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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28화 (428/624)

제428화

427화-자색의 안개 (4)

“생각보다 정보가 더 없는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이미 숨이 끊어진 사내를 두고 손을 털고 일어난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생각보다 알아낸 정보가 적었다.

“일단, 천희만락궁인 건 확실하네.”

“그건 또 뭐 하는 곳인가요?”

아무런 인기척도 없던 곳에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질문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웬 미친놈이 세운 둥지?”

“둥지요?”

“뭐, 그런 게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수아를 향해 대충 손을 저은 설천위는 마을 쪽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분홍색 연기.

명백하게 술법이 섞여 생겨난 현상이다.

다만.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군.’

술법도, 약도, 돈이 든다.

천희만락궁의 미친놈들이 아무리 약을 물 쓰듯 쓰는 놈들이라곤 해도 이런 작은 마을에 그런 대규모의 술법을 펼칠 필요가 있었을까?

굳이?

이변을 숨기고 싶었던 거라면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었을 거다.

실종을 눈치채지도 못하게.

그러면 마을의 분위기가 이렇게 처질 일도 없었겠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조용히 묻혀서 마을 사람들 전부가 사라질 때까지 혹은 가치가 있는 제물들을 전부 납치할 때까지 들키지 않고 넘어갔을 거다.

그런데 마을에는 약과 술법이 쓰이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은닉의 기능은 아예 하고 있질 않았다.

숨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여자분은?”

“자고 있던 곳에 그대로 두었어요.”

“이상한 점은 없었어?”

“예. 딱히 눈에 띄는 이변은 없었어요.”

살수의 눈으로 봐도 별다른 이상은 없나.

백수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일단 자리를 옮겼다.

시체 앞에서 길게 대화를 나누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원래 묵었던 객잔으로 돌아가며 마을을 살피던 설천위는 마을의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췄다.

“흐음.”

정적이 내려앉은 마을.

모든 사람들이 잠에 빠져 오직 고요함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이것 봐라?”

설천위는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납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거지?”

마을의 정중앙, 정말 극히 희미할 정도의 기가 흘러 이곳에 모이고 있었다.

“참 일관적인 개X끼네.”

중심에 다가서야 설천위도 겨우 느낄 정도로 희미한 기(氣)의 흐름.

그 기(氣)의 정체는 인간의 생기(生氣)였다.

쓸 만한 제물은 따로 챙기고, 마을 전체에 있는 인간의 생기를 조금씩 빨아들인다.

은닉 따위는 생각도 못 할 만했다.

이만한 술법을 가성비 좋게 굴리려면 마을 사람들을 세뇌하는 기능 정도는 포기해야 할 테니까.

즉시 [살악(殺握)]을 꺼낸 설천위는 그 팔을 거침없이 땅에 찔러 넣었다.

흙을 뚫고 파고 들어간 손은 이내 목표를 잡아서 꺼내 올린다.

“……과연.”

은은한 분홍색으로 빛나는 구슬의 모습을 확인한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맞구나.”

천희만락궁.

아무래도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놈은 너희 같구나.

* * *

“그……. 저희 정말 이러고 있어도 되나요?”

“그래, 휴가 왔다고 생각해.”

어색하게 묻는 서하영을 향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여 준 유예린은 찻잔을 내려놓고 웃었다.

“아버님께서 직접 부르신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면 될 일이야.”

“그거야 그렇긴 한데요…….”

담담한 유예린의 태도에 어색하게 웃은 서하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호화롭다……고 하기에는 담백한 맛이 강하지만, 일단 방 자체는 넓었다.

거기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파.

설가(雪家)의 무인들은 가주가 직접 수련을 시킨다더니 정말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쪽을 지키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기세가 너무 차갑다 보니 영 진정되질 않았다.

“안에들 계시는가?”

“네, 들어오세요.”

서하영이 어색함에 몸을 비트는 사이, 문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유예린이 대답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거침없이 열리는 문.

“잘 쉬고 계신가?”

“아, 아! 넴!”

혀를 깨물었다…….

부끄러움에 붉어진 서하영이 고개를 숙이는 사이, 작게 웃은 유예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쉬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아버님께서 특히 신경 쓰라고 하셨으니.”

“배려에 감사합니다.”

“뭘,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니까.”

……챙기는 얼굴은 아니었는데?

이곳까지 오면서 봤던 설주철의 얼굴을 떠올린 서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며느리를 챙기는 시아버지의 얼굴이었으면 이 세상에 고부 갈등 같은 건 없었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몸도 얼추 회복된 것 같은데, 심심하지 않나?”

“네! 수련하고 싶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즉시 나오는 서하영의 대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설천운은 엄지를 세워 자신의 뒤를 가리키며 웃었다.

“아버지의 수련이 시작됐는데, 같이 수련해 보는 건 어때?”

* * *

설가(雪家)의 연무장.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그곳에 도착한 서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연무장의 한복판, 거친 근육을 뽐내며 포효하고 있는 철백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꿈틀거리는 근육, 곳곳에 새겨진 상처에서 흐르는 피.

서리가 낀 듯 하얗게 변한 피부.

결코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꿋꿋이 서서 ‘한 번 더’를 외치는 철백의 모습은 그야말로.

“멋져…….”

……멋진가?

완전히 밀리고 있는 모양새인데?

홀린 듯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히죽히죽 웃는 서하영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유예린은 먼저 걸음을 뗐다.

“왔군.”

그 모습에 철백을 상대하던 설주철이 검을 내렸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철백은 유예린과 서하영을 확인하고 손을 내렸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다가가 고개를 숙이는 유예린에게 무뚝뚝하게 대답한 설주철은 연무장에 선 부하들을 보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수련을 시작하지.”

“예!!”

“구보, 시작.”

짧고 간결한 명령과 함께 힘찬 함성을 내지른 무인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설주철이 달리기 시작하고.

유예린은 말없이 그 뒤를 따라붙었다.

정신을 차린 서하영도 철백과 함께 따라붙었고.

지옥의 달리기가 시작됐다.

* * *

“미친…….”

“말도 안 되는데…….”

설가(雪家)의 연무장 구석.

체력이 부족해 포기한 이들이 널브러진 곳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감탄이라기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반응이었지만.

아무도 그걸 지적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반응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의 현실이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설가(雪家)의 수련은 내공을 쓰지 않는 구보로 시작된다.

달리고 달려서 체력을 쥐어짜는 달리기.

내공을 봉인하고, 무식하게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이 시작은 언제나 힘들다.

그도 그럴 게, 애초에 이 달리기의 목적 자체가 한번 쥐어짠 뒤에 수련을 진행해 회복력과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쥐어짜는 게 목적이니 힘든 게 당연한 훈련.

그런데.

“부단주는 역시 부단주라는 건가…….”

“가주님의 구보를 따라가는 외부인은 처음 보는군.”

“슬슬 소가주님도 힘에 부치시는 것 같은데?”

“저 덩치 큰 친구는 내공도 없다던데……. 장난 없군.”

그 훈련을 이렇게 길게 따라가는 외부인이 있을 줄이야.

설주철과 설천운의 뒤를 따라 달리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에 설가의 무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 셋만큼은 아니지만, 참가했던 흑룡단의 무인들도 상당히 오래 버텼다.

체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증거.

특히,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평상시에 내공은 자연스럽게 몸을 보호한다.

지구력과 회복력 등등 모든 방면에서 내공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법이거늘.

내공 하나 없이 팔팔하게 달리고 있는 철백의 모습엔 기가 질린 사람까지 나왔을 정도다.

“체력이 좋네.”

감탄하는 무인들처럼 함께 달리던 설천운은 웃으며 철백의 팔을 쳤다.

칭찬하는 듯한 그 손짓에 철백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체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습니다.”

“오! 자신감.”

“자신감은 아닙니다.”

자신감은 아니다.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감정이다.

“저희에게는 이것만이 길이었으니까요.”

이것만큼은 무조건 해내야 한다.

그런 정신으로 만들어 낸 육체다.

자신감이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강박적인 확신에 가깝다.

“저희라면?”

“천위도, 저도 부족한 재능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지만.

“과연, 그 녀석도?”

“예. 체력 하나만큼은 안 밀릴 겁니다.”

정확히는 체력을 지탱하는 정신력이지만.

꾸역꾸역 달리는 것만이라면 천위는 철백의 뒤를 따를 수 있을 정도다.

“정지.”

앞서 달리던 설주철이 멈추고, 그를 따라 멈춘 이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풀며 설주철을 바라봤다.

미약하게 땀이 흐르는 얼굴로 뒤를 돌아본 설주철은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세 사람을 잠시 바라보더니, 널브러져 있는 다른 무인들이 있는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련을 시작한다.”

“예!”

재빨리 일어나 연무장 위로 올라오는 무인들 속에서 유예린과 철백, 서하영도 자리를 잡았다.

흑룡단끼리 뭉쳐 자리를 잡으니 설주철의 호령과 함께 수련이 시작됐다.

설가(雪家)의 기초 검술로 시작되는 수련.

당연히 설가의 기초 검술을 모르는 흑룡단에서는 어색한 공기가 흐를 때.

“여기는 내가 맡을까?”

기초 검술을 모르는 흑룡단 앞에 선 건 설천운이었다.

“뭐, 맡는다곤 해도 간단한 도움을 줄 뿐이지만.”

목검을 어깨에 걸친 설천운이 히죽 웃었다.

“대련 시작.”

* * *

“흠.”

객잔의 침실.

의자에 앉은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린 채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더럽게 늦네.”

“그러게요.”

납치하던 놈들을 정리한 지 사흘.

충분히 반응이 올 만한 시간인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을 중앙에 묻혀 있던 구슬을 처리한 덕에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이 생기를 빨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냥 떠나고 난 뒤에 놈들이 찾아오면 전부 무의미한 일이 된다.

아니, 무의미한 걸 넘어서서 위협을 느낀 녀석들이 마을 자체를 지워 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건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슬슬 불안감마저 올라오고 있다.

‘눈치채고 기다리고 있나?’

마을에 접근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야 있으니.

그렇게 되면 무작정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밖에 되지 않는데…….

고민이 점점 더 깊어질 무렵.

“……음?”

먼저 눈치챈 건 설천위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뒤늦게 알아챈 백수아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이건 의외인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

“공자님.”

“괜찮아.”

인기척 없이 문 앞까지 도달한 적을 경계하는 백수아가 말렸지만, 설천위는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열리는 문.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들어오는 것은 여인이었다.

기이하게 일렁이는 육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은 부드럽다는 인상이 절로 드는 미인이었다.

“저는 제7소궁주, 요려(妖麗)라고 합니다.”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것처럼 양손을 몸 앞으로 모은 요려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흑룡단주님을 뵙습니다. 아니면, 흑성 님이라 불러 드려야 할까요?”

고개를 든 요려의 입가에 맺힌 잔잔한 미소와 함께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

사내의 이성을 단숨에 무너트리는 그 향기에 백수아마저 미간을 찡그리는 순간.

“헛소리 말고, 본론이나 빨리 꺼내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을 휘젓는 설천위의 모습에 요려가 작게 감탄했다.

“과연, 궁주님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보고 싶어 한다고?”

요려의 말에서 느껴지는 싸한 느낌에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리고.

“예, 궁주님께서 뵙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흑룡단주님.”

요려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은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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