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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64화 (364/624)

제364화

363화-흑성(黑星) (10)

“꼬우면 올라오시든가.”

너무나도 경박한, 하지만 노골적인 도발에 구마가주는 끌어올린 내공을 폭발시켰다.

저 주제도 모르는 술사 놈의 가면을 부수고 주둥아리를 찢어 버리리라.

두 눈을 부릅뜬 구마가주의 몸이 단숨에 땅을 박찬다.

폭발적으로 뿜어지는 내공을 추진력으로 한 돌진.

순식간에 허공으로 몸을 띄운 구마가주의 검이 정문과 함께 설천위를 베어 버리려는 그 순간.

쩡!

강렬한 소리와 함께 손에서 느껴지는 강한 반탄력에 구마가주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손으로 파고드는 반탄력을 해소해 내는 것만으로 공중에서 다섯 번을 넘게 회전한 구마가주가 땅에 떨어졌다.

그렇게 힘을 해소했는데도 미약하게 떨려오는 손.

거세게 내공을 움직여 그 떨림을 멈추고 손아귀에 힘을 더한 구마가주는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정문 위를 노려봤다.

“오만할 자격이 있는 놈이로구나.”

검은 벽.

구마가주의 검을 막아 낸 것은 둘 사이를 가로막은 검은 벽이었다.

다만, 그래 봤자 결국 술법.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벽을 보며 구마가주는 다시 검을 세웠다.

“허나 술사 놈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고작해야 술법으로 만드는 벽이다.

그 강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술법이라고 한들 무한정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수고 부수다 보면 점점 더 약해질 것이고, 끝내 공격을 막아 낼 수 없게 될 터.

거기다 지금 이 장원 전체를 덮치고 있는 벼락.

단련된 무인들은 한두 번 정도 맞아도 버틸 수 있는 인위적인 벼락이다.

실제로 삼류 정도의 하급 무사들은 한 방에 꼬꾸라졌지만, 일류 이상의 정예는 두세 번을 맞아야 무릎을 꿇었다.

얼핏 위력이 약한 것 같지만 이만한 규모로, 이만한 위력으로 술법을 펼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상대가 이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술사라는 증거였다.

당연히 이만한 술법을 유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힘과 심력이 소모될 터.

“열 번 아니, 다섯 번 안에 네놈의 가면을 부수고 혓바닥을 잘라 주마.”

살의로 질척이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구마가주의 모습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못 지킬 약속은 하는 거 아닌데.”

설천위의 대답과 함께 구마가주는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에 즉시 허리를 꺾었다.

동시에 단숨에 땅을 박차 완전히 몸을 뒤집어서 한 손으로 땅을 짚는다.

그 와중에 땅을 짚은 손을 축으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깔끔했으나, 결국 임기응변.

“하핫! 반응 좋고!”

구마가주의 검을 가볍게 발로 찍어 누른 백유가 웃음을 터트렸다.

구마가주가 자세를 고치며 단숨에 검을 튕기자, 쓸데없는 힘겨루기를 할 생각이 없는 백유는 순순히 검을 놓아 줬다.

“네년…….”

분명 부하들과 싸우고 있어야 할 계집이 어떻게?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 구마가주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얼굴을 구겼다.

“이…… 쓸모없는 버러지 같은 놈들이……!”

백유에게 제대로 닿지도 못해 밀려난 부하 놈들이 검은 벽에 막혀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욕지거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싸늘함.

이성은 아니라고 부정했으나, 본능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뭐 해? 눈으로만 싸울 건가? 그럴 거면 검은 왜 들었어?”

히죽 웃으며 도발하는 백유.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세에 구마가주는 스스로의 본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괴물 년.”

“자주 듣는 칭찬이지. 초면에 그렇게까지 칭찬해 줄 필요는 없는데.”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백유.

망설임 없이 거리를 좁히는 그 무식한 모습을 비웃어야 마땅하지만, 구마가주는 냉정을 유지하며 검을 들었다.

아무리 술사가 방해했다고 한들, 부하 놈들이 아무나 놓쳤을 리가 없다.

최소.

“언제 벽을 뛰어넘은 것이냐?”

“얼마 안 됐어.”

단주급.

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저리 상처 하나 없이 부하들을 물리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깨를 으쓱이며 걸어오는 백유의 모습에 구마가주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내공을 끌어올렸다.

어린 애송이를 상대로 적당히 한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게 확실해졌다.

“오만할 만한 힘이다.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구나.”

전력으로 힘을 끌어올리며, 구마가주는 백유를 노려봤다.

“저 술사 놈의 술법이 얼마나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일각(一刻:약 15분)? 이각? 그 정도면 나를 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강자가 전부를 갖는 무림.

그런데 왜 문파를 세우고, 가문을 만들어 강자가 자신의 부를 나누겠는가?

자비심이 넘쳐서?

당연히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정파는 몰라도 사파에는 문파 따윈 존재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인가?

답은 간단하다.

아무리 강한 초인(超人)이라도.

천상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손은 두 개.

발도 두 개.

머리는 하나.

심장이 뚫리면 죽고.

머리가 잘려도 죽는다.

독을 마시면 쓰러지고.

병에 걸리면 몸져눕는다.

무림인이라 해도 결국은 인간이기에.

한 명의 고수는 열 명의 하수를 상대할 수 있어도.

한 명의 고수가 백 명의 하수를 상대할 수는 없다.

전장이란 환경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그건 아무리 강한 고수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정신적 압박감, 끊임없이 달려드는 적들.

아무리 강한 고수라도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하다.

체력과 심력이 고갈되어 가다 보면 아무리 고수라도 빈틈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 빈틈에 날붙이가 꽂힌다면?

배때기에 구멍이 나면 죽는 건 고수든 하수든 똑같다.

그렇기에 고수는 문파를 만들고, 가문을 만든다.

칠가(七家)는 그렇게 만들어진 가문 중에서도 그 규모가 사파에서 일곱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세가다.

소속된 무인만 수백 명.

모두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무인만 이백이 넘는다.

그런데 고작 둘이서 정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갈가리 찢어 짐승의 밥으로 던져 주마.”

단주급 고수라고 하나, 고작 술사 하나 데리고 가문에 전면전을 걸다니.

구마가를 무시했다고 봐도 좋았다.

분노를 씹어 삼키며 검을 세우는 구마가주의 모습에 백유는 히죽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짐승한테 사람 고기 먹이면 못 써. 그런 기본적인 상식도 몰라?”

“그 여유로운 태도가 얼마나 갈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주마.”

말로는 도발하면서도 결코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철저히 방어를 굳히고 자신을 노려보는 구마가주의 모습에 백유는 웃음을 터트렸다.

“꺄하하하! 그래, 이런 놈들이니 사파에서 먹고살고 있는 거겠지.”

제 몸은 사리고 어떻게든 부하들을 이용해 먹으려는 속내가 너무 빤히 드러난다.

강자 앞에서는 한껏 몸을 낮추고, 자신보다 더 약한 놈들을 부려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려는.

“너무 노골적이라 별 감흥도 없네.”

그 쪼잔하기 그지없는 삶의 태도에 백유는 조소를 머금었다.

“백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백유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앞에 적이 있음에도 너무나도 안일한 태도.

노골적으로 빈틈을 보였지만, 구마가주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백유를 노려볼 뿐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겁쟁이라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소극적인 자세였지만, 구마가주도 백유도 설천위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적들이 흑관을 응용해 만든 벽을 두들기고, 백유의 앞에서 그 수장이 두 눈을 번뜩이고 있는 상황에서.

설천위는 담담한 눈으로 백유를 바라봤다.

“너무 오래 끌지 마라.”

지금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언.

그 조언에 백유는 가만히 설천위를 바라봤다.

“흑성(黑星).”

나직하게 그를 부르며 백유는 물었다.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은 눈빛.

“너는 내 뒤를 따라올 거지?”

그 안에 담긴 미약한 떨림에 설천위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나는 네 머리 위에 떠 있는 검은 별이니까. 네 그림자조차 담아 주마.”

자신만만한 그 대답에 백유는 빙긋 웃었다.

“좋아. 그럼 후딱 끝내 볼까?”

“흥, 누가 네년의 뜻대로 해 준다더냐?”

설천위와 백유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구마가주는 백유의 태도에 코웃음을 쳤다.

이 애송이는 아직도 현실을 보고 있지 못한다.

단주급이라고 하나 고작 얼마 전에 경지에 오른 애송이.

강기 하나만 믿고 설치다가 죽는 단주급이 이 무림의 역사에 한둘이 아니다.

하물며 저런 술사를 뒤에 두고 설치는 머저리라면…….

‘부하 놈들이 벽을 부수기 전에 목을 베어 주마.’

물론 그렇다고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철저하게 방어를 굳혀 조급하게 만든 뒤, 그 조급함이 만드는 빈틈을 찌를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이쪽의 편이다.

냉정하게 가라앉은 구마가주의 눈빛이 그가 능력 없이 이 자리의 오른 것이 아님을 증명해 줬다.

“싫어해도 어쩔 수 없어.”

그러나 그런 구마가주의 모습에도 백유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웃으며 구마가주를 향해 걸어갔다.

곁에서 보면, 오만함에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허술한 모습.

허나, 그럼에도 구마가주는 방심하지 않았고.

방심하지 않았기에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인가?”

어깨에서부터 올라오는 강렬한 통증과 장난스러운 목소리.

왼쪽 팔과 어깨가 골절됐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구마가주의 몸이 사정없이 바닥을 구른다.

쿵!

설천위가 만들어 놓은 벽에 닿아서야 겨우 멈춘 구마가주는 떨리는 눈으로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강렬한 충격에 손아귀가 찢어졌고, 검에 그슬음이 생긴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구마가주는 깨달았다.

자신이 반사적으로 검을 움직여 방어했다는 것을.

그리고.

반사적으로 검을 끼워 넣지 않았더라면, 뼈가 부러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 또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속도.

아니, 속도를 넘어서서 그 기척을 닿기 직전에야 겨우 눈치챘다는 것이 구마가주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몰랐어? 내가 맹주 할배의 무공을 이어받은 거.”

모를 리가.

칠가(七家)의 가주다.

겉으로 알려지지 않은 맹주의 제자 문제 정도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백유가 사존(邪尊)이라 불리기 이전엔 천벽혈귀(千霹血鬼)라고 불리던 맹주의 무공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이 괴물 년……!”

고작 몇 년 만에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을 날려 보낸 것이 뇌기를 품은 암경이란 것을 깨달은 구마가주는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백유를 노려본다.

“이딴, 이딴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자신을 공격한 암경이 그냥 기(氣)가 아니라 강기임을 부정한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해선 안 됐으니까!

“나는!! 대(大)구마가의 가주다!!”

완전히 평정심을 잃고 악을 쓰는 구마가주를 향해 백유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대(大)는 무슨, 그릇 크기가 종지 그릇만도 못하면서.”

조소와 함께 치밀하게 사혈을 노리고 파고드는 구마가주의 검을 백유는 전부 쳐 냈다.

선천적인 무(武)의 재능.

벼락을 품은 무공의 힘.

결코 꺾이지 않는 패기.

그것들이 뒤섞여 백유는 모든 공격을 쳐 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네가 짓밟히는 이유는 별거 아니야.”

“끄아아악!”

백유의 손에 뜯겨 나간 살점이 바닥에 떨어지고, 악을 쓰는 구마가주의 검이 더욱 거세게 움직인다.

부러진 왼팔과 살점이 뜯겨 나간 곳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미세하게 틀어진 자세가 검법의 위력을 깎아 먹고.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진 마.”

너무나도 쉽게 검의 벽을 지나간 백유의 손이 구마가주의 목에 닿는다.

큼지막하게 떨어진 살점.

그곳에 깃든 뇌기가 상처를 지져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으나, 구마가주는 말을 잊지 못했다.

성대가 완전히 뜯겨 나가 숨 쉬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으니까.

“다른 놈들도 비슷하게 네 곁으로 갈 거야.”

무너지는 구마가주의 머리채를 움켜쥔 백유가 환한 미소와 함께 그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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