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10화 (410/624)

제410화

409화-맹주 선발 (3)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사람들이 가득 모인 비무장 주위는 웅성거리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모이며 자연스럽게 소음이 발생하는 상황.

저잣거리를 방불케 하는 소음이 비무장까지 떨리게 만드는 듯한 그때.

“흠.”

누군가가 비무대 위로 올라오자, 소음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무대 위에 선 이를 누군가가 발견하고 옆 사람에게 눈치를 주고, 그 모습을 눈치챈 누군가가 다시 옆 사람에게 눈치를 주고.

그런 식으로 빠르게 침묵이 퍼져 나간다.

이윽고, 보통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조차 자연스럽게 울려 퍼질 정도의 정적이 비무대 위에 찾아왔다.

“맹의 동지들을 뵙소이다.”

그제야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포권을 취한 사내가 인사했다.

“본인이 여러분들을 지금 이 자리에 모이게 한 맹주 대리 전도울이라고 하외다.”

작게 숙였던 허리가 펴지고.

똑바로 주위를 응시하는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당당하게 선 자세에서는 위풍당당한 기세가 느껴지고, 입가에 그려진 호선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호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정파의 간악한 위선자 놈들이 기어코 선을 넘고 있소이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내공으로 울려 퍼지게 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사람들의 귓가에 꽂히는 목소리는 그가 사람들 앞에 서서 연설하는 일에 재능이 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심지어 내 사매였던 사화(邪花)는 간악한 정파의 위선자와 손을 잡고, 맹의 기둥 중 하나를 쓰러트렸소이다.”

비통한 심정을 드러내듯, 슬픔을 머금은 그의 목소리와 눈빛은 군중의 심리를 자극했다.

자신에게 동조하라는 듯.

이 감정에 공감하라는 듯.

“우리의 동지인 수로채를 도우러 갔던 백절생사단주가 목숨을 잃었고! 배신자를 처단하러 떠났던 흑수단주도 명을 달리했소!!”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손해를 내세우며 강하게 호소한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전쟁의 전화 앞에 서 있고, 그 발은 단애(斷崖) 위에 걸쳐 있소이다!!”

두 팔을 벌리고 외치던 전도울은 자신이 비무대로 올라온 반대 방향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맞춰, 기다리고 있던 소준극이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나와 내 사제는 지금 이 비통한 상황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소이다. 해서, 지금 이 자리를 마련했소이다.”

힘 있는 목소리로.

주먹을 불끈 쥔다.

“나와 내 사제가 전장의 선두에 설 것이오. 지금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우리의 등을 먼저 동지들에게 보여 드리기 위함이오.”

당당한 기세로.

전도울은 소리쳤다.

“나와 사제의 등을 지켜보시오! 동지들이 믿는 등에 손을 드시오! 그 등이 그대들의 앞을 밝혀 줄 것이니!”

“우오오오오!”

“전도울! 전도울!”

“소준극! 소준극!”

전도울의 포효와 같은 연설이 끝나자, 거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감정의 폭발.

정파라는 너무나도 뻔한, 하지만 그렇기에 효과가 강력한 적에게 집중시켜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 뒤에 터트리는 것은 아주 작은 불씨로도 충분했다.

격렬하게 소리치고 있는 군중을 바라보며 작게 입꼬리를 올린 전도울은 몸을 돌려 소준극을 바라봤다.

“꽤나 순순히 받아들였더구나.”

“필요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한다고 했을 텐데.”

“후후, 그래. 그런 계약이었지.”

소준극의 싸늘한 목소리에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전도울은 비무대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전도울에게 맞춰 중앙으로 이동한 소준극이 자세를 갖추고.

심판 따위 필요 없다는 듯 두 사람은 자세를 잡았다.

각자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비무에 임하려는 그 순간.

“흐응~? 나는 마음에 안 드는데.”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땅을 박차려는 순간, 그것보다 더 차가운 예기가 자신의 목에 닿아 있음을 깨달은 전도울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건 소준극도 마찬가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의 목을 바라보던 소준극은 이내 그것이 실체가 아님을 깨달았다.

전도울보다 경지가 높기에, 반 호흡 더 먼저 깨달은 소준극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비무대의 중앙,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를 여인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의형살기(意形殺氣).”

자신의 목을 겨눴던 예기의 정체를 깨달은 소준극의 한마디에, 여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조금 낫구나.”

긍정과 함께 고개를 돌린 여인은 뒤늦게 자신의 목에 닿았던 날붙이가 그냥 살기였음을 깨달은 전도울을 바라봤다.

“너는 조잡하고.”

조잡하다.

그 치욕스러운 평가에 이를 악물면서도 전도울은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공에서 다소 밀렸다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살존 대인?”

“대인은 무슨! 그런 아저씨 같은 호칭은 싫은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휘저은 살존의 몸이 흩어진다.

이윽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혈뇌의 바로 옆, 비어 있는 맹주 자리에 나타난 살존은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혈뇌의 뺨을 쓰다듬었다.

“응? 우리 같은 여인네에게 살존이니 혈뇌니, 참 사파 녀석들은 별호 짓는 솜씨가 너무 조잡하지?”

백옥 같은 혈뇌의 피부를 부드럽게 쓸어내려 턱에 손끝을 올린 살존은 허리를 숙여 혈뇌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지? 우리 참모님도 그리 생각하지?”

장난스러운 물음.

그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든 혈뇌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취향에 따라 별로일 수 있을 것 같군요.”

“응응. 너라면 알아줄 줄 알았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놓은 살존은 맹주의 자리에 앉지 않고, 그대로 팔걸이에 앉은 채 몸을 돌렸다.

“그래서, 나는 초대도 하지 않고 이런 소꿉장난을 하는 이유를 들어 볼까?”

“사, 살존 대협! 초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급하게 입을 연 연주택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그 순간.

“쉿, 난 머저리랑은 얘기 안 해.”

가벼운 손짓만으로 연주택의 입을 다물게 한 살존은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입을 꾹 다물고 이쪽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을 보며 살존은 허리를 젖혀 맹주의 의자에 앉을 것처럼 기댄 채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앉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몰래 사람 목이나 따고 다니는 살수는 이런 자리에 낄 수 없다는 걸까?”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누구 하나 마른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괴, 괴물!’

‘이게 오존(五尊)……!’

목에 닿은 날카로운 예기를.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수십 명의 목에 의지로 만들어 낸 검을 들이밀다니.

그게 가능하다는 것도 경악스럽지만, 이 많은 인원을 적으로 돌릴 자신이 있다는 것이 더 경악스러웠다.

그리고 진짜 두려운 점은 그것이 전혀 오만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카로움.

전 맹주가 보여 주던 압박감은 없었다.

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그런 위압감 같은 건 없었다.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니 마치 동네 누나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커헉!”

“큭!”

목에 닿은 칼날은 생생하기 그지없었다.

기이할 정도로 비틀리고 날카로운 살기(殺氣)에 견디지 못한 이들이 신음과 함께 쓰러졌다.

가벼운 내상을 입은 모습.

“살기를 거두어 주시지요.”

그 속에서 혈뇌가 꺼낸 한마디는 모두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저런 살기를 뿜어내는 사람에게 살기를 거둬 달라고 말하다니.

그것도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바로 옆에서.

혈뇌의 과감한 행동에 모두가 혈뇌의 강심장을 응원하는 그 순간.

“이 후배가 사죄드리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지요.”

비무대 위에서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전도울의 모습에 또다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무공에서 압도적인 격차가 있음에도 저리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도울을 지지하는 이들은 물론, 지지하지 않던 이들조차 새삼 다시 쳐다볼 정도로 강단 있는 모습에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지려는 순간.

“말했을 텐데, 나는 머저리랑 이야기 안 한다고.”

“큭!”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함께 전도울의 몸이 비틀거렸다.

일순 집중된 살기에 힘이 풀린 다리를 겨우 내공으로 다잡았다.

‘이 정신 나간 년이……!’

갑자기 나타나 강짜를 부리는 살존의 모습에 이를 악문 전도울은 최대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 노여워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사파의 두 기둥 중 하나인 살존 어른의…….”

“정말 학습 능력이 없는 녀석이구나.”

순간, 어느새 전도울의 앞에 나타난 살존의 손이 전도울의 이마를 콕 짚었다.

“말했지? 아저씨 같은 호칭은 싫다고.”

어른은 뭐, 맞는 말이긴 하지만.

히죽 웃으며 그대로 전도울을 넘어트린 살존은 주저앉은 전도울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꺄하하! 뭐! 이 정도로 봐줄까?”

“……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비웃는 살존의 행동에 얼굴이 붉게 물든 전도울이 기어코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살존 선배님.”

“응. 무슨 일이야?”

“좀 전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싶습니다.”

“아, 그거? 그래, 한번 들어 볼까?”

전도울의 말을 끊은 혈뇌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전도울에게 살짝 눈짓하고 다시 살존을 바라봤다.

“소꿉장난이라 하셨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정파는 명백하게 선을 넘고 있습니다.”

“응응. 그래서?”

“전쟁을 준비하고 사천맹의 힘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맹주 자리를 기약 없이 마냥 비워 둘 순 없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우두머리가 없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설령 조금 불화가 생기더라도 명령권자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게 맞다.

혈뇌의 답에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도 있었고 찬성하는 이도 있었지만,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그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머저리는 없으니까.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파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느냐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반응에 어느새 다시 맹주의 자리에 나타나 팔걸이에 걸터앉은 살존은 웃으며 혈뇌를 바라봤다.

“과연, 그래서 혈충(血蟲) 놈들을 끌어들인 거니?”

혈충(血蟲).

혈교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그 단어를 꺼내는 순간, 묘하게 소란이 일어나는 무리를 보며 살존은 히죽 웃었다.

“이런, 집안 곳곳에 이미 벌레가 꽤 퍼졌구나.”

참으로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은 살존은 주위를 둘러보며 모두를 시야에 담았다.

“뭐, 좋아.”

방긋 웃으며 살존은 일어나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전도울을 가리켰다.

“혈교를 등에 업고 있고.”

그다음으로 소준극을 가리킨다.

“혈사련을 등에 업고 있지.”

순간 소준극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같이 보였지만, 살존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그럼 우리 살궁도 후보를 하나 내세워 볼까?”

빙긋 웃은 살존은 단주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혼란에 빠진 단주들 사이에서 똑바로 이쪽을 바라보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하게 부적을 꺼낸 귀령단주가 부적을 던지고 손을 펼치는 순간.

“하핫! 이게 진짜 되네!”

왠지 살존을 보는 것 같은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비무장에 울려 퍼졌다.

비무대 아래, 귀령단주의 부적 위에서 나타난 남녀 중 여자가 히히 웃으며 비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너……!”

“어떻게?”

그녀의 등장에 놀란 전도울과 소준극이 경악했으나, 비무대 위에 올라선 백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단검을 꺼내 돌렸다.

“어떻게 하긴, 잘 왔지. 오랜만이네, 사형들.”

살의 한 점 없는 밝은 미소로.

“그럼 잘 가.”

전도울의 목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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