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45화 (345/624)

제345화

344화-청소 (3)

“다들 안정된 것 같습니다.”

무림맹 지부 소속의 맹원의 보고에 설천위는 쭈욱 허리를 폈다.

병실에 들어온 뒤로 환자들을 전부 살피고, 마지막으로 여웅의 상태까지 한 번 더 확인하느라 꽤나 시간을 써 버렸다.

“미리 전해 준 약재대로 약을 지급해 주세요. 확실하게.”

“예!”

힘찬 대답과 함께 병실을 나가는 맹원.

그를 가만히 바라본 설천위는 몸을 돌려 한쪽에 앉아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뭐 해? 가서 안 쉬고?”

“저는 멀쩡합니다.”

“저도 뭐, 돌아다닐 만합니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무해와 어깨를 으쓱이는 정규철.

“부대주는 아닐 텐데?”

“이 정도는 흔한 부상이죠.”

웃으며 툭툭 어깨를 두드리는 정규철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설천위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혼자 움직이실까 봐 그렇습니다.”

“둘 중 하나는 데려가시죠.”

즉답.

맑게 빛나는 선명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 대신 눈치만 늘었나 본데.”

“별동대를 움직여 부두를 공격한 놈들입니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무조건 둘 이상 움직여야 합니다.”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혼자 움직여야 해. 이곳으로 어떤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쓱 고개를 돌린 설천위의 시선이 정규철을 향한다.

“한 녀석은 부상 때문에 전력의 오 할을 낼까 말까 한 상태이니 데려가 봤자 짐만 될 테고.”

움찔하는 정규철을 지나 무해에게 닿는 시선.

“그런 녀석들만 지부에 두고 움직일 순 없으니 지켜 줄 이가 필요하지.”

“……아미타불.”

조용히 불호를 외며 고개를 숙이는 무해.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부가 습격 받을 가능성은 만약이지만, 단주님께서 적진에 홀로 들어가는 것은 만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을 경계하느라, 확실한 위험을 외면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무해의 말에 옆에 있던 정규철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더더욱 안 되지. 나 혼자라면 도망칠 수 있으니까.”

혼자라면 도망칠 수 있다.

그 말에 정규철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지만, 무해는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단주님, 적이 수적만이 아님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백절생사단주라면…….”

“그를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담담하게 말하는 무해.

그 눈에 담긴,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어 낸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불허한다.”

“단주님.”

“이곳에 남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할 이가 필요해.”

“단주님께 일어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설천위와 무해의 대립에 가만히 있던 정규철마저 입을 다무는 그 순간.

“……대주와 함께해 주십시오.”

설천위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손을 들어 설천위의 옷깃을 붙잡은 여웅이 똑바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살(不殺)이라, 단주님의 목숨도 저희가 지켜야 할 생(生)입니다.”

떨리지만, 굳은 의지가 담긴 목소리.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 설천위는 결국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퇴각하고, 불살대주는 무혈 지부를 지키도록.”

“예.”

“부대주는 지금부터 지부의 경계 태세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지부의 협력을 받아 철저하게 수비 태세를 갖추도록.”

“예!”

자리에서 일어선 설천위를 따라 무해가 병실을 나서고, 여웅의 곁에 다가간 정규철은 피식 웃으며 여웅을 바라봤다.

그 짧은 말을 하고 지쳐서 다시 잠들어 버렸네.

어리지만 딱 부러지는 부하의 모습을 살핀 뒤 몸을 돌린 정규철은 곧바로 지부 곳곳을 돌아다니며 준비를 시작했다.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한 준비를.

그리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정규철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부대주님.”

“……뭐야, 왜 돌아다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가긴 어딜 가? 너도 부상이…….”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드는 여인.

백영이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제가 맹에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 * *

“……바로 흑사채로 향하실 생각이십니까?”

“소룡채를 싹 비우고 놈들이 대기하고 있었어. 다른 곳이라고 남아 있을 리 없지.”

하지만 흑사채는 다르다.

이 인근에 있는 수채들의 중심.

나름대로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곳이니 수적들이 모인다면 필시 그곳일 터.

각개격파를 노린답시고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만약 한곳에 모여 있다면 단주님께서 상대한 백절생사단주도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는 거야.”

시간을 들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굳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그거다.

만약 백절생사단주가 그곳에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아니, 어쩌면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쪽 눈의 실명과 한쪽 팔의 절단이라는.

몇 시간 정도로는 추스를 수 없는 부상을 입은 지금이야말로 최고의 기회.

놈을 짓밟을 타이밍이다.

무해의 노질로 앞으로 나아가는 나룻배 위에서 설천위는 조용히 영력을 퍼트렸다.

흑사채의 위치는 알고 있다.

수적 놈들의 입이야 상당히 가벼우니까.

천천히 영력을 퍼트려 주위의 생명체를 감지해 나간다.

부두에서 본 수적들의 상태.

약과 술법에 의해 망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걸 제1번대 대주라는 놈이 모를 리 없었을 터.

알고도 함께 움직였다는 소리다.

만약, 백절생사단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면 있을 수 없는 반응.

다 알고도 그리 움직였다는 것은.

‘……백유.’

그녀가 사천맹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게임 속의 흐름대로 사천맹주는 실종된 상태일 것이고, 백유와 반대쪽에 있는 정신 나간 놈들이 맹을 장악한 상태일 터.

지금 이 싸움 자체가 아마 놈들의 노림수일 거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선 조용히 지부에서 기다리는 것이 맞겠지.

이쪽으로 명분을 가져오는 것이 구파일방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게 하기 좋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했다.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술법이나 약은 혈교, 혈사련, 사혈천 등등 거의 모든 음지의 조직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정확하게 어느 놈들의 짓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었지만.

‘어떤 놈들이든 위험해.’

이 무림에서 음지의 조직이 위험한 이유.

이놈들이 깨우려 하는 것들에 진짜로 위험한 것이 있어서다.

혈교가 깨우고자 하는 그들의 혈신도.

혈사련의 중심에서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혈주도.

사혈천의 어둠 깊숙이 잠들어 있는 무언가도.

천희만락궁의 꼭대기에서 웃고 있는 궁주도.

모두 이 세상에 절망과도 같은 끔찍한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괴물들이다.

그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긴 하나, 어떤 조직이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게 놔둬선 안 된다.

게임 속에서야 그것들이 라스트 보스이거나 히든 보스이니 어떻게든 소환해서 잡았지만.

게임 속 세상이 현실이 된 지금, 그런 미친 짓을 할 순 없었다.

얼마 전에 상대했던 소천, 아니 소어(訴圄)만 해도 완성되면 가볍게 만 단위의 희생자를 낳는다.

그냥 무림인들의 투덕거림으로 끝나는 수준이 아니란 소리다.

정말 시체가 언덕이 되고, 피가 강이 되는 그런 대규모의 학살이 일어나는 것.

그게 이 육도(六道) 세계에서의 보스급이다.

게임 속 소어(訴圄)의 등급은 재(災).

그 위 단계인 멸(滅)에 이른 악귀나 그에 버금가는 존재가 현신하면?

‘……일단 무리네.’

오존(五尊)이 전부 나서도 못 잡는다.

무(武)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까.

반대로 무(武)가 없다면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에 아등바등 무(武)를 쌓아 올린 거긴 하지만.

여하튼, 지금 만약 혈교든 혈사련이든 어떤 놈들이 됐든 간에 수적들을 이용해 무언가를 꾀하려 하고 있다면.

‘무조건 막는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곳은 전쟁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르는 곳.

이곳에서 놈들이 죽음과 피를 먹고 자라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면.

그 성장은 쉽사리 막을 수 없는 것이 될 터.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물론 선을 넘는 놈들의 행동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설천위가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적진을 향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막아야 한다면, 막는다.

“도착했습니다.”

영력을 뻗쳐 혹시 모를 존재를 찾고 있던 설천위는 뒤에서 들린 무해의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꽤 떨어진 거리에 보이는 섬.

반쯤 꺼진 불꽃과 이미 타 버린 잔해들이 가득한 섬에는 짙은 죽음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리고.

“……아, 늦었네.”

X바.

절로 나오는 욕을 삼킨 설천위는 그대로 일어나 나룻배 위에 섰다.

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너진 잔해 위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는 이에게 중지를 날렸다.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리는 상대.

“진짜 싫다.”

펄럭이는 소매를 반대쪽 손으로 휘휘 저으며 일어서는 상대를 보며 설천위는 도(刀)를 꺼냈다.

저번에는 검으로 싸웠으니, 이번에는 도(刀)를 쓴다.

조금이라도 적의 허점을 늘리기 위한 방법.

어느새 전투태세에 들어간 설천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노를 꺼내 배 위에 올린 무해 또한 조심스레 일어났다.

성인 남성이 둘이나 서 있음에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배.

이윽고, 그 배가 강가에 다다를 즈음.

“더 못 기다리겠네.”

히죽 웃는 목소리와 함께 나룻배가 뒤집힌다.

정확히 말하면, 부서져 그 잔해가 뒤집어진 것이지만.

“상처에 물들어 간다. 이 인간아.”

“하하하! 걱정 고맙군!”

물 위에 선 설천위는 얼굴을 찡그린 채 상대를 바라봤다.

뭉개진 한쪽 눈을 감은 채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

공허하게 비어 버린 소매가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지만,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거친 투기와 살기만을 내뿜는.

“병X아, 죽을 자리를 찾고 싶으면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가지?”

“여기 정도가 아니면 죽을 일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백절생사단주 염천의 이죽거림에 설천위는 짜증 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인 도(刀)가 염천의 남은 한쪽 팔마저 노린다.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무해조차 반 박자 늦게 알아챌 정도로 재빠른 일격이었으나.

쩡!

염천이 몸에 두른 호신강기에 도(刀)는 간단히 튕겨 나왔다.

“팔 하나가 줄어드니 지킬 곳도 줄어서 편하네.”

“미친놈.”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염천과 마주하는 설천위.

이윽고 도(刀)와 주먹이 부딪치는 소리가 주변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전투에 돌입한 화경급 고수들의 격돌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충격.

겨우 몸을 빼 강가에 도착한 무해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아미타불…….”

조용히 불호를 외는 것과 함께 몸을 돌린 무해의 앞을 유허정이 가로막았다.

“나랑 싸웠던 놈들은 어디 가고 웬 중만 왔다라…….”

검을 뽑으며, 조용히 살기를 끌어올리는 유허정.

“일단 확실한 건 제1번대 대주는 죽었겠군.”

“아미타불, 죽지 않았소.”

“……안 죽였다고?”

“불살대(不殺隊)라는 이름은 거짓이 아니오.”

무해의 대답에 유허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겨우겨우 헤엄쳐 합류한 부하 놈들.

죽은 놈들은 물속에서 용에게 잡혀 익사한 놈들밖에 없다.

“하.”

어이가 없음을 넘어 기이한 치욕감에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백절생사단을 상대로 아무도 안 죽이는 싸움을 했다?”

패배했을 때보다.

적에게 짓밟혔을 때보다.

더한 치욕감이 밀려온다.

“헛소리를 내뱉다가 죽어라. 땡중.”

무해를 향해 유허정이 거칠게 달려드는 그 순간.

쩡!

유허정의 검이 허공에 나타난 흑관에 가로막혔다.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나 혼자 올 생각이었다고.”

뜬금없는 설천위의 개입.

순간 고개를 돌린 무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염천과 싸우면서도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설천위의 눈이 가리키고 있는 것.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백절생사단을 무시하며 무해가 달리기 시작했고, 흑관에 가로막혀 무해를 놓친 이들이 이를 악물고 따라가려는 순간.

“거기까지.”

어느새 염천을 떨어트리고 무해가 지나간 길을 가로막아 선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희는 전부, 여기서 정리한다.”

쿵! 쿵! 쿵!

사방을 에워싸듯 떨어지는 흑관.

[크르르르르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흑룡.

그리고.

“컥!”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짙게 깔리는 기세.

완전히 적을 묶어 버린 영역(靈域) 속에서 설천위는 자신이 무시당한 것을 깨닫고 분노로 이마의 힘줄이 꿈틀거리는 염천을 보며 히죽 웃었다.

“뭐 해? 덤벼. 잣밥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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