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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17화 (417/624)

제417화

416화-미완의 재앙 (2)

소준극의 머리를 짓뭉개 버린 백유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극한까지 내공을 운용한 흔적.

과할 정도로 과열된 내공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기(氣)의 잔재가 입을 통해 흘러나온 것이다.

[크르르르르.]

흘러나오는 그 연기를 뚫고 어느새 형체를 이룬 패융이 울었다.

흑룡의 두 눈이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을 담는다.

그 눈에 담긴 자들은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지 않고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으니까.

서 있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들의 어깨를 아니,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무릎이 땅에 닿는 것을 넘어서서 머리가 땅에 닿을 것 같은데, 어찌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버틴다.

버텨 낸다.

그런 각오를 굳힌 이들이 똑바로 서서 백유와 마주했을 때.

“……정녕 괴물이로군.”

그들 속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상황을 지켜보던 철공은 한탄했다.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패도(覇道)란 이런 것인가…….”

비무장 위.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무인이 반도 채 되질 않았다.

자신들이 쓰러진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입에 거품을 문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머저리들이 곳곳에서 신음 소리를 흘렸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전원 일류 이상의 고수인데.

그중 반수 이상이 단순한 기세에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심지어 백유를 따르는 이들은 그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더욱 거칠게 이쪽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필패(必敗).

‘……어렵군.’

문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인 백유를 쓰러트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후퇴해야 하나?’

지금까지 준비해 온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소준극이 죽었고, 백유는 자신의 세를 이끌고 이곳을 장악했다.

이쪽의 기세에 넘어왔던 머저리들도 지금은 상황을 파악하고 검을 놓고 있는 상태다.

애초에 중립이던 이들조차 있었으니 상황은 더욱 최악.

차라리 자신과 쓸모 있는 부하들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철공이 후퇴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그 순간.

“하핫!”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백유의 두 눈과 마주쳤다.

광기 그리고 살의로 가득 찬 눈동자.

그 안에 담긴 집념을 읽어 낸 순간, 철공은 말없이 태도(太刀)를 움켜쥐었다.

이건.

‘……못 도망치겠군.’

도망치는 순간, 모든 것을 걸고 쫓아올 것이다.

이쪽을 확실하게 짓밟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달려들 거다.

저 광인(狂人)은 그러고도 남을 만큼 머릿속 어딘가가 망가져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광인을 막는 방법은 예로부터 하나밖에 없었다.

“오도록.”

그 목을 베는 것이다.

철공이 날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뛰어오른 백유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파고드는 주먹과 역수로 쥔 단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공격을 쏟아 내는 백유를 막아 내며, 철공은 거리를 벌렸다.

자신의 거리를 잡기 위해.

철공은 거리를 벌리고, 백유는 따라붙는다.

어쭙잖은 외부의 도움으로 화경에 오른 반푼이들이 아닌, 진짜 자신의 실력으로 벽을 넘은 고수들의 전투.

기와 기의 충돌은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강기와 강기의 충돌이 만들어 낸 충격은 사방을 마구 부쉈다.

“……이건 참.”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른 설천위는 술법을 위해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봤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흘러가는군.’

침묵하고 있는 칠가의 가주들과 단주들, 대주들이 꽤 있다.

뭐, 지금 이 자리에서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뒤로 딴짓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최소한 지금 백유를 방해할 만한 인물은 비무장에 난입한 이들이 전부였다.

이들을 전부 정리하면, 백유가 입지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터.

다만, 그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쓸어버려라!!”

저기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이들의 몫이지.

소준극과 전도울을 처리한 시점에서 더 이상 이쪽에 손을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을 깨달은 설천위는 몸을 돌렸다.

[위험. 위험.]

일렁이는 형체가 서서히 합쳐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빠르게 정리하고 다시 상대할 생각이었는데, 해야 할 일이 하나 줄었으니 이쪽에 집중하는 게 맞겠지.

‘현열혈귀(玄裂血鬼).’

사천맹에 강림하는 최악의 재해 중 하나.

완전히 강림하는 순간, 타임 어택이 시작된다.

‘더럽게 어렵지.’

완전히 혈사련 혹은 혈교의 손에 떨어진 사파의 적들을 제거하며, 중심부까지 도달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러고 나면 바로 만날 수 있나?

어림도 없다.

혈사련이 먹어 치웠든, 혈교가 먹어 치웠든 최소한 화경급 이상의 고수가 둘 이상 이곳에 있으니까.

화경급 고수가 무려 중간 보스인 거다.

그렇게 두 중간 보스를 처리하면?

이젠 대놓고 나오는 혈사련과 혈교의 잔당들을 치우며 죽어라 놈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생성되는 곳은 항상 다르다.

왜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녀석을 처리하면?

본체가 아니라고 나온다.

빌어먹게도, 분신을 한 번 이상 처리하지 못하면 분신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뒤에 본체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일정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해결하지 못하면?

연옥(煉獄)이 열린다.

지상과 지옥의 사이.

지옥의 옥졸들조차 잡아갈 수 없는 괴물들이 머무는 곳.

인세(人世)를 초월해 신(神)들조차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이르렀으나, 신(身)이 없어 세상에서 쫓겨난 자들.

그런 괴물들이 있는 곳이 열린다.

물론 완전히 열리는 건 아니다.

다만, 현열혈귀(玄裂血鬼)의 본체만은 확실하게 넘어온다.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사기(邪氣)에 오염된 인간들은 뭐, 말할 것도 없이 괴물로 변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멸(滅)에 이르는 괴물들이 하나둘 현세에 자리를 잡으면 연옥과 현세를 갈라놓던 벽이 그 부하를 견뎌 내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개판이 되지.’

육도(六道)가 후반으로 가면 말도 안 되는 지옥 게임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멸(滅)의 괴물을 한 셋 정도만 놓쳐도 연옥으로 뚫리는 길이 생긴다.

반대쪽에서도 이쪽으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이.

하나둘 넘어오다 보면 길은 점점 더 넓어지고.

‘마침내 그놈들까지 오지.’

음지에서 날뛰고 있는 조직들의 수장들.

연옥에 갇힌, 인세를 벗어난 괴물들.

그놈들이 강림한다.

그렇게 되면 끝이다.

클리어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개판을 치기 시작하고, 세상은 뭐…….

지옥이 따로 없는 곳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그렇게 되기 전에 막는 것이 핵심이다.

백유를 사천맹의 정상에 올리는 것도.

흑룡학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모두 이곳에 태어날 놈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파의 인물로 게임을 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사파에서 태어나는 멸(滅)을 막는 것이니까.

“후.”

가볍게 호흡을 고른다.

이쪽을 보며 붉은 기운을 일렁이는 현열혈귀(玄裂血鬼)를 바라본다.

‘설정집 제대로 읽어 둘걸.’

게임에서는 그저 때려잡기 바빠서 배경 스토리 같은 건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후회할 날이 올 줄이야.

다만, 약점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 약점을 활용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설가(雪家)면 뭐 하냐고.”

빙공을 쓸 줄 모르는데.

현열혈귀(玄裂血鬼)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얼려서 특유의 물리 방어를 무효화시킨 후 때려 부수는 거다.

분신을 잡을 때도, 본체를 잡을 때도 그게 가장 효과가 좋다.

문제는 그 방법이 글러 먹었다는 것 정도?

빙공의 고수가 짠하고 등장할 일도 없고.

할 수 없다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설천위는 재생을 거의 끝마친 현열혈귀(玄裂血鬼)를 노려봤다.

“일단 대화부터 시작할까?”

가슴 앞으로 모은 손을 비튼다.

[천구(天拘)]

흑관이 현열혈귀의 사방을 에워쌌다.

* * *

“재미있네.”

장난스럽게 웃으며 담배 연기를 뱉은 살존은 고개를 돌려 혈뇌를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 똑똑이는 어떻게 봤을까?”

“사천(邪天)을 입에 담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담담하게 대답하며, 혈뇌는 철공을 몰아붙이고 있는 백유를 본 후 그 주위를 둘러봤다.

단 한 명도 물러서는 이가 없었다.

백유가 그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명한 적도 없었고,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준 적도 없었는데.

모두 당연하다는 듯 적을 베고,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피로 만들어진 길을 걸었다.

“허나, 맹주님의 빈자리를 잠깐 맡는 정도의 역할이라면 충분히 해내겠군요.”

“후후, 그래? 우리 제자가 들으면 꽤나 화를 낼지도 모르겠어.”

너무 박한 평가네.

웃음을 흘린 살존은 곰방대를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인정도 받았겠다. 일을 해 볼까?”

“……직접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받은 게 많아서 말이야. 조금은 힘을 보태 줄 생각이야.”

웃으며 손을 저은 살존은 혈뇌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살생부가 너무 두껍진 않았으면 좋겠네.”

귀찮은 건 싫거든.

* * *

“후우.”

한계다.

가볍게 호흡을 고른 유예린은 찬찬히 주위를 살폈다.

빙산의 냉기를 성벽 삼아 버틴 지 일주일이 넘었다.

이쪽도 독하게 버티고 있지만, 적들의 독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역시 혈교라고 해야 하나.

저만한 인원이 이만큼 독기를 품고 움직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한숨을 내쉰 유예린은 찬찬히 주위를 둘러봤다.

점점 지쳐 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여미려도 안색이 창백한 상태로 싸운 지 며칠째였다.

그녀보다 실력이 부족한 무인이 수십이나 되는 지금, 이쪽은 한계에 봉착했다.

그나마 흑룡단 단원들은 평소에 미친 듯이 굴렸던 보람이 있는지 꽤나 선전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야말로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들에게 화경급 고수가 없다는 것이 그마나 유일한 위안이군요.’

만약, 그런 강자가 움직였다면 이쪽도 버티기 힘들…….

“부단주님!”

“……후, 말로 내뱉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 걸까요.”

날카롭게 벼려진 기세를 갈무리하고 있던 서하영의 부름에 자신도 모르게 깊게 한숨을 내쉰 유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부가 따끔거리는 기세.

확실했다.

“아무래도 혈교가 이쪽에 기대하고 있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모양이군요.”

나무들 너머, 냉기에 접근하고 있지 않던 적들 사이로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는 이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혈교의 고수인지, 아니면 다른 쪽의 고수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다음에 우리 천위를 만나면 양팔로 안아 주지 못할 수도 있겠네.

……한쪽 팔이 없으면 목욕이나 음식 시중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실없는 상상을 하며 유예린이 손에 검을 쥐는 바로 그 순간.

쿵!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조금 더 강한 충격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쿵!

나무에서 떨어진 서리가 눈처럼 흩날린다.

이쪽을 향해 걸어오던 이의 두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혈광을 통해 느껴졌다.

살벌할 정도로 번뜩이던 혈광이 미친 듯이 일렁인다.

결코 이럴 리 없다는 듯.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그리고.

쩌적!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쿠구구구구궁!

거대한 빙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산이 무너지는 충격에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던 유예린은 얼음 파편 하나 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사람에게 가능한 경지인가요?’

무너지는 빙산의 얼음 조각을 전부 제어해서 아군에게 튀지 않도록 하다니.

이게 무슨…….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얼음안개 속에서 빠져나온 설주철의 발밑에서부터 빙산에서 흘러나오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냉기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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