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70화 (370/624)

제370화

369화-흑수(黑獸) (4)

무(武)를 향한 광적인 집착.

상형권(象形拳)이라는, 동물에게서 배운 이들이 만들어 낸 무공을 익힌 무인의 집착은 자연스럽게 동물에게로 이어졌다.

짐승을 흉내 내고, 인간성을 버리는 수련 방식조차 거침없이 선택했다.

수십 일 동안, 야산에 맨몸으로 돌아다닌 적도 있고.

늑대의 무리에 섞여 몇 개월간 살아 본 적도 있다.

작게 무리를 짓는 곰의 무리에 끼어든 적도 있고.

범과 함께 지낸 적도 있다.

족히 수년, 아니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짐승 틈에 섞여 살아가는 것으로 그의 무(武)는 발전했다.

인간이 감히 흉내 내지 못하는 탄력적인 움직임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에겐 없는 날카로운 짐승의 송곳니와 발톱을 흉내 낼 수 있게 됐으며.

인간은 잃어버리고 만 생존 본능을 되찾았다.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 짐승을 따라 하며 어느새 자신이 짐승의 힘을 손에 넣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스스로의 강함에 확신을 품고 하산을 하던 날이었다.

가끔 어울리던 사냥꾼이 있는 오두막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고할 생각이었다.

무림인은 하나같이 이상하다며 웃던 사냥꾼.

그의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목덜미를 물어뜯긴 사냥꾼은 죽어 가고 있었다.

삶을 갈구하며,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사냥꾼.

하지만, 사내는 사냥꾼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의 다리 살을 발라 먹고 있는 범과 눈이 딱 마주쳤으니까.

여태껏 그가 마주쳤던 짐승들과는 전혀 다른,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

사람을 습격하다가 그것에 맛을 들리고, 장난삼아 사람을 습격하기 시작한 흉물.

그 증거로, 사냥꾼의 다리는 거대한 덩치의 범이 먹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살점이 남아 있었다.

멍하니 범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살의로 일렁이는 눈동자가 자신을 향한 것을 인지한 순간, 사내는 움직였다.

땅을 뒹굴어 머리 위로 지나가는 호랑이의 공격을 피하고.

쏜살같이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호랑이의 앞발과 마주했다.

달랐다.

여태까지 그가 산과 숲에서 만났던 짐승들이 마치 갓난아기처럼 느껴졌다.

육체의 탄력, 폭발적인 파괴력, 숨통을 조이는 살기.

모든 것이 달랐다.

수련했던 무(武)조차 잊은 채 범과 뒤엉켜 싸우기를 한 시진.

겨우 범의 눈을 뭉개고 목을 꺾는 데 성공한 사내가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섰다.

사냥꾼은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

몸은 녹초가 됐고, 내상을 입었는지 속은 뒤틀린 것처럼 울렁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잊을 정도의 강렬한 쾌감이 그의 정신을 채우고 있었다.

짐승의 힘을 손에 넣어?

흉내 내는 것 따위로 그게 가능하다고 착각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그래.

자신이 원하던 짐승의 움직임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상형권이라는 틀에 갇혀 있던 자신을 비웃었다.

왜 다른 존재를 흉내 내는가?

그것이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여태껏 보아 왔던 짐승들은 자신보다 우월했던가?

그렇지 않다.

조금 더 날렵하고.

조금 더 탄력적이고.

조금 더 송곳니가 날카로웠을 뿐이었다.

그런 짐승들을 따라 하며 무(武)를 이뤄 냈다고 착각한 것이, 자신이 그들보다 못한 유일한 흠이었다.

호랑이의 다리를 하나 뜯어 그 고기를 씹으며, 사내는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짐승에게 배워서 자신의 무(武)를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식자가 되기 위해서.

그는 산에 올랐다.

수개월간 함께했던 늑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었고.

어미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보아 온 새끼 곰들을 찢어발겼다.

짙은 피 냄새에 자신을 경계하는 범은 산 채로 갈라 그 심장을 뜯어 삼켰다.

그쯤 되어서 사내는 깨달았다.

짐승이란 생각보다 나약하다고.

금세 겁에 질려 도망치고, 살기 위해 엎드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인간도 똑같았다.

깨달음을 얻어 인세로 돌아온 짐승은 이내 깨달았다.

흑수(黑獸).

자신은 검은 짐승이니.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괴물이다.

* * *

“캬하핫!”

뒤틀린 웃음과 함께 반쯤 부서진 강기를 거두며 백유는 양팔을 움직였다.

여유?

없었다.

눈앞의 괴물은 여유를 가지고 겨루기에는 너무도 강자다.

자신만만한 것과 오만한 것은 다르기에.

백유는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짰다.

최근 경지에 오르고 설천위와 비무를 하며 끌어올렸던 모든 역량을 쏟아 냈다.

[뇌명(雷鳴)]

양팔에 휘감은 뇌전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을 토해 내며 적을 후려친다.

“성가시구나!”

거칠게 팔을 휘두르는 흑수단주의 움직임에 바위조차 쪼갤 뇌전이 흐트러진다.

허나 그럼에도 백유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굳건하게 자세를 갖추고.

적의 공격을 기다린다.

순식간에 갈라져 목과 가슴, 옆구리를 동시에 노리는 흑수단주의 손을 막아 낸다.

막고, 또 막고.

적의 공격은 한결같이 급소만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목을 노리는 건 기본이고.

눈, 코, 입 같은 얼굴의 급소도 마찬가지.

게다가 가슴과 배, 옆구리까지.

뚫리는 순간, 그대로 장기까지 망가질 급소를 수도 없이 파고든다.

실수라도 손끝에 걸리는 순간, 피부가 찢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뇌전을 두른 강기.

어지간한 고수라도 애를 먹을 독특한 힘이었지만, 흑수단주는 능숙하게 그 힘을 흐트러트렸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뇌전과 맞닿는 순간, 치밀하게 짜여진 강기가 그 침입을 막고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켜 강기째 흐트러트린다.

너무나도 능숙한 대처에 백유는 확실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좋구나!”

상대가 강했다.

능숙한 것을 떠나서 상대 자체가 강했다.

화경의 끝자락.

이 무림에 공식적으로 다섯밖에 없는 진정한 초인의 턱밑까지 따라붙은 괴물.

강기의 농도도.

움직임의 수준도.

모든 면에서 상대가 반수 이상 앞선다.

상처는 늘어가고, 호흡은 서서히 흐트러진다.

그럼에도 백유는 무너지지 않았다.

겁에 질려 물러서거나, 당황해 실수하는 일 따윈 없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몇 곳이나 살점이 뜯겼지만, 사소한 부상이다.

치명적인 상처는 단 한 곳도 없다.

틀이 없고 난해한 적의 무공이었지만, 그 핵심을 꿰뚫고 서서히 적의 움직임을 읽어 내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점점 더 작아졌으나, 부상을 입는 횟수 또한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기다 드문드문 보이는 반격에 거친 야수의 살의가 담긴다.

흑수단주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 공격의 여파로 살짝 찢어진 피부에서 한 방울의 피가 흐른다.

흘러내리는 핏방울의 감촉을 느끼며 흑수단주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똑같구나. 그놈과 똑같아.”

자신의 일을 방해하고도 살아남은 그놈과 똑같았다.

짐승을 다룰 자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머리를 짓밟던 그놈과 똑같았다.

“키힉!”

비틀린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가슴속에서 피가 역류하는 기분.

기껏 조금씩 가라앉혔던 흥분이 다시 치밀어 오른다.

“네년이 땅바닥을 기는 꼴을 그놈이 봤을 때의 표정이 궁금하구나……!”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꼴이 젊은 시절의 그놈과 똑같았다.

그런 제자를 짓밟아 목줄을 채워서 개로 만들면 그놈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눈을 할까.

흑수단주의 눈에 기껏 억눌렀던 흥분이 다시 일렁이며 그 움직임이 더욱 거세진다.

생각보다 더 강한 백유의 실력조차 뒷전으로 미루고 공격을 더한다.

그런 흑수단주의 손을 백유가 팔로 막아 내고.

물 흐르듯 이어진 백유의 반격이 흑수단주의 목을 노린다.

본래라면 몸을 비틀든, 손을 거두든 방어를 해야 하는 시점.

흑수단주는 역으로 손에 더욱 힘을 가했다.

자신의 공격을 막은 백유의 팔을 움켜쥐고, 살점을 뜯어낸다.

피부와 함께 살점이 뜯기는 와중에도 날카롭게 차올린 백유의 발끝이 정확하게 흑수단주의 목에 닿는다.

공격에 집중해 방어를 도외시하는.

전형적인 전투의 흥분에 취한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

하지만, 발을 찔러 넣은 백유도 알았다.

흑수단주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을.

기이할 정도로 휘어진 허리로 흑수단주는 상체를 옆으로 뒤튼다.

인간의 움직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유연성이 만들어 낸 기이한 회피.

목에 닿지 못한 백유의 발이 흑수단주의 어깨를 찍었지만, 그조차 기이한 탄성에 의해 튕겨 나왔다.

“클클, 아직 부족하구나.”

유연한 근육의 방어조차 꿰뚫고 파고든 뇌전에 매캐한 냄새가 피어올랐지만, 흑수단주는 담담하게 어깨를 털었다.

반쪽짜리로 파고든 뇌전이다.

이 정도 공격쯤은 얼마든지 맞아 줄 수 있다.

뜯어낸 백유의 살점을 입으로 가져간 흑수단주는 그대로 백유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확실하게 백유의 살을 취하는 전투 방식.

마치 사냥을 하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백유의 숨통을 조여 오는 공격에 백유는 결국 반격마저 포기했다.

철저하게 방어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지켰다.

쳐 내고 막고.

오로지 그것만을 반복하며 흑수단주의 공격을 견뎌 냈다.

소매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민소매라고 봐도 될 정도가 됐고.

찢어진 곳이 너무 많은 옷은 곳곳에서 배어 나온 피로 붉게 물든 지 오래였다.

공방을 나누는 동안 이미 주위는 초토화된 지 오래였고, 다듬은 돌이 박혀 있던 대로는 죄다 뒤집혀 흙바닥으로 변했다.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힘겹게 버티는 백유.

어느 쪽이 승기를 쥐고 있는지는 명백해 보였다.

그렇기에 부하들을 챙겨 달려온 내중수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흑수단의 무리를 경계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백유가 지면, 그다음은?

인간이 아닌 놈의 밑에 들어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부하 놈들까지 전부 죽음으로 밀어 넣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만약 패배했을 경우, 가족들은?

순식간에 생각이 복잡해졌지만, 짐승같이 백유를 몰아붙이는 흑수단주의 모습에 내중수는 결의를 다졌다.

뭐가 됐든, 흑수단이 이곳에서 날뛰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 술사도 있으니 저 괴물도 분명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터.

그러니 이쪽은 저 괴물의 부하들을 맡는다.

무림에서도 유명한 흑수단이지만, 혁래문의 무인 정예를 전부 끌고 왔다.

고작 서른도 안 되는 적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

“아아, 거기 아니야.”

순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내중수는 구마가의 정문 위에 앉아 있는 흑성의 모습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여태껏 느껴 본 적 없던, 압도적인 위압감.

마치 이 지역을 먹어 치우겠다고 선언한 백유와 마주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내중수는 고개를 돌렸다.

힘겹게 흑수단주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는 백유가 보인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분명 강한데.

강하긴 한데…….

‘위압감이 없어.’

강자로서의 위압감 말고.

정말 위에 군림하는 인간이 이런 인간이구나, 싶었던 그 감각이 없었다.

왜?

내중수가 그런 의문을 품는 순간.

“백유, 이제 됐어.”

흑성이 선언했다.

“이젠 도망 못 가.”

콰가가가가가각!!

하늘이 뒤집히고, 사방이 검은 벽으로 가득 메워진다.

차오르기 시작한 구름에서 뇌전이 번뜩이고.

사방을 가로막은 검은 벽은 성벽처럼 안과 밖을 나눈다.

그리고 그제야 근처에 인기척이 없어졌음을 깨달은 내중수가 눈을 부릅뜬 순간.

쾅!!

강렬한 폭음과 함께 튕겨 나온 흑수단주가 가볍게 땅을 굴러 자세를 고친다.

그리고.

[크르르르르르.]

거대한 용을 두른 백유가 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무 오래 걸렸어.”

“이것도 빠른 거야.”

백유의 타박에 코웃음을 친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술사가 있어. 몰래 치느라 좀 시간이 걸렸지.”

“오래 걸린 거 맞네, 그럼.”

“몰래 친 것 자체가 대단하단 생각은 안 드냐.”

백유의 뻔뻔한 대답에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벽을 두들기는 충격을 감지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더 빠르네.

“그리 오래 못 끈다.”

“그리 길게는 필요 없어.”

설천위의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걸어간 백유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흑수단주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렇지? 노인네.”

“애송이……!”

흑수(黑獸)와 흑룡(黑龍)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뒤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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