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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91화 (391/624)

제391화

390화-손휘 (6)

설천위에겐 [살악(殺握)]이라는 기술이 있다.

예전에 노공과 싸울 때 영력을 상급으로 올리며 얻었던 스킬이다.

영력이 상급에 이르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스킬 중 하나인 [영악(靈握)]의 진화 버전.

그 등급은 무려 上中이다.

무려 [수라(修羅)], [부동심(不動心)]과 동급이다.

그런 좋은 스킬을 설천위는 잘 쓰지 않았다.

이유야 뭐, 몇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쓸 필요가 없으니까.

[살악(殺握)]이라는 스킬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처한 적이 별로 없으니까.

[살악(殺握)]은 영적인 힘이다.

무인을 상대로 쓰려면 못 쓸 것도 없지만, 굳이 쓸 필요가 없는 스킬.

무인이 적이라면 설천위가 쓸 수 있는 더 좋은 수가 여러 가지 있으니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반대로 영적인 존재가 상대라면 굳이 [살악(殺握)]을 쓸 필요도 없이 다른 기술로도 처리가 가능했다.

단순한 효과의 [살악(殺握)]보단 다채로운 효과를 가지는 [흑관(黑棺)]이나 수류계 술법을 쓰는 것이 더 좋았으니까.

그쪽이 조금 더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 거의 잊고 있던 스킬인데.

“이런 느낌이구나.”

자신의 손에 [살악(殺握)]을 겹친 설천위는 결계를 찢고 들어가는 손에 힘을 더했다.

생각해 보면 [살악(殺握)]이라는 힘이 약할 리가 없었다.

[살악(殺握)]은 스탯 [살업(殺業)]을 얻으며 강해진 힘이다.

[살업(殺業)]은 설천위가 자주 쓰는 힘 중 하나다.

설천위의 상징.

하늘을 뒤덮는 흑룡.

[암천룡(暗天龍)]이 바로 살업과 패기로 패융을 강화시킨 결과물이다.

즉, [살업(殺業)]이라는 힘은 그 가치를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그그그그긍!

설천위가 손에 힘을 더하자, 결계가 찢겨나간다.

건너편을 볼 수 있는 수준까지 찢어지고, 안에서 웃고 있는 언여휘와 눈이 딱 마주친다.

“아, 찾았네.”

피식 웃으며, 설천위는 양손에 힘을 더했다.

구그그그그그긍!!

결계가 강제로 밀려나 찢어지면서 굉음을 토해낸다.

그리고 설천위의 팔이 어느 정도 펴지고.

이제는 설천위가 손을 멈췄음에도, 결계는 계속해서 벌어졌다.

어느새 설천위의 손에서 떨어진 검은손이 그대로 결계의 틈을 벌려 냈다.

“거참 더럽게 단단하네.”

이제는 걸어가도 될 정도로 완전히 벌어진 결계의 틈을 지나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언여휘, 뭐 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냐?”

“헤헤헤! 어린아이는 많이 먹어야 쑥쑥 큰다고! 그것도 모르는 거야, 천위?”

“100살을 넘겼을 노괴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속이 상당히 매스꺼워지는데.”

언여휘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노골적으로 얼굴을 구긴 설천위는 더럽다는 듯 휘휘 손을 저었다.

“그래서…….”

쾅!!

설천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어느새 거리를 좁힌 종려의 일격이 설천위를 휩쓸었다.

그야말로 공간 자체를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 같은 괴력.

순수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은 압도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일격이다.

설천위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대로 짜부라져 피떡이 되어 버렸을 것 같은 압도적인 폭력.

그런데.

“흐응? 묘한데? 두 개? 아니, 자잘한 것까지 포함하면 쉰 그 이상인가.”

설천위를 감싼 두 개의 팔이 견고하게 종려의 주먹을 견뎌 내고 있었다.

살짝 설천위가 서 있던 땅이 낮아지긴 했으나, 설천위는 약간의 피해도 입지 않은 상태.

담담히 서서 [살악(殺握)]을 짓누르고 있는 종려의 모습을 관찰한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꽤나 성가신 걸 만들어 냈네.”

“하핫! 천위! 그걸 성가신 정도라고 평가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이성의 편린 따윈 없는 종려와 눈을 마주한 설천위는 언여휘의 웃음소리를 가볍게 흘려 넘겼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결계를 찢기 위해 고민하다가 꺼낸 기술이지만, 생각보다 더 쓸모 있어 보인다.

“좀 더 적극적으로 연습할 걸 그랬나.”

하루 종일 몸만 단련하다 보니 이런 스킬의 연습이 조금 소홀한 경향이 있었지.

스킬의 단련에도 좀 더 힘을 쏟아야겠어.

쓸 만한 것들이 엄청 많으니까.

이런 힘을 쓰지 않고서 무슨 성장이냐.

살짝 자기반성을 한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살존을 바라봤다.

어느새 자세를 고친 종려가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살악(殺握)]은 견고하게 그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흠.”

살존의 상태를 확인한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팔이 완전히 망가졌다.

살존 정도 되는 인물이면 억지로 움직일 수야 있겠지만, 사실 움직일 수 없다고 보는 게 맞는 수준의 부상이다.

그럼 일단 살존은 전력에서 제외시키고.

“이 녀석을 어찌한다?”

이 괴물을 어찌 처리한다?

딱 봐도 육체는 상당히 단단해 보인다.

거기다 [살악(殺握)]과 부딪치며 깨지고 찢어진 주먹이 순식간에 재생되는 걸로 봐선 재생력도 상당한 수준이고.

정말 제대로 만든 대(對)무인용 병기가 아닐 수 없다.

아마 약품과 의식으로 특수 처리를 한 육체에 두 개의 악귀를 강제로 깃들게 하고 특수한 의식으로 융합시킨 것일 터.

솔직히 말해서 완성은커녕 시도하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인 것 같은 행동의 결과물인데…….

“천위, 안 싸울 거야?”

저 미친 것이 한 짓이니까 뭔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거기다.

주변을 잠식한 이 결계.

무슨 효과를 노리고 펼친 건지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고 복잡하다.

찢고 들어온 입구도 어느새 완전히 수복된 상태.

도저히 좋다고 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대충 감 잡았으.”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언여휘를 바라봤다.

“뭘 노린 건진 모르겠지만.”

쾅!

종려가 내지른 주먹이 허공에 멈춘다.

여태까지 손등으로 방어만 하던 검은손이 기어이 종려의 주먹을 움켜쥔 것이다.

쾅!

기어코 다른 손까지 움켜쥔 검은 손이 종려와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살악(殺握)]의 힘과 종려의 힘이 팽팽할 정도로 균형을 이루는 광경에 언여휘도 감탄했지만.

“내가 있는데, 이런 녀석을 데려온 건 너무 안일한 거 아닌가?”

[흑관]이 단숨에 종려를 꿰뚫는다.

복부를 꿰뚫고, 그에 반응하듯 솟구치는 종려의 무릎을 가로막는다.

무릎마저 막히자 종려는 몸을 마구 비틀었다.

뿌드드득!

[살악(殺握)]에 붙잡힌 손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뜯어지고, 양팔을 버린 대가로 종려는 거리를 벌렸다.

처참할 정도로 끔찍하게 뜯겨 나간 손은 거리를 벌리는 잠깐 사이에 재생을 시작해, 종려가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갖출 때쯤엔 이미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오우, 더럽게 살벌하네.”

그 무지막지한 재생력에 설천위마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감탄은 감탄.

설천위는 종려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살악(殺握)]이 자세를 갖춘다.

[살악(殺握)]은 설천위가 만들어 내는 영적인 힘의 결정체.

물리력마저 갖췄으나, 그 본질은 결국 혼에 있다.

영혼조차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손길.

게임이었다면, 무식하게 휘두르고 움켜쥐는 것밖에 안 됐을 테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힘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설천위는 그 정도로 만족할 만큼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살악(殺握) 섬벽(閃霹)의 형(形)]

주먹을 움켜쥔 [살악(殺握)]이 일순 흐릿해지고.

[크륵?]

살점이 일그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종려가 고개를 갸웃했다.

가슴에 뚫린 널찍한 구멍.

종려조차 반응하지 못한, 그야말로 신속의 일권.

“……이게 되네?”

자신이 해 놓고도 믿지 못해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한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내가 직접 주먹으로 펼치는 것보다 훨씬 빠르지만.

죽어라 단련한 몸뚱이로 펼치는 것보다 훨씬 강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강하면 됐지!

응!

아오!

“인생 더럽네!”

땅을 박차고, 어느새 구멍의 대부분이 메워진 종려에게 접근한 설천위는 자세를 낮췄다.

두 개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 움직인다.

혼에 새겨진 [섬벽권]의 숙련도가 혼의 형태로 뻗어 나온 [살악(殺握)]에 자연스럽게 깃든다.

그리고.

[살악(殺握) 섬벽(閃霹)의 형(形) 제2초 이벽(二霹)]

두 개의 주먹이 단숨에 종려를 꿰뚫는다.

그리고.

“뭐야, 쫄렸냐?”

기어이 방어라는 것을 한 종려의 팔에 심장을 노리던 일격이 막혔고, 틀어진 상체에 목을 노렸던 일격은 어깨를 뚫고 지나가는 것에 그쳤다.

광폭하게 공격해 오던 종려가 방어를 시작했다는 것의 의미.

확실하다.

통한다.

“너도 나름대로 본능은 살아 있구나?”

설천위의 공격에 당한 종려의 상처가 꿈틀거리며 재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명백히 처음의 재생에 비해 느려진 모습.

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짙은 패기와 살기를 담은 설천위의 공격에 의해 영체가 직접 타격을 입은 거다.

영력으로 이루어진 공격은 물리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건 상대가 온전히 살아 있는 존재였을 때의 이야기.

무너지고 일그러져 영체와 육체가 뒤섞인 괴이는 영력으로 만들어진 공격이라고 할지라도 온전히 그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흡!”

살존은 이길 수 없는 이 괴물을 설천위는 이길 수 있다.

살존은 죽일 수 없는 이 괴물을 설천위는 죽일 수 있다.

그것이 언여휘가 놓친 가장 큰 틈.

……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꺄하하! 역시 대단하네! 응! 말도 안 돼.”

도저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배를 잡고 끅끅거리며 웃는 언여휘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살존을 바라봤다.

“응?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 술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려나?”

히히 웃으며 자신의 가슴에 박힌 단검을 잡은 언여휘는 완전히 망가진 살존의 한쪽 팔을 쳐다봤다.

“응, 팔 하나라 나쁘지 않네. 나쁘지 않아.”

히죽히죽 웃고 있는 언여휘를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보던 살존은 담담하게 단검을 뽑고 언여휘의 머리를 붙잡았다.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리니 잘렸던 머리가 쓱 올라온다.

“꺄! 아무리 나라도 이런 꼴은 조금 부끄러울지도?”

“언여휘.”

언여휘와 눈을 마주친 살존은 일렁이는 살의조차 숨겼다.

“네년, 무슨 괴물을 만든 거냐.”

설천위에게 가세해서 돕는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고 언여휘에게 살존이 접근한 이유.

말이 안 되는 점이 두 가지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종려의 생명력.

살존은 현경(玄境)의 무인이다.

영력을 다루진 못하더라도 그 심상(心狀)은 이미 자연의 이치에 닿은 초인.

그녀의 검은 단순히 목숨을 빼앗는 것을 넘어서서 그 존재 자체에 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적이 괴이라고 할지라도, 살존의 공격을 그렇게 맞고도 멀쩡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둘째, 살존의 은신을 파훼하는 술법이라니.

아무리 언여휘라고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이쪽이 도달한 영역을 강제로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면, 저 괴물을 강제로 그녀가 있는 영역까지 끌어올렸다는 말이 된다.

그게 가능하면 무림맹이나 사천맹이 왜 무인을 육성하겠는가?

술사나 열심히 길러서 괴이나 조종하지.

무언가 비밀이 있다.

그렇게 확신할 수밖에 없었기에 살존은 설천위를 돕지 않고 언여휘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이래서 나이 먹은 여우들은 싫어~. 눈치가 너무 빨라.”

살존의 눈에 담긴 의문을 눈치챈 언여휘는 히히 웃으며, 손을 휘적거렸다.

“대답해 줄 테니까 머리는 돌려줄래? 아무리 그래도 목 없는 소녀는 너무 취향이…….”

“인형 주제에 같잖은 소리를.”

살존의 살벌한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휘적거리던 언여휘는 이내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잡았다!”

그리고.

“그럼, 잘 가~!”

강력한 반동과 함께 살존의 몸이 날아간다.

순식간에 수십 걸음의 거리를 날아간 살존이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응응. 시간도 좀 더 필요하고, 살짝 공개해 줄까?”

툭.

바닥을 가볍게 발끝으로 치는 것과 함께 언여휘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오령귀문진(五靈鬼門陣)의 효과는 여러 가지이지만, 지금 내가 중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 이거.”

[그어어어어!]

[으러러어!]

[끼아아아!]

비명과 신음으로 가득한 존재들이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일렁인다.

“인형과 본체의 보다 완전한 연결 그리고.”

짝.

언여휘가 손뼉을 치는 것과 동시에 기어코 세상이 뒤틀린다.

“내 자성영역(自省靈域)의 복사야.”

살존이 땅을 내려다본 순간, 보인다.

자신의 흔적을 따라 끊임없이 허우적거리는 망자들의 손짓이.

그들의 발밑에 흐르는 용암이 붉게 일렁인다.

“환영해. 무간아귀도(無間餓鬼道)에 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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