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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82화 (382/624)

제382화

381화-준비는 다양하게 (5)

찌르고, 베고.

단검으로 할 수 있는 공격의 형태는 이 두 가지뿐이다.

그것도 짧은 길이 때문에 변화의 폭이 좁은 것이 바로 단검이란 무기다.

변화의 폭이 좁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고, 금세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변화가 적기에 그만큼 단순하고 깊이가 얕은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무림에서 단검은 암기용 무기라는 인식이 박힌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인은 단검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암기 정도로만 활용하는 편이다.

살수 이외에 단검을 소지하고 다니는 이들이라고 해 봤자 산적 정도일까?

그들은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경우가 많으니 도축용으로 항상 들고 다니는 거다.

대부분의 무인은 주력으로 사용하지 않는 무기.

살수들도 기습용으로 소지하고 있지만, 보통은 단검보다는 좀 더 긴 검을 애용한다.

당장 은검(隱劍)이라는, 살수와 비슷한 검술을 쓰는 유예린조차 보통의 검보단 짧지만 단검보다는 긴 검을 사용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 무림에서 단검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무인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살존은 그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단검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무인들 중 하나다.

투척용으로 사용하는 게 아닌, 손에 쥐고 직접 휘두르는 용도로 사용하는.

진짜 단검술(短劍術)을 익힌 무인.

흔히 비수(匕首)라고도 부르는 단검을 들고 싸우는 무공을 직접 만들고 연마해 사용한다.

그리고 그 무공의 핵심은 철저한 근접 전투다.

은밀하게 접근하는 능력이 있는 살존에게 접근은 아주 손쉬운 작업.

그렇기에 살존의 단검술은 철저한 근접전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캬핫!”

뇌전을 품은 백유의 몸이 섬전처럼 쏘아진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강기의 사용은 금지했지만 내공의 사용은 가능했기에 위천공을 운용한 백유는 그야말로 뇌전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살존의 코앞에 도달한다.

크게 벌린 다리.

작게 굽힌 무릎.

살짝 숙인 허리.

그리고 거의 등 뒤까지 당겨진 주먹.

출발하며 백유가 내지른 기합성이 도달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백유의 주먹이 살존의 복부를 노리고 파고든다.

바위 정도는 우습게 부술 수 있는 일격이 바람을 가르…….

“빠르기만 하다고 능사는 아니다.”

바람만 가르고 끝났다.

한 걸음 나아가며 왼팔로 백유의 팔을 휘감은 살존이 웃으면서 나무 단검을 찔렀다.

백유가 반응하는 그 순간, 이미 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검.

“또 죽었다. 백유.”

“아오!”

대체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포기한 백유는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조잡하다.”

살존의 뒤를 노리고 파고들었던 설천위의 턱에 살존의 발이 꽂힌다.

마치 장난치듯 뒤로 넘긴 발이 정확하게 설천위를 차올리는 모습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조잡하구나.]

[어찌 초절정 무인이란 녀석이 이런 공격에…….]

아니, 진짜 어떻게 저런 공격에 당하지?

이해할 수 없다는 혼들의 반응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겨우 자세를 잡고 땅에 떨어진 설천위가 부들부들 떨었다.

“거의 선동작이 없는 저런 발차기를 어떻게 피해요!”

[그만큼 위력이 약하지 않느냐.]

[가벼운 밀치기 정도이거늘…….]

“가볍긴 개뿔!”

맞는 순간, 턱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는데!

내공으로 보호하지 않았으면 여기 있는 내내 죽만 먹었어야 됐어!

혼들의 훈수에 짜증을 낸 설천위는 잽싸게 몸을 움직였다.

빠른 돌진.

이미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살존과 눈이 마주치고.

“어른의 충고는 깊이 새겨야지.”

살존의 단검이 무자비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버둥치는 설천위의 손발을 묶고, 철저하게 접근한다.

팔을 휘감고, 다리를 걸고, 허리를 감싸는 공격.

이 무림에서 쉽게 보기 힘든 완벽한 초근접 박투.

단검을 손에 쥐고 적의 동맥과 신경을 순식간에 끊어 내는 완벽한 살인술.

“커헉!”

베이고, 찔리고.

설천위의 몸 곳곳에 피멍이 생기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망적일 정도의 실력 차.

순수하게 무(武)를 겨루는 순간, 이 정도의 격차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격차를 설천위는 자신의 몸 상태로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진짜 안마네.’

외상과 내상으로 뭉치고 비틀린 혈과 혈도를 풀어 주는 공격.

적당량의 내공만을 담는 섬세한 솜씨는 물론이고, 인체에 대한 완벽한 이해까지 동반되어야 가능한 신기(神技)다.

물론.

“커헉!”

“슬슬 죽은 횟수가 쉰을 넘고 있는데.”

더럽게 아팠다.

복부에 꽂힌 단검이 빠져나가는 것과 함께 무릎을 꿇은 설천위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제보단 좀 줄었네요.”

“고작 다섯 번이지만.”

히죽 웃는 설천위의 이마를 나무 단검으로 딱 소리 나게 때린 살존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백유, 네게 부족한 건 섬세함이다.”

기습적으로 뒤에서 살존의 목과 허리를 노리고 파고든 공격이 단숨에 튕겨 나간다.

대체 어떻게 막았나 싶을 정도로 동시에 튕겨 나간 양손에 백유의 가슴이 훤히 드러나고.

정확하게 꽂힌 앞차기가 백유를 날려 버렸다.

신음 소리 하나 없이 날아가는 백유를 보며 작게 웃은 살존이 나무 단검을 휘리릭 돌렸다.

“철섬수(鐵殲手)는 괜찮은 무공이지만, 그 한계가 명확한 일류 수준의 무공이지.”

순간, 살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고 느낀 백유가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겨우 멈춰 자세가 한껏 흐트러진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기 힘든 날카로운 발차기.

허나, 살존이 아주 약간 허리를 뒤로 당기는 것으로 발은 턱 밑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실패가 만들어 낸 빈틈을 살존이 파고든다.

“섬세함의 부족은 무(武)의 완성에 아주 치명적이다.”

백유의 쇄골을 단검이 찌르는 것과 동시에, 살존의 다리가 백유의 하나뿐인 발을 걸어 넘긴다.

땅을 지지하던 발이 그대로 무너져 자빠지는 백유.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땅을 짚으려고 했으나.

“하?”

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넘어지는 쪽의 왼팔이 전혀 움직이지 않음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백유의 몸이 땅과 마주했다.

흙바닥을 구르는 백유.

그녀를 보며 살존은 웃으며 단검을 휘휘 저었다.

“인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완벽한 제어를 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방금 뭘 한 겁니까?”

“신경. 인체에는 뇌부터 시작해 몸으로 뻗어 나가는 아주 미세한 관들이 있지. 그걸 정확하게 찔러 마비시킨 거다.”

살존의 담담한 설명에 백유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리인지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한 건 자신의 팔이 마비됐었단 사실이다.

“가르쳐 주십시오.”

“당당한 요구. 좋구나. 제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후후, 웃으며 단검을 소매 속으로 숨긴 살존은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너는 어쩌겠니?”

“배워야죠.”

끙, 소리와 함께 일어난 설천위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웃었다.

“저도 섬세한 건 잘 못하거든요.”

* * *

살존에게 수업을 들으며 설천위의 일과는 아주 단순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수련.

잠깐 백수아의 상태를 보고,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손휘의 분신을 괴롭, 아니 설득한다.

그 뒤에 간단한 식사 후 살존의 수업.

끝나면 밤에는 내일 있을 술법을 준비하고, 취침.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일과를 반복했다.

물론, 약간씩 변화는 있었다.

백유가 슬슬 살존에게 반격을 시작했다던가.

설천위는 여전히 감을 못 잡고 두들겨 맞는 빈도가 늘었다던가…….

혹은.

[네노옴…….]

“어이구, 목소리가 많이 약해졌는데?”

설득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설천위는 축 늘어진 손휘의 분신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생각보다 더 오래 버티네?”

[고작 네놈 따위에게 꺾일…….]

“에이, 그 말은 너무 식상하다.”

손휘의 말을 끊으며 설천위는 공동을 살폈다.

거의 2주.

착실하게 준비한 덕에 이제 슬슬 완성되어 갔다.

“좋아. 그럼 조금 네 의욕을 꺾어 볼까?”

웃으며 한쪽으로 걸어간 설천위는 쪼그려 앉아 부적을 붙이고 있던 청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벌써 하시게요?”

걱정이 담긴 청아의 물음에 설천위는 씩 웃었다.

“보여 줘야지. 그래야 설득이 좀 더 쉬워질 거 아니냐?”

“아, 네. 설득이요…….”

설천위가 손휘의 내면세계에 들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는 청아는 슬그머니 물러섰다.

설천위가 자신에게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혼으로서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청아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러나는 모습에 피식 웃은 설천위는 그대로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영력이 주위로 뻗어 나간다.

설천위가 이 공동에 준비한 술법은 간단하다.

“절(絶).”

우우웅!

설천위의 간단한 주문과 함께 공동 전체가 울리기 시작한다.

화르륵!

손휘를 가둔 봉인 속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지친 얼굴로 일렁이던 손휘가 두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네놈!]

“오, 효과 좀 있나 본데?”

입꼬리를 올린 설천위는 이리저리 손을 뻗어 영력을 움직였다.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정도의 효과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손휘의 분신은 큰 압박감을 느낄 거다.

“어때? 본체와 연결이 서서히 끊기는 기분은?”

[…….]

침묵.

그저 일렁이기만 하는 분신의 모습에 설천위는 히죽 웃었다.

“뭐, 대답하기 싫으면 말고.”

설천위가 손을 휘젓자, 흘러나오던 영력이 다시 부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일시적으로 본체와의 연결이 거의 끊겼던 분신이 날카롭게 눈을 부라렸지만, 설천위는 가소롭다는 듯 무시했다.

언여휘의 법구에 당해 묶인 악귀 따위가 눈을 부라린다고 한들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까.

“그럼 이게 완성된 뒤에 보자고, 손휘. 물론.”

희미한 살기를 품고, 설천위는 공동을 나서며 손을 흔들었다.

“그 뒤에는 지금과 같은 거래는 없을 거야.”

* * *

“준비는 잘되고 있다는 건가?”

늦은 밤.

살존의 방을 찾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틀은 잡히고 있어요.”

“……그래, 그러면 됐다.”

희망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고개를 끄덕인 살존은 이번엔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일살을 바라봤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수도 있어.”

“보고하겠습니다.”

살존의 신호에 살짝 고개를 숙인 일살은 반대쪽에 앉아 있는 백유와 설천위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두 분께 중요한 일이 될 보고입니다.”

중요한 일이라.

이곳에 온 지 고작 2주 지났을 뿐이다.

무림은 넓다.

판타지 세상처럼 통신 수정구 같은 것도 없으니 정보의 확산이 매우 느리다.

술사가 있긴 하지만, 판타지 속 마법사처럼 효율 좋은 게 아니라서 어쩔 수 없었다.

정보가 퍼지고 결정이 이루어지기까지도 족히 두세 달은 걸리고, 행동에 들어간다고 쳐도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려면 또 몇 개월이 걸린다.

설천위가 맨 처음 무혈 지부로 파견이 결정됐을 때, 괜히 주위에서 좌천이라고 여겼던 게 아니었다.

이 넓디넓은 무림에서 무림맹이라는 중심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에 뒤처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기에 이곳에 온 뒤로도 설천위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살존이 이쪽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퍼져 나가고, 백유와 살존이 모습을 감췄다는 것까지 알려지려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

적들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즉시 움직이진 않을…….

“정파가 움직였습니다.”

“……네?”

“정확히는 설 공자, 당신의 가문이 움직였습니다.”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설천위에게로 향했다.

호남설가(湖南雪家).

그들이 움직였다.

그 말에 설천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도 움직이셨습니까?”

그건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

“예.”

오쉣.

설천위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 말과 함께 설천위는 두 눈을 감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북존(北尊)이 움직였다.

사존(邪尊)이 없는 지금, 사천맹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움직일 터.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재료는 모아 왔습니까?”

“예, 거의 다 모았습니다. 앞으로 일주일이면…….”

“좋습니다.”

일살의 대답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일주일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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