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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43화 (343/624)

제343화

342화-청소 (1)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진 팔.

거칠어진 호흡.

“……크흐.”

비틀린 웃음을 토해 내며, 정규철은 고개를 들었다.

“아직, 내가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전신에 가득한 상처에서 흐른 출혈로 약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단지 그뿐이다.

약간 어지러운 정도.

자신보다 한 단계 위의 적과 싸웠음에도 그 정도에 그친 것이다.

입꼬리를 비틀고 도발해 오는 정규철의 모습에 유허정은 검을 세웠다.

“죽고 싶다고 아주 발버둥을 치는구나.”

“무인의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

유허정의 살기 가득한 목소리에도 정규철은 피식 웃으며 받아쳤으나, 사실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의 적은 유허정만이 아니었으니까.

백절생사단(百絶生死團) 제3번대.

그들 전부가 적이다.

불살대는 애초에 인원이 그리 많지 않은 대(隊)인데, 심지어 그 인원을 반으로 나누기까지 했다.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적 하나를 상대하느라 불살대에서도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의 발이 묶였다.

정규철과 여웅 없이 나머지 대원들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계였다.

아슬아슬하게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지만…….

‘이젠…….’

무리다.

입꼬리를 올리며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는 정규철과 달리, 입술을 질끈 깨문 여웅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는 힘도 잘 들어가지 않는 주먹.

체력과 내공의 소모도 문제였지만, 몇 번이나 베이다 보니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찌어찌 주먹이라는 형태는 만들 수 있었지만, 단단하게 쥘 수가 없었다.

한계.

‘……무해 대주님이 있었더라면.’

그분이라면 저 적을 훌륭하게 상대해 냈을 텐데.

뒤에 있는 부하들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약함.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힘이.

이리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수준일 줄이야.

“……아니.”

……인정할 수 없다.

아니, 인정해선 안 된다.

“나는 굴하지 않는다.”

철백이 이끄는 청혈대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곳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실전에 나서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계(癸)로 졸업해 무림맹에 겨우 발붙이고 있던 이들.

그런 이들을 모아 놓았기에 실전에 투입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과 같은 시기에 무림학관을 졸업한 잠룡대의 친구들이 몇 명 섞여 있다고 해도.

그들만으로 실전에 투입될 순 없으니까.

불살대는 설천위가 의도적으로 인재들을 모은 곳.

무림맹 채용 시험에서 아깝게 떨어졌던 이들.

턱걸이로 붙은 이들.

아예 채용 시험에 합격한 이들까지.

조금만 다듬으면 바로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전력들이다.

그들이 모인 불살대에 들어가는 것이 실전으로 투입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여겨 들어온 것 아닌가.

그들 속에서도 조장급 이상을 맡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이 자리에 선 것 아닌가.

꺾이지 않는 투지를 다지며 똑바로 서는 여웅.

그 모습에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멈춰 서서 거친 호흡을 고르던 유허정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될성부른 떡잎이야.’

어린 나이.

딱 봐도 중소 문파 출신으로 보이는 무공.

그런데도 절정이라는 경지.

심지어 여인의 몸으로 힘을 추구하는 강권(强拳)을 익히는 독기까지.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이 결코 쉬울 리 없었을 텐데.

그것을 이루어 낸 재능과 집념은 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끝낸다.’

그 괴물 놈을 그때 끝내지 못해 무림맹에 단주 하나가 추가됐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자신들의 단주가 그 괴물을 잡지 못하면 더더욱 성장하겠지.

그리고 끝내 그놈의 아비와 같은 진정한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불상사가 있어선 절대 안 된다.

가뜩이나 사파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이 무림에서.

그런 괴물이 하나 더 나온다면?

‘역시, 한 번 피를 뽑을 때가 됐다.’

이어지는 생각을 정리하며, 유허정은 자세를 다잡았다.

호흡은 얼추 돌아왔다.

몸 곳곳에 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통증은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려 하지만.

지금껏 거쳐 온 전장의 숫자가 몇인데, 이딴 것에 흔들리겠는가.

승기는 완벽하게 이쪽으로 넘어온 상황.

자신이 눈앞의 놈들을 처리하고 부하들에게 합류하면 그것으로 끝.

그 뒤에 단주님을 기다리면 되는…….

쿵!

순간 기이하게 차올랐던 긴장감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전장에서 적을 눈앞에 두고 다른 곳을 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볼 수밖에 없었다.

‘……미친.’

어느 순간부터 섬의 일부를 먹어 치웠던 거대한 검은 벽에 금이 생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벽에서 흘러나오는.

“으, 으으!”

“끄윽!”

강렬한 살기와 기세.

흘러나온 기운에 닿는 것만으로 전투로 지친 심신이 일그러지는 느낌.

결코 마주해선 안 될 존재가.

‘저 안에 있는 것인가……!’

부하들과 달리 신음을 삼켜 낸 유허정은 떨려 오는 턱을 억지로 악물었다.

적과 부하들 앞에서 공포에 이를 딱딱 떠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으니까.

그렇게 이를 악무는 것과 동시에 유허정은 움직였다.

단숨에 땅을 박차고, 아차 하는 표정으로 도(刀)를 휘두르는 정규철의 목을 노린다.

방금 흘러나온 기세는 명백하게 단주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 경우, 눈앞의 적들은 결코 살려 둬선 안 된다.

도주를 위해서라도.

미래를 위해서라도.

갑작스레 돌진해 오는 유허정의 공격에 이를 악문 정규철의 도가 겨우 급소를 보호한다.

하지만, 순식간에 몸을 비튼 유허정이 한 걸음 깊게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캉!

강렬한 반탄력이 정규철의 도를 쳐 냈다.

크게 열려 버린 가슴.

이대로 검을 찔러 넣으면 확실하게 놈을 죽일 수 있다.

콰득!

“이년이……!”

허나, 상대는 하나가 아닌 둘.

자신의 허리를 향해 돌진해 어깨로 부딪힌 여웅의 무식한 공격에 유허정은 마른기침을 토해 냈다.

노린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아주 찰나의 틈.

그 틈에 들어온 공격에 호흡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완전히 공격권을 뺏긴 상황.

적의 자세도 흐트러졌으니 반격을 당하진 않겠지만, 적을 마무리할 기회를 놓친 것은 확실했다.

이를 악문 유허정은 결국 거리를 벌리기 위해 무릎을 차올렸다.

뿌득!

여웅의 옆구리를 파고든 무릎에 그녀의 뼈가 어긋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여웅은 역으로 팔을 뻗었다.

신음 소리 하나 없이 적을 속박하기 위해 두 팔로 적을 휘감는다.

그 독하기 그지없는 행동에 유허정은 결국 빠져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크아아!!”

지금 빠져나가려고 무리했다간 저 도(刀)에 등을 내줘야 할 테니까.

여웅이 무리해 벌어 낸 시간을 이용해 자세를 고친 정규철의 도가 날카롭게 파고든다.

유허정은 검을 휘둘러 그 도를 막아 내고 몸을 비틀어서 다시금 무릎을 차올린다.

뿌득!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섬뜩한 소리.

뼈가 완전히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여웅의 팔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대로 적의 허리를 부러트리겠다는 듯이 더욱 거세게 조여 오는 팔.

거기다.

“크아압!!”

상황 판단이 끝난 정규철이 미친 듯이 도(刀)를 휘둘러 유허정의 검을 붙잡았다.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유허정의 검이 여웅의 등을 꿰뚫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온전한 힘을 쏟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도를 휘둘러 적의 검을 붙들었다.

그야말로 서로 필사적으로 버티는, 고매한 무(武)와는 멀어진 개싸움.

무인이라 할지라도 싸움의 끝은 대체로 이런 법이다.

그렇기에 이런 개싸움에 익숙한 유허정은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고자 했으나.

꽈아아악!

‘독한 년!!’

허리를 조이는 팔의 힘이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무릎으로 옆구리를 찍어 올려 뼈가 몇 개나 부러졌을 텐데도!

여웅의 독한 집념에 유허정은 서서히 조여 오는 압박감으로 점점 검세가 무뎌지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면…….

진다……!

조급한 마음에 너무 무리하게 돌진해 둘의 공격을 동시에 허용한 대가인가.

눈앞으로 다가온 패배에 유허정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내어주마.

독기를 품은 유허정의 눈이 자신의 허리를 쥐어짜고 있는 여웅을 향했다.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상대의 도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 낸다.

치명상을 입긴 하겠지만, 즉시 숨이 끊어지지 않는 범위 내로 피한다.

그리고.

“죽어라!!”

검을 찔러 넣는다.

위에서 아래로.

정확하게 심장을 노리고 여웅의 등을 향해 검을 내리꽂는다.

설령 정규철의 도가 자신의 목을 베더라도 결코 멈추지 않을 거라는, 독기를 품은 공격.

그 사실을 알아챈 정규철이 더더욱 독하게 도(刀)를 휘두르는 그 순간.

쩡!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강풍이 불어왔다.

자세가 흔들리고, 정규철의 도(刀)는 끝내 닿지 못한다.

쾅!!

이유는 간단했다.

강렬한 충격이 그를 날려 보냈으니까.

단숨에 땅에 긴 선을 만들어 내며 강가까지 밀려나는 정규철.

그리고 강풍에도 짧은 주춤거림 끝에 다시 검을 찔러 넣는 유허정.

천재일우의 기회.

이대로 여웅의 심장을 꿰뚫고……!

깡!

“큭!”

순간 손에서 울려 퍼지는 강력한 반탄력에 유허정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지칠 때로 지친 몸으로는 도저히 이겨 낼 수 없는 반탄력.

검을 놓친 순간, 눈에 보인 것은 여웅의 등을 감싼 검은 벽이었다.

아까 전까지 단주님이 있던 곳을 감싸고 있던 것과 같아 보이는.

그런……!

“도망친다.”

순간, 귓가에서 들려온 소리와 함께 허리를 감싼 여웅의 팔이 풀린다.

거칠기 그지없는 발차기가 여웅의 독기마저 짓밟고 그녀를 날려 보낸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은 유허정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퇴각!!”

분명 다 이겨 가던 전투였음에도 유허정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하들은 일제히 산개했다.

거침없이 강으로 뛰어드는 이들.

그 뒤를 염천이 달려 나간다.

마찬가지로 단숨에 그의 뒤를 따르는 유허정.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강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정규철이었다.

분명 단주의 발차기를 제대로 맞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차올랐으나, 이내 씻은 듯 사라졌다.

보였기 때문이다.

피를 흩뿌리는 단주의 어깨가.

“괴물 놈.”

비틀린 미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염천이 거침없이 수상비를 펼쳐 강 위를 달린다.

그 뒤를 필사적으로 따라붙은 유허정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주님이 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유허정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러진 여웅의 곁에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괴물이었다.

단주님과의 전투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곳저곳 옷매무새가 흩뜨려져 있고 피가 묻은 설천위였지만.

어딜 봐도 단주님이 입은 것 같은 치명상은 보이지 않았다.

확실하다.

패배한 것이다.

자신들의 단주님이.

저 어린놈에게.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에 유허정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리려는 그 순간.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

거대한 용이 강으로 뛰어들었다.

물 아래를 누비는 거대한 용의 기척에 섬뜩한 오한이 밀려온다.

“끄루럭!”

단숨에 솟구쳐 오르는 용의 입에 물린 부하의 비명이 끔찍하게 울려 퍼진다.

수상비를 펼치지 못하는, 그래서 헤엄쳐서 빠져나와야 하는 부하들이 용의 먹이가 되는 광경을 지켜보며 유허정은 고개를 돌렸다.

‘……완전히 틀어졌다.’

단주님의 패배.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다.

대체 이걸 어찌해야…….

“크크, 크하하하하!”

순간, 앞서서 달려가던 단주의 웃음에 유허정은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염천.

“재미있게 됐다. 유 대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래 내 손으로 처리하려고 했었지만…….”

히죽 입꼬리를 비튼, 염천은 지금쯤 행동을 개시했을 놈들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불구경이나 하면 되겠어.”

완전히 뭉개져 피가 흐르는 왼쪽 눈조차 휘어져 반달을 그리는 그 미소에는 그저 광기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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