한 술사의 술법이 영체에게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실제 인간에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그 술사가 현실을 비틀 정도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축지(縮地)와 같이 현실을 비트는 술법이 고등 술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물론 축지는 단순한 자기 확신으로 해내기에는 너무 어려운 술법이지만.

대부분의 술법이 그렇다.

자기 확신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돼먹은 재능인지…….]

설천위는 그것을 해낸다.

경이롭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적인 재능.

거기에 더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심상(心象).

마치 부동심을 이뤄 낸 고승을 보는 것 같은 굳건함이다.

“그래서 술법을 가르쳐 줄 거야, 말 거야?”

혀를 차고 있는 손휘를 설천위는 삐딱하게 올려다봤다.

“싫으면 말고. 나 바쁘다.”

[흥, 지금의 네놈이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코웃음을 치는 손휘의 모습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기지 않아도 도망은 쳐야지.”

[멍청하구나. 이 주위에 깔린 술법은 네 역량으로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천위 정도의 힘이라면 웬만한 결계 정도야 힘으로 뚫을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곳 천희만락궁에 깔린 결계는 웬만한 결계가 아니었다.

재(災)의 끝자락에 닿은, 벽을 넘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괴물이 만들어 낸 결계다.

그것도.

[놈의 술법은 고작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는 정도로 견뎌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희만락궁의 궁주는 하늘에 손이 닿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환술사.

약을 이용해 그 힘을 더욱 강화하기까지 했다.

그 강함은 그야말로 인간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의지가 굳건한 인간이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강철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심장이 멎고 피가 식으면 인간은 죽는다.

[놈은 한 번 했던 실수를 되풀이할 정도의 머저리가 아니다.]

“한 번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진 않는다라…….”

손휘의 말에 피식 입꼬리를 올린 설천위는 손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건 실수했던 놈들이 하는 변명이고.”

원래 인간이란 실수로 한 번 했던 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반복하는 법이다.

설령 인간을 벗어나 괴물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 천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라고 사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지.”

욕심 때문에 인간을 벗어난 놈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살 수 있는 방법이 그 빈틈을 노리는 것밖에 없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절망적인 현실에 작게 호흡을 가다듬은 설천위는 다시 손휘를 바라봤다.

“쓸데없는 떠보기는 그만하고 할 거냐 말 거냐? 그것만 말해.”

냉철한 설천위의 시선에 잠시 침묵하던 손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돕겠다. 대신 조건은…….]

“그래,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

[그게 아니다! 이 일이 끝나면 해방시켜라!]

“에헤이, 그건 너무 과한 욕심이지.”

발끈하는 손휘에게 손을 휘저은 설천위는 히죽 웃었다.

“죽어도 같이 죽는데, 고작 한 번의 도움으로 탈출하려는 건 너무 큰 욕심 아닌가?”

[네놈……!]

이대로 궁주에게 죽으면 너도 같이 소멸하는 거다.

그런 설천위의 경고에 이를 악문 손휘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의 혼은 이미 설천위에게 붙잡혀 버렸으니까.

[……수업을 시작하겠다.]

“좋아. 거래 성립으로 알겠어.”

입꼬리를 올린 설천위는 맞은편에 앉은 손휘에게 붓과 종이를 내밀었다.

“그럼, 시작하자고.”

[잘 따라오기나 해라, 애송이.]

기막으로 감춰진 방 안.

술사로서는 인간이 닿을 수 있는 끝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술사의 강의가 시작됐다.

무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서 술사로서의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설천위에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술사의 지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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