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15화 (415/624)

제415화

414화-맹주 선발 (8)

갑작스러운 연주택의 연설과 거기에 기다렸다는 듯 동조하는 인원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미처 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그때.

“꺄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비무대라고 부를 수 없는 난장판 위에서 소준극의 살점을 뜯어낸 백유가 폭소했다.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이.

“아아.”

천천히 웃음을 거두고, 어느새 자신을 포위한 무인들을 둘러보며 백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려내야 할 살점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봤다.

“많이 숨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당신 같은 인물이 숨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입꼬리를 올린 백유의 물음에 대주들 사이에 섞여 있던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단단한 육체.

등에 빗겨 멘 큼지막한 태도(太刀)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거벽대주라고 하오.”

“흐응? 그래?”

담담하게 포권과 함께 인사하는 거벽대주를 바라보던 백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구나, 철공이라는 녀석이.”

“……어찌?”

“다 아는 방법이 있지.”

천위가 가르쳐 준 거지만.

웃으며 설명을 삼킨 백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철공을 향해 단검을 겨눴다.

“당신이라면 꽤 즐길 수 있겠는데?”

입꼬리를 올린 백유가 땅을 박차는 것과 함께 철공은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도를 꺼냈다.

쾅!!

단검과 도가 부딪치면서 나는 폭음과 함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자신들이 끼어들 수 없는 싸움임을 직감했기에 본능적으로 물러선 것이다.

동시에.

“치료를.”

소준극에게 다가간 이들이 치료를 시작했다.

목의 살점을 뜯겼으니 이대로 놔두면 반드시 출혈로 사망한다.

재빨리 다가간 이들이 소준극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하고.

철공이라 불린 거벽대주가 백유와 치열하게 싸우는 사이, 상황을 인지한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치광이에게 맹주의 자리를 넘겨줄 수 없다!”

“움직여라!”

자리에서 일어선 몇몇 가주들의 호통과 함께 그들의 후원을 받는 대주들이 움직였다.

호통을 치면서도 살존의 눈치를 보던 가주들은 살존이 여전히 웃으며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 없다.’

‘확실해.’

백유를 내세우긴 했으나, 살존은 아직 백유를 온전히 지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혈뇌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했음에도 웃으며 넘긴 것일 터.

즉, 살존은 아직 백유를 온전히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백유를 죽이거나 최소 불구 정도로 만든다면……!

눈치껏 상황 파악을 끝낸 가주들은 망설임 없이 소준극의 편에 붙었다.

애초에 소준극의 편에 서 있던 이들은 물론이고, 전도울을 지지하던 자들까지 이쪽에 합류했다.

소준극이나 전도울 사이에서 편을 가른 건 후에 얻을 이익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유가 맹주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이익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그 꼴은 두고 볼 수 없기에 가주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욕망에 눈이 멀어 버린 탓에 더 이상 살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 것에 안심하고, 아예 관심 밖으로 밀어냈다.

그녀를 생각해 봤자 답이 없는 재앙이니까.

어떻게든 백유를 처리하고 이 자리를 모면한다.

그렇게만 되면 전도울이 죽은 지금, 소준극이 다음 맹주가 된다.

“흐응.”

눈이 멀어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휩쓸려 움직이는 자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비무장을 바라보며 살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턱도 없네.”

백유에 환호하던 이들 중 과감하게 움직여 백유를 돕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전도울과 소준극의 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백유를 위해 검을 드는 순간, 적에게 포위당할 텐데 누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백유를 돕겠는가?

일단 혈뇌가 말한 세 가지 요소 중 세력은 확실하게 백유에게 불리해 보였다.

“정신 나간 녀석을 따르는 건 정신 나간 녀석뿐이니까.”

그 외에는 그냥 무서워서 따라오는 놈들뿐이지.

그건 따르는 게 아니라 굴복한 것뿐이다.

그리고.

“실패한 방식이지.”

사존이 그 방법으로 사파를 다스렸고, 지금에 이르렀다.

아무리 고름을 짜내고 약을 뿌려도 환부는 썩고 곪아 간다.

사존이 자리를 비운 것만으로 제 살을 파먹기 위해 난리가 났다.

아귀들이 서로 얽혀서 미친 듯이 서로를 물어뜯는다.

단합 따윈 없다.

맹주를 진심으로 따르는 별종들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공포에 짓눌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 흑수단주조차 진심으로 맹주를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힘에 굴복했을 뿐이다.

망가진 조직이다.

망가진 세력이다.

“역시.”

그렇기에, 살존은 담담하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혈뇌를 바라봤다.

“아쉽군요.”

미친놈처럼 앞에 나가서 소리치고 있는 연주택 따윈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고개를 돌린 혈뇌는 살존을 올려다봤다.

“살존 어르신께서 자신하신 것을 생각하면 한참 못 미치는군요.”

담담하게 살존의 호언장담을 부정하며 혈뇌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까지입니다.”

“흐응, 뭐야? 갑자기 무슨 태도의 변화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움직일 뿐입니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혈뇌의 모습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살존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 가치가 없는 놈들밖에 없는 건 맞는데.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때?”

“무의미합니다.”

고개를 저은 혈뇌는 난장판이 된 비무장을 내려봤다.

맹주님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런 조잡한 선동에 이 모양 이 꼴이다.

역시 이 조직엔 아무런 미래도 가치도 없다.

“저는.”

“알아, 알아.”

혈뇌의 말을 끊고 손을 휘저은 살존은 맹주석에 등을 기대며 곰방대를 꺼냈다.

“구령학, 그 아저씨한테 많이 들었어.”

웃으며 연기를 뿜어낸 살존은 한쪽 다리를 올려 팔로 감싸고 곰방대로 혈뇌를 가리켰다.

“너, 꽤나 머리가 좋다며?”

“……과찬입니다.”

“머리가 좋은 녀석들은 이게 문제야. 금세 결론을 내리지.”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도, 정보를 취합하는 능력도 뛰어나기에 금세 결론을 짓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결론은 맞았다.

머리가 정말로 좋으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예상외라는 것이 있고, 읽어 낼 수 없는 것도 있지.”

혈뇌를 가리키던 곰방대는 어느새 비무장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자가 그 예상외의 요소라는 것인가요?”

아직까지도 벽에 기대서 가만히 서 있는 설천위를 발견한 혈뇌는 미간을 찡그렸다.

대충 정체는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말은 흑성이니 뭐니 하며 백유를 돕고 있지만, 결국 외부인이다.

맹주님은 그를 높게 평가하는 모양이고, 그녀도 그를 높게 평가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평가일 뿐이다.

외부인이 힘을 써 봤자 이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맹주님을 뛰어넘는 새로운 우두머리.

정파의 무인이 그런 우두머리 역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기대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혈뇌는 다시 살존을 바라봤다.

“외부인에게 기대는 우두머리는 아무런 가치도 없…….”

“영 모르네.”

쯧쯧, 장난스럽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은 살존은 웃으며 혈뇌를 끌어당겼다.

허공섭물.

저항해 봤자 의미가 없기에 순순히 끌려간 혈뇌는 담담한 눈으로 살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당돌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혈뇌를 보며 살존은 가벼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런 생각을 가진 녀석이 참모로 있으니까 구령학 아재가 실패한 거야.”

“……철회해 주십시오.”

“응? 뭘? 그런 생각을 가진 녀석? 아니면 구령학 아재가 실패했다는 것?”

“후자입니다.”

“흐흥, 제법 충성스러운 부하로구나?”

조금 날카로워진 혈뇌의 눈빛에 작게 웃은 살존은 어깨를 으쓱이며 손을 내렸다.

“철회하고 싶다면 증명해야지? 그 아재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저곳에 있으니까.”

살존의 말에 고개를 돌린 혈뇌는 거벽대주를 몰아붙이고 있는 백유를 바라봤다.

확실히 강하다.

아마 화경의 끝자락, 십 대 고수라 불리는 삼왕이괴에 필적할 정도로 강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강한 무인이니 쉽사리 결착이 나진 않을 거다.

그리고 그사이에 여론이 완전히 형성되면 백유는 결국 고립된다.

당연한 이치다.

사천맹에 들어와서 인신매매를 한다는 이유로 다른 대(隊)나 문파를 때려잡던 백유다.

불만을 품은 이들도 있고, 위선이라고 욕하는 자들도 있었다.

사파에는 사파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난 백유의 뒤를 대체 누가 따르겠는가.

사존은 하다못해 그 강함에 홀린 이들이 있었는데.

백유의 강함은 그보다 못하다.

이 사파의 하늘이 되겠다는 오만한 발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강함.

사방에 적을 만드는 생각 없는 행보.

정치의 기본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음의 극치.

위에 설 자의 자질 따위는 터럭만큼도 없는…….

“적랑대!!”

순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혈뇌의 고개가 돌아갔다.

비무장의 입구.

붉은 무복을 입은 이들이 검을 쥐고 서 있었다.

“우리가 누구인가!!”

쿵! 쿵!

고작 십수 명이 발을 구르는 것일 뿐인데, 비무장 안이 크게 울린다.

‘아니.’

십수 명이 아닌가.

고개를 돌린 혈뇌는 곳곳에서 올라오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나둘, 비무장의 담벼락 위로 올라서는 이들.

정문을 틀어막은 적랑대와는 다른 색의 무복을 입은 이들이다.

“우리는 흑룡의 송곳니!!”

적랑대의 거친 포효와 함께, 어느새 비무장을 감싼 이들이 자신의 검에 묶은 깃발을 들어 올렸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흑룡의 비늘!!”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혈뇌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유가 흑룡회를 이끄는 동안 그녀와 함께했던 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던 대(隊), 그리고 강서성의 문주들이 보인다.

거기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뱀! 흑룡을 따르는 이무기!!”

백유의 흑사대(黑蛇隊)였다.

망종들을 백유가 직접 두들겨 패고 이끌어 바꿔 낸 자들.

뱀이, 이무기가 흑룡이 될 수 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백유가 직접 길러낸 자들.

그들이 거칠게 포효하고.

“우리가 누구더냐!!”

담벼락 위에 나타난 한 사람의 등장에 비무장이 술렁거렸다.

“우리는 야귀(野鬼)! 들에서 태어나 들에서 죽는 망자들!!”

거칠게 포효하는 이들의 기세는 비무장을 감싼 이들 중에서도 유독 튀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그중에서 가장 강했기 때문이다.

야귀단(野鬼團).

무려 사천맹의 공인된 단(團).

그 강함은 당연히 일반적인 대(隊)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사내라면 자신이 덮을 이불 정도는 스스로 정해야 하는 법!!”

담벼락 위에서 소리치는 사내는 거칠게 도를 뽑아 들고 이죽거렸다.

“야인으로 태어나 죽어가니! 자신이 덮을 하늘 정도는 스스로 정할 것이다!!”

“으어어어어어어!!”

포효하는 외침.

사기(士氣)가 다르다.

비무장을 포위한 이들의 숫자는 분명 비무장에 있는 이들보다 많았다.

다만 그것은 비무장에 있는 이들이 부하를 전부 대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에 있는 부하들이 전부 합류하면 수적 열세는 확실하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역으로 자신들이 포위당해 죽을 터인데도 담벼락 위에 올라선 자들은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백유를 포위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달려간다.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주먹으로 상대의 코뼈를 으스러트린다.

순식간에 난전으로 흘러가는 전투에 혈뇌는 가만히 그들을 내려봤다.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나?”

살존의 물음에 가만히 아래를 내려보던 혈뇌는 고개를 돌려 살존을 바라봤다.

“조금은, 흥미가 생기는군요.”

고개를 끄덕인 혈뇌는 이번엔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백유를 따르는 이들의 등장과 함께 드디어 설천위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벽에서 떨어져 천천히 걷는 설천위의 곁으로 귀령단주가 합류한다.

예상치 못했던 이들의 합류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 혈뇌가 고개를 끄덕이고.

“확실하죠?”

“……거기가 가장 유력하다.”

귀령단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기회.]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얼굴을 구기곤 고개를 돌렸다.

“아씨, 늦었네.”

연주택의 목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솟구친 피가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소준극과 전도울의 파벌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목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