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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78화 (378/624)

제378화

377화-준비는 다양하게 (1)

“선배의 조언을 들었을 뿐이라니까…….”

빨개진 이마를 문지르며 입술을 삐죽인 백유는 저 멀리 앉아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천위, 몸 상태는 어때?”

“누구 덕에 상처가 다시 터질 뻔했지만, 일단은 괜찮아.”

찌뿌드드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설천위는 자신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백유에 밀리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

한 번 보면 눈을 떼기 힘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 살존.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설천위의 눈길에 찻잔을 내려놨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이미 몇 번이나 들었으니 그만해.”

고개를 저은 살존은 담담한 눈빛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왔어.”

“네. 그러네요.”

“이유는…….”

“진행이 예상보다 빨라졌다는 거겠죠.”

“……그래.”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살존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약속보다 빠른 상황이지만……. 준비는 됐을까?”

살존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조심스러운 물음.

그 모습에 설천위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 만한 수준은 됐어요.”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수준까진 도달했다.

“시간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시도하는 게 맞겠죠.”

힘을 키우길 기다리다가 아예 때를 놓치는 수가 있다.

그럴 바엔 지금이라도 시도하는 게 맞다.

“지금 바로 움직이죠.”

* * *

“……넌 왜 따라오냐?”

“두 눈으로 봐야 할 것 같아서?”

마차 안.

자신의 옆에 달라붙어 있는 백유의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부상도 심한 애가 왜 따라오는 거야.

“천위, 설마 나만 두고 갈 생각이었어?”

“……그야 너랑은 관계없는 일이니까.”

뾰로통한 느낌의 얼굴로 묻는 백유의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저번의 일 이후로 얘 태도가 좀 변한 것 같은데…….

“관계없다니. 천위, 네가 하는 일은 전부 나랑 관계있어.”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어머, 헛소리라니. 나 상처받을 것 같아.”

“진짜 떼어 놓고 간다.”

“에이, 농담도.”

짝!

“커헉!”

아니, 얘는 무슨 손힘이……!

어깨를 후려친 매콤한 손맛에 그만 마른기침을 내뱉은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리고 백유를 바라봤다.

“진짜, 무슨 생각인데? 거기 남아서 해야 할 일도 많잖아.”

“많기는, 대략적인 지시는 전부 내려 뒀어.”

장난기를 지운 백유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 있는 게 더 중요해. 이건 확신이야.”

“……그래.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게 맞겠지.”

단순한 변덕으로 따라온 것은 아니라는 그 눈빛에 설천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놀이는 끝난 건가?”

“……그냥 놀이 아닐까요?”

“남자, 여자가 달라붙어서 하는 놀이는 전부 사랑놀이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뭔가 청소년에게 보여 줄 수 없는 놀이 같은데요?

묘하게 장난기가 늘어난 살존의 모습에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백유를 밀었다.

“작업해야 하니까 저기로 가 있어.”

“네~.”

별 불만 없이 살존 쪽으로 이동한 백유는 살존의 옆에 앉아 빤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거기에 더해 살존도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

두 사람의 강렬한 시선에 묘한 어색함을 느끼며 설천위는 품에서 종이와 붓을 꺼냈다.

지금 하는 작업은 당연히 부적 제작이다.

흑룡단주로 취임하고, 뭐 이것저것 바빠서 술법은 거의 배우지 못했다.

특히, 백화단주에게 직접 배워야 하는 술법 같은 경우엔 두 사람 다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흉내 내는 수준이 전부였고.

하지만, 그럼에도 틈틈이 조사하고 익힌 술법이 있었다.

이건 그 술법을 위한 준비다.

다른 술사에게 배운 게 아니라 서적을 뒤져 찾아낸 것이라 조금 불안하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터.

무엇보다 이게 없어도 충분히 할 만하니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진짜 말 안 해 줘요?”

가만히 부적을 그리고 있으려니 백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백유라도 살존에게는 존대를 하는구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할 테니, 그때 설명해 주지.”

백유의 질문을 회피한 살존은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네 낭군은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묘한 눈빛.

당장 상황 해결을 위해 덮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문을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어색하게 웃은 설천위는 붓을 움직였다.

“다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봤다곤 절대 말 못 하지.

* * *

마차로 사흘, 도보로 이틀.

살존이 직접 설천위와 백유를 안고 이동한 이틀이기에 그 거리는 아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멀 것이다.

은신과 경신법으로 무림일절을 논하는 살존이니까.

그렇게.

“여기가…….”

“살궁(殺宮).”

이 무림엔 몇 개의 살수 단체가 있다.

자잘하게는 세는 것도 힘들 정도로 많았지만, 전부 몇몇 단체의 하부 조직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살수 단체는 몇 개 존재하지 않는다.

무림에서도 유명한 살수 단체가 몇 있지만, 그중에서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살수 단체는 오직 하나뿐이다.

살궁(殺宮).

그 어떤 대상이라도 암살 가능하다고 전해지는, 최흉최악의 살수 단체.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살수들의 집단…….

“꺄르륵!”

“돔황챠!”

“야! 날붙이 던지지 말랬지!”

“그 정도는 피해야지!”

……살수 집단?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분지.

그 안에서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백유는 살존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살궁은 말 그대로 궁(宮)이야.”

살존 대신 입을 연 설천위는 슬그머니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아이에게 당과를 흔들었다.

대체 저 당과는 어디에 숨겨 뒀던 거지.

백유가 미간을 찡그리는 사이, 아이와 당과로 장난을 치다가 끝내 아이에게 당과를 쥐여 준 설천위는 웃으며 일어났다.

“장원. 살존과 그 휘하의 살수들이 도망쳐 만들어 낸 그들의 공간.”

“……이런 광경은 상상도 못 했는데.”

살수와 가족.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살수에게 필요한 제1의 덕목은 감정의 제거다.

공포심을 없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강자를 처리할 때 스스로를 미끼로 던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등등…… 의 이유는 사실 부차적인 것이다.

어쩌다 보니 얻는 이득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살행은 빠르고 은밀하게 이뤄진다.

살수가 목숨을 내던져 미끼가 되어야 적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 자체가 임무 실패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살수들의 감정을 죽이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다.

죄인을 베는 사형집행인도 살인이 거듭되면 악몽에 시달린다.

하물며, 죄 없는 대상을 암살하는 일에 죄책감이 따라오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 죄책감은 칼날을 무뎌지게 만들고, 독을 묽게 만든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살수 단체에선 살수를 기를 때 감정을 죽인다.

대상에게 가족이 있든 없든.

대상이 죄가 있든 없든.

그런 걸 신경 쓸 필요 자체를 없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살수들은 당연하게도 감정이 없고.

감정이 없으니 욕구도 희미해진다.

감정도, 욕구도 없는데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힘들 거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살행의 힘겨움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공감의 동물이고 자신이 죽인 대상의 상황에 감정이입이 가능해지는 순간, 살행은 일이 아닌 죄가 된다.

그렇기에 살수들은 가족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만들 수 없다.

만들어서도 안 되고.

“살궁이 의뢰를 철저하게 가려 받는 이유가 있지.”

“죽여도 되는 이들만을 죽이기 위해서이지요.”

설천위의 말에 어느새 그들 사이에 스며든 사내가 대답했다.

“오는 길 고생하셨습니다.”

“저희야 뭐, 살존 선배님의 손에 들려왔는데요.”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자신의 앞에 선 사내를 바라봤다.

검은 야행복을 입은 사내.

“살궁의 일살이라고 합니다.”

“내 부하 중 유일한 독신이지.”

“……궁주님.”

“내 밑으로 기어들어 온 녀석을 가르쳐 놨더니 눈빛하고는.”

히죽히죽 웃는 살존의 모습에 일살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아뇨.”

일살의 말을 끊은 설천위는 살존을 바라봤다.

“지금 바로 상태를 보죠.”

* * *

살궁을 둘러싼 기암절벽.

그중에서도 가파른 절벽의 중간에 있는 동굴.

그 동굴의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가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적당한 크기의 방 안은 은은한 빛을 내는 돌들이 박혀 있었다.

덕분에, 선명하게 보이는 내부에는 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돌을 재료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관.

그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살존은 부드러운 손길로 관을 쓸었다.

그녀의 모습에 조용히 그 뒤를 따른 백유는 관 안을 들여다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도 못 했는데, 살존에게 딸이 있을 줄은.”

관 안에 소복을 입고 잠들어 있는 여인은 살존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 아름다움도, 묘한 색기마저도.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여인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의 매력.

언뜻 보면 어려 보이지만, 묘한 분위기에 나이를 쉽사리 짐작하기 힘든 여인.

“봉인은요?”

그런 여인의 모습에 백유마저도 그녀를 빤히 바라봤는데, 설천위는 무심하게 주위를 살폈다.

아름다운 외모에 눈이 가는 거야 당연하지만,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 법.

“봉인은 언여휘에게서 받아 온 도구로 했겠죠?”

“……그래.”

관을 쓸며 짓던 애처로운 표정을 얼굴에서 지운 살존은 특유의 미소와 함께 앞장섰다.

“일에 대한 보수로 봉인을 위한 도구들을 받았어.”

협력 관계를 중간에 끊었으니 거기까지가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게 살존이 예정보다 빨리 설천위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건.”

살존의 딸이 누워 있는 방에서 조금 걸어 도착한 공동.

아까 있던 방과 달리 자연 동굴의 공동을 그대로 사용한 듯한 공간 속에 기이한 제단이 놓여 있었다.

나무로 된 기둥들이 박혀 있고, 그 안에는 기이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 속에 있는 석제(石製) 제단 위.

[키익, 새로운 손님이군.]

검은 형체로 일렁이는 존재가 입으로 보이는 구멍을 비틀었다.

[살존.]

비틀린 입 위에 떠오른 외눈이 살존을 향했다.

[언제까지 발버둥칠 것이냐?]

조소와 함께 내뱉는 목소리엔 분노와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

일그러진 존재.

남은 것은 복수심과 증오뿐인 존재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네 딸을 살릴 방법 따윈 없다.]

살존의 절망이다.

* * *

“음?”

온갖 시체들이 즐비한 공방.

당과를 입에 물고 재료를 만지던 언여휘는 예상치 못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뭐야, 벌써 움직였어?”

이건 생각보다 더 빠른데?

“흐응?”

이건 좋은 소식이네.

뭐가 됐든, 지금 그걸 건드렸다는 것은 설천위가 제정신을 차렸다는 소리니까.

마차로 이동했다는 정보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걸 극복해 낼 줄이야.

역시.

“탐이 나.”

이젠 단순히 그 몸을 가지는 것으론 부족했다.

설천위라는 존재.

그 괴물 같은 재능을 손에 넣지 않으면…….

“아무래도 이번엔 그 녀석들에게 손을 좀 더 보태야겠네.”

당과를 씹어 부순 언여휘는 히죽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병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다만.

“지금의 상태론 무리일 텐데…….”

지금 설천위의 상태로는 그 녀석을 처리하는 건 무리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빌려준 제기의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설천위라고 해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녀석이다.

“흐음, 도와줘야 하나?”

그 재능을 이대로 버리는 건 아까운데…….

잠시 고민하던 언여휘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게 죽으면 거기까지 아니겠는가?

운명이란 거대하게 흘러가는 것.

그 흐름에 휘말려 죽어 버리는 놈은 하늘을 열 자격이 없다.

재앙 정도야 짓밟고 넘어와야 비로소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법.

“기대되는데…….”

다시 만날 날, 너는 과연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짜릿한 흥분으로 언여휘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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