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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400화 (400/624)

제400화

399화-손휘 (15)

쏟아지는 건물을 피해 백유는 청아를 옆구리에 끼고 열심히 달렸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함께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따라온다.

정말.

“더럽게 시끄럽네.”

떨어질 때마다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리니,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괘, 괜찮나요?”

“응? 아아, 멀쩡해.”

저런 눈먼 공격이야 뭐, 맞을 일 없지.

문제는…….

깡!

목을 노리고 파고든 화살을 쳐 낸 백유는 가볍게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작정하고 시간을 끌기로 정한 뒤 살존과 나누어져 도망치고 있었다.

한쪽 팔이 다친 살존 대신 청아를 옆구리에 끼고 그야말로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고 있다.

반격이라도 하고 싶지만, 백수아의 상태를 모르니 그야말로 도망만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뭐, 온전히 도주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흡!”

깡!

공격 자체는 수월하게 막아 내고 있지만.

문제는…….

“후욱.”

슬슬 체력의 소모가 체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원래라면 이 정도 움직인 것으론 호흡 한 점 흐트러지지 않았겠지만…….

“무식하게 공격만 퍼붓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

여전히 거대한 대문 앞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손휘의 모습을 눈으로 흘긴 백유는 발아래 생긴 그림자에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굉음과 함께 땅에 처박히는 건물.

건물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진 않았지만, 이쪽의 호흡을 끊기 위해 끊임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건물의 잔해는 사라지지 않고 쌓여서 발을 디딜 곳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타고난 균형 감각이 없었다면 진즉에 발을 헛디뎠을 정도로 주변이 온통 난장판이 된 지 오래였다.

허리를 당겨서 목을 노렸던 화살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낸 백유는 가볍게 호흡을 골랐다.

짙은 영력으로 인해 심력이 소모되는 느낌이다.

정신에 압박이 들어오니, 덩달아 몸에도 영향이 미쳐 조금씩 호흡이 흐트러지고 있다.

아마 이곳에서 악을 쓰고 버텨도 결국 혼이 마모되어 적의 수중에 떨어지겠지.

적을 먼저 제거할 수 없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결말로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능력이다.

‘문제는 고작 이런 놈이 재(災)일 리가 없다는 거지.’

그녀가 설천위에게 듣기로 재(災)는 거의 악귀계의 현경(玄境)이라고 했다.

영역을 뛰어넘어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 된 괴이들.

그것이 바로 재(災)다.

고작해야 조잡한 활과 창을 만들어 공격을 퍼붓고, 건물을 머리 위에서 떨구는 것이 그의 능력의 전부일 리 없었다.

물론, 대량 학살에 특화된 개체는 개인의 전투력 자체는 생각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무려 손휘다.

뛰어난 술사로 살다가 살존의 손에 암살되어 악귀로 변한 존재.

개인의 전투 능력이 약할 리가 없었다.

[의아하다는 눈이군.]

그리고 그런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손휘를 관찰하던 백유는 손휘의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느 정도는?”

[네 녀석이 의아해하는 대로 지금 내 능력은 본래에 미치지 못한다.]

떨어져 나간 분신이 소멸되었고.

게다가 백수아의 몸에 기생한 상태다.

백수아를 완전히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선 혼의 근간이 약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강한 반동을 불러오는 고위 술법의 사용은 자제할 수밖에 없다.

이 자성영역(自省靈域)조차 사실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무인(武人)인 살존과 백유를 상대하기 위해 억지로 펼쳤을 뿐, 본래 그가 사용하는 자성영역(自省靈域)과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너희는 스스로 낭떠러지를 향해 가고 있거늘.]

그래, 별 상관없다.

백수아의 몸을 차지해 살존이 이쪽에 손을 쓰지 못하게 된 시점부터.

이쪽의 승리는 이미 확정되었다.

만약 살존이 스스로 백수아를 죽이면?

그땐 또 그때의 해결법이 있다.

살존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미 몇 겹의 함정을 준비해 놓은 상태다.

즉, 이 싸움은 이미 그의 손에 승리가 쥐어져 있는 싸움이라는 소리다.

자성영역(自省靈域)은 조잡하고, 펼치는 술법은 본래 쓰던 것의 반도 되지 않지만.

[도착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승리는 확실하게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덤덤한 목소리로 승리를 말하는 손휘의 모습에 백유는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백수아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니 거친 수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면 확실히 위험해.’

차라리 손휘를 제압하는 게 나을 듯싶다.

영적으로 연결된 백수아의 몸에 어떤 영향이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못 버티고 천위가 오기 전에 뒈지는 것보다야 낫겠지.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 정도라면 살존과 합을 맞추면 얼마든지 가능…….

[제압할 생각인가?]

그런 백유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가볍게 웃은 손휘가 손을 뻗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은 통하지 않느니라.]

손위가 뻗은 손끝에는 어느새 방울진 피가 맺혀 있었다.

[혈동(血童).]

핏방울에서 태어난 것은 12살 정도의 소녀였다.

손에는 창을 쥐고, 탱글탱글한 볼살이 흔들린다.

마치 백수아의 어린 모습을 재현한 것 같은 귀여운 외형의 소녀는 창을 겨누고 백유를 노려봤다.

“……더럽게 귀엽네!”

그 깜찍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혀를 찬 백유는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귀여운 것은 귀여운 것이고.

일은 일이다.

‘조잡해.’

순식간에 혈동의 앞까지 도달한 백유는 혈동이 내지른 창을 가볍게 흘려 낸 뒤 그 코앞에 도달해 단검을 휘둘렀다.

단숨에 혈동의 목을 베고 지나가는 단검.

백수아를 그대로 어리게 만든 것 같은 외형을 하고 있어 최대한 깔끔하게 손을 썼다.

피가 일렁이며 갈라진 혈동은 정말 목이 베인 것처럼 허우적거리다가 쓰러졌다.

그리고.

[거침없구나.]

히죽 웃는 손휘의 목소리에 단검을 고쳐 잡던 백유는 미간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손휘의 목에서 흘러내리는 피.

그리고 어느새 그의 주위를 가득 메운 혈동들.

[궁금하구나. 몇이나 베면 이 목이 완전히 떨어질까.]

백수아의 섬섬옥수로 그 얇은 목의 상처를 훑어 낸 손휘는 손끝에 묻은 피를 혀로 핥으며 웃었다.

[제압할 수 있겠느냐?]

입꼬리를 올린 손휘의 물음에 백유는 고쳐 잡았던 단검을 다시 역수로 바꿨다.

“아니, 너무 위험하네.”

손휘의 주변을 메운 혈동의 숫자는 못 해도 스물 이상.

아예 건드리지 않고 넘어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저 혈동들을 정리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백수아의 몸에 상처가 생긴다면.

‘……위험해.’

자칫 잘못하면 출혈만으로 백수아가 죽을 수도 있다.

손휘는 악귀이니 백수아의 몸이 죽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할 터.

그러니 저런 술법을 사용하는 거겠지만…….

‘까다롭게 됐어.’

스승님이 여태까지 움직이지 않던 이유도 이건가?

아니.

고작 혈동 따위로 스승님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저 조잡한 움직임으로 아무리 손휘를 지킨다고 한들 살존이라면 얼마든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뭔가 더 있다.’

저 육체를 인질로 잡아 휘두르는 방법이 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지만…….’

고개를 돌린 백유는 은신조차 하지 않고 건물과 투척물을 피하고 있는 살존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뛰어난 술사라는 것은 이리도 예측하기 힘든 것이었나.

하긴, 사천맹의 귀령단주도 공간을 다루는 해괴한 기술을 쓴다고 했으니…….

‘……공간?’

순간 고개를 갸웃한 백유는 어느새 자신의 발아래 생긴 그늘을 확인하곤 몸을 날렸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다.

귀령단주도 공간을 다루는 술법을 쓰는데, 저 손휘는 그 술법을 제대로 쓰지 못해 건물을 저리 굼뜨게 날리고 있는 건가?

천천히 날아와 떨어지는 건물은 솔직히 말해 깔리려고 해도 깔릴 수 없는 수준이다.

점점 바닥에 그 잔해가 쌓이며 운신을 힘들게 하고 있긴 하지만, 저런 조잡한 방식에 이쪽이 당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언가 노리고 있다.’

그런 확신을 품은 백유는 자신과 떨어진 곳에서 침착하게 공격을 피하고 있는 살존과 눈이 마주쳤다.

아아.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지 알겠다.

무지(無知)란 무력(無力)과 같다.

“하, 그렇게 신중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딸을 위한 일이면 이렇게까지 신중해지는 건가.

이제야 알았다.

무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혹시나, 자신의 무지한 행동이 딸에게 독이 될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철저하게 회피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고, 멍청하다.

설천위가 올 거라는 희망에 기댄, 나약하기 그지없는 선택이다.

자신이 공격을 감행할 때, 말리는 외침 한마디 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어울려 줘야지.”

각오를 다졌던 스승님을 막고, 버티자고 한 건 자신이었으니까.

피식 웃으며, 백유는 어느새 상당히 굼떠진 몸을 움직였다.

‘……하루, 아니 이틀 정도?’

살존에게 들은 바로는 적의 수준이 말이 안 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설령 설천위가 이기더라도 이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태까지 몸을 회복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하루도 꽤 희망적인 관측이다.

현경급 고수인 살존을 죽이려 준비한 계획인데, 그걸 정면으로 부순 설천위가 무사할 거라는 기대 자체가 말이 안 되었으니까.

그러니.

“후우.”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버티자.

하루 이틀?

아니, 일주일, 보름, 한 달이라도 버텨 주마.

혼을 마모시키는 악귀의 영역?

마모시킬 테면 어디 마모시켜 봐라.

고작 그 정도로 마모되어 무너질 정도로 나약한 혼을 품은 적은 없으니.

뜻을 세운 백유는 청아를 든 손에 힘을 더했다.

몸이 무뎌지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면 된다.

조금 더 빠르게 피하고.

조금 더 빠르게 막자.

각오를 다진 백유가 다시 방어에 집중하는 그 순간.

[슬슬이군.]

손휘가 양팔을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창을 피하던 백유는 뭔가 섬뜩한 감각에 즉시 뒤로 몸을 날렸다.

바닥에서 솟구친 촉수가 그녀가 있던 자리를 꿰뚫고 지나간다.

목표를 꿰뚫지 못하고 허공만을 꿰뚫은 촉수는 이내 이상함을 감지하고 꿈틀거리더니 휘적휘적 주위를 훑고는 다시 땅속으로 돌아갔다.

“아……. 이거 기분 나쁜데.”

이 짜증 나는 광경에 미간을 찡그린 백유가 혀를 내밀었다.

속이 메스꺼워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파박!

다시금 땅에서 솟구치는 촉수를 피해 몸을 날린 백유는 기어코 다시 미간을 찡그렸다.

적의 영역에 들어와 움직임이 굼떠졌는데, 적의 공격은 점점 더 진화한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솟구친 촉수를 단검으로 자르려다가 혹시 몰라 피하는 선택을 한 백유는 계속해서 밀려났다.

잘라 내지 못하고 회피만 하니, 점점 더 사방이 틀어막힌다.

그리고 그건 살존도 마찬가지.

서서히 궁지로 몰리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손휘는 담담하게 고개를 들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복수를 완수하고 새로운…….

푹!!

순간, 거대하게 들려온 파육음에 영역 안에 있는 이들의 이목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허공에서 튀어나온 검은 도신(刀身).

화르륵!

살벌한 빛으로 일렁이는 도신이 갑자기 격렬하게 타오르고.

그대로 아래로 그어진 도신이 공간을 갈라냈다.

“씁. 꽤 질기네, 이거.”

그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인물의 얼굴을 확인한 백유는 활짝 웃었고.

“흑! 주인님……!”

청아의 울먹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놈은?]

손휘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아, 완전히 깨어났네.”

그리고 그런 손휘의 반응을 확인한 설천위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도(刀)를 어깨에 걸쳤다.

“그러면 이제 진짜 방법은 하나뿐이네. 백수아, 듣고 있나?”

아직 완전히 먹히지 않은 백수아를 부르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몸을 검은 갑옷으로 휘감은 설천위가 한 걸음을 떼는 순간.

[컥!]

순식간에 손휘의 목을 틀어쥔 설천위가 그를 위로 들어 올리며 웃었다.

“내 것이 되라, 백수아. 그럼 살려 주마.”

그 당당하기 그지없는 뒷모습을 보며, 백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으로 협박해서 청혼하는 쓰레기가 여기에 있네?”

설천위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은 짜게 식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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