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67화 (367/624)

제367화

366화-흑수(黑獸) (1)

“추살령을 내리겠다? 이 자리가 맹주 대리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자리인 줄은 미처 몰랐군.”

야귀단주 소국의 이죽거림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소국의 태도를 무례하다고 여기며 미간을 찡그렸고.

누군가는 소국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품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 것만으로 주위의 공기를 바꿀 수 있는 강자들.

그런 강자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힘들어지는 건 일반 무사들이었다.

그들도 나름대로 이 자리에 서기 위해 많은 수련을 쌓아 온 차돌 같은 강자들이었지만…….

‘……괴물들이야.’

고작 일곱으로, 사천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기둥처럼 떠받쳐 온 자들.

얼마 전 하나가 죽어 여섯이 되었지만, 그들 개개인의 역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들이 흉흉한 기세가 뿜으니 호위를 위해 회의실에 선 무사들의 손에 절로 식은땀이 났다.

“야귀단주, 이건 참모진의 결정 사항입니다.”

달콤하면서도 싸늘한 목소리가 단숨에 무거운 공기를 흐트러트렸다.

제1참모, 소령.

그녀의 차가운 기세에 흉흉하게 감정을 드러내던 단주들은 잠시 그 기세를 거뒀다.

맹주 대리를 맡고 있는 어린것들과 달리, 소령은 맹주가 직접 임명한 대리인.

맹주가 없을 때 그녀가 참모진을 모아 내린 결정은 맹주의 명령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다.

그렇기에.

“……과연.”

미간을 일그러트린 소국은 기세를 거뒀다.

그 모습에 훤칠한 외모에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짓는 전도울.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야귀단주님.”

“흥.”

코웃음과 함께 자신은 더 이상 끼어들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소국이었지만, 전도울 또한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이 안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반발이 심한 소국이 입을 다물자, 회의는 부드럽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전도울이 주도하고, 참모진들이 보조해 이끌어 가는 회의.

단주들은 찬성이나 반대표를 던져 몇 종류의 안건은 부결로 넘어갔다.

오로지 한 가지, 백유에 관한 사항만이 참모진과 맹주 대리의 권한으로 사전에 미리 정해진 상황.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산뜻한 미소로 인사한 전도울이 거침없이 회의실을 나갔다.

말로는 존중하는 듯하나, 어디까지나 상급자는 자신이라는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

그 뒤를 따르는 소준극과 참모들까지 회의실을 나가고.

“벌써 가게?”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소국을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여인, 귀령단주가 불러 세웠다.

“얘기할 게 있는데.”

“뭐지?”

“이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야.”

귀령단주가 가볍게 손을 휘젓는 순간.

소국은 자연스럽게 내공을 가라앉히고, 전신을 휘감는 힘에 몸을 맡겼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뜨자, 완전히 바뀐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소국, 여러 번 말하지만 술사의 술법에 그리 무방비하게 몸을 맡기면 안 된다.”

어느새 호화로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귀령단주, 모윤의 경고에 소국은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술병을 들었다.

“고작 술법 따위에 당했다고 떨어질 목이었다면, 진즉에 떨어졌겠지.”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만 한 술사는 매번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을 텐데?”

“흥, 일일이 다 경계하고 살면, 집 밖으로도 못 나온다.”

당최 말귀가 통하지 않는 소국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작게 연기를 내뱉은 모윤은 곰방대를 털었다.

“야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 답답한 걸 싫어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주의해라.”

사천맹의 단주가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공적을 인정받아 단주, 참모 등의 추천과 동의를 받아 임관되거나.

맹주의 인정을 받고, 다른 단주와 참모들이 보는 앞에서 실력을 입증하거나.

이 두 가지 방법 중 소국은 후자의 방법으로 단주가 된 인물이다.

반쯤 낭인이었던 소국을 맹주가 직접 사천맹으로 끌어들였다.

“사소한 것에 휘둘리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후, 그만하지. 너에게 잔소리하는 것도 이제 지쳤으니.”

고개를 저은 모윤은 가볍게 술법을 발동해 소국의 손에 쥐여 있던 술을 밀어냈다.

“흡.”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던 호걸은 어디로 갔지?”

“내 삶에서 술이 사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공을 둘러 술을 지키는 그 모습에 다시 한번 고개를 저은 모윤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더 이상 말해 봤자 자신의 입만 아플 테니까.

“추살령, 어떻게 할 거지?”

여태까지와 다른,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소국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술병에 입을 댔다.

“글쎄, 누가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소국은 파벌로 따지면 맹주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정파에 밀려 허울뿐이던 사천맹을 강력한 힘으로 휘어잡고, 사파의 중심으로 군림하는 맹주를 존경하고 그 등을 바라보며 단주의 자리를 지키는 인물.

귀령단주 역시 마찬가지.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선대부터 맹주와 친했던 맹주의 지인이기에 자연스럽게 그리됐을 뿐이지만.

강력한 힘으로 모든 것을 손에 쥔 맹주가 있는 사천맹이지만, 그렇다고 물밑에서 이권 다툼, 정치 싸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맹주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이 거대해진 사천맹을 먹어 치우기 위한 아귀다툼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맹주가 본래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행방불명이 됐고, 그 빈자리를 허울뿐인 맹주의 제자들이 채웠다.

말이 맹주의 제자이지, 다른 파벌에서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맹주의 밑에 억지로 밀어 넣었을 뿐인 녀석들.

맹주파의 입장에선 당연히 그들을 좋게 볼 수 없었다.

그런 놈들이 감히 맹주의 직전제자에게 추살령을 내리다니.

그 자리에서 탁자를 뒤집어엎어도 화가 풀리지 않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이지만…….

“소령이 움직였어. 이건 이제 그냥 넘길 수 없어.”

은근히 전도울을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중립인 척하던 제1참모가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전도울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참모들은 서로 동일한 발언권을 지니지만, 그 영향력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1참모 소령은 혈뇌(血腦)라고 불리는 사천맹의 지낭(智囊)이자 맹주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대놓고 전도울의 편을 들었다.

이는 다음 맹주의 후보로 그를 지지하겠다는 의사표현이자 백유와는 확실하게 선을 긋겠다는 선포.

전도울과 소준극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이들이 움찔할 정도의 움직임이고.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하고 백유를 싫어하던 자들은 좋다고 무기를 꼬나쥘 상황이다.

“누가 움직이는지 확인한 뒤에는 늦어.”

전도울과 소준극을 지지하는 단주들도 있다.

그들이 직접 움직일 가능성은 낮았지만, 대주나 부단주급이 나서면 일이 커진다.

아무리 맹주의 직전제자라고 할지라도 이제 겨우 스물을 조금 넘긴 어린 무인.

맹의 추살령에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대주 하나를 보낼 테니, 그쪽도 움직여.”

“대주라…….”

모윤의 말에 술병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소국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데.”

옛날 직접 눈으로 봤던 백유의 모습을 떠올린 소국은 피식 웃으며 모윤을 바라봤다.

“귀령단주는 무인이기 이전에 술사라서 잘 모르겠지만.”

무인이라면 알 수 있다.

그 아이가 품은 재능, 아니 그릇을.

맹주가 왜 그녀를 제자로 삼았는지를.

“아마 나나 네가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면 의미 없을 거다. 저쪽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 * *

“결과 보고?”

나른한 목소리.

손가락으로 집은 당과를 할짝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내의 마음을 흔드는 치명적인 모습이었으나, 내중수는 최선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고작 아름다움에 취해 정신을 잃기엔 최근 며칠간 본 것이 너무 많았다.

“말씀하신 인신 매매 사업은 전부 정리했습니다.”

“다른 사업은?”

“선을 지키는 범위에서 순차적으로 정리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래, 뭐 너무 빡빡하게 줄이진 마. 다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손가락을 빨며 몸을 일으킨 백유는 옆에서 서책을 읽고 있는 설천위를 불렀다.

“흑성, 다음 계획은?”

“기다린다.”

간단한 대답.

하지만, 지루함을 예고하는 대답이었기에 백유는 살짝 볼을 부풀리며 다시 이불에 등을 던졌다.

“사파 놈들은 쪼잔해서 빨리 안 움직일 텐데…….”

“남창 정도면 꽤나 먹음직스러운 먹이다. 그리 오랜 안 걸릴 거야.”

“그야 그렇지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 백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중수를 바라봤다.

“그래, 뭐 너희도 준비할 시간은 필요하겠지.”

“……철저하게 대비하겠습니다.”

백유가 말하는 준비가 무엇인지 알기에 내중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서 일 봐.”

“예.”

백유의 축객령에 내중수가 물러나고, 넓은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던 백유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위.”

“왜?”

“무림맹으론 안 돌아가?”

“해야 할 일은 마무리해야지.”

“흐응.”

설천위의 대답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백유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딱였다.

“이제 와서 이런 걸 묻는 것도 그렇지만, 진짜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거야?”

“말했잖아? 친…….”

“나는 곁에 있는 그 여자도 없겠다, 나랑 제대로 해 보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 여자가 대체 지금 뭐라는 거야.

올라오는 헛기침을 겨우 삼킨 설천위는 짜게 식은 눈으로 백유를 바라봤다.

“내가 그런 인간으로 보였나?”

“남자는 대체로 다 그렇잖아? 보상심리라는 것도 있고.”

“……도움의 대가로 그런 보상을 바라는 쓰레기처럼 행동한 적은 없는데.”

[맞아요! 이 음녀(淫女)가! 주인님을 그만 유혹해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게 음녀면, 사랑하는 이가 있는 여인은 전부 음녀이게?”

퐁 하고 튀어나와 달려드는 청아를 가볍게 밀어낸 백유는 다시 설천위를 바라봤다.

“슬슬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거든?”

장난기 없는, 착 가라앉은 백유의 눈빛에 설천위는 작게 입을 다물었다.

백유는 고고한 성격이다.

흑룡을 추구하며, 패도(覇道)를 걷는.

그야말로 고고한 어둠.

그녀가 사파로는 유일하게 육도(六道)에서 주인공인 이유가 있다.

가슴속에 품은 긍지만큼이나 자존심도 상당하다.

그 반작용으로 그만큼 자신의 행보에 망설임이 없어서 마치 뒤가 없는 듯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진심인데.’

여하튼, 그런 그녀가 지금 받기만 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은 것은 확실했다.

돈은 물론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는 설천위.

그에게 받기만 하는 입장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뜬금없는 건 한결같군.”

아까까지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났던 녀석이 이번엔 또 갑자기 이런다.

미친눈나라는 정체성 어디 안 가네…….

그리고 보통 저런 생각을 해도 이런 말을 직접 꺼내진 않을 텐데…….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여전히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유의 모습에 보던 책을 덮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두 가지?”

“하나는 너와의 인연이 있으니까. 날 구해 준 은혜도 있고.”

그날 솔직히 백유가 구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죽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충분히 구명의 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날 구해 준 건 네가 먼전데.”

……이럴 줄 알았지.

“살존은 날 노리고 왔던 거니까. 엄밀히 말해서 네 목숨은 내가 살린 게 아니라니까.”

저저,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 보소.

어휴, 말을 말아야지.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바로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다음으로, 나도 마음에 안 들거든.”

“뭐가 마음에 안 들어?”

“다른 놈들이 사파의 정상에 서는 건 마음에 안 들어.”

이게 가장 솔직한 심정이다.

백유가 아닌 다른 놈이 정상에 선 사파?

어떤 생지옥이 펼쳐질지 눈에 훤히 보인다.

그런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거기다 후에 있을 사파와의 연합의 교두보를 만들 기회도 바로 지금이다.

“그러니, 네가 하늘에 올라라. 사파라는 진창 위에서도 빛나는 흑룡이 되어 하늘을 군림해라. 내가 바라는 건 그걸로 대체로 이루어지니까.”

“흐응?”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 백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바라는 대로 되면……. 아!”

뭔가 말을 이어 가던 백유가 미간을 찡그리고.

[빠르구나.]

[허.]

혼들의 목소리에 설천위 또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작 며칠.

벌써 움직이다니.

“꽤나 몸이 달아 있었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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