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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22화 (422/624)

제422화

421화-흑천(黑天) (3)

천지가 요동치고, 찢어질 것 같은 굉음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검게 물든 세상에서 하늘이 울고 있었다.

“나쁘지 않네!”

하늘조차 울고 있는 세상 속에서 설천위는 미친 듯이 창을 던졌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읽을 수 없는 광소가 터져 나온다.

하늘이 뒤집혔나.

천리가 어그러진 것인가.

붉은 재앙 위에 생긴 검은 하늘 아래, 우렛소리가 온 세상을 뒤덮는다.

[네놈……!]

그 우렛소리의 목표가 된 현열혈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설천위를 노려봤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벼락은 상대가 진정 인간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뇌전을 전문으로 다루는 술사조차 이리 미친 듯이 벼락을 쏟아 낼 수 없을 터인데.

저 괴물은 아까 지하에서 검은 벽을 만드는 술법을 주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때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지금 이 미친 듯한 공격은 즉석에서 해내고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뇌전 계열의 술법은 준비 없이 펼치면 시전자까지도 망가지는 술법이다.

그만큼 파괴적이고 강력한 것이 벼락이니까.

즉, 지금 하늘에 떠서 미친 듯이 벼락을 맞고 창을 던지고 있는 저놈의 몸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란 소리였다.

아니, 어찌어찌 큰 내상은 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뇌전이 몸을 뚫고 지나가는 고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터인데.

‘대체 어찌……!’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벼락을 막아 낸 촉수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는 것을 보고, 현열혈귀는 힘을 끌어모았다.

저런 정신 나간 녀석은 그 속내를 읽는 데 긴 시간을 써선 안 된다.

최대한 빠르게, 놈이 다른 수를 쓰지 못하게 짓밟는다.

그게 최선이다.

스산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현열혈귀는 손을 뻗었다.

수십 개의 촉수가 설천위가 던진 벼락을 막아 낸다.

부서지는 걸 넘어서서 그 강력한 열기에 불타 버린 파편이 연기와 함께 흩어지지만.

대부분의 파편이 다시 몸체로 떨어져 흡수됐다.

뇌전의 힘을 담았다고는 하나 결국 술법.

위력은 실제 벼락보다 약할 수밖에 없…….

쾅!!

순간, 몸체가 터져 나가는 느낌과 함께 고개를 돌린 현열혈귀는 얼굴을 마구 구겼다.

이 적색의 몸체에 사람 서넛은 거뜬히 들어갈 큰 구멍이 생겼다.

물렁한 외형이니만큼 강도 자체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파괴와 동시에 재생이 시작되는 몸이다.

그러니 이런 구멍이 남아선 안 된다.

“흐음, 슬슬 감이 잡히는데?”

그렇기에 한참이나 떨어진 거리에서도 또렷이 들리는 설천위의 목소리에 현열혈귀는 고개를 들었다.

기이할 정도의 살기가 담긴 눈동자가 설천위를 향한다.

“뭘 째려봐?”

그 시선에 입꼬리를 비튼 설천위는 껄렁한 목소리로 다시 벼락을 날렸다.

강력한 위력의 벼락이 꽂히며 또다시 연기가 피어오른다.

피가 익어 가는 기이한 냄새.

자신의 영력이 확실하게 깎여 나가고 있음을 인지한 현열혈귀는 천천히 앞으로 손을 모았다.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전력으로 움직여 주마.]

점점 더 선명해지는 이성과 함께 현열혈귀의 손이 완전한 원을 그렸다.

엄지와 엄지가 닿고.

검지와 검지가 닿으며 만들어지는 원.

인간의 손이라면 무조건 일그러져야 할 원의 형태가 기이할 정도로 완벽했다.

[혈현불괴(血顯不壞)]

붉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설천위가 만들어 낸 검은 하늘 위에 붉은 피가 덧칠되는 것처럼 세상이 바뀐다.

“이런!”

현열혈귀를 묶어 놓기 위해 술법을 준비하던 귀령단주는 아차 싶었다.

‘술법에 집중하느라 자성영역을 놓치다니……!’

이런 실수를!

상대가 인간의 형태를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당연히 경계했어야 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이런 고위급 악귀와 싸우느라 감을 잃었나……!

스스로의 실수를 책망하며, 귀령단주는 다급히 부적을 꺼냈다.

설천위가 만들어 낸 이 자성영역이 깨지면 이쪽이 크게 불리해진다.

재(災) 등급 이상의 악귀가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가진 권능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악귀들이 펼치는 자성영역(自省靈域)은 그 권능을 크게 강화시킨다.

상대의 권능이 뭔지 제대로 감도 잡지 못한 지금, 상대가 자성영역을 펼치게 틈을 내준 건 그야말로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최소한 설천위의 자성영역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과연, 재미있네.”

순간, 설천위가 만들어 낸 자성영역이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린다.

찢어지고, 쪼개져 흩어지는 자성영역.

너무나 허무하게 핏빛 세상에 집어삼켜지는 주위의 풍경을 보고 귀령단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괴물의 자성영역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금 당장 내 자성영역을…….’

“역시, 이건 실패네. 나한테 안 맞아.”

“……후.”

입술을 깨물고 자신의 자성영역을 꺼내려던 귀령단주는 설천위의 혼잣말에 숨을 토했다.

아니, 실패를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지금 한시가 급한 이 상황에서 상당히 뻔뻔하네.

어린 나이에 강한 힘을 손에 넣은 탓인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유로운 목소리다.

하긴, 이런 수준의 악귀와 싸워 볼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재(災) 등급의 악귀에게 자성영역을 펼칠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리가 없…….

“이걸로 가야겠어.”

순간, 다시 앞으로 손을 모은 설천위가 양팔을 교차시켰다.

손목이 닿은 상태로 교차한 양손으로.

“벼락까지는 너무 욕심이었지. 간단하게 가자고.”

손목을 뒤집는다.

교차한 양손이 동시에 뒤집혀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미친!”

귀령단주는 오랜만에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게, 공간을 집어삼켰던 붉은 기운이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처럼 검은 기운이 일렁이며 하늘을 집어삼켰다.

그래.

집어삼켰다.

말 그대로.

공간 전체를 술사의 의지로 지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성영역(自省靈域)이라는 힘이다.

자성(自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는 술사가 펼쳐 내는 영역(靈域)이 술사의 의지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술사의 의지다.

술사가 살아온 삶,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 자신이 쌓아 온 힘과 지식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술사가 품은 강력한 의지가 자연스럽게 술사가 펼치는 영역에 깃들어 공간 전체를 장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성영역의 핵심이다.

심(心)이 영력에 투영되는 경지이기에 무인의 화강(化罡)과 비교되는 기술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화강(化罡)의 형태와 성질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무인이 없는 것처럼 자성영역의 형태와 성질이 자유롭게 변하는 술사도 없다.

없는 게 당연했다.

의지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느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현실로 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자기 확신은 물론이고, 심상(心象)의 정밀함까지 갖춰야 한다.

누구나 ‘맨손으로 산을 옮기는 건 힘들다.’라는 생각을 할 순 있지만, 아무나 ‘산을 옮기는 모든 과정’을 구체화하여 머릿속에 떠올릴 순 없다.

흙을 퍼서 나르고, 바위를 쪼개고, 돌을 들고 나르는 과정에서 넘어지고, 찢어지고, 고꾸라지는 것 전부가 ‘힘들다.’라는 단어 하나에 응축되어 있다.

아니, 이런 설명조차도 부족하다.

현실에서 펼쳐지는 힘듦은 고작 저런 몇 가지의 상황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그 모든 과정을 인간이 정확하게 머릿속에 상상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본인이 직접 해 본 것이 아니라면.

그렇기에 자성(自省)인 것이다.

스스로를 성찰해 자신이 겪어 온, 배워 온 모든 것을 총동원해 만드는 자신만의 공간.

의지를 현실로 구체화해 낸 공간.

그런데 그걸.

이렇게 간단히 바꾼다고?

어느새 붉은 기운을 거의 다 밀어내고, 현열혈귀의 머리 위까지 닿은 검은 공간 속에서.

[흑천(黑天)]

“이게 더 낫네.”

입꼬리를 비튼 설천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검게 물든 하늘.

울렁거리는 먹구름 속에서 우렛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지만, 귀령단주는 거기에 미처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공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너무 경악스러워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저 아래 붉게 물들었던 공간 속에서 현열혈귀가 일렁인다.

솟구치는 촉수가 조금 전처럼 이쪽을 노리고 파고들지만.

“나쁘지 않아.”

닿지 못하고 바스러진다.

하늘에 떠 있는 설천위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검게 물들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괴물 놈.”

그렇기에 귀령단주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형태의 자성영역이라니, 정말…….

‘저 괴물만을 없애기 위해 만든 것 같구나.’

그리고 아마 이 추측은 정답일 테지.

저 아이는 순수하게 발밑에 있는 저 괴물만을 없애기 위해 이 자성영역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촉수의 뿌리가 썩은 것처럼 검게 물든 것이 보인다.

여태까지 날렸던 벼락이 촉수를 녹이고 지졌을지언정 끊임없이 재생됐던 것과는 다른 결과.

대체 어떤 원리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어떤 심상을 그려 냈고, 어떤 의지를 품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승산이 보이기 시작했네.’

끊임없이 재생하던 괴물의 재상을 틀어막았다.

이것 하나만으로 이쪽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손에 잡힐 정도로 크게 올라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의 권능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재생 자체를 틀어막은 것으로도 이쪽이 충분히 우위에 섰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그렇기에 억눌린 적의 목소리에 귀령단주는 다시 눈을 감았다.

설천위가 이 정도까지 해 준다면 자신도 집중해서 확실하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어느새 눈을 감고 은은하게 영력을 움직이기 시작한 귀령단주를 힐끗 쳐다본 설천위는 고개를 내려서 현열혈귀를 바라봤다.

“수작은 무슨, 그냥 다 하는 거지.”

뭐, 최대한 시도를 해 봤는데 됐으니 다행이지.

현열혈귀의 가장 까다로운 점인 재생을 틀어막았으니, 제대로 된 성공이다.

[흑천(黑天)]

나쁘지 않았다.

생각한 것은 패악(覇惡).

품은 것은 모든 것을 짓밟고 황폐화시키는 악(惡)에 대한 패도(覇道).

[정녕 괴물이구나.]

천마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일단은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발아래 있는 놈의 처리였으니까.

‘일단 회복은 막았고…….’

그다음으로 해결할 것은 무지막지한 피통이다.

재생을 막았다곤 해도 덩치가 어마어마하다.

건물 몇 채를 합쳐 놓은 것보다 거대하니 그냥 좀 썰고 부수는 것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터.

아까 벼락을 불러냈던 건 재생을 틀어막고 파괴하는 일을 동시에 해 보려고 했던 건데…….

“너무 욕심이었지.”

미완성의 자성영역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너무 무리였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설천위는 손을 움직였다.

자성영역을 만들어 냈으니, 그다음은 공격이다.

놈의 재생을 막을 수단을 마련했으니 이제 파괴에 집중해야지.

다만.

‘뭐가 더 나으려나.’

파괴하는 수단이 문제다.

술법을 이용한 파괴도 괜찮을 듯하고, 아예 달려들어 무공으로 불살라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뚜렷한데…….

“혹시 모르니까.”

술법으로 가자.

근접 전투에 몰입하다가 익숙하지 않은 자성영역이 깨져 버리면 저쪽에서 다음 턴을 줄 리가 없었다.

이쪽이 자성영역을 펼치는 것을 어떻게든 견제하려 하겠지.

그렇게 회복을 막을 수단을 잃게 되면 손해가 너무 막심하다.

귀령단주도 있으니 일단은 안전하게 술법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꺄하하하하!”

순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돌렸다.

저 아래, 붉게 물든 현열혈귀의 영역 안으로 겁도 없이 달려드는 녀석이 보인다.

“흑성!! 또 혼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잖아!”

촉수를 단검으로 조각낸 백유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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