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01화 (401/624)

제401화

400화-손휘 (16)

“내 것이 되라, 백수아. 그럼 살려 주마.”

뜬금없이 목숨을 빌미로 삼아 청혼하는 설천위의 모습에 백유마저 짜게 식은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볼 때.

[네, 네놈?]

설천위가 말한 의미를 깨달은 손휘가 당황한 눈빛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당황한 것과 별개로 손휘는 확실하게 움직였다.

땅에서 솟구친 촉수가 설천위가 있던 빈자리를 꿰뚫는다.

“흠.”

어느새 손을 풀고 물러난 설천위는 자신이 있던 곳을 꿰뚫은 촉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데.”

영력을 뭉쳐 촉수의 형태로 사용하는 건가.

영력의 실체화가 자유로운 악귀다운 운용 방식이다.

거기다.

“술법까지 더했나.”

촉수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기운은 이 촉수에 꿰뚫리는 순간 절대 좋은 꼴은 못 볼 거란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영력의 실체화에 술법을 가미한 단순한 운용 방식.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다.

꽤나 탐이 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설천위는 도를 휘둘렀다.

단숨에 촉수를 베어 낸다.

백유나 살존이 혹시 몰라서 피하기만 했던 촉수였지만.

거침없이 잘라 낸 설천위는 다시 한번 손휘와의 거리를 좁혔다.

[놈!]

순식간에 도(刀)가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도달한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도(刀)를 휘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지는 촉수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백유는 기묘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 있던 청아를 내려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암기와 투척물이 그녀를 노리고 있었지만.

“하핫!”

백유는 더욱더 짙게 웃으며 단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곁에 선 살존이 백유와의 사이에 청아를 두고 방어를 이어 나갔다.

투척물들은 계속 날아오고 있었지만, 거대한 건물들의 낙하는 멈췄다.

손휘가 이쪽이 아닌 설천위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

이를 악물고 촉수들을 꺼내 설천위를 압박하는 손휘의 모습을 보며, 백유는 웃었다.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야.

느긋하게 촉수를 쳐 내던 설천위는 어느새 뭉친 백유와 살존의 모습을 확인했다.

“쉬고 있어.”

간단한 손짓과 함께 그녀들을 감싸는 사각의 결계.

설천위가 만들어 낸 흑관이란 것을 알아챈 백유는 그대로 손을 멈췄다.

날아오는 화살과 창이 벽에 막혀 튕겨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흥! 고작 저 정도로 막겠다는 것이냐!]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친 손휘가 즉시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나타난 4층짜리 누각이 백유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낸다.

여태까지 만들어지던 것과는 급이 다른 빠른 속도로 머리 위를 차지한 누각의 모습에 백유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귀찮게 하지 말지?”

짜증이 담긴 설천위의 목소리와 함께 대기가 흔들렸다.

피부가 찌릿해지는 기묘한 울림이 지나갔다고 느낀 순간.

[크르르르르.]

백유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우는 용의 울음소리에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멋있네.”

패융의 꼬리에 산산이 부서진 누각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융융!”

그리고 그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청아.

그런 청아를 살짝 흘긴 패융은 그대로 설천위가 만든 흑관 위에 자리를 잡았다.

어떤 것이 떨어지더라도, 자신이 막겠다는 듯.

흑관 위에 똬리를 튼 거대한 용은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 모습을 짧게 바라본 설천위는 다시 몸을 돌려 손휘를 바라봤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순순히 항복할 생각은 없지?”

[헛소리를 하는구나.]

여태까지 살존이나 백유를 압박하던 것과는 결이 다른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손휘는 손을 뻗었다.

[이 몸이 으스러지거나 살존이 죽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만이 존재할 뿐이다.]

복수심에서 태어난 악귀다운 대답이네.

손휘의 단호한 대답에 설천위는 도를 늘어트린 채 고개를 꺾었다.

“그럼, 안쪽에 있는 녀석한테도 물어보고 싶으니 좀 바꿔 주겠어?”

[흥, 백수아의 정신이라면 이미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백수아의 자아를 풀어 줄 생각 따윈 전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손휘는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요동치는 영력이 순식간에 수십의 술법으로 변화한다.

살존과 백유는 목적이 있어서 천천히 압박했지만.

‘……괴물 놈.’

이 괴물에겐 그런 여유를 부려선 안 된다.

살존보다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풍기는 기운은 어마어마하지만, 강함의 척도만을 따지면 살존보다는 못하다는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손휘는 전력으로 술법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괴물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는 어둠이.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자신과 같은 술사에게 최악의 존재라는 것을.

순식간에 수십 개의 술법을 완성한 손휘가 손을 휘젓는 순간.

어마어마한 영력의 촉수가 설천위를 향해 쇄도했다.

어떤 것은 독을 품고, 어떤 것은 뇌전을 품고, 어떤 것은 불을 품은 채.

생전에 펼치던 술법보다 훨씬 강력한, 영력을 실체화시킨 것에 술법을 더한 공격.

단주급의 강자도 결코 무사히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치명상은 피하더라도 막거나 피하는 과정에서 분명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그런 공격…….

“흠.”

……이거늘.

가볍게 콧방귀를 뀐 설천위가 도를 휘두르는 순간, 수십의 촉수가 토막이 나서 땅으로 떨어졌다.

만약, 그냥 무인이 벤 것이라면 남아 있는 영력의 힘으로 끝까지 적을 노리고 파고들었을 테지만…….

“나쁘지 않은 응용이네.”

그 영력을 전부 끊다 못해 태워 버린 괴물이 어깨를 으쓱였다.

눈앞에 거대한 벽이 생긴 것 같은 감각.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강함이 손휘를 무겁게 짓눌렀다.

“흠, 마침 잘됐네.”

이쪽을 노려보는 손휘의 모습을 보며 웃은 설천위는 도를 그에게 겨누며 웃었다.

“이쪽도 몸을 좀 풀어 줄 필요가 있어서 말이야.”

조금 땀을 빼 볼까?

* * *

흑관 안에 갇힌 백유는 바닥에 주저앉아 살존의 상처를 살폈다.

이쪽이야 크게 다친 데가 없었지만, 살존은 애초부터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이곳에 왔다.

싸우느라 제대로 치료도 못 했으니 이참에 조치를 취하는 게 맞았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요?”

“……불편하구나.”

“에이, 뭐 앞으로 더 싸울 일도 없을 것 같은데요. 그냥 두죠.”

단검을 부목 삼아 단단히 고정한 팔을 보며 미간을 찡그린 살존은 한숨과 함께 흑관 너머를 바라봤다.

검은 유리처럼 투명한 흑관 너머로 설천위와 손휘의 모습이 눈에 담긴다.

“전혀 진심이 아니었군.”

이쪽을 압박하던 화살이나 창과는 격이 다른 속도와 위력의 촉수들이 끊임없이 설천위를 향해 쇄도한다.

거기에 꿰뚫린 순간, 독이나 화상, 감전을 일으킬 수 있도록 술법이 추가된 것은 덤이다.

저런 식으로 압박하면.

‘조금 위험했을 수도 있었겠는데.’

영역(靈域)의 영향 때문에 무뎌진 신체로는 상처 하나 없이 피할 순 없었을 터.

만약 한 번이라도 당했다면, 그 뒤로 이어지는 공격은 점점 더 피하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결국, 촉수를 베거나 이쪽이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됐을 거다.

그리고 그게 손휘가 노리는 거였다면.

지금 설천위가 베고 있는 촉수는 아무리 베어도 백수아의 몸에 영향이 없어 보이지만…….

백유의 눈이 가라앉는 순간, 여태까지 모든 촉수를 베어 내던 설천위가 돌연 촉수 하나를 손으로 붙잡았다.

“이것 봐라?”

가소롭다는 듯 웃는 설천위의 목소리와 함께 촉수가 급속도로 오므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촉수를 뽑아 뭉쳐 낸 설천위는 흑관으로 그것을 봉인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생각이었나?”

봉인을 끝낸 촉수를 발아래에 둔 설천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부모의 손으로 자식을 죽이든가, 자식의 손으로 부모를 죽이든가.”

다른 촉수를 베어 내며, 설천위는 손휘를 보며 웃었다.

“상당히 악취미인데.”

입꼬리를 올린 미소 속에 담긴 섬뜩한 살기가 사방을 잠식한다.

그리고 그 저릿저릿한 살기가 흑관 안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아 가볍게 휘파람을 분 백유는 고개를 돌려 살존을 바라봤다.

“스승님, 저거 아무래도 확실하죠?”

“그런 것 같구나.”

백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살존은 기이할 정도로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는 설천위의 기세를 느꼈다.

확실하다.

“경지에 올랐구나.”

“덤으로 환골탈태도 일어난 것 같네요.”

“으음.”

살짝 키가 커진 걸 보니 확실하겠지.

고개를 끄덕인 살존은 멀쩡한 팔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언여휘와 그 괴물을 이기고, 화경이 되어 환골탈태까지 했단 말인가.

아니, 만약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환골탈태가 완료될 수 있단 말인가.

자고로 환골탈태란 기나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육체를 완전히 재구성하는 것이니 당연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걸 이리도 빠르게 끝냈다는 것은…….

“……내 죄가 깊구나.”

이쪽에 최대한 빨리 도움을 주기 위해 그 과정을 억지로 단축했을 확률이 높았다.

적당히 육체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그 특유의 체질 개선에는 힘을 거의 쓰지 않은.

……반쪽짜리 환골탈태를.

부족한 무재(武才) 때문에 그렇게 고통받던 설천위에게 가장 필요한 무(武)를 위한 육체의 재구성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다.

환골탈태는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

하물며,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 줄 육체의 자질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면…….

입술을 악문 살존이 주먹을 꽉 움켜쥐는 순간.

쾅!!

강렬한 폭음이 그녀의 상념을 깨뜨렸다.

어느새 다시금 손휘의 코앞에 도달한 설천위가 손휘의 어깨를 붙잡은 것이 보였다.

그의 뒤로 몇 개의 흑관이 그가 남긴 발자국처럼 남아 있었다.

[네노옴!]

“아니, 왜 나랑 싸우는 녀석들은 죄다 언어능력이 퇴행하는 거야?”

맨날 같은 소리만 하네.

손휘의 어깨를 붙잡은 채, 히죽 입꼬리를 올린 설천위는 손휘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그그그그긍.

마치 육중한 문이 열리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너한테 볼일이 없으니까 주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압도적인 패기와 기세를 품은 설천위의 [패령안(覇靈眼)]이 손휘의 정신 방어를 비틀어 열었다.

* * *

각양각색의 들꽃으로 가득 찬 언덕 위.

그곳에 홀로 앉아 있던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셨군요.”

꽃을 밟으며 똑바로 선 설천위는 자신을 보며 웃는 백수아를 보곤 피식 웃었다.

“꽤나 태평하네?”

“열을 낸다고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왼손을 움직여 가볍게 들꽃을 꺾은 백수아는 그 꽃을 코앞으로 가져가 향기를 맡았다.

“이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걸요.”

씁쓸한 백수아의 대답에 그녀를 살피던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가 축 처져 있다.

아마 손휘에게 먹힌 탓일 터.

영혼까지 침식당한 탓에 내면세계에서조차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쿵! 쿵!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이쪽을 두들기는 존재가 느껴진다.

설천위가 억지로 정신 방벽을 비틀어 열고 들어온 탓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손휘가 발악하는 것이다.

씁쓸함으로 가득 찬 얼굴로 백수아는 고개를 들었다.

“죽여 주세요.”

각오를 다진 얼굴로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부탁한다.

“제자가 생기셨더군요.”

자신이 죽으면, 어머니가 어찌 될지 몰라 걱정했기에 지금껏 버텨 왔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다던 어머니를 말리지 못했다.

자신의 죽음이 어머니의 죽음과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하지만, 지금 어머니는 제자를 뒀다.

자신이 죽으면 힘든 시간을 보내겠지만,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다.

자신의 어머니는 강한 사람이니까.

“어머니를 부탁드립…….”

“거, 쓸데없는 소리나 하긴.”

“꺅!”

설천위가 때린 딱밤에 왼손으로 이마를 감싼 백수아는 히죽 웃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보곤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제자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다면, 안에 있어도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얘기겠지?”

밖에 있었던 일.

그 말을 듣고 설천위의 얼굴을 바라본 백수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 그…… 역시 결혼은 저에겐 아직……!”

“……얘들은 자꾸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꺅!”

백유도 비슷한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아우!’ 하며 볼을 손으로 감싸는 백수아의 이마를 다시 한번 딱밤으로 붉게 물들인 설천위는 쭈그리고 있던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네가 살 수 있는 길이 있어. 다만, 조금의 희생이 따를 뿐이지.”

담담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웃으며 설천위는 손을 내밀었다.

“인간을 벗어나 내 식령(式靈)이 돼라. 백수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