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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18화 (418/624)

제418화

417화-미완의 재앙 (3)

[위험. 위험.]

마치 고장 난 것처럼 위험이라는 단어만을 반복하는 현열혈귀(玄裂血鬼)의 분신을 바라보며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확실하게 흑관으로 가두고 십수 개의 흑관으로 몸을 관통해 내부를 곤죽으로 만들었음에도.

“더럽게 멀쩡하네.”

화강(化罡) 정도의 힘이 아니면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건가.

존재 자체로 재해의 영역에 들어선 악귀다웠다.

다만, 문제는 모른다는 것이다.

이 녀석이 왜 분신으로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지 설천위는 그 이유를 몰랐다.

게임에서야 뭐 설정으로 나왔겠지만…….

처음에도 대충 보고 넘겼고, 그 뒤로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는 전부 그냥 넘겨 버렸기 때문에 도무지 기억이 안 났다.

대충 힘을 모으기 위해서, 같은 이유였던 것 같긴 한데…….

‘모르겠네.’

재(災) 정도나 되는 악귀가 분신을 사용하는 이유를 알면 꽤나 큰 도움이 될 터인데.

그 손휘조차 재(災)의 악귀가 됐음에도 백수아의 몸에 달라붙어 스스로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목적이 있다면, 악귀는 스스로의 힘조차 깎아 낼 수 있다.

애초에 지능이 낮은 존재들이 아니기에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할 줄 아는 놈들이다.

그런 녀석이 상대인 만큼 놈이 본체를 숨기고 분신만을 움직이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단순히 본체가 약한 거라면 상관없지만…….

‘더럽게 강하니까.’

게임 속에서 힘들게 찾아낸 현열혈귀(玄裂血鬼)의 본체는 항상 더럽게 강했다.

화경급 무인은 뭐, 애초에 별 도움도 안 되고.

귀령단주를 비롯해 최상급 술사가 두셋 이상 달려들어야 피해를 최소화하고 잡을 수 있다.

게임에서야 큰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여기에서까지 그럴 순 없지.’

귀령단주급 술사를 두셋이나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설령 구했다고 한들 그만한 전력을 잃으면 너무 큰 손해다.

술사는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그 효용성이 더욱 빛을 발하니까.

그러니.

‘찾아내자.’

놈의 약점을.

놈이 왜 분신만 움직이는지.

왜 혈교와 혈사련에게 협력해 사천맹에 잠입했는지.

그 이유를 알기만 하면 본체가 분신을 사용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거고, 그렇게만 되면 공략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우웅!

순간, 땅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설천위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런, 미친? 벌써?”

담 너머로 치솟는 붉은빛.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진동.

“어떻게?”

현열혈귀(玄裂血鬼)의 본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 맹주 선발전은 게임에서보다 시기가 훨씬 빨라졌다.

당연히 이쪽이 현열혈귀(玄裂血鬼)를 자극한 타이밍도 게임보다 훨씬 빠른데.

대체 왜 힘을 모으기 위해 분신을 움직이던 녀석의 본체가 벌써 이 정도의 영력을?

바닥에서 치솟는 영력이 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는다.

짙다 못해 끈적한 수준의 영력.

진한 피처럼 끈적하게 달라붙는 영력을 설천위는 영력으로 밀어냈다.

어떻게 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데.’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설천위.”

“……얘기는 끝났나요?”

경계를 끌어올려 현열혈귀를 노려보고 있으니, 등 뒤에서 살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척이라곤 없는, 그야말로 은밀함의 극.

“협력하기로 했다.”

“그럼?”

“살생부도 받았지.”

“그거 잘됐네요.”

그럼 일단 제1 목표는 해결인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웃으며 손을 털었다.

긴장감을 털어 내고, 똑바로 적을 응시한다.

백유도, 살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렇다면, 이쪽도 이쪽이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그 아줌마가 찾아낼 때까지 조금 괴롭혀 볼까.”

양손을 앞으로 모은 설천위는 천천히 손을 벌렸다.

그리고.

“영역전개(靈域全開).”

[자성영역(自省靈域)]

[수관대밀옥(水棺大密獄)]

조금 놀아 주마.

* * *

‘……이건.’

영력의 흔적을 더듬어 이동하던 귀령단주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붉은빛에 미간을 찡그렸다.

피비린내가 나는 영력.

‘몇이나 잡아먹은 건지 감도 안 잡히는군.’

태평성대의 시대다.

외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내부적으론 별문제 없이 나라가 굴러가고 있었다.

물론 성주 간의 자잘한 권력 다툼 정도야 있었지만.

전란이 멈추지 않는 시대처럼 시체로 산을 쌓고 피가 강이 되는 시절은 아니다.

죽지 않기에 인구는 늘어나고, 경제는 융성하게 발전하고 있다.

겉모습만 보면, 이리도 훌륭한 치세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있었다.

끝도 없이 늘어나는 인구는 금세 넘치게 된다.

어제까지 두 사람이 농사짓던 땅에 열 사람이 달라붙는다고 생산량이 다섯 배가 되는 건 아니다.

식량은 부족해지고, 일자리는 모자라게 된다.

누군가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화전민이 되고, 누군가는 산적이 되고, 누군가는 도둑이 되고, 누군가는 사기꾼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살리기 위해.

자신이 짊어진 입을 하나라도 더 먹여 살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진흙탕을 걷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진창에 빠져 죽는다고 한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관심조차 없으니까.

관(官)이 파악하는 실종자보다.

무림맹이 파악하는 실종자보다.

사천맹이 파악하는 실종자보다.

음지의 세력이 항상 그보다 많은 제물을 손에 넣는 이유다.

가능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귀령단주 자신도 손을 놓은 일이긴 하지만…….

막상 그 나태함이 이렇게 발목을 붙잡으니 입이 썼다.

없앨 순 없었겠지만, 줄이려고 노력했다면…….

‘……의미 없는 후회인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낸 귀령단주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붉게 치솟은 빛.

술법이 펼쳐지기 직전의 상태와 흡사하다.

그리고 만약 상대가 재(災) 이상의 악귀라면 독자적인 술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파훼는…… 힘들겠네.’

붉은빛을 품은 영력이 심상치 않았다.

그 숫자도 도저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여서 한두 군데 끊는다고 해결될 것 같은 수준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본체를 찾는 게 최선이겠네.’

이 흐름을 이용해 본체를 찾는 게 최선이다.

맹에 살고 있는 자신조차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꽁꽁 감추고 있던 악귀다.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 이전에 일단 찾아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걸 알기에 그 녀석도 경험이 풍부한 자신에게 수색을 맡긴 거겠지만.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 주던 설천위를 떠올린 귀령단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녀석이 정파에 있다면, 역시 사파의 하늘이 북쪽 끝에 닿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뭐, 애초에 자신은 그런 거엔 관심도 없지만.

“흐응?”

생각을 이어 가며 영력을 더듬던 귀령단주는 저 멀리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공백에 고개를 들었다.

“찾았다.”

* * *

“……일이 더럽게 꼬였군.”

“역시 그 계집은 배신자였나?”

“대주교님께서 계속 경계하라고 하신 이유가 있었군요.”

지하실.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사천맹을 먹으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우리도, 혈사련도.”

“살존을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다니 계산 밖의 일이야.”

“그 계집의 무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소준극이 어설프게 벽을 넘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줄이야.”

“현열혈귀가 폭주한 것도 문제다.”

“아직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완성되지 않았거늘…….”

계획과 상당히 멀어진 상황에 미간을 찡그린 사내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이를 바라봤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주교님.”

“으음……. 그렇군요.”

조용히 말을 듣던, 하인 복장을 하고 있던 40대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전부 틀어졌으니, 교리를 따르겠습니다.”

“천신강림(天神降臨) 혈세도래(血世到來)!”

“천신강림(天神降臨) 혈세도래(血世到來)!!”

교리를 따르겠다는 한마디에 지하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친 이들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세요.”

고개를 끄덕인 대주교는 순식간에 사라진 부하들의 빈자리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반항이 거세군요.”

거세다.

확실히.

자신이 예상한 것에 비하면.

두 눈을 감은 대주교는 양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뜻대로 더러운 땅을 피로 씻어 내겠습니다.”

자신의 계획은 틀어졌지만, 그분의 계획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이 세상을 피로 씻어 낸다는 그 계획만은 언제나 옳았다.

그의 등 뒤로 달라붙은 붉은 촉수가 맥동했다.

* * *

“흐음.”

천천히 사라져 가는 물의 감옥 속에서 설천위는 손을 내렸다.

“생각보다 더 약한데.”

이제는 완전히 망가져 꿈틀거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현열혈귀의 분신을 보며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약하다.

분신이라고 하지만, 재(災)의 일부.

백수아의 몸에 들어가느라 권능을 봉인하고 언여휘의 봉인에 일부가 뜯겨 나갔던 반푼이 손휘와는 다르다.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는데…….

대충 만들어 냈던 [수관대밀옥(水棺大密獄)]을 완전히 흐트러트린 설천위는 주위를 둘러봤다.

철공과 백유의 전투는 아직도 진행 중.

그 외의 적들도 꽤나 팽팽하게 싸우고 있다.

다만.

‘끝났군.’

기세가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온 게 보였다.

백유도 머지않아 철공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고.

거기다.

‘참, 성격하고는.’

일부러 술법까지 펼쳐 줬는데, [흑뢰천역(黑雷闡域)]은 쓰지 않는 건가.

자체적으로 흑뢰를 다룰 수 있게 됐으니 굳이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쓰면 손쉽게 끝날 텐데.

참, 뭐가 기준인지.

광소를 터트리며 철공을 몰아붙이고 있는 백유의 뒷모습을 짧게 바라본 설천위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저쪽이 아니지.

살존도 움직였으니, 사천맹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쪽이 신경 써야 할 건 이쪽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순간, 공간이 일렁이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일어났던 영력을 가라앉혔다.

순순히 상대의 술법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았다 뜨니, 완전히 바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있던 비무장이 아닌.

“이것 봐라?”

살벌하게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적들로 가득한 정원이었다.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 같은 정원에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몸이 이곳저곳 나뉜 적들의 시체가 굴러다닌다.

“생각보다 잔인하게 싸우시네요.”

“……무인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몇 없느니라.”

조금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돌리는 귀령단주의 모습에 피식 웃은 설천위는 손을 뻗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하는 건 좋은 태도죠.”

어설프게 오기를 부리다가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럼, 조금 쉬고 계세요.”

금방 정리할 테니.

도(刀)를 뽑은 설천위가 움직이자, 그에 반응해 적들도 움직였다.

일시에 몸을 날려 설천위를 압박하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빈틈을 파고들어 설천위를 찌르는.

그야말로 목숨을 도외시한 합공.

그것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펼치는 적들의 독기에 혀를 내두를 법도 하건만.

[참수(斬首)]

설천위는 담담하게 도(刀)를 휘둘렀다.

깔끔한 선을 그리고 지나간 도(刀)의 끝이 다시 땅을 향하고.

떨어지는 목과 함께 꿀렁이는 피를 토해내며 시체들이 무너진다.

십수 명을 단 일수에 베어 버린 무력.

‘……괴물 놈.’

술사인지 무인인지 하나만 해라.

왜 둘 다 말도 안 되는 영역에 도달한 건데.

설천위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은 귀령단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런 것을 기대하고 자신이 부른 거긴 하지만, 역시 말이 안 된다.

“지하에 있다.”

“흐음……. 영 안 느껴지는데요?”

“안 느껴지기에 이쪽인 것이다.”

안 느껴지기에 이쪽이라고?

고개를 갸웃한 설천위는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적들을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하라고 했으니 지하로 향하는 문을 찾아야지.

설천위가 말없이 행동했지만,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붙은 귀령단주는 설명을 이었다.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는데, 혼자 영력이 희미한 공간이 있다면.”

“과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거침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간 창고에서 발을 내리찍었다.

강력한 힘을 품은 진각에 지하실 천장이 무너진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잔해로 덮은 설천위는 거침없이 그 위를 걸었다.

“가장 강한 봉인이 있는 곳이 이곳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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