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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05화 (405/624)

제405화

404화-빙산 (3)

갑자기 나타난 기이한 존재에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유예린의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는 강자.

하지만, 그보다 더 기이한 것은 거한의 크기였다.

성인 남성 두 명을 그대로 이어 놓은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신장.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신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란 소리는…….

“전원! 전투 대형!”

대화의 여지를 두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소리였다.

유예린의 뒤를 따르며 경계하던 철백의 거친 포효에 어수선하던 공기가 일제히 정돈됐다.

순식간에 전투 태세에 돌입한 이들이 진형을 갖추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는 사이.

[제물치고는 상태가 너무 좋은 것들도 있군.]

거인은 턱을 쓸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제물로 쓰기엔 상태가 과하게 좋은 것들이 몇몇 껴 있다.

뭐, 제물의 질이야 좋으면 좋을수록 좋지만.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법.

[몇은 사로잡기로 할까.]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 거인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쾅!!

강렬한 폭음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어느새 가장 선두에 선 철백의 두 정강이가 반쯤 묻히는 깊이까지 땅에 처박혔다.

[호오?]

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철백을 거인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더니 손을 들었다.

쾅!!

그리고 또다시 일격.

이번엔 조금 더 파고든 다리와 함께 두 손을 교차해 머리를 지키고 있던 철백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흡!”

부릅뜬 두 눈으로 근육을 폭발시킨다.

땅에 처박혀 있는 오른발을 차올린다.

흙을 뚫고 나온 발이 거인을 향해 솟구친다.

허나, 신장의 차이는 압도적.

인간 중에서는 거한인 철백이지만, 그가 차올린 발은 거인의 사타구니에 겨우 닿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기(氣)를 다루지 못하는 철백에게 이 정도의 거리 차이는 무능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벽이었지만…….

“흐으읍!”

그것조차 극복해 내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무(武)다.

철백의 다리에서 솟구친 은색의 연기가 그대로 거인의 복부로 파고든다.

[금강호령(金剛皓靈)]

은색을 두른 철백이 만들어 낸 일격은 정확하게 거인의 복부에 틀어박혔고.

[……놈!]

겨우 신음을 삼킨 거인이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다리를 휘둘렀다.

한 다리로는 거인이 때린 힘의 충격을 견뎌 내지 못한 철백의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간다.

곧 다리를 땅에 박고 멈췄으나, 족히 수십 걸음은 물러난 철백은 얼얼함이 올라오는 팔의 감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위가 마(魔)라고 부른 존재 중에서도 상급인가.”

무(武)의 흔적이 있다.

내려치는 일격, 휘두르는 다리까지.

인간의 육체로 펼치는 무(武)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만약 상대가 원래부터 거인이었다면, 그런 무(武)의 흔적 따윈 없었겠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힘과 크기로 찍어 누르는 형태의 강함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었을 테니까.

주먹과 발차기에서 느껴지는 정확한 힘의 배분은 명백하게 무공을 익힌 자의 것이었다.

땅에 박힌 발을 빼내며, 철백은 목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부단주, 내가 상대해도 되겠소?”

“부탁드리죠.”

똑바로 적을 바라보고 있는 철백에게 고개를 끄덕인 유예린은 전투태세를 갖춘 부하들을 둘러보며 가볍게 팔을 휘저었다.

소매에서 빠져나온 검이 그녀의 손에 잡힌다.

“저희는 다른 분들의 대접을 맡죠.”

붉은 옷으로 몸을 감싼 적들의 등장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감정이라곤 없는 메마른 눈동자.

그 안에는 개인의 의지라고는 터럭만큼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의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목적의식뿐.

전신에서 피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유예린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에서 뻗어나간 검기가 가장 가까운 적들을 베어 넘긴다.

“대형을 흩트리지 않는 선에서 전원…….”

적들이 땅을 박찬다.

좀 전의 한 수를 보고도 두려움이 전혀 담기지 않는 눈동자로 달려드는 적의 목을 베며, 유예린은 담담히 선언했다.

“적을 섬멸하세요.”

적들을 베어 넘기는 유예린의 눈동자에도 기이한 살의가 일렁였다.

* * *

전투는 순식간에 난전으로 흘러갔다.

아무리 강자들이 섞여 있다곤 해도, 이런 대규모의 전투는 흐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고수는 수십 보 내의 기척을 읽을 수 있다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수십, 수백의 인원이 자신의 감각권 안에서 전투를 벌이면 모든 것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게 된다.

눈먼 공격에 언제 당할지 모른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일도 줄어든다.

“상당히 거세네요!”

그렇기에 선두에서 적을 막아 내던 서하영도 굳이 적들 사이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다.

유예린이 일부러 적들을 도발하기 위해 섬멸이라는 말을 쓰긴 했으나, 그것이 무리해서 적들을 죽이라는 뜻은 아니었기에.

최우선시해야 할 것은 이쪽의 안전.

전투에서 피해를 아예 당하지 않을 순 없지만,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게 좋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 이런 원정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서하영은 아군을 지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적들도 그걸 아는지 이쪽을 피해 다른 곳을 노리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그녀가 발품을 파는 것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철 가가…….’

저쪽에서 그야말로 땅을 온통 뒤집어 가며 싸우고 있는 이들의 결과다.

아직 결과가 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둘 다 무지막지한 강골(强骨)이라는 거다.

쾅!!

쾅!!

서로 주먹을 뻗고,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폭약이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진다.

모든 공격마다 폭음이 터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양쪽 다 상대의 공격을 아예 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했더라면 허공만 가르고 끝났을 공격을 전부 몸으로 받아 내고 있으니 굉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거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싸움 방식.

그리고 명백하게 인간에게는 불리한 싸움 방식이다.

인간의 몸은 연약하다.

내구성에 한계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재생력에도 한계가 있다.

반면, 괴이의 육체는 대부분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재생력도 특출 난 경우가 많다.

설령 내구성이 그리 뛰어나지 않더라도 재생력은 인간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철백이 싸우고 있는 상대는 딱 봐도 무지막지한 내구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거인이다.

거기다 휘두르는 주먹의 위력을 보면 체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무인을 기반으로 탄생한 괴이일 터.

그런 존재와 몸을 갉아 먹는 형태의 방식으로 싸운다?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바보짓이었지만…….

[흐하하하하!]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철백과 싸우고 있는 거인조차도.

[처음이다! 인간이 나와 이렇게까지 대등하게 공격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정녕 기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거한은 손을 멈췄다.

[그렇기에 아쉽군.]

갑자기 공격을 멈춘 거인의 행동에 의아해하면서도 철백은 확실하게 몸을 움직였다.

적이 공격을 멈췄다고 해서 자신이 공격을 멈출 이유는 없었다.

보통이라면 경계하며 멈추는 것이 맞지만,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도록 단련해 온 무인이 아닌가.

거침없이 거인을 향해 파고든 철백이 주먹으로 거인의 무릎을 박살 내려는 그 순간.

강렬한 본능이 그를 자극했다.

물러나야 한다.

순간, 자신의 돌진력에 억지로 제동을 건 철백은 삐걱거리는 무릎관절을 억지로 비틀어 자세를 바꿨다.

몸을 비틀며 허리를 트는 순간.

“호오.”

한 줄기 섬광이 철백의 목이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이 정도 거리에서 베는 건 힘든가.”

소매가 넓은, 중의 옷처럼 생긴 것을 입은 사내가 옷 안쪽으로 빼낸 손으로 턱을 쓸었다.

“요즘 어린 것들은 너무 살벌하단 말이야.”

아쉽다는 듯 혀를 찬 사내는 넓은 소매로 허리춤에 찬 칼을 가렸다.

그리고.

“흡!”

또다시 느껴진 오싹한 감각에 뒤로 도약한 철백은 자신이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간 예기를 느꼈다.

“호오, 이 정도 거리에서도 피해? 이건 정말 의외인데.”

그 모습에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사내는 이내 시선을 돌려 거인을 바라봤다.

“덩치, 네 녀석을 북존 쪽으로 보내라는 지령이다.”

[그럴 줄 알았다. 제물을 찾다 보니 너무 엉뚱한 곳까지 온 모양이군.]

“생긴 것처럼 멍청한 거냐.”

거인을 향해 혀를 찬 사내는 물러나려는 거인을 붙잡기 위해 움직이려는 철백을 보며 웃었다.

“애송이, 저놈의 주먹은 널 부술 수 없지만.”

다시금 느껴지는 오싹한 감각에 철백은 즉시 몸을 빼냈다.

섬뜩한 예기가 그가 있던 곳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사이에 거인은 단숨에 땅을 박차고 점으로 변해 갔다.

그런 거인의 모습을 눈으로 좇는 것도 잠시, 철백은 빠르게 상황을 인정하고 고개를 돌렸다.

“내 도는 너를 벨 수 있음이야.”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어깨에 걸친 도를 까딱이는 사내의 모습에 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인가?”

“참송단(斬松團)의 단주, 모곡이라고 하네. 애송이.”

장난스럽게 포권을 하며 웃는 모곡을 보며 자세를 고친 철백은 가볍게 이죽거렸다.

“참송(斬松:소나무를 베다.)이라, 꽤나 겸손한 이름이군.”

“하하! 우리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주제를 알아서 말이야. 벨 수 있는 것만 베는 편이지.”

호쾌하게 웃은 모곡은 어느새 빈손을 흔들었다.

납도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철백은 지금 눈앞이 사내가 어엿한 무인임을 깨달았다.

그것도 광인(狂人)에 해당하는 무인임을.

솟구치는 예기를 피해 몸을 트는 순간, 그곳에 당도한 예기가 철백의 어깨를 베고 지나간다.

질기디질긴 철백의 가죽을 베어 낸 예기 탓에 피가 배어 나온다.

“호오? 질기긴 정말 더럽게 질기군. 어깨를 잘라 낼 생각이었는데.”

근육은 거의 베질 못했잖아.

혀를 내두른 모곡은 어느새 다시 납도한 상태로 웃었다.

납도와 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무공.

납도와 발도라는, 전투와 하등 상관이 없는 동작을 전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쳤군.”

저 사내는 저 두 동작을 체득했다.

화경에 거의 근접한 유예린과의 대련도 이젠 꽤나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자신조차 눈에 포착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그저 납도하고, 발도한다.

압도적인 예기를 품은 일격은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다.

광기(狂氣).

그야말로 미친 자를 위한 무공.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저 행동에 쏟아부었을까.

아득하게 느껴지는 상대의 수련량을 떠올리며 철백은 근육에 더욱 힘을 줬다.

상처에서 배어 나오던 피가 멎고, 들어 올린 팔은 위협적으로 은색의 안개를 휘감는다.

“베이기 전에 먼저 부숴 주지.”

* * *

피 냄새가 짙어진 숲.

그곳에 선 사내, 설주철은 싸늘한 얼굴로 자신의 앞을 바라봤다.

“어리석군.”

담담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그 목소리에 절로 오금이 저릴 정도였으나, 그 앞에 선 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리석을 수밖에 없지요. 무려 북존을 상대하는 일 아닙니까?”

짤랑.

방울을 흔들며, 여인은 손을 뻗었다.

은은한 냉기가 설주철의 주위를 감싼다.

“나를 상대로 빙공을 쓰겠다는 건가?”

그 가소롭기 그지없는 행동에 설주철은 코웃음조차 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쩌저저적!

압도적인 냉기가 순식간에 주위를 동토(凍土)로 바꾼다.

순식간에 방울조차 얼려서 소리마저 없애 버린 설주철의 두 눈에 지독한 냉기가 깃드는 순간.

“빙공이 아닙니다.”

얼어붙은 손을 움직이며 여인은 웃었다.

“술법이지요.”

우우웅!

시리도록 푸른 섬광이 숲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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