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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63화 (363/624)

제363화

362화-흑성(黑星) (9)

이 무림에는 수많은 문파가 있다.

굵직한 이름을 가진 중소 문파도 양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아래의 자잘한 문파는 아예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웬 동네 왈패들이 모여서 문파라고 주장해도 일단 문파는 문파니까.

이런 문파들은 생겨났을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유야 다양했다.

술기운이든, 나름대로 계산을 했든 뭉쳐서 지내다 보면 서로의 흠을 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술 먹고 호탕하게 웃던 인간이 밥상머리 앞에선 반찬 하나 뺏겼다고 삐지는 놈일 수도 있고.

밖에선 멀끔하게 다니던 인간이 집 안에선 일주일에 한 번만 씻을 수도 있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물은 싫다며 꿋꿋이 목욕을 피하는 인간일 수도 있고.

인간 군상은 다양하고, 그 다양함만큼이나 이기적인 놈들도 많다.

그런 놈들이 한순간의 의기로 뭉쳤다고 한들 그 의리가 얼마나 가겠는가.

그래서 명문 대파라 불리는 문파들은 엄격한 규율과 상하 관계로 조직을 다스린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때는 자신의 손해를 참지 못하지만,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참을 수 있다.

연대 의식, 소속감, 책임감, 사제(師弟) 간의 연 등등.

사람 개개인이 가진 사소한 단점 정도는 덮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수도 없이 널렸다.

하지만, 조잡하게 생겨난 문파들에게 그런 것은 없다.

특히, 사파라면 그런 것들이 더더욱 부족하다.

사제 간의 연?

반쯤 협박 혹은 납치로 키운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면 얼마나 존경하겠는가?

자신의 수발을 위해 억지로 끌고 다니는 제자를 스승이 믿으면 얼마나 믿겠는가?

믿을 수 없다.

꽤나 이름 높은 고수가 문파를 만들었어도 그 문파가 길게 유지되는 경우가 사파에서 거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에 한 도시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고 세를 키운 문파의 수장들은 무림에서 어디를 가도 무시당하지 않을 고수들뿐이다.

어디 가서 무시당할 실력이었다면, 진즉에 부하들에게 무시당하고 등에 칼 맞고 뒈졌을 테니까.

그렇기에.

“준비해 놓겠습니다.”

종무는 대문을 나서는 자신의 주군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래, 잘 준비해 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백유.

그녀는 손을 흔들며 당당하게 정문을 나섰다.

이쪽의 움직임을 숨길 생각 따윈 없다는 듯, 그녀의 뒤를 따르는 흑성 또한 평범하게 대로를 걸었다.

점점 더 작아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종무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천천히 닫히는 대문.

이젠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두 사람.

“……후.”

작게 숨을 뱉어 내며 종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참 더럽게도 높은 하늘이 보인다.

너무 화창해서 목을 치켜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하늘.

또다시 선택의 시간이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놈들.”

그 걸음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읽은 종무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준비하도록.”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연락이 오면 즉시 움직일 것이다.”

누구의 연락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부하들은 그 대상이 누군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포심이 깃들어 있던 걸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녀의 편에 섰음에 안도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종무는 고개를 저었다.

‘모래 위의 누각보다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 사파의 결속이거늘.’

고작 몇 번 마주한 것만으로 부하들의 심지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

불리하다고 백유를 배신하자고 해도 이젠 이쪽이 뒤통수를 맞을 것 같았다.

완벽히 하늘에 홀려 버린 부하들.

그 모습을 허허롭게 바라보던 종무는 이내 잡념을 털어 냈다.

부하들을 나무랄 게 아니었다.

자신도 똑같았으니까.

“지독한 혈전이 될 것이다.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예!”

* * *

서로 간의 결속이 부족한 사파에서 가장 성행하는 조직의 형태는 무엇일까.

당연히 세가(世家)다.

어설픈 사제의 연, 의형제의 연 같은 거 말고.

혈연(血緣).

물보다 훨씬 진한 이 피를 이용한 결속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들.

황금 앞에선 부모 형제조차 죽이는 것이 사파라고 하지만, 그건 정말 작은 규모일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압도적인 강자를 중심으로 가족이 뭉치면 혼자 손에 쥘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황금을 쥘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굳이 뭉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름 피가 섞인 놈들이니 조금 나누어 주는 것도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 사파에는 문파의 형태보단 세가의 형태로 이루어진 조직이 더 많았다.

칠가(七家).

사파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일곱 가문을 따로 묶어 이렇게 불렀다.

사파의 영역인 남부에 골고루 퍼져 있는 이 일곱 가문은 사천맹의 주요 전력 중 하나이면서 사천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기둥들이다.

그 칠가 중 하나인 구마가(九魔家)는 남창에 자리를 잡은 가문이다.

거대 도시 남창.

그곳 상권의 5할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명실상부 강서성의 거두.

남창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사업은 막대한 황금을 쓸어 담기에 충분했고, 사파에서 돈은 곧 힘이 됐다.

힘이 돈을 불러오고.

돈이 힘을 불러오는.

노골적이고 탐욕스러운 순환.

그 거센 순환의 고리는 정파의 기세에 밀려 남쪽에 겨우 자리를 잡았던 사파들조차 강성하게 만들었다.

머릿수를 늘리고.

영약으로 고수를 양성하고.

손에 쥔 부(富)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부(富)를 손에 쥐기 위해.

구마가는 여타 다른 가문들이 그러한 것처럼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렇기에.

“천박한 놈.”

안귀문주가 남창에서 뛰쳐나갔다고 했을 때, 그를 조롱하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그 간악한 놈이 구강에 손을 뻗으려고 선수를 친 것이 너무 뻔히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머저리처럼 바로 움직일 순 없었다.

지금 당장 안귀문주가 사라진 빈틈을 노려 그 영역을 갉아먹고 있는 놈들이 있었으니까.

주요 전력이 자리를 비운 것인지 제대로 된 반항조차 없어서 수월하게 영역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설령 구마가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거대해도 탐욕스러운 열매가 있다면 그 이빨을 들이댈 놈들이 바로 사파이니까.

구마가가 자리를 비운다면 남창의 탐욕스러운 아귀들이 이번엔 이쪽의 살점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 거다.

그렇기에 그 어리석고 비열한 안귀문주가 실패하기를 바라며 그의 영역을 갉아 내던 그때.

“가주님, 백유가 안귀문주를 꺾었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고작해야 일이 년 전에 학관을 졸업한 애송이가 누굴 꺾었다고?

“안귀문주가 부하들을 이끌고 백사문을 기습, 정문에서 막혀 전멸했다고 합니다.”

“기습했는데, 정문에서 막혔다?”

그건 또 무슨 경우 없는 소리인가.

기습을 했는데, 왜 정문에서 막혔고.

부하까지 끌고 간 놈이 대문조차 넘지 못하고 꼬꾸라졌다니.

심지어, 지금 안귀문의 상태로 봐선 주요 전력을 끌고 갔을 터인데.

그런데도 정문을 못 넘고 꼬꾸라졌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섬뜩한 가정에 구마가주는 입을 다물었다.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소리군.”

안귀문주는 생각이 짧고 감언이설에 쉽게 휘둘리는 머저리이지만, 그 무력만은 진짜였다.

그런 자가 정문조차 넘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경비를 배로 늘리고, 순찰의 간격을 반으로 좁혀라.”

“예.”

“다른 문파에 연락을 넣어라. 아무래도 주제를 모르는 꽃 하나가 이쪽으로 뿌리를 뻗을 것 같다고.”

“예.”

소문으로 접한 백유의 성격을 생각하면, 안귀문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남창에 있는 다른 문파에도 손을 뻗으려 할 터.

그 건방진 계집한테 휘둘릴 생각은 없었다.

사천맹의 후계자 다툼?

분명 한 발 걸칠 생각이지만, 주도권을 놓아선 안 된다.

끌려가는 순간, 이쪽의 입으로 들어올 부와 명성이 전부 목줄을 쥔 놈에게 들어갈 테니까.

이쪽은 먹고 흘린 찌꺼기나 주워 먹으며 만족할 생각 따윈 없다.

백유가 안귀문으로 향하면, 그 즉시 움직여 백유를 압박할 거다.

안귀문의 영역을 먹어 치우는 것은 물론, 그 자리에서 그년의 목줄을 움켜쥔다.

맹주 다툼에 끼어들 생각?

없다.

그년을 탐내는 머저리들은 많다.

아름다운 육체를 탐내는 놈들은 물론이고, 저기 맹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는 다른 후계자들까지.

팔아먹을 곳은 넘쳐난다.

구마가주가 앞으로 손에 쥘 거대한 황금을 상상하며 입꼬리를 올리는 순간.

“가, 가주님!”

다급한 목소리가 그를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끄집어냈다.

당황스런 감정이 가득한 목소리.

“무슨 일이냐!”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구마가주가 가주실을 나서는 그 순간.

쿠르르르릉.

천둥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작은 지진이 난 게 아닐까 싶은 진동.

그리고 그것이 자연현상이 아니란 것을 직감한 구마가주의 얼굴은 급격하게 굳었다.

“웬 놈이냐!”

건물을 나와 경공을 펼쳐 달려서 도착한 정문.

“꺄하하! 놈이 아니라 년인데!”

피떡이 되어 날아가는 부하들 사이로, 광소를 터트리는 여인이 붉게 물든 손을 휘두른다.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날아가는 부하들.

그리고.

“네가 구마가주인가?”

정문 위에 앉아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

가면을 쓰고 있어 확신할 순 없으나, 체형과 목소리로 보아 사내가 확실했다.

“……흑성?”

보고로 들었던 그의 이름을 말하며, 구마가주가 미간을 찡그리는 순간.

“구마가. 황금에 미친 자가 가주로 있으며, 그 영역에서 보호비 명목으로 걷는 세가 너무 과중해 도망치는 자들까지 있을 정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사내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고리대금으로 배를 불리며, 원금과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이들은 노예로 팔아먹는 인신매매도 겸하고 있음.”

사내의 손에 끼어져 있던 부적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제야 지금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 묘하게 어둡다는 것을 눈치챈 구마가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천벌이 오늘 너희에게 내릴 것이다.”

하늘이 요동친다.

구마가의 위에 자리 잡은 검은 구름이 일렁이며 푸른빛을 토해 내기 시작한다.

천지가 울릴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이기 시작하는 구름.

“이런 미친……!”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임을 깨달은 구마가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는 순간.

콰가가강!

벼락이 꽂히기 시작했다.

전각, 연못, 연무장, 그리고 사람.

가릴 것 없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번개가 가문 전체를 잡아먹기 시작한다.

벼락이 꽂힌 전각은 불타오르고.

병장기를 손에 쥐고 있다가 벼락을 맞은 이는 몸을 부르르 떨다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정녕 하늘이 벌을 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마가의 장원과 정원에 꽂히기 시작하는 벼락.

꽃과 나무가 불타고.

연못엔 죽은 잉어가 떠오르며.

전각은 거센 화마에 휩싸인다.

“꺄아아아!”

“이, 이게 무슨 일이래!”

“빨리 나와!!”

당황한 이들의 외침과 함께 곳곳에서 뛰쳐나오는 이들.

무공을 익히지 않은 하인과 어린아이들.

그들은 잔뜩 겁에 질려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도저히 공포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건물에 불이 나는 바람에 일단 나오긴 했지만, 사방으로 벼락이 꽂히고 있으니 어찌 겁이 안 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니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장원에 가득 찼을 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공포에 떠는 이를 다독이던 하인 하나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무기를 손에 쥔 자만 벼락에 맞고 있는 것 같은데?’

벼락이 사정없이 모든 것을 찢고 불태우고 있었지만, 겁을 먹고 떨고 있는 하인이나 어린아이들에게 꽂히는 것은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하인의 눈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한 순간.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을 것이고, 죄를 뉘우친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담담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장원 전체로 퍼져 나가는 목소리.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속죄하라.”

귓속으로 파고드는 그 목소리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에 이를 악물고, 이내 자리를 벗어난다.

쏟아지는 벼락 사이를 헤쳐 목표했던 곳으로 나아간다.

그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설천위는 다시 고개를 내려 구마가주를 바라봤다.

“네 이놈!! 술사 나부랭이가!!”

구마가주의 살의와 분노로 가득 찬 외침에 설천위는 가면 속에서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꼬우면 올라오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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