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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61화 (361/624)

제361화

360화-흑성(黑星) (7)

회복과 안정.

이 두 가지를 위해 설천위는 오늘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천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조금 쉬는 게 낫지 않나?”

“아니, 굳어 버리면 그걸 푸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려.”

아직 상처가 전부 나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몸으로 기초적인 육체 단련을 하고 있는 설천위의 모습에 백유는 고개를 저었다.

구해 준 후 정말 죽어 갈 땐 안 하더니, 좀 움직일 만해지니 저런다.

무(武)를 본격적으로 갈고닦기 시작한 뒤론 수련 중독이라는 말을 유예린에게 듣긴 했지만…….

이건 상상보다 더한데.

백유는 혀를 내둘렀지만, 설천위는 나름 합리적인 계산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회복]을 이용하는 만큼 온전히 휴식만 취하기보다는 적절히 몸을 풀어 주는 게 더 낫다.

전투가 언제 시작될지 모르니 최소한의 몸 상태 유지는 필수였다.

거기다.

‘뭔가, 아쉽네.’

요즘 들어 아쉬움이 더해졌다.

옛날부터 수련할 땐 항상 아쉬웠지만, 최근 들어 그 아쉬움이 강해진 느낌이다.

강기(罡氣)를 향한 미련이 남은 건지 아니면…….

“흠.”

깊어지기 시작하는 고민을 털어 낸 설천위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던지고 무릎을 폈다.

“그래서, 주변 정리는?”

“얼추 됐어.”

구강을 정리하기 시작한 지 며칠째.

하루 종일 벽 고문에 처박혀 수련이나 하는 설천위와 달리 백유는 나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러 이권이 걸린 만큼 욕심에 눈이 멀어 버린 망자가 한둘이어야지.

물론 직접 찾아와 백유와 마주한 뒤로는 알아서 설설 기기 시작했지만.

그 모습에 종무가 크게 감탄했지.

살짝 충성심도 오른 것 같았고.

패기(覇氣)를 얻은 백유는 그야말로 능숙하게 그 힘을 다루기 시작했다.

패기의 총량 자체는 설천위가 더 많지만, 다루는 기술(?)에서는 백유가 압도적이라고 해야 하나.

[혼원패공(魂元覇功)]이라는 개사기 무공으로 후천적으로 그 힘을 얻은 설천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놀라운 재능이었다.

선천적으로 패도(覇道)의 자질을 가진 사람다웠다.

사람을 진짜 말 그대로 짓눌러 버리니까.

그녀의 기세에 한 번 압도되면 사람이 바뀐 것처럼 그녀에게 납작 엎드렸다.

아마도 저게 진짜 패기(覇氣)의 기본적인 사용법이겠지.

설천위는 그냥 강하게 압박하는 정도이지만.

본능 자체를 꺾어 버리는 위압감이란 건 저런 것일 거다.

“이제 슬슬 떠날 때가 됐어.”

슬슬 떠날 때가 됐다.

그 말에 설천위는 잠시 고민했다.

얼추 정리가 됐고, 애초에 이쪽의 목표는 구강을 점령하는 게 아니었다.

구강은 그저 거쳐 가는, 아니 시작점이라고 해도 되는 지점.

너무 긴 시간 이곳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빠르게 움직이는 게 더 낫겠지.

하지만.

“조금만 더 머물자.”

“……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어.”

그건 이쪽의 입장일 뿐이다.

게임 속에서도 그랬고.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기로도 그러하고.

“참을성 없는 놈들이 꼭 있거든.”

진짜 불나방 같은 녀석들이 반드시 있다.

무엇보다 혈교가 개입했다면, 움직이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다.

혈귀가 사라진 장강과 가까운 구강은 놈들이 보기에 지금 꽤나 매력적인 먹이일 터.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면,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쪽은 아직 회복이 덜 됐으니까.

거기다.

“한 번 정도는 지켜 주는 게 좋지.”

충성심은 감동에서 나오는 법이거든.

* * *

구강의 밤.

화려한 홍등이 거리 곳곳을 비추지만, 그럼에도 그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은 존재하는 법.

환락가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주거 지역에는 조용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곳인가.”

그런 곳들 중 하나인 백사문의 앞에 도착한 일단의 무리는 문패를 확인했다.

백사문.

확실하다.

어린 계집에게 놀아나 사파의 기개를 땅바닥에 떨군 머저리들.

이 잡놈들을 먼저 벌하고, 그 오만한 계집의 콧대를 꺾으리라.

친히 부하들을 이끌고 달려온 안귀문의 문주, 안건운은 거칠게 검을 뽑았다.

정문을 부수고 들어가 피로 사파의 기개를 세우리라.

스스로의 의기에 취해 검에 한껏 기를 담는 안건운.

그 검이 백사문의 정문을 향하는 순간.

“에헤이, 남의 집 문을 왜 부수려고 그러나?”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대문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안건운의 정신을 깨웠다.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것도 현실이 여유로울 때나 가능한 이야기.

기척을 눈치채지도 못한 고수가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실감각을 되찾기에 충분했다.

“뭐 하는 놈이냐!”

“어허, 남의 집에 찾아와 놓고 되레 뭐 하는 놈이냐고?”

웃기는 놈일세.

한껏 긴장해 검을 겨누는 안건운의 모습에 설천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칠가(七家) 중 하나가 움직였나 했더니, 웬 잡놈이 왔네.”

“뭐, 뭐라?”

잡놈?

설천위의 과하게 직설적인 표현에 안건운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런 무시를 당하다니.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고…….

“뭐, 대충 감은 잡히네.”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안건운의 모습을 무시한 채 설천위는 적들의 숫자를 가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했다.

웬 머저리 놈이 부추김에 넘어가 부하들을 이끌고 허겁지겁 달려온 꼴이다.

구강에 문파가 둘이나 비었으니 그 빈자리를 먹어 치우는 게 어떻겠냐는 둥.

백유가 그렇게 예쁘니 취하는 게 어떻겠냐는 둥.

그런 말에 넘어가 허겁지겁 달려온 거겠지.

실력은 얼마 전에 백유가 죽인 고창수 정도.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사는 놈치고는 꽤나 준수한 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자신 있는 분야에 게을러지는 법이니까.

할 줄 알았던 것을, 지금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 흔하게 범하는 인간의 오류다.

그런 오류를 경계하고, 자신을 꾸준히 갈고닦는 건 무인으로서 꽤나 좋은 자질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쉽네.”

그 노력이 이리도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천위, 혀가 길다.”

백사문의 정문이 열리며, 천천히 걸어 나온 백유가 설천위를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아쉽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군.”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앞에 선 안건운을 바라보는 백유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맺혔다.

“이런 머저리들이 죽는 게 뭐가 아깝다고?”

“쳐라!!”

백유의 조롱에 즉시 반응한 안건운의 고함이 터져 나오고.

그에 따라 부하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몇몇은 담을 넘고.

몇몇은 백유를 향해 달려든다.

일부는 내부를 공격하고, 일부는 백유를 붙잡아 그녀를 흔들려는 수작.

이런 경우, 보통 내부의 이들은 노려지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안건운과 부하들의 능숙한 움직임에 백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판단은 나쁘지 않네.”

텅!

“컥!”

“이, 이게 무슨?”

담 위를 가로막은 검은 벽에 막혀 튕겨 나온 이들이 바닥을 구른다.

부하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안건운도 당황했지만, 백유는 당연하다는 듯 움직였다.

“끄아아악!”

백유의 손에 붙잡힌 무인의 입에서 거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단말마(斷末摩)의 비명을 내지른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소리.

한쪽 가슴이 옆구리 아래로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이가 시체가 되어 허물어진다.

“오, 확실히 쉬운데.”

그리고 그 끔찍한 광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끄아아악!”

“커억!”

울려 퍼지는 비명.

쓰러지는 부하들.

순식간에 죽어 나가기 시작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안건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괴, 괴물이다!’

자신조차 제대로 보기 힘든 기묘한 손놀림.

인간의 뼈조차 두부처럼 파내는 가공할 위력의 조법.

확실했다.

잘못 건드렸다.

‘지, 지금이라도 도망을……!’

초절정에 오른 고수라도 목숨이 아까운 건 마찬가지다.

하물며 많은 것을 누리는 삶을 살아온 이가 가지는 삶에 대한 집착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그렇기에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안건운이 기어코 뒤로 돌아 도망치기 직전.

“문주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안건운의 발을 붙잡았다.

함께 온 교의 술사.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안건운의 눈이 변하기 시작했다.

붉게.

피를 푼 것처럼 붉게.

“어쭈?”

안건운만이 아니다.

그의 부하들까지 모두 눈동자가 붉게 변하는 것을 확인한 백유는 헛웃음을 지으며 여인을 노려봤다.

“피 냄새가 나는 쥐새끼가 여기에도 있었구나?”

“사화(邪花), 과연 꽃이라 불릴 만한 외모군요. 그 속내는 아닌 것 같지만.”

백유의 도발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하며 여인은 자신의 손에 들린 소리 없는 방울을 흔들었다.

“크아아악!”

그에 반응해 괴성을 터트리는 안귀문의 무인들.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기세에 백유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선천지기를 뽑아 쓰고 있네?”

“고작해야 몇 번 써먹을 인형들, 쓸 수 있을 때 쓰는 게 맞겠죠.”

그들의 생을 대가로 뽑아내는 힘이 거칠게 용솟음치며 공간을 메우고.

여인이 소리 없는 방울을 흔드는 것을 시작으로 안귀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백유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압적인 기세.

삶을 포기하고 달려드는 적들의 공격은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한 만큼 아군의 삶도 포기했기에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마구 뿜어내는 검기.

앞으로 나가 백유에게 붙잡힌 아군의 가슴을 망설임 없이 꿰뚫고 들어오는 검.

설령 화경급 고수라고 할지라도 몸 성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과연 욕망에 눈이 멀어 생각 없이 달려온 놈들과 달리 다 계획이 있었다는 건가.

아군의 심장을 꿰뚫고 솟구친 검을 손으로 쳐 내 꺾어 버린 백유는 감탄했다.

“대단한데?”

이 모든 상황을 예측했을 줄이야.

대문 위에서 아직도 느긋하게 누워 있는 설천위를 짧게 바라본 백유는 어느새 공간에 퍼진 무언가를 느끼고 웃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익숙한 향기.

그나저나 저쪽의 술사는 아예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은밀함에 감탄하며 백유는 시체를 던졌다.

그 뒤를 이어 달려드는 적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건가?”

순간, 적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흉흉한 기세는 그대로였지만, 마치 백유를 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일제히 움직임을 멈춘 이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그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한 여인이 다시 방울을 흔들었지만, 안귀문의 무인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제야 설천위가 무언가 했다는 것을 깨달은 여인이 고개를 들자, 버들이 수 놓인 가면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혈교의 주술을 내가 몇 번 봤는데, 이런 조잡한 수가 통하겠냐?”

너무나도 초보적인 섭혼술과 약물의 조합.

이미 몸에 스며든 약이야 어쩔 수 없지만, 섭혼술 쪽은 얼마든지 건드릴 수 있었다.

순수하게 내공만을 사용하는 거라면 몰라도, 영력을 이용한 섭혼술이라면.

“흠.”

설천위가 손가락을 튕기자, 몸을 돌린 안귀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여인을 바라본다.

자신이 조종하던 꼭두각시들이 제 손에서 벗어나 되레 이쪽을 노리는 상황.

“이, 이게 무슨……!”

공포에 질린 여인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지만, 설천위의 지시는 냉정했다.

“잡아.”

일제히 달려드는 안귀문의 무인들.

술사 출신의 여인은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붙잡혀 바닥에 얼굴이 처박혔다.

“음……. 얘들은 글렀는데?”

대문 위에서 내려와 여인의 앞에 쪼그려 앉은 설천위는 무인들의 상태를 살피곤 고개를 저었다.

백유의 강함을 직감했는지 제대로 힘을 폭주시킨 탓에 수명이 다해 버렸다.

아마 저 폭주가 끝나면 그대로 숨이 끊어질 터.

구하기엔 이미 늦었다.

애초에 딱히 구할 생각도 없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피가 잔뜩 묻어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을 보며 웃었다.

“연결된 문파만 싹 읊어. 그럼 편하게 죽고, 편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게 해 줄 테니.”

일단 피 냄새를 풍기는 놈들부터 싹 정리하고 시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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