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73화 (373/624)

제373화

372화-흑수(黑獸) (7)

쏟아지는 벼락.

살을 태우는 강렬한 열기.

그 속에서 흑수 단주는 광소를 터트렸다.

“하늘? 하늘이 되겠다고 했느냐!!”

그 오만함에 피가 솟구치고 이가 갈린다.

몸 안에 흐르는 뇌전의 통증조차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 주둥이를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마!”

화가 치밀었다.

지금 사파의 꼭대기에 선 그 괴물조차 스스로를 하늘이라고 칭하지 않거늘.

저 어린것이 감히 뭐라 하는가.

땅을 박찬 흑수 단주의 몸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벼락에 온몸이 지져져 살 익는 냄새가 진동하는 중상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빠른 움직임.

빠르면서도 정확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은 고작해야 통증 따위는 이 괴물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여태까지 보았던 것과도 전혀 다르지 않은, 야성적이면서도 잘 제어된 움직임으로 거리를 좁혀 오는 흑수 단주를 향해 백유 또한 맞섰다.

“꺄핫! 못 찢는다면 부서진 네 머리통 위에서 하늘임을 선포할 거다!!”

백유마저 땅을 박차자,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리고 얽히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손발.

막고 때리고.

잡고 찌르고.

주먹과 발차기는 물론, 찌르기와 할퀴기가 총동원된 근접 투술의 정수가 다시 한번 펼쳐진다.

이번에는 당연하다는 듯 사용했던 사파의 치졸한 수 따윈 없었다.

노리는 것은 오로지 적의 사혈과 급소뿐.

단 한 순간도 허술하게 쓰지 않는다.

조잡한 수가 적에게 통하지 않다는 걸 이미 셀 수도 없이 확인했기에.

오로지 최선의 수만을 골라 퍼붓는다.

쿠르릉!

하늘이 울고.

쾅!!

백유와 흑수 단주의 주먹이 맞닿는 순간.

강렬한 벼락이 두 사람을 집어삼킨다.

백유가 동귀어진하려는 듯한 모습.

벼락에 휘감긴 두 사람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주위에 있는 이들마저 눈을 감았다.

주위의 이들이 자신의 전투조차 잊을 정도의 강렬한 빛.

그 한가운데에 있는 두 사람이 멀쩡할 리 없었다.

분명 그래야 할 터인데.

“카학!”

“이건 좀 버겁네.”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백유와 흑수 단주의 몸 전체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자세는 완전히 달랐다.

흑수 단주의 어깨를 움켜쥔 백유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고.

무릎 꿇은 흑수 단주의 벌어진 입에선 짙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네……년……!”

벌어진 입을 악물고 몸을 일으키는 흑수 단주의 어깨를 백유가 강하게 짓눌렀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괴력.

뇌전의 여파로 몸이 굳어 버린 흑수 단주는 더욱 강하게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흑수 단주를 비웃으며 백유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슬슬 끝내자고, 검은 머리 짐승.”

* * *

“마, 말도 안 돼!”

압도적인 전투.

설천위가 만들어 낸 결계 속의 전투를 전부 목도한 오본은 불신을 가득 품고 고개를 저었다.

이럴 순 없다.

“이럴 순 없어!! 흑수 단주가 어찌!”

“없긴 왜 없냐. 설마 우리가 승산도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바닥을 기며 필사적으로 결과를 부정하는 오본의 머리를 설천위는 지그시 밟았다.

“백유는 사파의 하늘에 선다.”

그리고 이건 그 시작이다.

고개를 든 설천위는 흑수 단주를 완전히 제압한 백유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게임 속에서 나오는 백유의 합체 기술.

정확히는 백유가 동료로 뇌전 계열의 최상급 술사를 동행할 때 발동 가능한 연계기.

[흑뢰천역(黑雷闡域)]

술사가 만들어 낸 뇌전의 영역에 백유가 흑뢰를 풀어내는 것으로 완성하는 최상급 버프.

영력을 품고 방출되는 뇌전은 끊임없이 적을 괴롭히고, 반대로 백유의 신체 능력과 내공을 일시적으로 강화시킨다.

단숨에 전투력을 역전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필살기.

문제는 너무 사기 기술이라 사용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조건 자체가 너무 까다롭다.

뇌전 계열 최상급 술사?

이 무림에 세 명 정도 있을가?

그중 하나는 정파의 백화 단주이니 논외로 치고, 나머지 둘은 적이거나 은거해 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기술이다.

술사 하나를 초기부터 붙잡고 육성해야 후반에 가서 전투당 겨우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술사의 역량이 부족하면 유지 시간도 얼마 되지 않으니 활용이 극히 어려운 기술이다.

거기다 백유가 위천공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익혀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으니 어렵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게임에 나온 기술이기에 정확한 발동 원리를 몰라 백유에게 설명해 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영역을 펼쳐 놓고 혹시라도 안 되면 개입할 생각이었는데…….

흑뢰(黑雷)라는 이름에 혹시 패기와 관련이 있나 해서 패융을 붙여 놓길 잘한 것 같다.

저 이름이 패기의 떡밥일 줄은 몰랐지.

게임에서 백유는 가볍게 해 본 게 전부라서 저 기술은 엔딩쯤에 겨우 한 번 써 본 게 전부니까.

혹시 몰라 백유가 화경에 오른 걸 확인한 뒤로 뇌전 계열 술법을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이쪽이야 수 속성 술법도 쓸 줄 아니까 구름 만드는 것 정도야 간단했고, 구름을 만들 수 있으니 뇌전 계열 술법을 증폭시키는 것도 간단했다.

“생각보다 쉬웠지.”

[……재능이란 참으로 비정하구나.]

[이 재능이 1할만 무공에 있었어도…….]

왜 거기서 혀를 차냐고.

안쓰러움이 담긴 혼들의 독백에 코웃음을 친 설천위는 다시 백유를 바라봤다.

검은 뇌전을 품은 백유의 손이 흑수 단주의 머리 위에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있나? 후배로서 그 정도는 들어주지.”

“……큭, 크하하하하하! 네년도 결국 위선자구나!”

비틀린 웃음을 토해내는 흑수 단주의 두 눈이 지독한 살기로 번들거린다.

“네년도, 그놈도! 전부 똑같은 위선자다! 사도(邪道)의 우두머리가 될 자격이 없단 말이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알잖아?”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채 백유는 뇌전을 품은 손으로 흑수 단주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긴 녀석이 정하는 거야. 그게 사파의 법이잖아?”

백유의 미소와 함께 강렬한 뇌전이 흑수 단주의 머리를 집어삼키는 순간.

“그건 좋군.”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백유의 몸이 튕겨 나왔다.

“백유!!”

단숨에 땅을 박찬 설천위가 그녀를 낚아채고, 손을 휘둘렀다.

검은 관이 방패가 되어 순식간에 설천위를 감쌌지만.

“이렇게 인사하는 건 처음이군.”

거칠게 파고든 손이 검은 벽을 단숨에 무너트린다.

마치 두부를 부수는 것처럼 간단하게.

붉은 무복을 입은, 흉터투성이의 청년이 담담한 눈동자로 설천위와 마주했다.

“혈천이라고 한다.”

강렬하게 본능을 자극하는 죽음의 향기.

아니, 피 냄새.

상대에게서 풍겨오는 강렬한 악취에 설천위는 억지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흑성.”

“가명인가? 나쁘지 않군.”

고개를 끄덕인 혈천은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앞을 가로막은 흑관을 완전히 분쇄할 뿐.

[놈이다.]

그 모습에 조금 늦게 반응한 현태중이 경고했다.

긴장감이 서린,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

현태중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경직된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금방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그렇다. 너와 만나는 것은 조금 더 힘을 기른 뒤일 거라고 생각했지.”

순식간에 자신과 설천위 사이에 있는 검은 벽을 전부 제거한 혈천은 무감정한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여자의 말이 맞았군. 지금이 적기야.”

“그 여자?”

혈천에게 접근해서 이쪽의 상황을 알린 여자가 있다고?

어떻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렸지만, 혈천은 딱히 그의 궁금증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혈천이 말없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강렬한 압박감에 설천위는 즉시 몸을 날렸다.

설천위가 몸을 날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터져 나가는 바닥.

그것이 단순한 혈기의 방출이라는 것을 깨달은 설천위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백유를 안은 손에 힘을 더했다.

‘……무리다.’

백유가 멀쩡했다면, 아마 할 만했을 거다.

[흑뢰천역(黑雷闡域)]을 발동시켜 백유가 메인을 맡고 이쪽이 보조하면 싸울 만했을 거다.

그렇기에 적은 기습으로 백유를 노린 것이겠지.

염천의 기억에서 나온 판단인지.

단순한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혈천이라는 저 혈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한 수로 전투를 시작했다.

설천위와 혼들의 경계조차 뚫을 수 있는 그 속도와 은밀함을 십분 활용한 결과다.

자아가 없는 혈귀일 때도 전투에 지쳤다곤 하나 설천위의 감각을 뚫고 접근했던 전적이 있던 녀석이다.

아마 혈귀로서 가진 특색일 터.

거기다 염천의 기억과 힘이 더해진 상태라…….

“더럽게 귀찮겠네.”

양손으로 백유를 안아 들며 설천위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도망쳐야 하나?’

선택의 순간이 왔다.

첫 기습을 받고 백유는 기절한 상태.

목을 노린 일격의 위력을 본능적으로 줄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워낙 몸 상태가 안 좋았기에 그대로 기절한 것 같았다.

의지만으로는 더는 버틸 수 없는 육체의 한계에 도달한 결과.

이런 백유를 그냥 두고 싸운다?

흑수 단주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인데?

죽기 직전까지 갔어도 화경급 무인이다.

정신만 차리면 난전의 틈을 타 기절한 상대 하나쯤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백유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나?

‘무리지.’

상대는 만전의 상태로 몸을 회복시킨 혈귀다.

웬만한 화경급 고수 정도는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그냥 이길 수 있는 강자.

각종 술법을 동원할 수 있는 설천위에게 약간의 상성적 우위가 있다고는 하나 지금의 상황은 썩 좋지 못하다.

설천위는 이미 힘을 소모할 대로 소모한 상태에서 내상마저 전부 나은 게 아니니까.

심지어 [회복]을 틈날 때마다 돌려 내공의 여유도 별로 없는 상태다.

승산은 1할 미만.

전투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렇다면, 도주하는 것이 최선인데…….

“도망칠 건가?”

담담하게 물어오는 혈천의 모습에 설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마치 넌 도망칠 수 없다는 표정.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점에서 설천위는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여태까지 쌓아 온 백유의 카리스마가 무너진다.

사천맹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던 신흥 강자에서 패배한 머저리가 되어 버린다.

백유를 직접 겪은 이들이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지만, 그저 소문만으로 상황을 접하는 이들은 다르다.

백유가 튼튼한 동아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바로 등을 돌려 버릴 것이다.

아무리 백유라고 해도 다른 이들의 지지 없이 사천맹의 정상에 오를 순 없다.

그 사존 구령학조차 젊은 시절엔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내며 지지 기반을 쌓았기에 절대 권력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거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은 백유에게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이 될 터.

그걸 혈천이 알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대체 어떤…….’

누가 뒤에 있는 거냐.

이를 악문 설천위는 슬슬 시작하자는 눈빛을 보내는 혈천의 모습에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부동심] 덕에 진즉에 평정심이 돌아온 상태였지만, 의식적으로 마음을 한 번 더 가라앉혔다.

“오냐. 싸워 주마.”

수백의 흑관이 설천위를 휘감기 시작한다.

“내가 너 같은 녀석 전문이거든.”

* * *

“히히히, 여전하네. 응, 여전히 괴물 같아.”

이 상황에서도 할 만해 보인다는 점이 너무 괴물 같았다.

백유를 품에 안은 채 수백의 흑관을 만들어 내며 사방을 빼곡하게 채우는 설천위의 모습을 보고 언여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황실 놈들이 포기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갈 정도야.”

뭐, 그놈들은 워낙 바쁘니 까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자, 그럼 보여 줘.”

남창에서도 높은 기루의 지붕 위.

언여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네가 통천(通天)에 필요한 인재인지 증명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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