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6화
385화-손휘 (1)
최단(最短), 최속(最速)의 일격.
[섬벽권(閃霹拳)]의 절초를 손에 넣은 설천위의 공격은 백유조차 극한까지 집중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그것이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님을 백유도, 설천위도 알고 있었다.
벼락과 같은 일격은 그야말로 신속했으나.
결국, 백유의 예측을 뛰어넘진 못했으니까.
몇 번이나 반복되는 공격을 피하던 백유는 어느새 설천위의 주먹이 돌아가는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을 이용한 접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백유는 단숨에 설천위를 휘감았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폭뢰(爆雷)를 사용하려 했던 설천위는 이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복.”
“현명한 선택이야.”
목 앞에 놓인 단검은 물론 한쪽 팔이 완전히 백유에게 휘감겨 있었다.
만약 억지로 폭뢰(爆雷)를 이용해 튕겨 냈다면 백유는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해 설천위의 팔뼈와 관절을 으스러트렸을 터.
완벽한 패배다.
설천위의 항복에 얌전히 기술을 풀고 내려온 백유는 옷의 먼지를 탁탁 털었다.
“그나저나 놀라운데, 천위. 갑자기 무슨 깨달음을 얻은 거래?”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야.”
작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 설천위는 이내 손을 털었다.
“나한테 맞는 수련법을 찾았다고 해야 하나?”
“어제 스승님이 말한 그거?”
“어, 그거.”
그런 식의 접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으음……. 생각보다 더 빠르구나.]
[본격적으로 수련에 들어가면…….]
혼들의 평가도 상당히 후했다.
특히, 천마 할배는 이 방법을 꽤나 옛날부터 생각해 냈던 것 같지만…….
‘알려 주지 않은 이유도 알겠어.’
재능의 차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지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 방법을 쓰더라도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 자체는 내면세계에서 혼의 형태를 하고 있을 때 습득하면 된다.
문제는 그것을 신체에 체화시키는 것.
육체와 혼은 서로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서로 괴리감이 들면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맞추려 움직인다.
균형을 이루기 위해 변화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육체가 건강하면 혼도 덩달아 강성해지고.
육체가 병들면 혼도 나약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혼이 과하게 강건하면 육체가 약하더라도 굳센 심지로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정신력이나 의지 같은 부분이 이런 쪽에 해당되겠지.
여하튼, 이런 요소 때문에 혼으로 기술을 습득하더라도 육체에 바로 적용하기는 힘들었다.
서로 동화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오로지 육체를 끌어올려 혼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혼이 육체에 맞추면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다.
너무나도 재능이 없는 육체에 강제로 이 방법을 시도했다면…….
‘아마 거의 다 실패했겠지.’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내면세계에서 기술을 습득한다는 방법 자체가 불가능해졌을 수도 있다.
인식이란 무서운 거니까.
영혼이 강제로 끌어올린 기술에 육체가 어떻게든 맞출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다.
천마 할배나 다른 혼들이 미친 듯이 기초수련만을 강조했던 이유를 알 수밖에 없었다.
기술의 체화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부족한 재능을 최대한 커버하기 위해 압도적인 육체의 성능이 필요했던 거다.
10의 목표를 역량이 10인 육체로 달성하기 위해선 가진 모든 걸 사용해야 하지만, 역량이 20인 육체는 5할의 힘만 쓰고도 가능해진다.
그것을 노린 거겠지.
뭐, 그런 거창한 목표가 없었어도 이쪽은 선택지가 없어서 육체 단련을 거듭했겠지만.
솔직히 지금까지 이 악물고 해 온 것도 나중에 체력이라도 좋아야 살 확률이 오를 것 같아서였으니까.
“몇 가지 더 실험해 보면, 꽤나 도움이 될 것 같아.”
“그건 다행이네.”
축하해 주는 백유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설천위는 다시 자리를 잡고 연습을 시작했다.
어젯밤 손휘의 분신을 상대로 섬벽권을 엄청나게 연습해 꽤나 숙련도를 끌어올렸지만, 역시 체화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특히 절초(絶招).
벼락과 같은 속도와 힘을 어떻게든 흉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솔직히 말해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유가 주먹이 돌아오는 그 순간을 노려 파고들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런 것조차 불가능한 최속(最速)의 공격이어야 제대로 된 [섬벽(閃霹)]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내면세계에서 연습을 좀 더 하고, 완전히 육체에 체화시키면 가능해질 거다.
상대가 속도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최속(最速)의 공격이.
‘……재미있네.’
이게 재능 있는 놈들이 무공을 배우는 기분인가.
배우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 오랜만이다.
술법을 배울 때 같은 느낌이야.
섬벽권의 초식을 연습하며 피식피식 웃던 설천위는 어느새 해가 떠오른 것을 확인하곤 수련을 멈췄다.
즐거운 수련도 좋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술법을 일으켜 몸의 땀을 씻어 낸 설천위는 백유와 인사하고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조금 챙겨 가야 할 것들이 있다.
* * *
백수아가 잠들어 있는 동굴의 방.
석관 앞에 선 설천위는 가만히 백수아를 내려다봤다.
살존의 딸 아니랄까 봐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백수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상태는 어때요?”
[꽤나 위험한 상태다.]
하지만 평온해 보이는 표정과 달리 그 몸은 상당히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재(災)급의 악귀에게 몸과 혼의 일부가 먹힌 상태다.
혼만 악귀에게 먹혔어도 그 여파로 육체가 병들고 무너졌을 텐데, 육체까지 일부 먹힌 상태면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상태에서 강제로 손휘를 떼어 내는 순간, 백수아는 혼과 육체에 큰 타격을 입고 무너지고 말 것이다.
무너지게 되면 찾아오는 결말은 하나뿐이다.
죽음.
구할 수 없었다는 결과만이 남는다.
“후, 그럼 시작하죠.”
그것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준비를 해 왔다.
살존의 수업을 들으며 무공을 닦은 것도, 손휘의 분신을 괴롭힌 것도 전부 그 일환일 뿐.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를 할 생각이다.
설천위가 신의에게 몸을 맡기자, 신의는 미리 준비해 둔 침을 꺼냈다.
거침없이 찔러 넣는 침.
얇은 소복 너머로 보이는 백수아의 육체를 정확하게 짚어 신의는 침을 놓았다.
그렇게 침을 놓는 게 끝나고, 다시 육체의 주도권을 챙긴 설천위는 조금 물러나서 여러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살수들이 열심히 구해 온 재료들.
탕약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들도 있으니 지금 당장 시작하진 못하겠지만, 내일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는 게 좋다.
점검도 해 봐야 하고.
물론 거창한 건 아니다.
그냥 확실하게 일어날 전투에 대비한 약간의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술법을 펼치는 것일 뿐이다.
말뚝을 박고, 부적을 붙이고, 주문을 새기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침을 뺄 시간이다.]
“그래요?”
그럼 빼야지.
신의의 말에 다시 석관에 다가간 설천위는 조심스럽게 백수아에 몸에 놓인 침을 회수했다.
차분한 손길로 하나둘 회수하고 있으니…….
“…….”
“……안녕?”
눈을 뜬 백수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애초에 이러려고 침을 놓았던 거긴 한데…….
너무 빠른데?
[으음, 생각보다 이 아이의 정신력이 더 뛰어난 것 같구나.]
아, 그런 핑계로 빠지시겠다?
신의(神醫)가 으이?
환자의 상태도 제대로 못 읽어서 으이?
이런 실수를 하고 으이?
설천위가 속으로 신의를 질책하던 그때.
“……누구신가요?”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사람을 치유한다는 느낌이 드는 포근한 목소리.
살존의 목소리는 묘하게 색기가 담겨 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이다.
살존도 젊었을 땐 이런 목소리였으려나.
생각보다 더 좋은 목소리를 짧게 감상한 설천위는 백수아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대답했다.
“당신을 치료하러 온 사람.”
“……그렇군요.”
살짝 웃으며 다시 시선을 돌리는 백수아.
그 모습에 설천위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수월화(水月花).
웃지 않는 월아(月娥).
그녀가 작게나마 웃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고.
“예쁘네.”
“……네?”
“웃으니까 예쁘다고.”
솔직한 감상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뻤다.
피식 웃으며 백수아를 칭찬한 설천위는 그대로 백수아의 수혈을 짚었다.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다시 잠드는 백수아.
깨어난 김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살존과도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쯧, 벌써 변하기 시작했군.’
백수아가 정신을 차린 것으로 손휘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영력의 변화로 느껴졌다.
혼과 육체가 연결되어 있으니.
백수아를 깨우기 위해선 반드시 따라오는 리스크.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백수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바로 재웠으니 손휘의 움직임도 조금은 굼떠졌을 터.
“내일이면 되나.”
어젯밤 살존에게 재료가 전부 준비되었다고 들었다.
탕약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어젯밤부터 제조에 들어갔으니 내일쯤엔 전부 완성이 될 터.
남은 시간은 앞으로 하루 정도.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낸다.
백수아를 깨우는 건 최후의 최후.
다른 준비가 전부 끝난 뒤다.
백수아의 상태를 가만히 살핀 설천위는 이내 챙겨 온 짐들을 가지고 손휘의 분신이 봉인되어 있는 공동으로 향했다.
널찍한 공간에 놓여 있는 봉인.
네 개의 기둥 안에 있는 불길은 이미 그 힘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다.
설천위가 이곳에 왔을 때보다 훨씬 약해진 불길.
예상했던 일이고, 어느 정도 유도했던 일이다.
부적으로 가득 찬 바닥 위에서 설천위는 검을 꺼냈다.
“후.”
가볍게 호흡을 고르고, 불러낸다.
“청아.”
“네. 주인님.”
“밖을 지켜 줘.”
“네.”
순순히 고개를 숙인 청아가 공동을 나간다.
그녀가 백수아를 지켜보며 저쪽의 봉인을 지켜 줄 거다.
술법적 능력이 있으면서 배신의 걱정이 아예 없는 청아만이 가능한 역할.
그녀가 힘내 주길 바라며 설천위는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절(絶)!”
짧은 주문과 함께 검을 내려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찍는다.
단숨에 바닥을 파고 들어간 검의 검신이 반절 이상 사라지고.
[크아아아아아아!! 네노오옴! 결국 저질렀구나아아아!!]
분신의 끔찍한 비명과 함께 지독한 사기가 공동 전체에 넘실거린다.
봉인 속 불길은 이젠 거의 꺼지다시피 불씨만 겨우 남았고.
기둥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단의 중앙.
무릎을 꿇은 상태로 묶여 있던 분신이 속박을 뜯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강렬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그 눈동자에는 강렬한 분노와 살의가 가득했다.
그것들이 전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끼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느새 분신의 발악에 기둥들은 전부 쓰러졌고,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에게서 벗어난 분신이 으르렁거리며 설천위를 노려봤다.
내면세계에서 당한 게 너무 많아 억지로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분신이었지만…….
“뭐 해? 안 덤비고?”
[크아아아악!]
설천위의 장난스러운 도발에 발작하듯 몸을 날렸다.
땅을 박차고 뛰어가진 않는다.
이미 인간을 벗어난 존재이기에 단숨에 연기로 화한 분신은 그대로 공동의 천장까지 솟구쳐 손을 뻗었다.
난폭하게 솟구치는 영력.
그것이 순식간에 술법을 완성해 나가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엔 기회 따위 없어.”
설천위는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분신의 주위를 장악하기 시작한 흑관이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며 분신의 술법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넌 이미 코인을 전부 다 썼거든.”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항복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