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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02화 (402/624)

제402화

401화-손휘 (17)

“식령(式靈)…….”

예상치 못한 단어의 등장에 잠시 침묵한 백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술사들이 악귀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부리는 것을 말하는 거죠?”

“용케 알고 있네?”

“손휘에게 씐 후 한동안 조사를 했거든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든 백수아는 그대로 손을 뻗어 설천위의 손을 잡았다.

“죽고 나서도 어머니를 뵙고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충분하겠죠.”

설령 이 몸을 잃더라도 어머니와 다시 마주할 수 있다면, 가치는 충분했다.

어머니는 결국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탄하시겠지만, 이대로 죽어 폐만 끼치는 것보다는 훨씬…….

각오를 다진 백수아가 고개를 들어 설천위를 똑바로 마주하는 순간.

“죽긴 누가 죽어?”

설천위는 히죽 웃는 입꼬리로 그녀의 손을 쥐었다.

“네가 죽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죽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힘을 주어 백수아를 일으킨 설천위는 드넓게 펼쳐진 꽃밭을 바라봤다.

드넓게 펼쳐져 있긴 했지만, 저 멀리 벽이 보인다.

백수아에게 남은 공간이 이 정도밖에 없다는 증거.

손휘가 그만큼 백수아의 많은 부분을 먹어 치웠다는 의미다.

하지만.

“생생하네.”

그렇기에 손휘는 아직도 반쪽짜리다.

백수아가 아직 이곳에 남아 있기에.

정말 중요한 핵심을 손휘는 손에 넣지 못했다.

재(災) 등급의 악귀가 무서운 이유.

그건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재앙(災殃)이 되며 얻은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힘.

그 강함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은 그 힘이 다른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리도, 순리도 통하지 않는 힘.

악귀가 된 손휘는 백수아의 몸을 먹어 치우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힘의 성장을 포기했고.

육체를 포기했으며.

‘권능’을 포기했다.

홀로 온전히 존재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힘.

그것을 포기한 것이다.

백수아라는 인간과 손휘라는 망령이 만나 태어난 권능.

그것이.

이 아래 잠들어 있다.

“백수아.”

백수아의 어깨에 손을 올린 설천위는 히죽 웃었다.

“한 번 집을 뺄까?”

* * *

[크아아아아아아!]

설천위가 손휘의 어깨를 붙잡은 지 일각(一刻:약 15분).

미동조차 없던 둘 중 먼저 움직인 것은 손휘였다.

백수아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낮은 괴성이 울려 퍼진다.

고통스럽다는 듯 온몸을 비트는 손휘에게서 어느새 손을 뗀 설천위가 두세 걸음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손휘.”

입꼬리를 비틀며, 손을 뻗은 설천위의 손으로 검은 형체가 일렁인다.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네노오오오옴!!]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튼 손휘는 거칠게 손을 뻗었다.

수십, 수백의 술법이 순식간에 허공을 가득 메운다.

술사의 극(極).

종사의 영역에 이르렀던 술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메운 술법들로 설천위를 압박했다.

하지만.

“알면서 그래.”

설천위가 비어 있는 왼손으로 손가락을 튕긴 순간.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술법의 구성을 흐트러트렸다.

완전히 무너트리진 못하더라도 뿌리를 뒤흔들어 그 위력을 크게 줄인 술법은 설천위의 몸에 닿기도 전에 흩어졌다.

손휘가 자성영역(自省靈域)을 만들어 내며 영력으로 주위를 가득 채웠던 것처럼.

설천위도 자신의 패기와 영력으로 주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근본이 일그러진 술법이 그 영역 안에서 온전히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즉, 술법은 통하지 않았다.

“경지가 오르니까 이런 게 참 좋네.”

어느새 도(刀)의 형태를 갖춘 흑관이 설천위의 손에서 검은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흑도(黑刀) 소령연화(燒靈燃枠)]

가볍게 휘두른 도(刀)가 술법의 흔적을 단숨에 불사른다.

설천위의 술법에 역으로 당해 일그러진 와중에도 파편을 남겨서 다음 술법을 준비하던 손휘는 이를 악물었다.

괴물.

괴물이다.

사용하는 술법 중 고등 술법은 없다.

방금 자신의 술법을 약화시킨 방법만 해도 수색 계열의 술법에 무지막지한 영력을 때려 박아 넣은 것일 뿐이다.

물론 그 와중에 영력에 극히 공격적인 성질을 담는 섬세함이 있긴 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설천위가 가진 술사로서의 역량은 이제 막 1인분을 할 수 있는 신입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것을 압도적인 힘과 재능으로 보완하고 있는 거다.

“뭐 해?”

그렇기에.

자신을 보며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는 놈의 도발에 손휘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빨리 꺼내지?”

함정이라는 것이 너무 뻔히 보였으니까.

놈이 무엇을 노리는지 얼추 감이 잡혔으니까.

하지만.

[네놈 뜻대로 될 것 같으냐!!]

선택지가 없었다.

이를 악문 손휘는 자신의 뿌리 안에 있는 힘을 끌어올렸다.

[네놈의 오만함이 네놈을 죽일 것이다!]

손휘가 만들어 낸 영역이 흔들린다.

[신위지경궁(神位之擎宮)]은 손휘가 술사로서 만들어 낸 자성영역(自省靈域)이다.

악귀가 된 손휘가 얻은 힘이 아니란 소리다.

영력이 요동친다.

끔찍할 정도의 악의(惡意)가 손휘에게서 솟구친다.

새하얀 백수아의 피부 위로 기이한 검은 문양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에 맞춰 공간을 가득 메운 영력 또한 뒤틀려 변해 간다.

[네놈이 무슨 속셈으로 이 계집을 설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백수아의 중심에 닿아, 그녀에게 심었던 자신의 본질과 합쳐진 손휘의 영력이 끔찍할 정도로 짙게 사방으로 퍼져 나온다.

[그것이 네놈의 최후를 결정짓는 선택이 될 것이다!]

재(災).

존재 자체가 재앙(災殃)이나 다름없는 악귀의 힘이 사방을 잠식한다.

[자성영역(自省靈域) 원식탐성(怨食貪星)]

술사 손휘로서의 자성영역(自省靈域)이 아닌, 악귀인 손휘로서의 자성영역(自省靈域)이 펼쳐진다.

“흡!”

갑작스럽게 몸 안으로 파고드는 힘에 백유는 미간을 찡그렸다.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힘.

내공과는 명백히 다르고, 최근 익숙해진 영력과도 묘하게 다른 힘.

그렇기에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힘이 그녀의 육체를 파고들었다.

손발의 감각이 무뎌지고.

의식이 서서히 뿌옇게 흐려진다.

‘……이게!’

악귀의 권능인가!

숙련된 화경의 무인이라 할지라도 잘못 걸리면 허무하게 무너진다는 그……!

갑작스럽게 전개된 손휘의 힘에 백유는 진즉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상태였다.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설천위가 이 상황을 유도한 건 확실했다.

그렇다면 일단 이 힘에 끌려가지 않도록 저항하는 것이 최선…….

“드디어 나왔네.”

묘하게 홀가분한 목소리.

그리고.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에 백유는 감았던 눈을 떴다.

천천히 눈을 뜨니,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벚꽃이.

마치 세상을 전부 불태우고 재가 되어 흩날리는 것과 같은 불씨가.

[소령연화(燒靈燃枠)]

움켜쥔 흑도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꽃은 어느새 설천위와 손휘를 휘감고 거세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이 너머로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잘 가라.”

너무나도 간단한 일격이 허공을 가른다.

백수아의 몸을 직접 가르진 않는다.

그저.

[단천(斷天)]

끊어 버릴 뿐이다.

베어 버릴 뿐이다.

하늘을.

목을.

세상이 어긋나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끄어억……!]

노인이 목을 움켜쥐고 몸을 비트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쓰러진 백수아의 몸은 죽은 듯 바닥에 누워 있었고, 그 위로 노인이 몸을 비틀며 충혈된 눈으로 설천위를 무섭게 노려봤다.

[네놈! 네노오오옴!!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냐아아!!]

베였다.

백수아와 결합된 상태로.

이쪽도 소멸하지만, 백수아도 반드시 죽는다.

일그러진 혼은 구원받지 못하고 망가지고, 육체는 흙이 되어 스러질 것이다.

거기다.

‘빌어먹으으을!’

권능의 발현을 위해 연결된 힘의 핵이 같이 베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백수아의 안에 깊숙이 숨겨 뒀던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백수아가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함께 손에 넣은 그것을 같이 베어 버렸다.

“공략법을 알고 있는 적은 그리 어려울 게 없지.”

언여휘의 개입은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손휘를 정리하는 것까지는 예상 범주 내의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성장도 있었으니 일이 쉬워지는 건 당연한 수순.

베인 목에서부터 서서히 불꽃이 일어나 타들어 가기 시작한 손휘를 보고 설천위는 도를 어깨에 걸친 채 걸어갔다.

[크아아! 죽을 것이다! 내 핵을 빼내 베었다고 한들 이 계집과 내가 연결되어 있던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계집은 이대로……!]

“그건 아니지.”

발악하는 손휘의 앞에 도착한 설천위는 히죽 웃으며 손을 뻗어 백수아의 머리를 만졌다.

“이쪽도 다 생각이 있거든?”

설천위의 몸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영력이 백수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전에 동의를 얻어 놨기에 설천위의 영력은 마치 메마른 땅에 내린 비처럼 순식간에 백수아의 영육에 흡수되어 갔다.

거기에 더해.

“신의(神醫)!”

설천위의 옆에서 실체화한 신의가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약이 필요하다.”

순식간에 몇 군데 혈을 짚고, 백수아의 호흡을 안정시킨 신의가 말했다.

다만, 약의 제조까진 시간이 걸린다.

“어떻게든 붙잡아 줘.”

“노인을 너무 험하게 부리는 게 네 녀석의 가장 나쁜 점이다.”

쯧쯧, 혀를 찬 신의는 이번엔 침을 꺼내 백수아의 몸에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 그럼 이제 우리도 끝을 볼까?”

[───────────────!!]

이제는 턱 아래가 전부 불타 인간의 언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손휘의 혼이 설천위의 손아귀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 * *

“아아, 손휘가 당했어.”

[네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어둠이 내려앉은 대전.

상석에 앉은 존재는 자신의 앞에서 발로 허공을 차고 있는 언여휘를 노려봤다.

[네년이 자신이 있다고 해서 십이군 중 둘을 내어주었다.]

“에이, 설천위가 그렇게 강해졌을 줄 내가 알기나 했겠어?”

[네년이 조각을 내어주어 강해진 것은 아니더냐?]

“그건 아니던데? 아직 못 다루더라고.”

못 다루는 건지 안 다루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혀를 살짝 내밀며 속내를 숨긴 언여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너무 뭐라 하지 말아 줄래? 나도 손해가 크거든?”

이번에 보낸 인형은 본신이 깃들 수 있는 생인(生人)보다는 못해도 꽤나 귀중한 인형이었다.

그게 완전히 망가졌으니 이쪽의 손해도 막심하다.

자신은 죄가 없다는 듯 뻔뻔하게 입술을 삐쭉이는 언여휘의 모습에 존재는 빠르게 감정을 털어 냈다.

여기서 언여휘를 붙잡고 질책해 봤자 남는 게 없었으니까.

해야 할 건 앞으로의 계획이다.

[손휘가 놈의 전력을 얼마나 깎았을 거라고 생각하나?]

분노에 휩싸여 악귀가 된 놈은 백수아라는 살존의 딸에 들러붙는 바람에 이름을 날리진 못했으나, 명색이 재(災) 등급의 악귀다.

아무리 설천위라고 한들 언여휘와 싸운 뒤에 손휘와 싸우면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순 없었다.

최소한 중상, 운이 좋으면 중태에 빠져서 사파의 상황을 정리할 틈이 없을 테니 그 틈을 노릴 수 있을 터.

“응? 아마 멀쩡할걸?”

마지막 순간, 종려의 혼이 설천위에게 흡수되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뭐, 그 몸 상태를 생각하면 혼을 흡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지만…….

“경지에 올랐으니, 그 어중간한 녀석이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손휘는 살존의 딸을 손에 쥔 덕에 살존을 크게 압박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살존의 딸을 손에 넣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기에 녀석은 반쪽짜리라고 할 수밖에 없는 힘을 가졌다.

설천위가 조금만 거동이 자유로워져도 손휘 정도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터.

그에겐 꽤나 뛰어난 의원이 붙어 있으니 어떻게든 목숨만 건지면 손휘 정도야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운 짓을 했네.”

설천위의 얼굴을 용암으로 뭉개 버렸던 사실을 떠올린 언여휘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인데, 아깝게 됐네.

뭐, 그거야 나중에 이쪽으로 오고 난 뒤에 고쳐 주면 되겠지.

여하튼, 설천위가 손휘를 처리하기에 까다로운 점은 살존의 딸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 때문인데.

“응. 우리 천위가 그런 것도 못 할 리가 없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러니.

“사천맹이나 빠르게 정리하는 게 좋을걸? 북존, 그 미친 인간이 또 날뛰고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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