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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31화 (431/624)

제431화

430화-설가의 수련 (3)

설가의 연무장.

이른 아침 그곳에 모인 흑룡단은 각자의 상태를 점검하며 몸을 풀었다.

무려 북존(北尊)의 대련 지도다.

단주님이 북존의 아들이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긴 했지만, 그게 실제로 이루어질 줄이야.

수십 명의 단원들에게 하나하나 해 주는 설주철의 조언은 간결해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물론 몸은 너무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지졌지만.

얻는 게 있으니 견딜 만했다.

무엇보다.

“후우.”

“확실히 나아진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대련을 시작한 철백과 무해가 대련을 끝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단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사람들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신들이 놀고 있을 순 없었다.

단원들이 자신들을 보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한 철백과 무해는 대련을 복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제 설주철과의 대련이 끝나고도 서로 손을 나눠 복기했지만, 밤새 고민해 얻어 낸 것은 또 다르지 않은가.

“다만, 이 부분은 너무 무리하게 나아간 것이 아닌지요?”

“음, 확실히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군요.”

“여기서는 조금 더 허리를 빼고 중심을 뒤로 잡아야 연결이 더 매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확실히.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였지만, 효율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무해의 경우 익히고 있던 무공이 뚜렷하게 있었지만, 철백의 경우 완전히 주력으로 삼을 수 있는 상승 무공을 익히고 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부분의 상승 무공은 심후한 내공을 전제로 하기에 내공 자체가 없는 철백이 배우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때문에 철백은 무공의 무리(武理)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춰 초식을 펼치는 데 당연히 빈틈이 많았다.

설주철과의 대련 초기에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날아갔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너무 빈틈이 많아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무해와 철백이 서로 의견을 나누며 배운 것을 되새기고 있을 때.

“언니!”

차분하게 초식을 펼치던 서하영이 창을 내렸다.

평소와 달리 조금 늦게 찾아온 유예린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서하영.

“괜찮으세요?”

“응. 멀쩡해.”

평소보다 늦은 유예린의 등장에 서하영의 목소리에 걱정이 담겼지만, 유예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어제는 미안해.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빨리 들어갔어.”

“언니가 왜 미안해요! 제가 아직 미숙해서…….”

“상처야 대련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거니까.”

작게 웃은 유예린은 고개를 숙이는 서하영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곤 연무장 위에 섰다.

평소처럼, 하지만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연무장의 중앙에 선 유예린의 모습에 흑룡단원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수련 시작.”

점점 더 짧아지기 시작한 설주철의 수련 시작 신호가 떨어졌다.

인사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갑자기 나타나 수련을 시작한 설주철이 달리기 시작하고.

그 뒤를 설가의 무인들과 흑룡단이 따랐다.

달리고 달린다.

내공은 쓰지 않는다.

내공을 써야 버틸 수 있을 정도라면 물러난다.

물론, 다음 수련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사람은 없다.

목적이 그게 아님을 아니까.

미친 듯이 달리고 달려 수많은 무인들이 떨어져 나가고, 평소에 남던 이들만 남게 됐을 때.

“여기까지.”

설주철이 조금 이르게 구보(驅步)를 끝냈다.

“대련을 시작하지.”

검을 뽑아 늘어트린 설주철은 즉시 전투 태세로 들어가는 이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오늘은 1대1 대련으로 먼저 시작하겠다.”

1대1.

여태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대련이다.

설주철은 언제나 전부를 동시에 상대했으니까.

갑작스러운 1대1 대련 선언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거친 기세를 뿜어내던 철백이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려는 순간.

“잘 부탁드립니다.”

이미 설주철의 앞에 선 유예린이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일단 지켜봐요.”

옆에서 소매를 당기는 서하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비무대에서 내려가 팔짱을 끼고 섰다.

그렇게 비무대 위에 설주철과 유예린만 남은 상황.

인사를 끝낸 유예린이 소검을 들어 올렸다.

그런 유예린을 말없이 바라보는 설주철.

말로 하지는 않았으나 언제든 들어오라는 눈빛에 유예린은 가볍게 호흡을 내뱉으며 검을 당겼다.

그리고.

유예린은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대지로 땅을 긁어낸다.

거센 저항과 함께 흙먼지가 일어났지만, 고작 그 정도에 시야를 뺏길 하수는 이곳에 없었다.

먼지 속에서 거침없이 검을 뽑은 유예린의 일격이 설주철의 목을 노린다.

유예린답지 않은 저돌적인 공격.

그 공격을 지켜본 흑룡단 단원들은 전부가 같은 생각을 했다.

‘속임수구나.’

‘암경(暗勁)이 보이지도 않는군.’

‘대체 얼마나 갈고닦았으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은밀하게 숨긴 암경이구나.

모두가 나직이 감탄하는 사이.

캉!!

유예린의 검이 설주철의 검과 부딪혔다.

당연하게도 튕겨 나온 검의 반발력은 틈을 만들었고, 설주철은 망설임 없이 그 틈을 향해 발을 찔러 넣었다.

여태까지라면 그대로 옆구리를 내어주고 날아갔을 일격.

하지만.

“흡!”

굽힌 유예린의 팔이 설주철의 발을 막아 냈다.

거기에 더해, 힘에 밀려 날아가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냈다.

“……언니?”

“아미타불.”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챈 서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무해의 불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설주철의 발을 막아 낸 유예린의 왼팔 소매에서 튀어나온 소검이 그대로 설주철의 발을 노린다.

즉시 발을 빼낸 설주철이 거리를 벌리자, 유예린은 다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설주철은 막거나 피하고 그 뒤에 생기는 빈틈을 찌른다.

유예린은 여태까지와 달리 빈틈이 찔렸다고 하더라도 결코 허무하게 밀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냈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주먹과 발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무장에서부터 살벌하게 퍼져나간다.

둔탁한 소리는 섬뜩할 정도의 위력이 담겨 있는 것이 느껴졌고.

부딪히는 금속음의 박자는 너무 빨라 저것이 과연 눈으로 보고 막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치열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공방이 오간다.

유예린답지 않은 전투에 흑룡단원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비무에 집중하던 그때.

“언니.”

서하영만이 창을 꽉 움켜쥔 채 웃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만약, 지금의 유예린과 비무를 하면 어제와 같은 초식을 사용하더라도 절대 그녀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음을.

아니, 하룻밤 사이에 다듬은 초식을 사용해도 불가능할 것이란 것을.

“우리 제수씨 살벌하네.”

어느새 철백 등이 있는 곳에 다가온 설천운의 한마디에 서하영이 작게 웃었다.

“원래 집착이 강한 언니라서요.”

설주철이 모든 공격을 막거나 피하고 있어서 잘 티가 나지 않았지만, 유예린의 공격은 지독했다.

철저하게 급소를.

철저하게 관절을.

철저하게 파괴를.

오로지 그것만을 노리고.

홀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른다.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방어는 최소한으로.

오로지 적을 파괴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건다.

그것은 이미 광기(狂氣)의 영역에 들어선 무언가다.

몇 번이고 반복된 공격 속에서 설주철의 손발마저 어지러워지는 것 같은 그때.

“훌륭하다.”

설주철의 한 마디와 함께 공방이 멈췄다.

지독할 정도로 파고드는 공격 사이.

설주철마저 몰입할 정도의 치열한 공방 속에서 피어난 가시투성이의 꽃 한 송이.

[암은검(暗隱劍) 개(改) 극화(棘花)].

목덜미에 흐르는 피를 훔쳐낸 설주철은 검을 내렸다.

며칠간 진행된 대련에서 처음으로 보는 설주철의 피.

“네게 맞는 길을 찾았구나.”

담담하게 말하는 설주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은 착각일까.

설주철의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유예린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네가 얻은 네 검이다. 감사 따윈 필요 없다.”

단호하게 부정하며, 검을 검집에 넣은 설주철은 유예린을 바라봤다.

‘얼마 남지 않았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살짝 짜증을 담아 시선을 돌린 설주철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와라.”

설주철의 내공이 대해(大海)와 같이 요동치는 순간.

“……북존(北尊)을 뵙습니다.”

허공에서 떨어지듯 무릎을 꿇은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흐트러진 옷.

특이한 흰색 선이 있는 머리.

“살존의 딸인가?”

“백수아라고 하옵니다.”

“교육은 잘했군.”

고개를 끄덕인 설주철은 싸늘한 눈으로 백수아를 내려봤다.

“경계를 뚫고 잠입한 이유는 있겠지?”

살수가 경계를 뚫고 잠입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걸리지 않았다면 모르겠으나, 설주철에게 걸렸으니 그녀의 목숨은 이미 설주철의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허나, 그럼에도 백수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를 내밀었다.

설주철이 아닌, 놀란 눈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유예린에게.

“설천위 공자의 부탁입니다.”

백수아가 내민 주머니를 받아 든 유예린은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곤 표정이 변했다.

“이건…….”

“영약입니다. 설 공자가 사파를 휘젓는 동안, 열심히 모은 영약들입니다.”

그 모든 것을 이 여인을 위해 남겨 두고 있었구나.

가슴이 간질간질하는 느낌에 작게 호흡을 가다듬은 백수아는 다시 몸을 돌려 설주철을 바라봤다.

“급보입니다. 설천위 공자가 납치당했습니다.”

백수아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공기가 차갑게 식는 순간.

“하?”

다른 이들의 차가움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한 마디가 공간을 통째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에 백수아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뭐라고요?”

대체 어떻게 숨기고 있었던 건지 모를 광기로 두 눈이 번들거리는 유예린의 전신에서 숨이 막힐 것 같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전장에 선 백유가 절로 떠오를 정도의 모습.

그 경악스러울 정도의 모습에 놀란 백수아는 오히려 실없는 생각에 빠졌다.

‘……설천위 공자는 미친 여자들의 취향인가?’

그럼 나도?

* * *

“그래서, 궁주님이란 분은 언제 만날 수 있는데?”

천희만락궁의 귀빈실.

그곳에 누워 뒹굴뒹굴하던 설천위는 삐딱한 자세로 포도알을 입에 넣었다.

“궁주님께서는 지금 의식을 준비 중이신지라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초대해 놓고 이렇게 무의미하게 기다리게 하는 건 어디 법도야?”

찍, 침을 뱉는 시늉을 한 설천위가 껄렁하게 다리를 떨었지만, 요려는 오히려 웃으며 옷깃을 매만졌다.

“그러면 역시 무의미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제가 시중을 들어 드리면 되겠사옵니까?”

“아뇨. 됐습니다. 가서 하던 일 하시지요.”

어느새 정자세로 앉은 설천위의 정중한 거절에 요려는 빙긋 웃었다.

‘……고자 새끼.’

물론 속내는 달랐지만.

미약과 같은 성분의 향을 풍기고 남심을 자극하는 유혹술을 사용하는데도 사내새끼가 철통같다.

그냥 참는 건가 싶어도 크게 솟아야 할 부위가 잠잠하니 정말로 육욕(肉慾) 자체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 설령 고자라고 해도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대체 이 인간은…….

며칠간의 거듭된 유혹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 내는 설천위의 모습에 요려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허면, 다른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저 이외의 시중을 들 아이들도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그런 건 필요 없고 됐으니까 가쇼. 쓸데없이 시간만 날렸네.”

빈정거리는 설천위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는 요려.

그녀가 나간 빈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두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그래.

명상.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명상…….

‘……할 수 있겠냐고!’

머리 위에서 괴물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는데!

의식이란 건 그거겠지?

날 잡아먹을 준비겠지?

응? 그렇겠지?

게임에서는 몰랐는데, 진짜 장난 없네!

거의 최종막의 보스에 버금가는 괴물이다.

아직 완전히 개화한 것도 아닌데 이런 위압감이라니.

입술을 깨문 설천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조그마한 정보라도 얻어 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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