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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27화 (427/624)

제427화

426화-자색의 안개 (3)

“완전히 먹힌 것 같은데…….”

연기가 안개처럼 깔린 마을의 풍경에 설천위는 재빨리 창문을 닫았다.

동시에 내공으로 방 안의 연기를 전부 밀어낸 뒤 기막을 펼쳤다.

“몸 상태는 어때?”

“멀쩡해요. 웬만한 독에는 내성이 있어요.”

“그건 다행이네.”

백수아의 상태를 확인한 설천위는 바로 눈을 감고 감각을 열었다.

영력과 내공을 퍼트려 감각의 범위를 마을 전체로 넓혔다.

순식간에 뻗어나간 영력과 내공이 수많은 정보를 끌어모은다.

기(氣)의 유동, 영력의 변화는 물론, 소리까지 손에 넣는다.

“조용하네요.”

“……어. 과할 정도로.”

백수아의 담담한 목소리에 눈을 뜬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린 채 창밖을 바라봤다.

백수아의 말대로, 마을 전체가 깊은 정적에 빠져들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잠든 사람들의 희미한 숨소리뿐.

비명도, 신음도 없다.

객잔 주인이 말했던 실종이 사실이라면, 이건 위험 신호였다.

사람이 아무런 소음도 기척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리니까.

다만.

“움직이고 있네요.”

“그래. 꽤나 익숙한 것 같은데?”

자신들의 움직임을 숨길 생각이 없는지 대놓고 움직이는 녀석들의 기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을 전체가 약인지 술법인지 모를 것에 가라앉은 상태이니 그냥 대놓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상황.

‘……오히려 모르겠군.’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니 오히려 헷갈렸다.

혈교나 혈사련이었다면 고작 제물의 납치 따위에 마을 전체를 약으로 가득 채우는 비효율적인 일을 할 리가 없었고.

그렇다고 천희만락궁의 방식이라고 하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어.’

천희만락궁(天喜萬樂宮).

이름 그대로 천상의 기쁨과 만 가지의 즐거움을 간직한 곳이다.

표면상으로는.

약과 술법을 이용한 강력한 세뇌.

당연히 지배의 방식으로는 쾌락을 사용한다.

심지어 단순한 약물의 쾌감만이 아닌 육욕(肉慾)의 쾌감을 섞기도 한다.

그렇게 중독자를 만들어 충성을 유도해서 자신들의 사람으로 만들고 세력을 키우는 것이 천희만락궁의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마을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 실종 사건을 연달아 일으키는 것은 녀석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물론.

‘……게임에서 본 게 다가 아닐 수도 있지.’

게임에서야 임무 혹은 이벤트로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해결했으니 이런 자그마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예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의 주범이 천희만락궁이 아닐 거라는 확신은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멈췄군요.”

생각에 빠져 있던 설천위는 백수아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가자.”

* * *

“오늘은 이 집인가?”

“음……. 맞는 것 같다.”

“추측으로는 안 되지.”

함께 온 동료의 말에 미간을 찡그린 사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치 자신의 집에 온 것 같은 자연스러운 움직임.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 사내는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가족이 모여 있는 침실.

“맞나?”

“맞는군.”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동료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옆에 누워 있는 아기와 남편을 무시하고 여인을 들어 올렸다.

축 늘어진 여인을 그대로 어깨에 걸친 사내는 돌아서서 침실을 나섰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자연스러움.

“오늘은 이 집 하나뿐이었나?”

“그래, 슬슬 횟수를 줄이라는 명이 떨어졌다.”

“사천맹 때문인가?”

“그래, 사화 그 계집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 같다더군.”

“사파 주제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속칭 벌레 골라내기.

맹주의 자리에 오른 백유가 선언한 첫 명령에 사파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사도(邪道)를 걸어도 인간으로서 걸어라.

본래부터 금지되어 있던 인신매매의 단속을 더욱 강화하고 추가로 음지의 세력을 축출하라.

그 명령에 사파 전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음지와 줄을 대고 있는 사파가 한두 곳이 아니었으니까.

대놓고 자신들을 사파(邪派)라고 칭하는 놈들이 있는 곳이 중원 무림이다.

그런 세상에서 더욱 음지로 파고드는 놈들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숨어서 일하는 것이 유리하기에 스스로 숨은 녀석.

숨어서 일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이 달아나 어쩔 수 없이 숨은 녀석.

당연하게도 후자의 죄질은 그야말로 인륜을 거슬렀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대놓고 돈을 뜯고, 사창가를 운영하고, 도박장을 돌리는 사파 놈들도 양지에 있는 이 무림에서 어쩔 수 없이 음지에 숨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은 놈들이다.

인신매매, 마약 유통, 밀매, 장물 유통 등등.

죄질의 종류는 걸리는 순간 사형은 당연한 수순이고, 누군가가 그들을 죽이면 되레 상을 받을 정도다.

그리고 보통 이런 범죄는 당연하게도 큰돈이 된다.

음지에서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이 아니면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신이 나간 구매자들에게 목숨을 걸고 물건을 납품하는 이유야 돈밖에 없다.

당연히 그런 음지의 연결망으로 큰돈을 축적하고 있던 사파가 수두룩하다.

그들 전부를 단속하겠다고 나섰으니 반발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실제로 백유의 정책에 반발한 사파가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다만, 맹의 힘을 두려워하는 중소 문파들은 순순히 명령을 따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선을 끊은 건 아니었다.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만 잠깐 몸을 낮추자는 전략.

전대 맹주인 사존 때에 그랬듯, 조금만 버티면 태풍은 곧 지나간다.

그 뒤에는 원래 하던 대로 장사를 해도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그것을 단속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무리 맹의 눈이 사방으로 퍼져 있다고 해도 볼 수 없는 곳이 훨씬 더 많으니까.

“한동안 조용히 살아야겠군.”

미간을 찡그리며 집 밖으로 나온 사내는 어깨에 걸친 여인을 더듬었다.

작은 마을에 사는 여인치곤 꽤나 미색이다.

감촉도 부드럽고.

“한동안은 이 계집으로 만족해야겠군.”

쯧, 혀를 차며 여인을 더듬던 손을 내린 사내가 뒤를 돌아본 순간.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데.”

붉은 피가 울컥거리며 동료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뒤를 잡은 여인의 날카로운 눈이 번뜩였다.

마주하는 순간,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오한이 온몸을 집어삼킨다.

움직여선 안 된다.

본능이 그렇게 외치는 것과 함께.

그제야 들려온 목소리가 남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쯧, 천희만락궁 맞는 것 같은데.”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어깨를 움켜쥔 손에 어깨뼈가 으스러진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설천위가 펼친 기막에 막힌 비명은 사내의 주위를 떠돌다가 사라졌다.

“부탁할게.”

어느새 다가와 여인을 안은 백수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고.

“그럼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나눠 볼까?”

으스러진 어깨를 감싸지도 못한 채 떨고 있는 사내의 머리에 손을 올린 설천위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너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네.”

* * *

“흐응, 반발이 꽤 심한가 보네?”

“예. 아무래도 수익의 상당 부분이 깎이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사파 놈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혈뇌의 대답에 혀를 찬 백유는 늘어지는 목소리로 몸을 뉘었다.

맹주의 집무실에 떡하니 놓인 침상에 몸을 맡긴 백유가 하품을 했다.

“미려~, 어떻게 생각해?”

“뭘요?”

“아이, 까칠하기는.”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휘젓는 백유의 모습에 그녀와 달리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여미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까칠하죠! 북존을 상대하다가 겨우 돌아왔더니 오자마자 여기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에이, 각자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걸 어떻게?”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이불까지 끌어와 몸을 파묻는 백유의 모습에 여미려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후…….”

가증스러운 상사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여미려는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혈뇌를 바라봤다.

“제1 참모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지금은 과격한 방법을 쓸 때라고 생각합니다.”

과격한 방법.

그 말에 이불까지 덮고 누웠던 백유가 눈을 빛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거 듣기 좋은 소린데.”

“뭘 듣기 좋아요? 어차피 할 생각이었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할 생각이었으면서.

백유를 차가운 눈으로 흘긴 여미려는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저도 같은 의견이네요.”

정말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지금 백유에게 부족한 것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름값이다.

명성이든, 악명이든.

백유에게는 지금 사파를 휘어잡을 이름값이 부족했다.

맹주 선발전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해 명성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부족한 이유는 당연히 백유의 무력이 사존(邪尊)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화경만 돼도 지금 반발하는 문파의 대부분을 때려 부술 수 있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참으로 복잡하다.

현경이었던 전대 맹주도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는데, 화경밖에 안 되는 신입 맹주가 감히?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자존심이 어우러지면서 생겨난 반발심.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는 생각이지만, 이게 또 마냥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무력과 명성, 장악력까지 고루 갖춘 사존이 왜 그들을 방치했는가.

이유는 너무나도 사파스러웠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파가 정파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났다곤 해도, 그 영역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을 바쳐도 전부를 돌아보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드넓은 땅이다.

그 드넓은 땅에서 법을 어기고 있는 놈들을 일일이 찾아내서 벌한다?

게다가 증거를 찾는 건 쉬운가?

아무리 반쯤 대놓고 하고 있는 일이라곤 해도 일단은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당연히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 정책의 핵심은 당연히 감찰이다.

맹 쪽에서 인원이 나가면 순순히 조사를 받아라.

이게 이 정책의 핵심이니 구린 구석이 많은 사파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전대 맹주도 자신들을 이렇게까지 무시하지 않았는데, 감히 신입 맹주가?

이런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마음가짐을 상대가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된 감찰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현실적으로 곳곳에 뿌리내린 음지의 세력들을 발본색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

다만.

이 모든 것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했을 때 생기는 어려움이다.

“본보기로 좋은 가문은?”

“선이가가 좋겠네요.”

“칠가(七家), 아니 이젠 육가(六家)인가.”

구마가는 직접 지워 버렸으니까.

어느새 침상에서 일어난 백유는 흑룡포를 어깨에 걸쳤다.

펄럭이는 흑룡포가 가라앉고, 어느새 특유의 미소를 머금은 백유가 거침없이 걸어 나가며 혈뇌의 어깨를 툭 쳤다.

“따라와. 집안일은 미려한테 맡기고.”

“알겠습니다.”

“후……. 적당히 하세요.”

백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미려가 고개를 저었지만, 백유는 피식 웃을 뿐 대답하진 않았다.

적당히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어떤 준비를 하면 되겠습니까?”

“음. 그래, 이번에는 적랑대 애들을 데려가 볼까.”

복도를 걸어가며 백유의 말에 고개를 숙인 혈뇌가 전음으로 지시를 내리는 사이.

“어딜 또 가니?”

“스승님.”

건물을 나서는 문밖에 서 있던 살존을 발견한 백유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살수들을 준비해 주세요.”

“흐응~, 벌써?”

“아무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놈들이 많은 것 같아서요.”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살존을 지나치며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주제도 모르고 고개를 들면, 밟아서 눌러 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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