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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03화 (403/624)

제403화

402화-빙산 (1)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손휘가 재가 되어 흩어져 버리고, 본래의 동굴 입구로 돌아온 주변을 살피며 살존은 조심스럽게 설천위에게 다가갔다.

지금 당장에라도 쓰러져 있는 딸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수아는…….”

“일단은 괜찮아요.”

주변에 흩뿌려져 있던 [소령연화(燒靈燃枠)]의 불꽃을 거두며, 설천위는 웃었다.

“손휘가 떨어져 나가면서 생긴 틈은 일단 제 영력으로 메웠어요.”

“영력으로?”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영혼이 무슨 진흙으로 만든 인형도 아니고, 떨어져 나갔다고 다른 영력으로 메우는 게 그리 쉽게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살존이 의아함을 풀지 못해 고개를 갸웃하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방법이 없으니 어떡하든 해야죠.”

“……그것도 그렇구나.”

방법이 없다.

그 말에 더 이상의 의문은 무의미하단 것을 깨달은 살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정이 어찌 됐든 지금은 결과가 중요하다.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설천위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에겐 설천위를 원망할 자격이 없었다.

하물며, 결과마저 좋은데 과정의 위험성을 문제로 설천위를 책망할 순 없었다.

“몸은…… 지금 제조하고 있는 약들을 먹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다만, 재료는 좀 남을 거다.

애초에 영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재료들도 많았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그냥 해결되어 버렸으니까.

약을 잘 이용했으면 이런 방식을 취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르는데.

아쉽게 됐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설천위는 신의를 바라봤다.

꽤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실체화.

백수아에게서 손을 뗀 신의는 설천위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조치는 끝났다. 이젠 조심스럽게 옮겨서 치료를 시작하면 된다.”

“그거 다행이네요.”

신의의 허락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웃으며 살존을 바라봤다.

“한 손으로 충분하죠?”

“물론.”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살존은 한 손으로 백수아의 등을 어루만진 후 들어 올렸다.

무려 허공섭물을 사용해 백수아의 전신을 부드럽게 들어 올린 살존은 설천위에게 작게 고개를 숙인 뒤 곧바로 움직였다.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살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고 몸을 돌렸다.

“끝난 거야?”

“대충은. 조금 시간을 두고 치료를 진행하면 앞으로 별문제는 없을 거야.”

“그건 다행이네.”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쓱 다가와 설천위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청혼은 아닌 거지?”

“……너도 헛소리할래?”

백수아도 그렇고, 왜 이런 헛소리를 하는…….

“주인님, 다 이를 거예요.”

짜게 식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청아와 눈을 마주친 설천위는 쓱 고개를 돌렸다.

“……불가항력이었어.”

“흥.”

아니, 쟤는 자기 주인이 유 매인 줄 아나.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는 청아의 모습에 한숨을 길게 내쉰 설천위는 달라붙은 백유를 떼어 냈다.

“움직일 수 있으면 움직여.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니까.”

가장 큰 놈들은 이쪽이 처리하긴 했지만, 아직 자잘한 침입자들이 남아 있다.

그쪽도 정리해야 이 상황이 끝났다고 할 수 있으리라.

설천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팔짱을 풀고 단검을 꺼냈다.

“후딱 정리하고 오자.”

살궁에 쳐들어온 적들이 전원 침묵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그래서, 경지에 올랐다?”

살궁을 습격한 적들을 전부 정리한 밤.

살존의 방에서 백유는 탱글탱글한 설천위의 피부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때 벗고 있는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벗겨 볼 걸…….”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

백유와 살존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환골탈태를 하며 옷이 전부 삭았던 설천위는 손휘와 싸울 땐 알몸이었다.

흑관으로 만든 갑주로 그걸 가리고 있었을 뿐.

“그게 구해 준 사람한테 할 소리냐?”

헛소리를 하는 백유의 이마를 가볍게 검지로 밀어낸 설천위는 백수아의 곁에서 그녀의 뺨을 만지고 있는 살존을 바라봤다.

“몸 상태는 멀쩡한가요?”

“……호흡이 조금 약하긴 하지만, 문제는 없어.”

조금 늦게 대답한 살존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고마워. 결국 약속을 지켜 줬구나.”

“약속은 잘 지키는 남자라서요.”

살존의 감사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조금 가라앉은 눈으로 살존을 바라봤다.

“다만, 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조치가 있었어요.”

“조치?”

“네,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고 제 영력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으음.”

설천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살존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어머니?”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일어나는 백수아.

그녀의 목소리에 살존은 일렁이는 눈가를 억누르며 작게 웃었다.

“그래, 어미다.”

부드럽게 백수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살존.

그녀는 이내 팔을 뻗어 자신의 딸을 꽉 끌어안았다.

딸을 끌어안은 살존이 그 온기에 감격하는 그 순간.

“아! 주인님!”

살존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민 백수아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뭐?”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니! 주인님도 보고 계시니, 일단…….”

환하게 웃는 백수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어억?!”

순식간에 기둥에 꽂힌 설천위가 식은땀과 함께 어색하게 웃었다.

옷을 꿰뚫은 단검들이 피부와 아주 근접해 그 예기가 생생하게 느껴져서 오싹함이 장난 아니었다.

“흠흠, 저, 전부 설명할 테니 일단 진정을…….”

“딸을 구하라고 했더니, 세뇌를 시킨 것이냐?”

어느새, 설천위의 앞에 다가온 살존은 그야말로 싸늘함으로 가득했다.

눈빛도, 손에 쥔 단검도, 풍겨 오는 기세도.

“아, 그래서 네가 이른다고 한 거구나?”

[뭐, 그렇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유는 탁자 위에서 조그마한 모습으로 과일을 먹고 있는 청아를 바라봤다.

아까 청아가 이른다 어쩐다 했던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천위, 아무리 첩을 두는 것이 남자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부모 앞에서 그러는 건 역시…….”

“아니야! 아니라고!”

백유의 눈빛마저 조금 싸늘하게 변하자, 설천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닌데!

“설명, 설명할게요! 일단 이 단검부터 좀!”

허우적거리며 단검을 밀어내는 설천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살존은 천천히 단검을 거뒀다.

“하지만 주인님은 주인님인데요?”

“역시 안 되겠군.”

“아니, 좀!”

백수아의 목소리에 다시 목 끝에 닿는 단검을 느끼고 설천위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들겼다.

아니, 뭐 대충 예상한 반응이긴 하지만!

왜 설명을 하기도 전에 깨어나서 이런 상황을 만드느냐고!

“식령(式靈)! 식령으로 만든 거예요! 임시이지만!”

“……식령?”

설천위의 다급한 대답에 살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사자(死者)의 혼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

분명 죽은 이의 혼을 영력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살존의 물음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그걸 조금 비틀어서 산 사람에게 썼을 뿐이에요!”

“그렇다면 주인님이라는 소리는?”

“영혼의 일부가 제힘으로 채워져 제 영향을 받으니까 하는 소리겠죠?”

설천위의 영력은 패기(覇氣)를 품고 있다.

그 힘으로 혼의 일부가 채워졌으니 당연히 지배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이라는 단어는 거기서 나온…….

“하지만 분명 그러셨잖아요? 주인님의 것이 되라고.”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했던 것 같은데?”

“일을 키우지 마, 이것들아!”

그거야 손휘 안에 잠들어 있는 백수아를 자극하려고 독하게 말한 것뿐이고!

“나도 들었지.”

고개를 끄덕인 살존의 단검이 더욱 다가오고.

[에휴.]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청아가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님의 편을 들고 싶진 않지만…….]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 청아는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설명했다.

[주인님은 저 여자한테 지배 같은 건 안 걸었어요. 식령(式靈)은 술사가 식(式)으로 존재를 제약하는 것.]

그렇기에 식령(式靈)이다.

술사가 정한 법과 규칙으로 존재를 옭아매는 것.

악귀를 인간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하는 조치다.

[그걸 하지 않은 저 여자는 주인님의 식령(式靈)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존재가 됐죠. 말하자면 반쪽짜리? 육체도 살아 있으니 영적인 존재가 된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제가 주인님이라고 느끼는 건요?”

선배(?)의 친절한 조언에 백수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후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청아는 능숙하게 답했다.

[주인님의 힘엔 기본적으로 존재를 누르고 지배하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 힘을 혼의 일부로 받아들였으니 본능적으로 주인님께 굴복하는 거예요.]

“즉, 악의가 없는 세뇌란 소리인가?”

제발 세뇌에서 벗어나 주세요.

살존의 싸늘한 목소리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청아를 바라봤다.

이쪽의 말은 듣지 않으니 마저 설명을 이어 가라는 눈빛.

그 눈빛에 한숨을 내쉰 청아는 고개를 저었다.

[세뇌는 아니……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저 소저가 주인님의 명령을 쉽게 거스를 수 없다는 건 부정할 수 없네요.]

“야! 그걸 지금 타이밍에 말하면……. 히익!”

자신의 머리가 있던 곳에 박힌 단검을 필사적으로 목을 꺾어 피해 낸 설천위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사, 살리려면 방법이 없었슴돠!”

“나도 딸을 살리기 위한 방법은 이것뿐이군.”

* * *

설천위가 살존에게 살해당할 뻔한 위기가 지나가고.

방년의 딸아이의 입에서 나온 주인님이라는 충격적인 단어에 잠시 이성을 잃었던 살존은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그 과정에서 설천위는 몇 번이나 사선을 넘긴 했지만.

설천위를 은인이라 생각하는 살존의 인식이 간신히 피의 참극(?)을 막아 냈다.

“후, 딱히 제가 부릴 생각은 없어요. 청랑이나 청아와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청랑과 청아는 육체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온전히 살아 있는 육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영체화가 가능해 [혼원패공(魂元覇功)]으로 데리고 다닐 수 있지만, 백수아는 경우가 다르다.

일단 살아 있는 사람이니만큼 완전한 영체화가 불가능하다.

즉, 살아 있는 상태로 설천위를 따라다녀야 한다는 소리다.

게다가 설천위는 살존의 딸을 호위로 데리고 다닐 생각이 없다.

동료로 삼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백수아에겐 지금 해 줘야 할 일이 있으니까.

“물론,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긴 해요.”

진정한 살존과 백수아를 보며, 설천위는 백유를 가리켰다.

“저 녀석이 사천맹의 맹주가 되는 걸 도와주세요.”

* * *

“흐음, 꽤 빠르게 움직이고 있군요.”

사천맹 본부.

제2참모실.

그곳의 주인인 사학(邪學) 연주택은 부채로 자신의 턱을 가볍게 두들겼다.

“북존은 그렇다고 쳐도, 무림맹 놈들이 겁도 없이 내려왔다는 건 의외네요.”

북존이야 힘이 없어서 못 움직이던 것이 아니라, 사존과의 약속 때문에 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니 이상할 거야 없지만.

“겁을 상실했거나 사전에 약속되어 있거나 둘 중 하나이겠군요.”

무림맹은 아니다.

그것도 일개 지부가 움직인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무혈 지부에서 움직였다고 하는 흑룡단의 정보를 떠올린 연주택은 작게 이를 악물었다.

그 가증스러운 놈의 단(團)이라고 했던가.

동생 년이 정파로 넘어가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던가.

이 2참모 자리를 꿰차기까지 본 손해를 생각하면…….

까득.

이를 갈며 부채를 펼친 연주택은 고개를 돌려 묵묵부답인 사내를 바라봤다.

“무림맹의 잡것들이야 충분히 끌어들인 뒤에 처리한다고 치지만, 북존을 처리할 방법은 준비되고 있는 겁니까?”

“물론.”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기이하게 떨리는 눈동자로 연주택을 바라봤다.

“북존은 광동 땅조차 제대로 밟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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