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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99화 (399/624)

제399화

398화-손휘 (14)

언제였을까.

너무 오래돼서 언제였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 기억.

“응?”

산을 오르던 중이었다.

재료를 모으기 위해서.

도망자 신세라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보니 인적 없는 곳 위주로 돌아다니던 시기였는데.

그날은 어째서인지 산속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묘하게 인기척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추적자가 왔나 싶어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은신처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애초에 분신이고, 적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래서 열심히 걸어서 산을 누볐는데…….

“……!!”

말문이 턱 막혔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깨문 입술에서 피가 나서 목을 타고 흘러 내려갔지만.

“아, 아……!”

언어라는 형태로 소리를 내뱉을 수가 없었다.

보는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인가?”

이자는 괴물이다.

공허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지독할 정도의 공허(空虛)로 가득 차 있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것 같군.”

벌벌 떨며 주저앉자, 사내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그는 수염이 거칠게 난 턱을 쓸었다.

“술사인가?”

“……마, 맞아요.”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묻는 사내에게 언여휘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섣불리 움직이면, 죽는다.

분신인데도.

확실하게 죽음에 다가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 언여휘의 불안감은 사내가 고개를 돌리자 최고조에 달했다.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공허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 같은 아찔함.

단지 바라보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 이런 것이 가능한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

심장에서부터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억지로 참으며 언여휘가 힘들게 입꼬리를 올리는 순간.

“딱히 쓸모는 없나.”

사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숨이 막힐 듯한 공기가 흩어졌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는 언여휘에게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듯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언여휘는 이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곤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겼다.

질척이는 피가 발에 달라붙는다.

거칠게 찢기고 뼈가 부서진 시체들을 살펴보니 죽인 방식이 몹시도 난폭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하아, 하아.”

그것들은 언여휘의 눈에 제대로 담길 틈조차 없었다.

왜냐고?

그녀의 눈엔 보였으니까.

[끄아아아아아아!!]

[이, 이 괴물 노오옴!!]

[살려 줘!!]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의 몸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혼들의 모습이.

이 처참한 시체들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 혼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그의 등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구나.]

[술사라서 목숨을 건진 줄 알거라.]

사내의 등 뒤에 자리 잡은 혼들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혼들 너머로 끔찍할 정도로 짙은 어둠이 보였다.

뛰어난 술사인 언여휘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 어둠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수백, 아니 수천의 혼을 짓밟고 억눌러 몇 번이고 겹쳐 내서 만들어 낸 어둠임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 끔찍함과 처절함을 그녀는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매력적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저 사내를 따라가고 싶다.

저 사내의 곁에 서고 싶다.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는 순간.

“인형 놀이에 어울려 줄 마음은 없다.”

고개를 돌린 사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언여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아아!

축축해진 옷이 달라붙고, 힘이 풀린 다리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해 무너진다.

다가가는 순간, 확실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을 깨달은 언여휘가 멍하니 있는 사이, 사내는 사라졌고.

몇 시간 후에야 정신을 차린 언여휘는 겨우 일어나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언여휘가 사내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사내는 무림에서 이리 불리고 있었다.

혈패황(血覇皇)이라고.

* * *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을 토해내며, 만들어 낸 도(刀)를 지팡이 삼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설천위는 고개를 들었다.

종려의 혼이 흡수된 것이 느껴졌다.

다만.

“쓸모없네.”

이리저리 뒤섞여 완전히 망가진 혼이다.

[혼원패공(魂元覇功)]으로 거둔다고 해도 별 의미는 없겠지.

그렇다면, 흡수가 낫다.

여태껏 거의 바닥을 보인 적 없었던 영력이 기어코 바닥 근처까지 고갈된 상태다.

“후우.”

흡수하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한 설천위는 이것저것 뒤섞인 종려의 혼을 영력으로 바꿔 흡수했다.

하지만, 영력이 차오른다고 한들 몸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커헉!”

안도와 함께 긴장이 풀린 탓일까.

목구멍에서 솟구친 피를 삼키지 못한 설천위는 기어코 피를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괜찮으냐!]

[역시 이 이상은……!]

혼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설천위는 흙바닥을 손으로 움켜쥐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안 끝났어요.”

진짜 죽을 것 같았지만, 아직 안 끝났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영력의 파동에 설천위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휘가 완전히 깨어났다.

애초에 계산이 틀어진 것인지, 언여휘가 뭔가 손을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이다.

손휘는 재(災)의 악귀라는 점에서도 처리하기 까다롭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백수아의 몸과 혼에 달라붙어 있다는 점이다.

그냥 달라붙은 정도가 아니라, 뒤섞여 합쳐진 상태.

손휘를 소멸시키는 순간, 백수아의 몸과 혼의 일부도 소멸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즉사다.

백수아의 혼은 망가지고, 육체는 죽는다.

언여휘조차 그걸 단숨에 해결할 능력이 없어 그나마 백수아의 혼과 합쳐지지 않은 손휘의 혼을 따로 떼어 내 봉인하는 데 그쳤다.

물론, 언여휘에게 충분한 상황과 시간이 주어졌다면 뭔가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 백수아를 가로막고 있는 살존과 백유, 청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손휘를 백수아에게서 떼어 낼 능력이 없다.

무슨 짓을 해도,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살존과 백유의 능력이라면 손휘를 상대로 끈질기게 버틸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백수아의 몸도 축날 것이다.

손휘는 망설임 없이 숙주의 힘을 빨아들일 테니까.

그걸 약점으로 잡으면, 살존은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하고 말겠지.

그러니.

“가야 돼.”

내가 움직여야 한다.

내가 해내야 한다.

이를 악문 설천위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달려갈 생각은 아니었다.

육체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

내상은 깊고, 팔다리는 근육은 물론이고 뼈까지 손상된 상태다.

얼굴과 가슴은 깊은 화상 때문에 완전히 뭉개진 상황.

내공은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빈말로도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후우.”

도박을 할 거다.

상태창을 연 설천위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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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이 中中에서 中上으로 성장합니다.

내공을 다루는 스킬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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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사실 이 경험치는 꽤 옛날에 모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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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이 中上에서 上下로 성장합니다.

내공을 다루는 스킬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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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휘의 분신을 잡고, 종려를 잡으며 얻은 경험치를 전부 끌어모아 때려 박는다.

상급(上級)은 뛰어넘었다는 증거.

웬만하면, 무공 쪽은 직접 성장하는 형태로 그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가부좌도 제대로 틀지 못하는 몸으로 앉아, 단전 앞에 손을 모은 설천위는 두 눈을 감고 집중했다.

단숨에 등급을 두 개나 올렸다.

그 여파는…….

‘커헉!’

악문 입 사이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삼키며 설천위는 몸에 가득 차오르는 내공에 집중했다.

통제를 벗어난 내공이 대충 휙 몸을 돌더니 바로 단전으로 향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정말 단전에 있는 내공의 크기만을 늘려 주겠다는 듯 단전으로 직행하는 꼴이 참으로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이대로 방치하면 죽지는 않겠지만, 지금 즉시 전투에 돌입하는 건 확실히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억지로 내공을 붙잡은 설천위는 영력으로 내공의 뺨을 후려치며 내공을 겁박했다.

내공이 순순히 이쪽의 의지를 따라 주지 않는다면.

‘억지로 따르게 해 주마.’

이 몸뚱이가 내 의지를 잘 따르지 못하는 것을 영력으로 억지로 따르게 만든 것처럼!

내공의 주도권을 잡은 설천위는 그대로 내공을 움직였다.

노리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임독양맥(任督兩脈).

몸을 관통하는 가장 거대한 통로다.

* * *

손휘는 정말 오랜만에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진심으로.

[괴물이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자성영역(自省靈域) 너머에서 언여휘의 기척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언제부터 살아왔는지 추측만 무성한 괴물이.

어린 술사에게 밀려 사라진 것이다.

설령 그것이 분신이라고 할지라도.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와서도 결국 실패한 것이다.

알고 있던 술사 녀석들에게 말해 주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인 것 같군.]

희미하기 그지없는 기척만이 느껴진다.

언여휘와 싸우느라 모든 힘을 소진한 탓이겠지.

그리고.

[희망은 이제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술사가 없다면.

[그러니, 슬슬 포기하는 것이 어떠냐?]

저 둘은 절대 자신을 이길 수 없다.

끊임없는 공세를 견디다 못해 호흡이 흐트러진 살존과 백유는 손휘의 물음에 동시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헛소리를 하는군.”

“개소리.”

마치 합을 맞춘 것처럼 허리를 쭉 펴고 단검을 그에게 겨눴다.

“저쪽에서 천위가 이겼으니까 이번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내야지.”

[호오?]

당당하게 해야 할 일을 해내겠다고 말하는 백유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 손휘가 턱으로 손을 쓸며 그녀를 바라봤다.

[해야 할 일이라……. 무식함으로 가득 차 보이는 네가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이냐?]

살존이 손휘를 소멸시킬 능력이 없어서 방어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손이 망가졌다곤 해도, 살존이 마음만 먹는다면 약간의 대가가 따르겠지만 충분히 손휘를 이길 수 있다.

현경(玄境)의 고수는 영(靈)과 육(肉)의 구분을 희미하게 만들 정도로 아득한 경지에 오른 강자이니까.

즉, 이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살존이 각오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모를 정도로 멍청해 보이진 않는데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진심으로?

조소를 머금은 손휘의 물음에 백유는 히죽 웃으며 단검으로 날아오는 창을 쳐 냈다.

“그럼, 할 일이 있고말고. 간단하잖아?”

간단한 결론이다.

이 상황을 해결할 희망이 천위뿐이라면.

“천위가 올 때까지 버티는 거야.”

그 녀석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된다.

[어리석구나. 언여휘와의 전투로 얼마나 망가졌을지 모르는 녀석을 무작정 기다리겠다고? 내 자성영역(自省靈域) 안에서?]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손휘가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지만, 백유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엉.”

마치 가벼운 심부름을 하는 것 같은 여유로운 태도로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그대로 단검을 휘둘렀다.

“스승님의 딸을 해치지 않고, 우리들도 멀쩡하게 살아서 기다린다.”

날아오는 투사체들을 쳐 내며 백유는 입꼬리를 올렸다.

“참 간단한 일이지?”

도발이나 다름없는 그 물음에 손휘의 얼굴이 기이하게 비틀렸다.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듯 괴이하게 비틀린 얼굴로.

[자성영역(自省靈域) 신위지경궁(神位之擎宮)]

손을 뻗어 허공에 휘젓는다.

천천히 압박해 말려 죽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심심한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손휘가 휘저은 손을 따라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전각들이 백유와 살존의 머리 위로 향하며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냈다.

[짓밟아 주마.]

단단히 버릇을 고쳐 주마,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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