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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09화 (409/624)

제409화

408화-맹주 선발 (2)

행사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맹 전체에 소식을 알리고, 영향력 있는 무인들이 모였다.

구마가의 멸문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칠가(七家) 아니, 이젠 육가(六家)가 되어 버린 가문들도 모였고.

단주들이 전원 참석하고, 유력 대(隊)의 대주들이 대부분 맹으로 귀환했다.

맹주 선발전.

단주 회의로 새로운 맹주를 뽑기로 결정한 뒤, 후보는 두 사람으로 압축되었다.

전도울과 소준극.

맹주 대리를 맡고 있던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맹주 후보가 된 것이다.

둘 중 누가 맹주의 자리를 맡을 것이냐.

처음 회의에선 대주들까지 모아 과반수의 거수를 받은 이가 맹주가 되기로 정했었다.

하지만 혈뇌와 전도울의 제안을 소준극과 2참모가 받아들인 결과, 선발을 위한 친선전을 개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승리한다면 전도울 측은 보다 압도적인 지지를, 소준극은 부족한 지지층을 더욱 확보해 역전을 노릴 수 있었다.

서로에게 기회가 되기에 성립할 수 있었던 친선전…… 이어야 하지만.

“계획과 다르잖아……!”

억눌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소준극의 모습에 그의 앞에 선 연주택은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살짝 등이 굽은 듯 보이는 음침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모습.

자신감이라곤 없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가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니 연주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소준극은 자신감 없어 보이는 음침한 인상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경쟁이 심한 사파에서 여러모로 지지를 받아 맹주의 제자까지 된 인물이다.

재능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었다.

“나는 음지에서 움직인다고 말했을 텐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살기가 넘실거린다.

살기가 일렁이는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연주택은 마른침을 삼킬 뻔한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지금 겁먹은 모습을 보이면 점점 더 휘둘리기만 할 뿐이니까.

이쪽이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알려 줘야 했다.

동시에 이쪽이 필요한 이유도.

“전도울 쪽에서 제안해 온 내용입니다. 그냥 거절하면 이쪽이 피했다는 소문이 퍼질 겁니다.”

“빌어먹을, 고작 소문 때문에 나를 전면에 나서게 만들어?”

맹주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전도울과 소준극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소준극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나서기를 꺼리기만 하는 인물이었다면 조용히 살다가 갔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소준극에게는 권력이 필요했다.

그의 괴악한 취미 생활을 위해선 막강한 권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걸 가장 잘 이뤄 줄 수 있을 것 같은 전도울과 손을 잡았고, 그가 맹주가 되는 것을 밀어주는 대신 음지에서 그와 비슷한 권력을 손에 쥐기로 했다.

2인자로 남겠지만, 충분한 권력을 쥐고 자신의 취미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한데.

“그놈한테 일부러 지라고?”

남들 앞에서 대놓고 지는 굴욕까지 감내해야 한다니.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남들 앞에 서는 것도 싫은데, 자신보다 약한 놈한테 처맞고 지는 꼴을 보이라니?

아무리 친선전이라고는 하지만, 맹주 선발을 위한 비무다.

어설픈 연기는 의아함만을 심어 줄 뿐.

질 거면 확실하게 져야 했다.

져야 한다는 생각에 소준극은 짜증으로 얼굴을 구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짜증 정도로는 안 끝날 것 같은데……!

“최소 열은 받아야 수지타산이…….”

“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도울 측에게 제안할 거래 내용을 생각하던 소준극은 연주택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 눈동자 안에 담긴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분노.

“그럼 이기라고? 이기면 내게 무슨 득이 있지?”

중립에 있던 놈들의 지지?

전도울의 명성을 깎는 견제?

그딴 게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소준극의 모습에 연주택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이기시는 것만으로 주도권이 저희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주도권을 잡아서 어쩌겠다고? 맹주 자리 같은 귀찮은 허울은 질색이라고 이미 말했을 텐데?”

얻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이 더럽게 많은 그딴 자리는 줘도 싫다.

권력욕 따윈 전혀 없다.

애초에 원하는 것은 느긋하게 취미 생활이나 즐기는 거니까.

전도울은 그것을 약속했고, 연주택은 그것을 도와주니 함께하는 것뿐이다.

노골적인 소준극의 표정에 그 감정을 읽어 낸 연주택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장난감의 수급이 원활해집니다.”

“……계속해 봐.”

“품질도 좋아지겠지요. 무엇보다 일이 다 끝난 후 전도울이 이쪽을 토사구팽 할 수 없게 됩니다.”

토사구팽.

그 말에 소준극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사실 우려하고 있던 부분이긴 하다.

자신의 존재는 전도울에게 상당히 거슬릴 테니까.

그래서 그건 일이 끝나면 완전히 전도울의 밑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건 어쩔 수 없어서 그건 그것대로 꺼림칙한 감이 있었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

“그래서?”

“어차피 전도울의 지지층은 두텁습니다. 비무에서 이기시더라도 맹주의 자리는 분명 전도울에게 갈 겁니다.”

비무.

이게 중요하다.

만약 무력으로 맹주를 정할 생각이었다면, 비무가 아니라 생사결로 정했을 것이다.

그래야 뒤끝도 없고 깔끔할 테니까.

하지만 굳이 비무로 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결국 여론을 기반으로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애초에 단순 무력으로 맹주를 정할 것이었다면 맹주의 부재가 길어지는 순간, 흑수단주를 맹주로 추대했겠지.

물론, 맹주 선발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흑수단주가 없어서 무력으로 강짜를 부릴 만한 인물이 없어서라는 점도 있지만.

여하튼.

“이쪽의 무력을 증명하면 전도울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이쪽의 지지 기반이 굳건해지면 굳건해질수록.”

“내가 흔들릴 일도 없다, 이건가?”

“예.”

연주택의 긍정에 소준극은 가만히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겼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계산이군.”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오히려 꽤 좋은 기회인 것 같기도 하다.

전도울이 맹주가 되기 전에 한 번 그의 기를 꺾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잠시 고민하던 소준극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자세를 고쳤다.

“……좋아. 진행해.”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 * *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시군요.”

맹주 선발전.

비어 있는 맹주 자리의 뒤쪽에 있는 참모들의 자리.

혈뇌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3참모 도백을 바라봤다.

불만이 가득한 눈동자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

평소의 그를 생각한다면 썩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조금 허술해 보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니까.

일부러 유도한 것인지, 본래의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는 발전의 시작입니다.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털어놓으시는 게 참모로서의 소임입니다. 도 참모.”

“……맹주님의 죽음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허나, 실종 상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요.”

단호하면서도 담백한 혈뇌의 대답에 도백은 더욱 입을 굳게 다물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에.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도백의 모습에 혈뇌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사천맹의 미래를 위해 함께 머리를 모아야 할 참모진의 사이가 이리 좋지 않아서야…….”

안타깝다는 듯 탄식한 혈뇌는 이번에는 느끼하게 웃고 있는 연주택을 바라봤다.

“연 참모께서는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하하! 물론입니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 맹을 이끌어 주실 분들의 실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인데요.”

호탕하게 웃은 연주택은 가볍게 팔걸이를 두들기며 혈뇌를 바라봤다.

“혈뇌께서 이번 친선전을 제안하셨다고 들었는데, 역시 1참모이십니다.”

“별일 아닙니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사기 진작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요.”

“사기진작 말입니까.”

히죽 입꼬리를 올린 연주택은 끈적한 눈으로 혈뇌를 훑으며 말을 이었다.

“혈뇌께선 전 공자가 이길 거라고 예상하시는 것 같군요.”

“전 공자가 아니라 맹주 대리입니다.”

연주택의 끈적한 시선에도 담담하게 그를 응시한 혈뇌는 이내 고개를 돌려 비무장 쪽을 바라봤다.

“승리를 확신하진 않았습니다. 확신했다면 친선전 같은 방식은 취하지 않았겠지요.”

섬뜩한 소리를 태연히 하며, 혈뇌는 관중으로 가득 찬 비무대 위로 올라오는 전도울을 응시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 이상은 확실하게 보여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비무대 위를 바라보던 혈뇌의 시선은 천천히 움직여, 단주들과 대주들이 모여 있는 단상으로 향했다.

참모들이 있는 곳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한 단상.

그것에 불만을 품은 듯 보이는 단주들도 있었지만…….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녀의 눈동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귀령단주를 향하고 있었다.

* * *

“……후우, 여기서 일단 멈추죠.”

빙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위치까지 도착한 유예린은 몸을 으슬으슬 떨게 만드는 한기에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부터는 저와 서 대주만 움직이겠습니다.”

“네.”

유예린의 결정에 서하영은 즉시 창을 들고 그녀의 옆에 섰다.

그 모습에 철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잡았다.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불이라도 피울 생각이다.

벌벌 떨고 있는 대원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니까.

그렇게 철백이 대원들을 시켜 땔감을 모으는 사이, 유예린은 서하영과 함께 빙산을 향해 걸어갔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근육이 추위에 굳는 게 느껴질 정도의 무시무시한 한기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유예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단순히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혈교가 해 온 수많은 악행들이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니까.

“……도착했군요.”

빙산이 보이다 못해 몇 걸음 정도면 만질 수 있는 거리까지 도착한 유예린은 마치 은하수처럼 흩어지는 하얀 입김과 함께 주위를 둘러봤다.

“스스로 술법을 펼치고 자멸한 건가요?”

조금 떨어진 곳에 새하얗게 얼어 있는 시체가 보였다.

겁에 질린 것처럼 빙산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여인의 시체.

무공에 당한 흔적은 없으니 이 냉기에 휘말려 죽은 것일 터.

“하영아, 상태는 어때?”

“버틸 만해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억누르며, 창을 들어 올리는 서하영의 모습에 유예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있으면 안 되겠어.’

창술이 뛰어나 실력 이상의 결과를 자주 보여 줄 뿐, 서하영은 아직까지 초절정에 머물러 있는 무인이다.

내공으로 한기를 몰아내는 것에 한계가 있을 터.

무엇보다 유예린 자신도 서하영보다 내공적인 측면에서 그리 크게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태다.

여기서는 최대한 빨리 물러서는 것이 맞다.

알아볼 수 있는 것들만 최대한 알아본 뒤에 물러나자.

그렇게 결정한 유예린은 조심스럽게 빙산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내공을 두른 손으로 천천히 빙산을 어루만지는 그 순간.

[멀리 떨어지거라.]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 유예린은 새하얗게 변한 빙산의 표면을 손으로 쓸어냈다.

그러자 보이는 광경.

“……이게 무슨?”

빙산 속에 갇힌 사람이 거인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사람이 지나온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이 빙산 속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다.

“아버님!”

그리고 그 인물이 누구인지 깨달은 유예린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 순간.

“언니!”

서하영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유예린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금속성에 입술을 깨물었다.

전투.

철백과 단원들이 있는 곳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지금 저 빙산 안의 상황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건…….

적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예린이 입술을 깨무는 순간.

[가거라.]

그녀의 머릿속에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안에서 보내는 전음.

고개를 돌린 유예린은 이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설주철과 눈이 마주쳤다.

[이쪽은 조금 오래 걸릴 것 같구나.]

거인의 목을 움켜쥔 설주철의 팔을 거인의 손이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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