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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59화 (359/624)

제359화

358화-흑성(黑星) (5)

요동치는 기(氣).

고고하게, 하지만 강렬하게 백유를 휘감은 기운을 바라보며 설천위는 조용히 감각을 펼쳤다.

영력을 이용한 감각은 물론이고, 내공까지.

거기다.

[영역(靈域)]

주변으로 뻗어나간 설천위의 의지가 하나의 현상이 되어 주위를 감싼다.

짙은 영력으로 가득 찬 공간.

설천위가 만들어 낸 영력의 공간 속에서 백유는 자연의 기(氣)뿐만 아니라 설천위의 영력까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경지에 오른 무인(武人)의 내공이 크게 늘어나는 건 당연히 갑작스럽게 커진 그릇을 채우기 위해 주변의 기를 단숨에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심법을 이용해 천천히 몸에 맞게 바꿔서 조금씩 흡수할 기(氣)를 깨달음의 순간에 깃든 강렬한 의지로 빨아들이는 거다.

그러니 영력이라고 다를까.

기(氣)와 영력을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는 백유를 잠시 바라본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네.”

이 정도면, 꽤나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겠어.

[그래도 마님한테 이를 거예요.]

“난 당당하다.”

[진짜로 이를 거예요.]

“난 진짜로 당당…….”

[흥, 그때 가서 보면 알겠죠!]

“청아야,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식령 주제에 주인을 협박하다니……!

청아의 두고 보자는 협박에 끝내 굴복한 설천위가 청아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고민하는 사이.

백유의 변화 속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한껏 끌어모은 기(氣)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그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상태인지 코피마저 흐른다.

하지만, 설천위는 그저 조용히 지켜만 봤다.

이쪽이 돕겠다고 쓸데없이 손을 대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고.

무엇보다.

깨달음의 순간을 자신의 의지로 미룰 수 있는 백유가 고작 저런 것에 무너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평소에 고민하던 것을 고창수와의 싸움으로 확실하게 손에 넣은 게 분명해 보이는 백유.

보통의 무인이라면, 그 전투의 흐름대로 고창수를 정리하고 곧장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기는 게 정상이다.

깨달음의 순간은 찰나이니 그 누구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잠깐의 시간 낭비조차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곁엔 설천위도 있으니 그 자리에서 바로 명상에 들어간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고.

그런데도 백유는 고창수를 마무리하고, 종무에게 지시를 내린 뒤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온 뒤에야 명상에 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힘들게 살기는.”

몇 번 실패해 창백해졌던 안색이 어느 순간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설천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기서부터는 봐선 안 되는 영역이다.

백유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기세에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그것은 패(覇)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자신의 힘에 항상 부족했던 무언가.

본능이 갈구하던 그것.

전부 익혔지만, 벽에 가로막혀 있던 무공이 그 힘을 깨닫는 것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어쭙잖게 만들어 내는 강기(罡氣)가 아니라.

진짜 이쪽의 의지를 담은 강기가 완성되었다.

그 깨달음으로 뚫지 못했던 임독양맥마저 뚫었으니…….

‘마음에 들어.’

드디어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뭐, 아직도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다음을 논할 자격을 손에 넣은 건 확실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백유가 천천히 눈을 뜨려는 순간.

촤라라락!

시원한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의 단계에서 피하는 것을 고려조차 하지 않은.

‘……천위의 힘이네.’

자신의 약점을 보여도 괜찮다고 여기는 남자의 힘.

아마 임독양맥이 뚫리며 몸에서 배출된 노폐물을 치워 주는 것일 터.

시원한 물의 감촉에 신기해하며 백유는 눈을 떴다.

창밖으로 빠져나가는 물의 꼬리가 힐긋 보였다.

그리고.

“왜 뒤돌아 있어?”

“호법의 기본이지.”

이쪽이 아닌 반대쪽을 보며 앉아 있는 설천위의 모습에 백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이유를 바로 눈치챈 백유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뿜어지는 기를 버티지 못하고 삭고 찢어진 옷이 흘러내린다.

이미 옷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

그 상태로 설천위에게 다가가 그 등을 끌어안으려는 순간.

“천위, 지금 이건 아니지.”

“헛소리 말고 옷이나 입어라.”

설천위의 등을 가로막은 검은 장벽의 존재에 백유는 볼을 부풀렸다.

설천위가 만들어 낸 이 검은 벽은 기(氣)만으로는 쉽게 부술 수 없…….

‘……할 만해 보이는데?’

뭐지?

뭐랄까…….

할 만해 보여.

응.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즉시 손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인 기(氣)가 손을 감싸고.

뿌득!

“하?”

가볍게 설천위의 벽을 뚫은 백유의 팔이 설천위의 목을 감쌌다.

당황하는 설천위의 표정이 살짝 보인다.

이내 자신의 탓이라는 듯 어두워지는 얼굴도 마찬가지다.

그 모습에 백유는 환하게 웃으며 설천위의 볼을 꼬집었다.

“천위, 이건 순순히 내 유혹을 받아들이겠다는 신호야?”

아무리 예상치 못하게 벽이 뚫렸다고 해도 설천위가 곧바로 대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추가적으로 벽을 만들어 막지 않은 건 저쪽도 그렇게까지 거절할 마음은 없다는 뜻!

백유의 미소에 음흉함이 깃들었다.

“헛소리 그만해라. 백유.”

[맞아요! 이 천인공노할 짓을 제가 반드시 마님께……!]

“꼬맹이는 조용히 있고, 지금은 어른의 시간이야.”

[어, 어른의 시간……! 아니, 잠깐! 당신, 지금 제 말이 들려요?]

자신의 말이 들리느냐고 되묻는 청아의 목소리에 백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천위의 볼살을 조몰락거렸다.

“응, 전에도 보였잖아?”

[……진짜, 주인님의 주위에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밖에 없네요.]

한숨을 내쉬며 사라지는 청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백유는 이내 설천위의 볼에 자신의 볼을 갖다 댔다.

뭐, 청아의 반응이 이상하긴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일단 이쪽이 즐길 수 있는 걸 즐기…….

“그만.”

손으로 백유의 볼을 밀어낸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적당히 하고 옷이나 입어라, 백유.”

“이잉, 우리 사이에 섭섭하게…….”

설천위의 단호한 태도에 아쉬움을 삼킨 백유는 어디선가 옷을 물고 온 개의 모습에 살짝 멈칫했다.

“얘는?”

“청랑.”

“귀엽네.”

헉헉거리는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은 백유는 옷을 받아서 입었다.

“그래서 상황은?”

“나도 잘 몰라. 네가 명상에 잠긴 건 다섯 시진 정도였다.”

“그래서 한밤중이구나.”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침대에 앉았다.

“별다른 말이 없다는 건 놈들이 눈치가 있다는 소리겠네.”

“……뭐가?”

“사파의 여인들은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으면 남자를 침대로 끌고 가는 경우가 꽤 많거든.”

음흉하게 웃는 백유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농담의 수준이 중년 변태 아저씨 같으냐.

“장난 그만하고.”

“에? 장난 아닌데?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면 여태까지 보고도 하러 안 올 이유가 없잖아?”

……진짜냐.

아무도 얼씬 안 한 이유가 진짜 그거라고?

누가 욕망에 충실한 사파 아니랄까 봐…….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럼 쉬러 갈 테니 너도 좀 더 쉬어라.”

“어디 가?”

“어디 가긴, 나도 아무 방이나 잡고 자려고…….”

“여기서 자.”

“백유, 농담은 그만…….”

“아니, 진짜로. 천위.”

장난기 없는 백유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너와 내가 애인 사이처럼 보이게 된 지금, 네가 밤을 다른 방에서 보내는 건 좋지 않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너와 내가 쉽사리 갈라서지 않을 관계라는 걸 보여 줘야 하니까.”

“다른 녀석들이 허튼 생각을 하지 않도록?”

“그렇지.”

일리가…… 있다.

백유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명상이나 해야겠군.”

“어머? 환자가 그러면 안 되지? 여기 와서 누워.”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토닥거리는 백유의 모습에 설천위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까 그 말,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리고.

“환자라는 걸 알면 이렇게 굴리지 마라. 백유.”

* * *

구강(九江)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유흥과 쾌락의 도시.

밤에 그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나는 도시이기에 소문은 밤이 되자마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호위가 적네?”

“그러게?”

기루에서 일하는 기녀들은 오늘따라 유독 적은 무인의 숫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몇몇 기루에선 경악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벽고문이?!”

“정말로?”

“그럼 이 도시가 사화(邪花)의 휘하로 들어갔다는? 헙!”

백유가 도시를 먹어 치웠다는 소식에 기루를 운영하거나 도박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잘하면 독립할 수 있을지도?’

‘이거 할 만하겠는데?’

그 즉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라진 주인.

기루나 도박장은 각각 주인이 있다.

물론 실제로는 벽고문이나 소홍문의 지배를 받는 꼭두각시들이긴 하지만.

여하튼 일단 공식적인 소유권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말로 잘 넘기면 꿀꺽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했으나, 그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지금부터 이곳은 우리의 관할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백사문의 무인들이 빠르게 영업장을 통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백사문 무인들의 머릿수가 부족했지만, 살아남은 벽고문이나 소홍문의 무인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났다.

그들도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소홍문은 물론이고, 벽고문도 문파 자체가 괴멸되었다.

문주가 죽은 건 물론이고, 간부들도 전멸.

일반 문도들도 반항하면 전부 죽였다.

그야말로 피가 낭자한 숙청.

찍소리는커녕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그렇게 구강에 흉흉한 소문과 피 냄새가 가득 퍼지면서 순식간에 백사문은 구강 전체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거의 정리가 끝난 상태입니다.”

벽고문의 가장 큰 방.

침대 위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는 백유의 모습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보고를 끝낸 종무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반항하는 곳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백사문이 들이민 검 앞에서 욕심을 접었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배가 찔릴 위험도 감수하는 이들도 있는 법.

끈질기게 버티는 그들을 종무는 단순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그들의 처리를 허락하시면 다른 이를 주인으로 세우겠습니다.”

그냥 죽이고 다른 이를 머리에 세우겠다는 잔혹한 방식.

상당히 사파다운 방식에 백유는 고개를 저었다.

“일 잘하고 있던 녀석들을 죽이면 한동안 수익이 떨어지지. 이리로 찾아오라고 해.”

“예.”

직접 만나서 어떻게 할 생각이시지?

문득 궁금해졌지만, 종무는 빠르게 호기심을 접었다.

사파에서 호기심은 죽음에 가장 근접한 감정이니까.

“사람들의 정리는?”

“거의 다 구조했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원하는 사람에게는 적당량의 돈을 쥐여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돈은 넉넉하게 쥐여 줘.”

“예.”

“곧 죽어도 갈 곳이 없어서 남겠다는 녀석들이 있다면 따로 모아서 데려오고.”

“예.”

그 외에 자잘한 보고가 이어졌고, 백유는 거침없이 지시를 내렸다.

순식간에 정리되는 사안들.

열심히 머릿속으로 백유의 지시를 욱여넣은 종무는 모든 보고가 끝나자 속으로 작게 안도했다.

별 탈 없이 보고가 끝났으니 이젠 가서 일을…….

“아, 이거 사파 전체에 보내. 우리 쪽 애들 보내지 말고 표국을 통해서 뿌려.”

천천히 날아오는 서신의 모습에 꿀꺽 마른침을 삼킨 종무는 얌전히 그 서신을 받았다.

그리고.

“……정말 이렇게 보냅니까?”

“응.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이 적어서 보내.”

……이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사천(邪天)의 좌(座)에 피 냄새가 나는 벌레들과 손을 잡은 돼지들이 앉아 있으니, 이 백유가 친히 그 돼지들을 치울 것이다. 불만이 있는 머저리들은 내 앞에 서고, 흑룡의 고고함을 간직한 이라면 내 뒤에 서라.]

……한바탕 전쟁 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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