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2화
341화-수적도 사파지 (9)
검과 주먹의 충돌.
……그런 너무나도 당연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있는 것은 그저 회피와 공격뿐.
공격을 당하는 순간 끝이라는 듯 그 어떤 공격도 맞부딪치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크하하하!”
맞부딪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주먹과 같은 궤도로 겹치던 검이 어느새 사라지고, 팔에서 화끈한 통증이 밀려온다.
본능에 의지한 회피 덕에 살가죽이 조금 베인 정도로 끝난, 읽어 낼 수 없는 무형의 공격.
휘두르는 검조차 닿지 않는다.
보이지만, 닿지 않고.
닿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자취도 남지 않으나.
어떤 자취도 없이 실재하니.
그야말로 무흔(無痕)으로 실재하는 검.
자신의 자취조차 지우고.
상대의 생조차 지워 버리는.
“사적귀검(斜跡鬼劍)!!”
모든 흔적이 어긋나 펼쳐지는(斜跡).
귀신의 검이라(鬼劍).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 검에 염천의 감정은 끝을 모르고 고양해 갔다.
보이지 않는다면.
보지 않고 피하면 된다.
보지 않고 때리면 된다.
그 단순한 이치에 몸을 맡긴 채 염천은 앞으로 나아갔다.
뻔히 보이는 궤적으로 들어오는 검은 전부 무시한다.
그 속에 진짜가 껴 있어 이쪽이 베이는 일도 있었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상대의 허실(虛實)에 놀아나지 않는 것.
변검(變劍)을 상대할 때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놈들은 적의 변화에 놀아나 결국 자신의 목을 내어주고.
그것을 해내는 자는…….
“카핫!”
적에게 닿을 수 있다.
어느새 설천위의 코앞까지 도달한 염천의 손이 단숨에 상대의 옆구리로 파고든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이어 나가던 설천위이기에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빈틈.
그 틈을 염천의 주먹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꿰뚫는다.
쾅!!
인간의 주먹이 만들어 낸 것이라곤 도저히 믿기 어려운 강렬한 폭발이 작은 섬을 뒤흔든다.
이 폭발에 사람이 휘말렸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그 형체나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싶어 순간 아찔해지지만.
[크르르르르.]
충격으로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은 곳에서 드러난 것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는 염천과, 그 목을 향해 검을 내려치고 있는 설천위였다.
본래라면 방어에 썼을 시간과 힘을.
오로지 공격에만 투자한다.
방어는 검으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
“노오옴!”
허나, 염천도 이미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무인이다.
한 번 당한 수에 또 당해서 순순히 목을 내어줄 머저리가 아니었다.
주먹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단숨에 몸을 회전하는 염천.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응하는 염천의 움직임에 설천위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아니.
“커헉!”
검만이 허공을 갈랐다.
보이지 않는, 무흔의 일격에 쇄골부터 가슴까지 깊은 자상을 입은 염천은 그대로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좁히는 과정에서 꽤나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전부 자잘한 상처들뿐이다.
피는 조금 나도 전투와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부상.
어깨를 베었던 상처도 거창하게 피가 튀었을 뿐 심각하진 않았는데.
이번 건 위험하다.
깊은 곳에 있는 혈관이 베였는지 출혈이 심상치 않았다.
즉시 내공을 움직여 출혈을 잡았으나, 그것만으로 피가 충분히 멎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염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니, 딱딱하게 굳어진 이유는 사실 하나 더 있었다.
“네놈……. 사적귀검(斜跡鬼劍)이 아닌 거냐?”
“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살벌한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는 염천을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빙의했던 건 맞지만, 그건 잠깐잠깐 빌려줄 뿐 기본적으론 나야.”
“과연.”
설천위의 말뜻을 이해한 염천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술사가 행하는 빙의술을 아는 이들이라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했을 거다.
기본적으로 빙의(憑依)란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혼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만큼 육체에 가해지는 부담은 물론, 심적인 부하도 상당하다.
거기다 두 개의 정신이 온전히 육체를 다스리려 한다면, 그 부담은 말로 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흔히 악귀가 들어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다.
두 정신이 모두 육체를 지배하려고 드니 충돌이 일어나 육체가 큰 충격을 받게 되는 거다.
따라서 빙의를 구사하는 술사들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있는 혼에게만 빙의를 허락한다.
그래서 보통은 술법적인 제약으로 혼을 계약과 제약으로 묶어 놓은 뒤에 빙의를 행한다.
심지어 그것으로도 부족해 상당한 유대 관계를 맺지 않으면 빙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대 혹은 계약과 제약을 믿고 자신의 몸을 혼에게 빌려주는 행위.
그것이 바로 빙의(憑依)다.
당연한 말이지만, 잦은 지배권의 교체 같은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육체를 빌려줬다면 한동안 아니, 최소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은 술사의 능력은 봉인된다.
육체를 다른 혼이 차지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설천위는 그 상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주위를 감싼 흑관은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의 몸을 휘감은 검은 기류는 용의 형체가 되어 그 육체를 지키고 있었으며.
하늘에는 여전히 거대한 용이 호시탐탐 염천을 노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이 광경이 설천위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을 알아채고 경악하지 않을 술사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거기다.
[패룡기(覇龍氣)]
설천위의 호흡과 함께,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허공으로 흩어진다.
“궁금하지 않나?”
내공은 물론 혈까지 짚어 기어코 출혈을 잡아내고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는 염천을 보고, 설천위는 작게 웃었다.
“나는 왜 굳이 거창하게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거창하게.
그 말에 염천의 눈은 주위를 훑었다.
주위를 완벽하게 감싼 검은 관들.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는 그 높이는 사람을 두셋 위로 세워도 부족할 만큼 높았다.
거기다.
[크르르르르르.]
허공을 노니며 끊임없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거대한 용.
당장에라도 날뛸 것 같은 강렬한 기세를 뿜어 대는 저 용은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도 직접적인 공격을 해 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이 전투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벽이 높긴 하나, 염천이라면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
가둔다는 목적이라면 부질없는 짓이다.
또한, 용은 위압적이긴 하나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는 허수아비.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저 덩치가 화경급 고수의 속도에 맞춰 싸움에 끼어들 수 있을 리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염천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설천위를 바라봤다.
흉흉한 기세와 달리 여전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낯짝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서서히 커지는 염천의 눈동자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장난스러운 대답과 함께 공간이 일그러진다.
아니, 염천만이 그리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기껏 출혈을 잡아 놨던 상처에서 한층 더 맹렬하게 핏줄기가 솟구쳤다.
설천위는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상처가 더 벌어져 피가 솟구친 것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염천은 즉시 행동했다.
가진 내공을 끌어올려 육체를 휘감고, 철저한 방어에 들어간다.
주요 급소는 전부 보호하는 자세로 팔다리를 몸에 붙여 면적을 최소화한다.
읽어 낼 수 없는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한 최적의 선택.
“그 정도론 안 될 것 같은데.”
피식 웃은 설천위의 목소리와 함께 염천의 팔과 다리 위로 피가 솟구친다.
일순간에 베여서 그 상처 부위의 피가 솟구치는 현상.
짧은 피 분수 후 순식간에 피 칠갑이 된 염천은 두 눈을 감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히죽 웃는 설천위.
“역시 짬은 그냥 먹은 게 아닌가 봐?”
“네놈…….”
두 눈을 감은 채 오로지 감각만을 활성화시킨 염천은 으르렁거렸다.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 눈앞의 적은 무인 아니, 인간이 아니다.
기본 전제부터 잘못됐던 것이다.
육체를 휘감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휘감는 힘을 내공으로 밀어내며 염천은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눈앞의 적은.
“악귀(惡鬼) 놈……!”
인간이 아니다.
염천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영력으로 만들어진 영역(靈域).
그 속에서 흩뿌린 패룡기와 영력으로 염천을 속박하고.
일순간 현태중에게 몸을 맡기는 것으로 부족한 공격력을 보충한다.
보통의 악귀로는 할 수 없는 단주급 무인 사냥.
원래라면 서로 간섭한다고 해도 끝내 죽일 수는 없는 두 존재이지만.
그 사이에 서 있는 설천위는 가능하다.
악귀도.
무인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패룡의 송곳니를 피할 순 없다.
* * *
“아미타불…….”
무림맹의 무혈 지부.
그곳 훈련장에서 대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던 무해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기이한 불안감.
걸음을 멈춘 무해는 의아해하는 부하들을 뒤로하고 즉시 근처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평소라면 잘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본능에 이끌려 지붕 위로 올라간 무해는 이내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미타불…….”
시야에 담으니, 서서히 맡아지기 시작하는 희미한 혈향.
저 멀리 보이는 부두에서 올라오는 짙은 죽음의 기운.
“훈련 중지.”
짧은 무해의 명령에 죽기 살기로 달리던 이들이 일제히 멈춰 선다.
살았다는 표정 이전에 ‘왜?’라는 의문이 얼굴에 먼저 떠오르는 이들.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무해가 여간해서는 수련을 멈출 리가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즉시 옷을 추스른 이들은 무기를 챙겼다.
어느새 지붕에서 내려온 무해가 훈련장을 빠져나가고, 그 뒤를 불살대가 따른다.
대주의 뒤를 따라 달려가 부둣가에 도착한 순간.
대원들은 어째서 무해가 수련을 멈추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크하하하하!”
“다 내놔라!”
“다 죽여!!”
그야말로 광기(狂氣).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학살이 부둣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무공은커녕 문자조차 제대로 모르며 그저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이들이.
“사, 살려……!”
“꺄아아악!”
너무나도 허무하게 그 삶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등바등하며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삶을.
그럼에도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던 이들의 삶을.
“아미…… 타불…….”
끊어지듯 내뱉는 무해의 불호.
그 속에 담긴 감정을 읽어 낸 불살대원들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그 순간.
“갈(喝)!!”
강렬한 사자후가 부두를 뒤흔들었다.
강물조차 떨릴 정도로 강렬한 외침.
하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오로지 학살에 초점을 맞춘 적들의 기이한 행태를 무해도 눈치챘으나, 그 이상의 생각은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이만한 사자후에도 적들은 흔들림 없이 일반 백성들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쩡!!
무해의 몸이 흐릿해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가장 앞에서 남성을 작살로 찌르려던 이의 몸이 날아간다.
단전이 깨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나는 수적의 몸.
그 동공이 핏빛으로 일렁인다는 것을 무해는 읽어 냈으나, 거기에 사로잡혀 머뭇거리진 않았다.
해야 할 것은 활인(活人).
죽이지 않고(不殺).
죽게 놔두지 않는다(不死).
그 두 가지가 합쳐져.
사람을 살리는 길이 되니.
손에 닿는 목숨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리라.
거침없이 땅을 박차는 무해의 손이 단숨에 수적들의 단전을 후려친다.
단전이 깨져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가 끝도 없이 부둣가에 울려 퍼지고.
그 뒤를 따르는 불살대가 수적들을 하나하나 제압해 나간다.
수적들이 여태껏 벌인 끔찍한 학살이 마치 거짓인 것처럼 놈들이 제압되어 감에 따라 비명과 울음소리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그야말로 영웅.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에서 자신들을 구한 불살대의 뒷모습에 사람들이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그 순간.
“아, 이것 참…….”
무해의 돌진이 저지되는 것과 동시에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단주 쪽으로 가는 건데.”
설천위가 무조건 함께하는 공격을 막기 위해 잠복하는 쪽에는 단주가 함께했고.
빈집을 노리기 위한 별동대에는 제1대주가 함께했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수적들.
그리고 그런 수적들을 막기 위해 나타난 무해와 불살대.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날뛰는 수적들 사이에서 무해를 가로막은 사내, 사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수적도 사파니까.”
같은 집 사람끼린 돕고 살아야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검을 흔드는 사혁과 조용히 불호를 외는 무해.
두 사람이 충돌하기까진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