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48화 (348/624)

제348화

347화-혈천 (2)

설천위에게 싸움을 맡기고 섬 내부로 들어간 무해는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장애물을 만났다.

“소림의 중인가.”

담담하게 시체를 옮기던 이는 갑작스레 등장한 무해를 발견하고도 태연하게 허리를 폈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귀찮게 하는군.”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허리춤에 닦은 사내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빠르게 끝내지.”

담담한 목소리가 끝나는 순간.

“흡!”

즉시 내공을 끌어올린 무해는 자신을 향해 파고드는 검들을 쳐 냈다.

능숙하기 그지없는 기습과 합공.

한두 번 해 본 것으론 절대 나올 수 없는 자연스러움.

너무나도 부드럽게 연계되는 적들의 공격에 무해는 즉시 반응했다.

끌어올린 내공을 전신에 휘감고, 흔들리지 않는 부동(不動)의 이치를 품는다.

소림의 무학은 본디 수양의 무학이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학.

그 방어는 금강(金剛)을 추구하는 부동불변(不動不變)의 방어.

흔들리지 않으니,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니, 위태롭지 않다.

그리고 전투에서 위태롭지 않다는 것은 그 자체로 승리로 향하는 길이 된다.

쳐 낸 검 사이로 짧게 내지른 무해의 주먹이 허공을 때린다.

너무 짧게 내질러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불필요한 동작.

“컥!”

그게 소림의 절학인 백보신권(百步神拳)의 일부라는 것을 적들은 빠르게 깨달았다.

당장 적에게 닿지도 않은 동료가 맥없이 날아갔으니까.

물론.

“아미타불…….”

그 위력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닌지, 날아간 동료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지만.

나지막이 불호를 외며 자세를 갖추는 무해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적을 제압하기 위한 공격이 아니었다.

적을 밀어내고 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공격.

다수에게 둘러싸인 지금,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동료가 날아갔음에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적들의 검이 무해의 옆구리로 파고든다.

날카롭게 벼려진 살기를 품은 공격.

문제는 그것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람이 파고들 수 있는 최대한으로 공간을 활용해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적들의 합공에 무해는 솔직하게 감탄하고 말았다.

이리도 강자를 상대하는 훈련을 하다니.

부하들에게 보여 주고 싶을 정도였다.

“흡!”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내공과 함께 펄럭인 무해의 가사가 적들의 검을 휘감는다.

옷을 이용해 흡결을 펼치는 고절하기 그지없는 한 수.

설천위였다면 턱도 없었을 거라고 혼들이 감탄할 정도로 깔끔한 방식이었다.

상대의 무기를 휘감은 옷이 단숨에 적들의 검을 잡아당겨 그들의 균형을 흩트린다.

검기를 두른 검에 옷이 찢어지지 않는 것도 대단한데, 그것을 이용해 적을 흔들다니.

“강하군.”

단숨에 부하의 뒤로 접근한 사내는 짧은 감탄과 함께 발로 밀었다.

무해가 아닌, 자신의 부하를.

“헉!”

단숨에 밀려 나가 도검이 가득한 옷에 안면을 꼬라박게 생긴 부하가 다급하게 버둥거렸다.

하지만, 무해가 누구인가.

불살(不殺)의 길을 걷는, 독특하기 그지없는 무인 아닌가.

검기로 가득한 검들에 사람이 안면을 박으면 나올 결과는 뻔했다.

즉시 옷에 휘감은 검들을 풀어낸 무해는 발을 차올렸다.

쩡!

“카학!!”

적을 죽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방비하게 다가온 적을 그냥 보낼 생각도 없었다.

단숨에 적의 단전을 부숴 버린 무해는 하나 남은 발로 즉시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무해.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검.

허공에서 발을 놀려 적의 검들을 몇 번이고 차 낸 무해는 부드럽게 허공을 날아 땅에 착지했다.

“아미타불…….”

“과연, 명성대로군. 서승 무해.”

“나를 아시는 것입니까?”

“명성은 익히 들었지.”

한순간에 십수 번의 찌르기를 날렸는데, 그것이 전부 막혔다.

적의 실력이 명성대로라는 것을 깨달은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하들을 바라봤다.

“주위를 막아라.”

“존명.”

부하들로는 시간 끌기밖에 안 된다.

부하들을 물린 사내는 검을 늘어트린 채 무해에게 다가갔다.

“설마 당신 정도나 되는 인물이 어린 단주 밑에 들어갈 줄이야.”

“아미타불……. 단주님은 존경할 수 있는 분입니다.”

“뭐, 그야 그렇겠지. 그 나이에 단주에 오른 인물이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니면 누가 존경을 받겠나.”

자신들의 단주님도 그렇지 않나.

30대의 나이에 화경에 올라, 사파 동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삶에 타인의 존경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관없는 이야기군.”

쓸데없는 생각에 짧게 고개를 턴 사내는 무해를 향해 돌진했다.

이 이상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다는 의사 표현.

망설임 없이 거리를 좁히고 검을 휘둘러 오는 상대의 모습에 무해도 말없이 주먹을 움직였다.

쾅!

주먹과 검이 충돌한 것이라곤 믿기 힘든 폭음과 함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화경급 초인의 전투는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그 힘의 여파만으로 땅이 뒤집히고, 초목이 쓰러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절정급 무인의 싸움은 어떨까?

당연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화경급 고수의 싸움이 그렇게 격렬해지는 건 강기(罡氣) 때문이니까.

서로 막대한 힘의 덩어리를 휘두르니 자연스럽게 그 여파가 주위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거다.

그렇기에 초절정급 무인의 싸움은 그렇게까지 격렬하진 않다.

다만.

“아미타불!”

“흡!”

그렇다고 잔잔하지도 않다.

교차하는 주먹과 검이 서로를 빗겨 나가며 그 힘을 방출한다.

무너진 잔해가 그 충격을 맞고 금이 가거나 무너지지만, 거기까지다.

아예 폭탄을 던진 듯 주위를 초토화시키는 화경급의 싸움보다는 훨씬 얌전하지 않은가?

그저 가구가 부서지고, 벽이 좀 무너지는 정도일 뿐이다.

다행히도 이 잔해 속에선 그럴 걱정이 없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순식간에 서로의 주먹과 검이 얽히며 치열한 공방에 들어간 두 사람의 모습에 사내의 부하들은 얌전히 거리를 벌리고 기다렸다.

자신들이 끼어들어 봤자 방해밖에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처음엔 서로 자잘한 공격밖에 성공시키지 못한 두 사람의 전투가 점점 더 격렬해졌다.

무해의 주먹이 허공을 때리면 큰 북 치는 것 같은 굉음이 터졌고.

사내의 검이 허공을 찌르면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폭음이 터졌다.

한 수라도 삐끗하면, 치명상으로 이어질 격렬한 공방.

하지만 명백하게 사내 쪽이 우위에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해는 불살(不殺)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당하는 순간, 죽음으로 향하는 치명적인 급소는 공격하지 않는다.

거기다 일격에 제압하는 단전을 부수는 한 수는 조금 전에 봤다.

알고 있다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인의 기본.

정보 면에서 사내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기에 무해는 조금씩 방어가 벅차짐을 느꼈다.

‘……아미타불.’

이대로라면 밀린다.

그리고 자신은 죽겠지.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사문의 허락을 받고 무림행을 결정한 시점에서 이미 죽음은 각오했다.

불살(不殺)의 길을 걷기로 했을 때, 그것을 위해 자신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리라 각오했다.

그렇기에 홀로 다녔다.

자신의 죽음이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주.’

그런데 지금 자신이 죽으면 그 여파는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그를 위해 따라왔으면서 자신의 신념만을 고집하다가 그를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정녕 옳은 길인가?

꽉 움켜쥔 주먹이 흔들린다.

가진 모든 것을 꺼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적이다.

그러니…….

뜻을 품은 무해의 주먹에 살기가 깃드는 그 순간.

무해의 등 뒤에서 압도적인 무언가가 휘몰아쳤다.

존재 자체가 꺾일 것 같은.

압도적인 강자의 그것.

“흡!”

순간적으로 기세에 흔들린 적이 다급히 거리를 벌린다.

호흡과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로 주먹을 쓰는 무해와 지근거리에 있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이 물러나며 호흡할 여유가 생긴 무해는 어느새 자신이 쥐고 있던 주먹이 풀어졌음을 깨달았다.

“……아아.”

정녕 오랜만에 불호가 아닌 감탄이 흘러나온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증거이지만.

무해는 정녕 오랜만에 작게 웃었다.

그래.

“믿소이다.”

자신이 가는 불살(不殺)의 길을 누구보다 옹호해 준 것이 누구인가.

자신의 품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자신한 것이 누구인가.

흑룡을 품고, 악을 물어뜯으리라 천명한 그가 불살(不殺)을 허가했다.

악인이라면 망설임 없이 살을 저며 그 입을 열게 하고, 그 목을 치던 단주가.

어째서 자신에게는 불살의 길을 허락했겠는가.

“아미타불…….”

흔들렸던 스스로를 다잡으며 무해는 주먹을 내밀었다.

꽉 쥔 주먹이 아닌, 부드럽게 풀어진 주먹.

“소승은 무해.”

뜬금없는 자기소개에 사내가 미간을 찡그린 순간.

“불살(不殺)의 길을 가는 우자(愚者)이오.”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

그리고 그 바람이 닿는 순간.

사내는 격렬하게 몸을 비틀었다.

절대 맞아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숨에 몸을 비틀며 거리를 벌리는 사내.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선 무해는 담담하게 공격을 이었다.

죽이지 않고.

죽지 않는다.

그 간단하기 그지없는 원칙을 지켜 적을 제압한다.

그것이 불살(不殺)의 길이니.

현묘하게 빛나는 무해의 두 눈동자와 마주친 사내는 조용히 반걸음 물러났다.

‘……짧게 끝내긴 글렀군.’

지독할 정도의 신념.

저런 눈을 한 녀석들은 대체로 질기다 못해 독하다.

아마 팔 하나 잘라 내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터.

최소한 목을 치거나 심장을 꿰뚫어야 하는데…….

“……슬슬 시간 초과인가.”

사내는 포기하기로 했다.

자신의 임무는 이곳에 남아 적을 막는 게 아니다.

시체를 옮기던 것은 단순히 찝찝해서였을 뿐.

별다른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미 심장과 혼을 뺏긴 껍데기는 그놈들의 관심 밖에 있는 거니까.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제 슬슬 그놈들의 의식이 끝날 때가 됐다.

“전원 퇴…….”

“히힛.”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사내는 격하게 반응했다.

“퇴각!!”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찬다.

단주의 명령은 절대적.

자신들은 여기서 죽어선 안 된다.

하물며 아군의 손이라면 더더욱!

망설임 없이 도주를 선택한 사내가 빠르게 멀어졌지만, 무해는 그를 쫓지 않았다.

아니, 쫓을 수가 없었다.

“히힛!”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붉은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느껴졌다.

일렁이는 눈동자에 서린 기이한 무언가.

욕망인가 아니면 슬픔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벗어나게 하면 안 된다는 직감이 강하게 찾아왔다.

그렇기에.

“아미타불.”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막아서기 위해.

하지만.

“히히!”

가볍게 무시당했다.

단련된 무해의 각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

순식간에 멀어지는 소년의 뒷모습에 무해 또한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제대로 보진 못했으나, 공기의 흔들림으로 소년이 어디로 향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으니까.

단주가 있는 방향이다.

다급하게 그 뒤를 따른 무해의 눈에 보인 것은 누군가의 심장을 삼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직후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무위.

설천위가 단숨에 밀려나는 광경에 무해는 침음을 삼켰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이대로 흘러가면 설천위조차 위험해진다.

그것을 인지한 무해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몸을 바쳐서라도 설천위를 살릴 방법을 고민했다.

자신이 저 괴물을 잠깐이라도 막을 수 있을까?

설천위가 빠져나갈 틈을 벌 수 있을까?

무해가 그런 고민에 빠진 그 순간.

“허어?”

놀란 목소리와 함께 무해는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에 겨우 땅을 박차며 몸을 비틀어 심장을 지키긴 했으나, 꿰뚫린 옆구리에 큰 구멍이 난 것이 느껴졌다.

“과연, 명불허전 소림이군.”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조용히 감탄하는 사내.

겨우 땅에 안착해 허리를 숙인 무해는 피 섞인 기침을 토해 냈다.

설천위와 혈귀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감지가 늦었음을 깨달은 무해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겠어.”

무해를 내려다보며, 사내는 담담히 말했다.

“대계(大計)는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너희는 그 초석이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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