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90화 (390/624)

제390화

389화-손휘 (5)

강렬한 폭발과 함께 살존이 서 있던 땅 자체가 통째로 날아갔다.

압도적인 파괴력.

진천뢰가 터진 것 같은 위력의 폭음 속에서 꺄꺄~ 소리를 내며 손으로 귀를 감싼 언여휘는 히죽히죽 웃었다.

“응, 역시 살존이야. 쉽게는 못 죽이나 보네?”

몇 걸음 떨어진 곳.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는 살존을 바라보며 언여휘는 방긋방긋 웃었다.

“어때? 내가 준비한 선물은?”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미소와 함께 언여휘는 눈을 깜박거렸다.

머리가 허리춤에 있는 것만 아니라면 꽤나 귀여울 법한 애교였으나, 설령 머리가 목 위에 있었더라도 질색했을 살존이다.

싸늘한 눈으로 언여휘를 무시한 살존은 고개를 돌려 자신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쿠륵, 크륵.]

기이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몸을 비틀고 있는 괴물.

털 한 톨 없이 말끔한 몸.

정수리까지 혈관이 도드라진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 있었다.

키는 대략 8척(8尺: 약 250cm).

평범한 인간의 신장이 아니다.

거기다 꿈틀거리는 혈관 밑으로 부풀어 오른 근육의 두께 또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특수한 약물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 같은 무지막지한 근육량.

거기다 무엇보다.

[크륵.]

이쪽을 향하는 눈동자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세 개.

중앙에 긴 동공의 양옆으로 좀 더 짧은 동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검은 동공 밖의 홍채는 노란색으로 빛나며, 포식자의 그것처럼 번뜩인다.

“응응, 자기소개를 아직 안 했구나? 내가 대신해 줄까?”

살존과 괴물 사이에 흐르는 묘한 정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끼어든 언여휘가 머리를 잡지 않은 빈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살존! 이쪽은 말이지! 우리 쪽에서도 심혈을 기울인…….”

“관심 없다.”

언여휘의 말을 끊어 내며, 살존은 단검을 손에 쥐었다.

상대의 정보는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설천위가 딸의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

어떤 방해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수월(水月)]

살존의 몸이 안개가 흩어지듯 사라진다.

몸이 연기가 되어 버린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진 살존의 모습에 괴물이 두 눈을 뒤룩뒤룩 굴린다.

적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

이성과 거리가 먼 그 존재는 본능으로 찾아내고자 했고.

[쿠륵?]

괴물이 눈치챘을 땐 단검이 그의 가슴을 꿰뚫은 뒤였다.

심장을 정확하게 찌른 일격.

뒤에서 꽂아 넣은 건지 앞에서 꽂아 넣은 건지.

그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결과만이 남는 공격.

그야말로, 살수(殺手)의 정석.

깔끔하게 죽음으로 인도하는 그 솜씨에 언여휘가 감탄하며 박수를 쳤고.

[크라아!]

괴성과 함께 휘두른 주먹에 살존의 몸이 흐트러졌다.

몇 걸음 떨어진 곳.

그곳에 다시 나타난 살존은 미간을 찡그렸다.

‘……재생인가.’

꽂아 넣었던 단검을 밀어내며 차오르는 살.

심장을 꿰뚫었던 것이 확실한데, 그것조차 상관없다는 듯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소개해 준다고 했잖아~.”

괴물의 상태를 살피는 살존을 보며 어느새 부러진 나무 위에 올라가 다리를 흔들던 언여휘가 히히 웃었다.

“종려(終呂).”

[크어어어어어어!!]

찢어질 것 같은 괴성과 함께 종려가 땅을 박찼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돌진으로 순식간에 살존에게 접근한 종려가 팔을 휘두른다.

허나, 이미 사라진 살존의 허상만이 종려의 주먹에 흐트러질 뿐.

여유롭게 다른 곳에 나타난 살존의 모습에 언여휘는 히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려 십이군 중 둘을 제물로 만들어 낸 괴물이야. 이야~, 힘들었어. 사혈천의 머리는 쩨쩨해서 얻기 정말 힘들었거든.”

툭툭, 무릎 위에 놓은 자신의 머리를 토닥인 언여휘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래도 열심히 만진 보람이 있어.”

다시 달려든 종려의 공격에 흐트러지고 다른 곳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살존.

그런데 그 와중에 이미 두 자루의 단검이 다시 한번 종려의 목과 심장을 꿰뚫었다.

찰나의 순간에 급소를 동시에 찌르는 완벽한 손속.

언여휘도 그 공격을 볼 순 없었기에 결과로만 알아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종려의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며 단검을 밀어낸다.

그제야 살짝 미간을 찡그린 살존의 얼굴을 발견한 언여휘는 환하게 웃었다.

“헤헤, 안 통하지? 영적인 존재조차 죽일 수 있는 살존의 공격에 버틸 수 있게 개조하느라 아주 힘들었다고~.”

“……같잖군.”

장난스럽게 다리를 파닥이는 언여휘의 모습에 역겨움을 감추지 않은 살존은 새로운 단검을 꺼냈다.

“어떤 존재라도 한계는 있는 법. 둔하기만 한 괴물 따윈 수천 번이라도 죽여 줄 수 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에 박힌 단검에 괴물이 컥컥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술사의 눈으로는 도저히 읽어 낼 수 없는 극에 이른 암경(暗勁).

역시 인형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고개를 끄덕인 언여휘는 머리를 들어 자신의 목 위에 올려놨다.

“응응, 알고 있어. 시간 벌이밖에 안 된다는 거.”

“그 시간 벌이도 큰 의미를 가지진 못할 거다.”

기이할 정도로 절제된 살기(殺氣).

살존의 단검에 넘실거리는, 영체조차 죽음으로 끌어내리는 그 힘을 보며 언여휘는 짝! 손을 마주쳤다.

현경(玄境)에 이른 괴물들은 이래서 싫다니까.

어떻게 무(武) 하나만 단련해서 영적인 영역까지 손이 닿느냐고.

괴물 같은 녀석들.

뭐.

“내가 할 말은 아닌가.”

히죽 웃은 언여휘가 손을 떼는 순간.

“……!”

드물게 살존의 눈이 놀라서 커졌다.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우는 술법.

기이한 문양과 형태를 갖춘 빛의 그림들이 사방을 가득 메운다.

“오령귀문진(五靈鬼門陣).”

사방을 가득 메운 술법은 이내 오각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고, 각 꼭짓점에 기이한 형태의 존재들이 자리를 잡는다.

마치 고문 끝에 죽은 것처럼 끔찍한 표정과 몰골로 비틀린 존재들.

그야말로 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술법을 완성시킨 언여휘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하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해 줄게.”

그녀의 손에 생겨난 오각형의 별이 종려의 이마 위에 떠 오른다.

살이 익어 가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새겨지는 별.

“시간 벌이가 목적이 아니야.”

[크우어어어어어어어어!!]

괴성을 지르는 괴물의 근육이 순간적으로 줄어든다.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지던 근육은 압축되어 얼핏 날렵하다는 인상이 들 정도로 부피가 줄었다.

“이쪽의 목적은 애초에 너라고.”

언여휘의 미소와 함께 종려가 땅을 박찬다.

여태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압도적인 속도.

공간 자체를 축소한 것 같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힌 종려가 단숨에 손을 휘두른다.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일격.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공간 자체가 요동친다.

살존이 서 있던 땅까지 짓뭉개지는 압도적인 일격이 바람을 가르고.

‘……이건 좀 위험하군.’

은신술과 신법의 조합으로 그 공격을 피해 낸 살존은 괴물 같은 파괴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건 확실히 위협적이다.

저 파괴력.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치명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휘말리는 순간 끝.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

침착하게 상대를 분석한 살존은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은(隱)의 극의.

물 위에 떠 있는 달처럼.

존재 자체를 숨겨서 아예 다른 영역에 들어간 상태가 된다.

이쪽은 그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기에 적과는 다른 공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

차분한 걸음으로.

살존은 적에게 접근했다.

공격을 피한답시고 멀리 도망치기만 해서는 적을 죽일 수 없으니, 당연히 빈틈이 생겼다면 반격해야지.

훤히 드러난 종려의 등 뒤에 닿은 살존의 단검이 단숨에 종려의 목을 꿰뚫는 그 순간.

마주쳤다.

비틀리며 돌아간 고개, 꿈틀거리는 눈동자.

명백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그 시선에.

살존은 반사적으로 은신을 깼다.

자신의 영역에서 빠져나와 막대한 내공으로 호신강기를 만들어 냈다.

쩌적!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살존의 몸이 날아간다.

쾅!!

오각의 경계선에 닿는 순간, 강렬한 충격이 그녀의 몸을 강타하며 튕겨 나왔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무언가를 삼킨 살존은 본능적으로 땅을 박찼다.

그녀가 쓰러졌던 자리를 덮치는 종려의 주먹이 다시 한번 대지를 터트린다.

“꺄하! 뭐야, 그새 한 방 먹었어?”

드러난 결과에 꺄르르 웃는 언여휘의 소리가 들려왔다.

감탄은 있으나, 놀람은 없다.

기대하고 있던 결과가 나온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웃었다.

“네년…….”

살존의 눈이 살벌하게 빛났지만, 언여휘는 히히 웃으며 턱 밑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었다.

“당신의 최대 무기는 은신. 그걸 없애는 것만으로 전력은 반 이하로 급감하지.”

그래서 그렇게 했다.

준비물은 두 가지.

단순 물리력으로 살존을 위협할 수 있는 병사.

살존의 은신 자체를 봉인할 술법.

“꽤나 재료를 많이 쓰긴 했지만, 살존의 목숨값으론 싼 편이지~.”

십이군을 둘이나 소모하고, 거기에 더해 수많은 제물들을 이용해 만들어 낸 종려(終呂).

상당한 제물을 기반으로 펼친 오령귀문진(五靈鬼門陣).

여기에 쓰인 목숨값이 거의 천에 이르지만.

뭐 어떤가.

살존만 잡을 수 있다면 그 정도 희생이야 값싼 편이다.

“그럼, 잘 가~!”

언여휘가 손을 휘휘 젓는 것과 함께 종려가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사라진 종려가 모습을 드러내고.

허공을 후려친다.

그 직후, 마치 비틀리듯 방향을 꺾은 종려가 다른 곳을 후려친다.

그리고 끊임없이 빈 공간을 휘젓기 시작했다.

휘두르고, 때리고, 찢는다.

아무런 성과도 없어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그 성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하핫! 걸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피와 함께 살존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와중에 기어코 반격을 가했는지 종려의 급소에 단검이 박혀 있었다.

목과 심장은 물론 어깨와 무릎까지.

기어코 살존의 꼬리에 손이 닿았음에도 종려가 마무리를 짓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응응.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은신이 풀려 모습을 드러낸 살존을 바라보는 언여휘는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역시 상성이란 건 좋다.

다른 현경이라면 이런 수법 따위 통하지 않았을 텐데.

오로지 살존에게만 가능한 꼼수.

그렇다고 살존이 약한가?

아니, 반대다.

이런 꼼수에 하나도 흔들리지 않을 다른 현경들은 역으로 살존을 더 큰 위협으로 여긴다.

지금만 해도 살존의 단검은 끊임없이 종려의 급소를 꿰뚫고 있다.

괴물이기에 버티는 것이지 현경이라도 사람이다.

목에 칼이 꽂히면 죽는 건 똑같기에 다른 현경들이 가장 경계하는 건 역으로 살존이었다.

그 밑의 경지에 있는 무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무인에게는 극히 강하지만, 단순한 괴물에게는 오히려 약하다는 특징.

살존을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노력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응응. 역시 필요 없겠어.”

그 아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다 필요 없다.

저런 상성 따윈 없는, 진짜가 될 재목이니까.

강력한 힘에 짓눌린 것처럼 피부와 근육이 터진 팔을 늘어트린 살존을 보며 언여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려, 빨리 끝…….”

이제 더 이상 볼 게 없다고 생각한 언여휘가 종려를 재촉하는 그 순간.

퉁!

결계 밖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언여휘는 고개를 돌렸다.

어떤 녀석이 결계를 두들겼지?

분신으로 펼친 거긴 하지만, 사용한 제물의 양이 상당하다.

어지간한 충격엔 반응도 하지 않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언여휘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지고.

“아, 더럽게 단단하네.”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결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손가락.

순식간에 열 손가락이 들어찬 구멍은 빠른 속도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손이 아닌, 검은 형체의 기이한 손이 설천위의 손 위를 덮고 있었다.

술법의 일종.

그것을 읽은 순간, 언여휘는 상대를 확신했고.

그 너머로 나타난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에 언여휘가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천위, 좀 빠르네?”

자신을 반기는 언여휘의 얼굴과 마주한 설천위는 그대로 손에 힘을 더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 찾았네.”

짜증 날 정도로 자신 있는 미소와 함께 설천위가 결계를 찢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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