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72화 (372/624)

제372화

371화-흑수(黑獸) (6)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 중 상당수는 모방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무공도 마찬가지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강자를 모방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이 세상에 인간보다 강한 생물은 수도 없이 많다.

그렇기에 상형권(象形拳)이라는 무공의 한 계통이 탄생했고, 이는 수많은 무공의 뿌리가 되었다.

소림의 무학에도 상형권(象形拳)이 상당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무인들은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따라 했다.

그런데, 과연 무인이 동물의 움직임만을 관찰하고 응용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무당은 부드러움을 추구하며 물과 바람을 좇았고.

황보세가는 강함과 굳건함을 추구하며 바위와 태산을 좇았다.

이 외에 수많은 문파와 세가의 무공에 그들이 자연을 응용한 증거가 남아 있다.

갈망하고, 동경하고, 가져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거대한 자연의 일부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벼락이라는 불가해한 공포를 사람이 동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뇌전이라는 힘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그런 의도에서 시작된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뇌전이라는 속성을 흉내 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흉내 낸다고 한들 제어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제대로 된 벼락을 품을수록 그 벼락이 사방으로 튀어 본인의 몸을 망가트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무림에는 뇌기(雷氣)를 다루는 무공이 거의 없다.

남궁세가의 천뢰검법이 그나마 뇌기를 다루는 무공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 연공 과정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남궁세가에서도 익히는 이가 드물 정도라 한다.

그런데, 이 뇌기를 품은 무공으로 사파의 정상에 선 이가 있다.

바로 사존(邪尊) 구령학.

뇌전과 같은 속도에 적을 산 채로 숯덩이로 만드는 강력한 뇌기.

그야말로 공포의 존재가 되어 사파의 하늘에 우뚝 선 그는 이 무림에서 드문 뇌기를 다루는 고수였다.

많은 이들이 그런 그에게 의문을 품었다.

대체 그는 어디서 뇌기를 쌓는 무공을 얻었을까?

그는 어떤 방식으로 뇌기를 제어하길래 저리 멀쩡할까?

까딱 잘못하면 본인조차 숯덩이로 만들어 버리는 위험천만한 힘인데, 어찌…….

수많은 이들이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어느 누구도 답을 얻진 못했다.

그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가 있는 이도 드물었지만, 물어본다고 한들 그가 제대로 대답해 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답을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의 무공을 배운 백유다.

비급 하나 던져 주고 간 무책임한 스승 덕에 백유는 모든 것을 직접 겪어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구령학의 독문무공은 위천공(危天功)이라 불리는 무공이다.

특이한 점은 무공의 이름에 뇌전을 의미하는 글자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보통 뇌기(雷氣)를 다루는 무공은 반드시 이름에 그걸 암시하는 글자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구령학의 무공에는 그게 없었다.

그리고 그 무공을 직접 익힌 백유는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정말 더럽게 고통스러운 무공.

하늘을 위태롭게 한다는, 역천의 심지를 품어 위천(危天)인 것이 아니라.

하늘이 샛노랗게 변하는 것이 무공을 익힌 당사자가 위태로워져서 위천(危天)인 듯싶었다.

극악의 고통이 찾아오는 연공 과정.

‘아, 이래서 사람들이 뇌기를 쓰는 무공을 안 익히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극악의 고통 속에서 무공을 연마하며 백유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무공은 구령학이 직접 만든 거구나.

뇌기를 쌓는 내공법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효율만을 추구한 심법이다.

뇌기를 제어하고, 뇌기를 쌓는 것에만 모든 것을 집중시킨 구결과 운공법.

뇌기로 인한 고통?

참으면 된다.

뇌기의 제어에 실패해 찾아올 부작용?

제어에 실패하지 않으면 된다.

다른 무공은 익히는 사람을 배려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는 데 힘쓰지만, 위천공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강하고, 빠르다.

익히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고 위험하기에.

연공의 속도도 빠르다.

전형적인 사파의 무공.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과정을 이겨 내고 위에 올라선 무인이 직접 수정을 거쳐서 더욱 깊이를 더하는 무공.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

“캬핫!”

익히는 자의 인내뿐이다.

전신을 내달리는 뇌기를 통제하며 백유는 거침없이 발로 흑수 단주의 턱을 차올렸다.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

몸을 휘감은 뇌기는 그야말로 극한까지 그녀의 몸을 쥐어짰다.

속도는 끝을 모르고 올라가고.

반응은 그녀가 인지하기도 전에 이루어진다.

뇌기가 근육을 쥐어짜고, 뼈를 지지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더 빠르게, 더 강렬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풀어냈다.

흑수 단주의 몸에 때려 박은 주먹만큼이나 이쪽의 몸에 박힌 흑수 단주의 주먹도 많았다.

날카로운 손끝에 옷이 찢어지고, 살이 파였다.

흐르는 피를 잔뜩 머금은 망가진 무복이 무겁게 질척인다.

죽음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출혈이든.

골절이든.

자상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대로 가면 죽음이 찾아온다.

그런 예감이 든다.

그렇기에.

“하하하하핫!”

백유는 미친 듯이 웃었다.

본능에서 끓어오르는 환희를 미친 듯이 쏟아 냈다.

우득!

움켜쥔 흑수 단주의 손목을 으스러트린 순간.

뿌득!

강렬하게 꽂힌 흑수 단주의 발차기에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 느껴졌다.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백유도, 흑수 단주도 입꼬리를 비틀었다.

“캬학!”

이미 인간의 언어 따윈 잊은 듯 괴성을 지르는 흑수 단주와.

“좋네!!”

극한의 전투에서 차오른 흥분에 날뛰는 백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라고는 보기 힘든 처절한 싸움에서 백유가 품은 뇌기는 점점 더 힘을 더해 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억지로 버티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했음에도.

수십 년의 경험 차이로 인한 격차에도.

이상하게 버틸 만했고.

이상하게도 점점 더 할 만해졌다.

몸 안에 가득 차오르는 뇌기의 고통마저 흐릿해지는 그 순간.

쿠르르릉!

거대한 굉음이 그녀의 머릿속을 마구 뒤흔들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벼락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아아.”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바본가.”

지금 머리 위에 있는 구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가 왜 시간을 벌라고 했던 것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패융!!”

그녀의 부름에 여태껏 그녀의 몸을 휘감고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 내던 패융이 단숨에 하늘로 솟구친다.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던 균형을 깨는 움직임.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이 아님을 아는 흑수 단주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무슨 속셈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물러선다?

이성적인 판단이겠지만, 그런 선택으로 갈 길을 정할 거였다면 이런 무공을 익히지도 않았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달려드는 흑수 단주의 손이 순식간에 백유에게 닿았다.

뇌전을 휘감은 백유에게도 밀리지 않는 빠른 속도를 이용한 접근.

순식간에 백유의 품으로 파고든 흑수 단주의 손이 백유의 목을 노린다.

여태까지 몇 번이고 패융에게 막혀 그 목을 쥐어뜯는 것에 실패했던 공격.

콰득!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겨우 끼어든 백유의 팔을 움켜쥔 흑수 단주의 손아귀에 백유의 살점이 떨어져 나온다.

뼈에 금이 가고, 살점이 뜯어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캬하하핫!!”

입꼬리를 비튼 백유와 눈을 마주친 흑수 단주가 거친 웃음을 토해냈다.

복부로 파고든 백유의 발에 내공으로 겨우 충격을 줄인 흑수 단주의 몸이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다.

흑수 단주조차 그 자리에서 버티지 못할 정도로 묵직한 일격.

방어에 내공을 쓰지 않고 발차기에 잔뜩 내공을 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침없이 손목을 내주며 공격을 노리는 것이 과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슬슬 끝이군.”

그것도 이제 끝이다.

으스러진 손목의 뼈를 내공으로 맞추고 대충 고정한 흑수 단주는 상대를 바라봤다.

“여기까지다. 애송이.”

찢어진 무복 사이로 드러나는 피부가 새빨갛다.

이미 그 출혈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증거.

오만하게 입꼬리를 비틀고 있는 얼굴의 안색이 창백하다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시간을 벌기 위해 억지로 방어에 전념하는 사이 입은 상처.

거기다 부족한 내공을 억지로 쥐어짜며 이쪽의 싸움에 어울렸다.

급소를 지켜 주던 그 용이 없었다면 진즉에 팔다리가 부러져 땅바닥을 기고 있거나, 아니면 목이 뜯겨 한낱 고깃덩어리가 됐을 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도 팔 하나 정도는 내어줬을지도 모르지만.

싸움이 길어지면서 그런 걱정도 아예 사라졌다.

백유는 조법도 쓰긴 하지만, 자신의 것처럼 날카롭지 않아 이쪽의 상처는 출혈이 별로 심하지 않다.

해 봤자 근육이 터지고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 정도인데.

이 정도 고통쯤이야 내공으로 억누르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

의지가 고통을 초월한 무인들의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부상의 정도나 개수가 아니다.

과다 출혈 혹은 완전 골절.

아예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태.

그것을 얼마나 잘 회피하느냐가 승리의 관건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흑수 단주는 철저하게 출혈을 최소화하며 싸웠고.

백유는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흑수 단주는 아직도 멀쩡히 서 있었고.

백유는 조금씩 몸이 휘청거리고 있다.

“아무리 흑룡이 될 이무기라고 한들, 결국 우물에 갇혀 있던 애송이일 뿐이지.”

머저리 같은 흑수단 놈들이 이 도시의 무인으로 보이는 놈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고작해야 남창에서 으스대는 놈들과 호각을 이루고 싸우고 있다니.

쓸모없는 놈들.

뭐, 상관없다.

애초에 움직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이 근처는 전부 정리하기로 결정했으니까.

눈앞에 있는 오만한 애송이의 팔다리를 잘라 정문에 내걸고, 천천히 정리를 시작하면 된다.

백유에게 동조하기로 했던 놈들은 본보기로 전부 죽여 짐승의 먹이로 뿌려야지.

그 뒤에는…… 흠, 임시 맹주 녀석들에게 저 계집을 던져 줄까.

보아하니 저 몸뚱이에 흥미가 있는 것 같던데.

맹주 놈이 돌아오면 꽤나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겠…….

“어이!”

당당하게 서서 입꼬리를 비튼 백유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난다.

패색이 짙은 이런 상황 속에서 확신을 품은 두 눈동자가 번뜩인다.

“거기 딱 서 있어 봐.”

손을 뻗은 백유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그것을 그냥 놔둬선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한 흑수 단주가 땅을 박차려던 그 순간.

쿠르릉!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섬광이 번뜩였다.

땅을 박차기 위해 한껏 조였던 근육이 오그라들고.

전신의 피부 위로 수많은 개미들이 기어가며 물어뜯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온다.

동시에 살 익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크학!”

연기가 피어오르는 숨을 토해 내는 것과 동시에 두 팔을 강렬하게 옆으로 뻗은 흑수 단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전부 털어 내지 못한 벼락의 힘이 아직까지 몸을 기어 다니고 있었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네년……?”

옛날 구령학과 싸웠을 때조차 보지 못했던, 하늘에서 떨어지는 진짜 벼락.

정확하게 자신을 노린 일격은 명백히 적이 의도한 것이다.

“하하핫! 이거 좋네!”

의혹으로 가득 찬 흑수 단주의 눈빛에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백유는 창백한 안색의 뺨을 쓸었다.

“정말 바보라니까.”

이런 데다 힘을 쓰면 넌 어떻게 싸우려고.

저 밖에서 싸우고 있는 설천위의 기척을 느끼며, 백유는 천천히 표정을 지웠다.

“흑수 단주 기규종.”

똑바로 서서 담담하게 뇌전을 휘감은 손을 들어 올린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네 죄를 벌할 것이니.”

크롸라라라라라!!

구름 속에서 휘몰아치는 패융의 포효와 함께 수십의 벼락이 땅으로 떨어진다.

“내가 사파의 하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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