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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50화 (350/624)

제350화

349화-혈천 (4)

물을 헤치고 나아가며, 무해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자신의 얼굴 위로 흐르는 물방울이 강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감정을 누르고 끊임없이 헤엄쳤다.

돌아간다.

그런 나약한 생각은 물에 처박히는 순간, 접었다.

자신을 물어 수십 장은 족히 날아간 용이 힘이 다해 사라지고, 차가운 물에 처박힌 순간 깨달았으니까.

적의 손에 뭉텅이로 살점을 뜯기면서까지 단주가 자신을 도주시킨 이유를 알았으니까.

‘전해야……!’

섬에서 겪은 일.

단주님조차도 예상 못 한 적의 존재.

단주님을 몰아붙이던 그 괴물까지.

전해야 했다.

그리고 대비해야 했다.

반드시 살아서.

이 모든 것을 전해야겠다.

그것을 알기에 무해는 이를 악물고 손발을 움직였다.

배에 뚫린 구멍에서 아찔한 고통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계속되는 출혈에 점점 더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헤엄치고 또 헤엄쳤다.

다행히 천운이 닿은 걸까.

가는 방향이 맞는지 틀린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헤엄치던 무해는 끝내 부두에 닿았다.

완전히 고갈되다시피 한 내공을 쥐어짜 겨우 부두 위로 오르니, 주변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 스님!”

“무림맹의 스님 아니야?”

“아니, 이게 대체…….”

붉게 물든 가사.

물에 빠진 생쥐처럼 초라한 몰골.

무림맹의 아니, 소림의 스님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초라한 모습.

당황한 군중이 웅성거리지만, 무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런 것을 따질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 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것이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힘없이 걸어가는 무해.

“대주님!”

그리고 그 모습을 정찰을 위해 부두에 나와 있던 불살대원이 발견했다.

놀란 표정으로 달려오는 대원.

낯익은 그 얼굴을 확인한 무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여유도 없이 경고를 쏟아 냈다.

“단주님이 당했습니다. 혈교로 보이는 무리가 살육을 위한 괴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예? 그, 그게 무슨?”

“지금 당장 지부로 돌아가 방어와 도주 준비를!”

지친 몰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힘 있는 목소리에 무배춘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자세히 잘 모르겠으나 대주님이 이렇게까지 강조할 정도면 분명 큰 위협이 있는 것일 터.

즉시 비틀거리는 무해를 등에 업은 무배춘은 전력을 다해 지부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심각하군.”

상황을 전해 들은 정규철은 두 눈을 감고 검지와 엄지로 콧등을 주물렀다.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듣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단주님의 죽음을 확인한 건 아니란 소리군요.”

“……그렇긴 하지.”

옆에서 들려온 여웅의 목소리에 정규철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기절한 무해 대주가 끝까지 설명한 바로는 확실히 그가 도망칠 때까진 단주는 살아 있었다.

문제는 그 상황에서 사람이 살아 나올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

그리고 간단히 생각하면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살아 나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대해야 할 적은 둘.

하나는 초절정급의 무인.

또 하나는 설천위조차 우위를 점하지 못하던 괴물.

무해를 탈출시키기 위해 큰 부상까지 당한 단주가, 그 둘을 상대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단주라는 존재가 아무리 괴물같이 강해도, 결국 사람이지 않은가.

그 한계라는 것이 분명 있는 건데…….

“버티는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이유는?”

“첫째, 부상자가 많습니다.”

여웅 자신은 물론이고, 지금은 이 지부의 최대 전력인 무해도 기절한 상태다.

그 외의 부하들도 자잘한 부상을 안고 있는 상황.

무리한 도주는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적다.

“둘째, 이 참상에 혈교가 개입되어 있다면, 민간인을 공격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않냐.

그런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던 정규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자신은 더 이상 낭인이 아니다.

무림맹의 녹을 먹는 무인이 됐으니, 지켜야 할 건 지켜야겠지.

“순찰을 유지하고, 지부의 무인들과 불살대 전원에게 준비하라고 일러야겠군.”

“네.”

“지원이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가능성은?”

“…….”

정규철의 물음에 여웅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무림맹은 섬서에 있다.

이곳은 호북의 동남쪽 끝.

강서와 맞닿은 곳.

이곳에서 무림맹까지 말을 타고 미친 듯이 달려도 최소 보름 이상이 걸린다.

괜히 파견이라는 단어를 써 가며 설천위가 이곳으로 온 게 아니었다.

왕복으로 한 달.

아무리 버티고 버틴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적에게는 화경급의 괴물이 있는데, 이쪽에는 단주급마저 없다니.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싸움이다.

“……가능성이 없더라도, 해내야 합니다.”

혈교가 개입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후퇴는 없다.

무엇보다.

“단주님은 돌아오실 겁니다.”

확신에 찬긴 여웅의 목소리에 정규철은 이내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흩트렸다.

“에라! 그래, 해 보자.”

여웅이 무엇을 믿고 저렇게까지 단주의 생환을 확신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해 보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냥 준비로는 안 된다.

“부두로 가야겠어.”

* * *

수많은 기억들.

공포에 질렸던 기억.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던 기억.

이건, 그래.

태어나기 전의 기억이구나.

제물이 된 아이들의 기억이야.

너무나도 끔찍해 그 자아가 무너지고 심층 깊이 가라앉았던 기억.

공포와 고통이라는 감정이 제거되는 존재에겐 불필요한 기억.

그렇기에 영원히 꺼낼 일이 없었던 기억.

그것이 새롭게 받아들인 혼에 의해 끄집어내졌다.

최후의 선이라는 듯, 묘한 거부감을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무슨 상관인가.

과거에 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든.

고통과 절망 속에 죽어 나갔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

‘나는.’

나는 다른 존재니까.

머릿속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차오른 기억이 그들의 공포와 절망을 부정한다.

결국, 약해서 죽은 것이고.

결국, 약해서 고통 받은 것이다.

강하다면 그럴 일이 없다.

나는 이제 강하니, 그럴 걱정은 없다.

걱정이 사라지니 불안이 사라지고.

불안이 사라지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수십의 기억을 헤집고.

수백의 죽음을 되돌아보며.

끝내.

“후우.”

인격이 완성된다.

소년이었던 몸은 조금 성장해 청년이 되었고.

말끔했던 얼굴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흉터로 그 인상이 크게 바뀌었다.

말라서 호리호리했던 몸은 탄탄하게 근육이 붙었고.

끝없이 흘러나오던 피비린내는 씻은 듯 사라졌다.

“과연.”

두 눈을 뜨고, 세상을 인지한 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님.”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움찔 몸을 떠는 이들이 보였다.

기묘한 확신과 불신을 동시에 품은 채 고개를 숙인 이들.

그래…….

“2번대인가.”

“예. 2번대 대주 등려입니다.”

“그래, 기억나는군.”

툭툭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린 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릿하지만, 기억에 있다.

분명 써먹기 좋은 수족이었나.

“일단, 지적하지. 단주라는 말은 틀렸다.”

“…….”

평소의 단주와는 명백하게 다른 말투.

그 말에 등려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나른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단주.

공허하면서도, 무언가를 향한 욕구로 일렁이는 눈빛.

슬쩍 시선을 돌리니 심장이 뽑혀 죽은 시신이 보인다.

잠시 시신을 바라보던 등려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단주님의 혼을 흡수한 것이 맞습니까.”

“그건 맞다.”

“하시고자 하는 바를 여쭙고 싶습니다.”

하고자 하는 바.

혈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아니, 의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질문.

하지만 존재는 가만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피를 마시고 싶군.”

“누구의 피를 말씀이십니까.”

“그건……. 아.”

등려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존재는 이내 깨달음을 얻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의 피가 아니군. 그래, 이건 염천의 기억인가.”

“기억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그 차이는 무엇이지?”

“지금 하고자 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존재는 가만히 등려를 바라봤다.

기이할 정도로 살인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죽이지 않고, 데리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그렇군.’

염천의 의지구나.

그리고 나는 그 의지를 토대로 쌓아 올린 존재.

혈귀로서 쌓아 온 모든 것이 뒤집히고, 역으로 염천이라는 혼 위에 그 모든 것이 재정립된 존재.

그래.

“단주라고 할 수 있겠군.”

고개를 끄덕인 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완전히 인지했다.

“지금부터 나를 혈천(血天)이라 부르도록.”

“존명.”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혈천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깊은 밤.

아니, 이제 새벽이라 불러도 될 시간대인가.

“내가 얼마나 가만히 있었지?”

“닷새입니다.”

“그렇군.”

생각보다 시간을 더 낭비했군.

고개를 끄덕인 혈천은 천천히 강을 향해 걸어갔다.

뜬금없는 그 행동에 등려가 놀랐지만, 말리진 않았다.

생각이 있을 거란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흡!”

“!!”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부하들의 숨 참는 소리를 등려는 타박하지 못했다.

자신도 겨우 신음을 삼켰으니까.

“뭐 하지?”

물 위에 서서 고개를 돌린 혈천이 묻는다.

“지금 당장 배를 준비하겠습니다.”

“아, 그렇군.”

저들은 물 위를 걷지 못하지.

고개를 끄덕인 혈천은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재빨리 배를 띄운 2번대는 열심히 노를 저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죽음을 품은 혈향이 장강 위로 퍼져 나갔다.

* * *

무인 대 무인의 전투.

무협지 속에서 나오는 무인과 무인의 싸움은 검 한 자루, 불끈 쥔 주먹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붙는 정면 승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당연히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정녕 두 주먹, 한 자루의 검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고수는 이 무림에서 겨우 한 줌 정도다.

기습적으로 화살에 맞으면 몸에 바람구멍이 생기고.

높게 장애물을 쌓아 놓으면 쉽사리 넘지 못하고 망설인다.

즉, 수성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소리다.

젊은 고수들이 산채를 혼자 정리했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치켜세워 주는 것은 괜한 짓이 아니다.

이미 산채라는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한 이들을 홀몸으로 들어가 부쉈으니 영웅이라 치켜세워 주는 것이다.

여하튼, 수성과 공성이라는 상황의 차이에서 오는 이점은 무인들의 전투에도 충분히 작용한다.

그렇기에.

“이, 이게 정말 맞나?”

“맞습니다.”

무림맹, 무혈 지부의 지부장 구덕현은 정규철의 단호한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실력도 자신과 비슷한데, 고작해야 부대주.

하지만 말이 지부장과 부대주지, 그 격차는 심각할 정도로 컸다.

상대는 무려 본 맹에 있는 단주 직속의 대(隊)이고, 자신은 고작해야 자그마한 지부의 지부장일 뿐이니까.

부하들도 전부 이류 수준.

설천위가 아예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정규철은 무혈 지부는 물론 근처의 관에도 협력을 요청해 부두에 자리를 잡았다.

배를 댈 곳이야 많았지만, 이곳만큼 피해가 클 장소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장애물을 쌓고, 무기를 준비했다.

애초에 실력이 떨어지는 지부의 무인들에겐 활을 쥐여 주고, 불살대는 죽음을 각오하고 장애물 사이를 막았다.

그리고.

“……누,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습니다!”

근처의 창고 위에서 강을 감시하던 부하의 다급한 외침에 정규철은 와락 얼굴을 구겼다.

걸어오고 있다는 헛소리에 분노해서?

아니다.

‘빌어먹을……!’

그것이 가능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다.

최소 단주급 이상.

“전원 전투 준비!”

정규철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미리 훈련한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각자 자리를 잡고.

활을 메기고.

무기를 꼬나쥐는 그 순간.

“하찮구나.”

붉은빛이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끄아아악!”

“커헉!”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족히 이십 장은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켜켜이 쌓은 장애물을 단숨에 날려 버리고, 십수 명을 전투 불능으로 만든 적이.

“그놈은 없나?”

시시하다는 듯 걸어왔다.

죽음이라는 절망을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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