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9화
338화-수적도 사파지 (6)
“보고입니다. 사망자 없음. 경상자 셋. 이상입니다.”
“생각보다 더 잘 싸웠네.”
무림맹의 무혈 지부.
잡아 온 적호채의 수적들을 전부 관에 넘긴 설천위와 불살대는 무사히 지부로 귀환했다.
옮겨야 할 수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놈들의 배도 한 세 척 빌려 왔다.
그 외에 놈들이 가지고 있던 식량이나 재물도 싹 쓸어 왔다.
적당량은 관아에 넘기고, 나머지는 불살대의 성과급으로 뿌렸다.
출전한 녀석들뿐만 아니라 지부에 남아 훈련하던 이들도 머릿수에 넣어 공평하게 나눴다.
실전의 기회도 놓쳤는데, 돈마저 못 받으면 너무 서럽지.
그 외의 수채 건축물은 그냥 싹 다 불태웠다.
남겨 놓아 봤자 다른 놈들이 써먹기밖에 더 하겠는가.
거기서 수적질을 다시 시작하고 싶으면 피땀 흘려서 다시 집 짓는 노력 정도는 해야지.
“경상자는 휴식을 취하라고 하고, 나머지는 훈련량을 1할 늘려.”
“예.”
“적을 살리려다가 동료가 죽거나 다친다? 어림도 없는 소리지. 확실하게 머릿속에 주입해 놔.”
“예!”
힘찬 대답과 함께 방을 나가는 여웅.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설천위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형수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너무 막 대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니, 뭐 본인이 원하는 거니까.
딱히 문제는 안 되겠지만.
그 속 좁은 형 놈은 어떻게 나올지 또 모르니까.
그나저나 배속되고 얼마 안 있어서 파견을 나갔다더니,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봤네.
사파와 정파 사이에 있는 무형의 전선은 꽤나 넓으니까.
듣자 하니 거의 동쪽 끝으로 갔다던데.
가끔 무림맹에 돌아오긴 한다는데, 이쪽도 워낙 바쁘다 보니 마주친 적이 없으니……. 연이 없나?
뭐, 사실 형은 중요 인물이 아니니까.
나름 강한 만큼 전력에 도움은 되겠지만, 딱 거기까지.
너무 깊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진짜 신경 써야 할 상대는 아직 만나 보지도 못한 아버지란 사람이니까.
혹시 몰라서 어영부영 몇 년이나 본가로 복귀하지 않고 지내서 아직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설천위로서의 기억이 희박한 지금, 만나면 무슨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니…….
“에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를 볼 수 없으니 홍길동이랑 비슷한 느낌인가?
아닌가?
쓸데없는 잡념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에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하던 설천위는 문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잡념을 끊어 냈다.
“들어와.”
살짝 멈칫한 기척은 이내 문을 잡고 힘차게 열었다.
“단주님.”
“오, 웬일이래?”
굳은 각오를 다진 얼굴로 들어온 정규철을 보고 설천위는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그 손짓에 따라 자리에 앉은 정규철은 작게 숨을 뱉고는 똑바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단전을 부수는 그 초식을 배우고 싶습니다.”
직설적으로 꺼낸 본론.
굳게 다문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에 정규철이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깨달은 설천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 반응에 정규철의 눈이 살짝 시무룩해지는 순간.
“당연한 걸 뭐 그리 사생결단의 각오를 하고 들어왔어?”
“……당연하다면?”
“알려 주지. 애초에 단전 부수기, 흠……. 그래, 쇄기(碎器). 음……. 아니야. 이건 좀 별로고. 그래, 활인쇄(活人碎)라고 할까.”
여태까지 기술명을 생각해 놓지 않았다가 뜬금없이 이름을 지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데.
“이 활인쇄는 불살대의 공용 무공이 될 거다.”
“공용 무공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뭐, 불살대는 사용하는 무기가 전부 다르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
활인쇄의 핵심은 단전을 부수면서 내장은 크게 공격하지 않는 기의 운용이다.
내가중수법의 독특한 응용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화경급 이상의 고수라면 내공의 섬세한 조절로 즉석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귀찮고 짜증 나니까 하지 않을 뿐.
그걸 초식으로 만들어 정형화된 틀에 끼워 섬세한 내공 조절 없이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활인쇄의 핵심이다.
당연히 무기에 따라 그 틀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다 준비해 놨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준비라면…….”
“웬만한 무기로도 다 할 수 있게 준비해 놨다는 소리지.”
씩 웃은 설천위는 탁자를 가볍게 두들겼다.
“나는 나눔에 그렇게 인색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무공이란 것은 대부분이 비인부전(非人不傳)…… 까진 아니지만, 외부인에게는 잘 전수하지 않는다.
지금 불살대에서 가장 빠른 백영이 어째서 무림맹에 자리를 잡았겠는가.
다 암영의적의 무공을 온전히 전수 받으려고 그러는 것 아닌가.
지금도 틈이 날 때마다 조금씩 전수해 주고 있다.
암영의적도 꽤나 신이 나서 자신의 정수를 풀어 주고 있고.
설천위랑은 다른 진짜 재능에 감탄했다나 뭐라나.
여하튼.
무공이란 것이 남에게 배우기 꽤나 어려운 것이다.
낭인으로 살아온 정규철이라면 그런 사실을 더더욱 잘 알고 있을 거고.
그러니 이런 부탁을 하기 위해 저리 무게를 잡고 들어온 거겠지.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무공이라면 얼마든지 알려 주지.”
“……단주님.”
“그러니 필요하면 얼마든지 물어봐. 내가 도울 수 있는 범위 내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
“예, 감사합니다.”
“알면 됐고.”
고개를 숙이는 정규철을 향해 손을 저은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훈련 중인 불살대가 보인다.
“나는 단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테니, 정 부대주도 부대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돼.”
“예.”
“대답이 시원시원하니 좋네.”
호쾌한 대답에 웃으며 정규철에게 다가간 설천위는 그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그럼, 우리 배워 볼까?”
무해가 전수를 망설이고 있어서 어떻게 전수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오다니.
참고로 말하면.
이 활인쇄는 그 독특한 내공 운용 방식으로 인해 익히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나름대로 짬이 찬 설천위도 어쭙잖게 발로 하려다가 실패할 정도의 고난도다.
“안타깝게도 불살이란 우리의 신념에.”
씨익 입꼬리를 비튼 설천위의 손이 정규철의 가슴을 때린다.
가슴을 파고드는 충격과 내공.
상당한 통증에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킨 정규철은 이내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단숨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훈련 중 사망은 포함되지 않아.”
활인쇄를 익히기 위한 첫 번째.
내부로 들어온 그 내공이 어떻게 흐르는지 깨닫는 거다.
당연히 몸으로 때워야 하고.
위력을 크게 약화시킨 상태라곤 하나 내공이 근육을 헤집으면 상당한 통증이 뒤따르는 법.
“죽지 말자. 부대주.”
여전히 입꼬리를 비튼 채 웃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보는 정규철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 * *
“우욱!”
“아우, 이 인간 또!”
“놔두도록. 수련이 힘들어서 그런 걸 어쩌겠나.”
작은 배.
무림맹의 자금으로 사들인 배는 상당히 허름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물이 새는 곳은 없었다.
그 배 위에 앉아 열심히 노를 젓고 있던 여웅은 옆에서 들리는 백영의 투덜거림에 고개를 저었다.
단주의 수련이 얼마나 혹독한지, 무림에서 나름 이름을 떨친 부대주가 죽을상을 하고 있다.
속이 상당히 뒤집혔는지 배의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고 뱃멀미까지 할 정도로.
강 속의 물고기들만 포식하게 생겼네.
고개를 저은 여웅은 노를 젓는 손에 조금 힘을 뺐다.
백영이 정규철의 등을 두드리느라 노를 젓는 힘이 약해져서다.
노를 저을 때 중요한 것은 균형이니까.
“상태를 점검하도록. 조금 있으면 목표한 곳에 도착한다.”
“예!”
축 처진 정규철을 챙긴 대원이 재빨리 그를 선두로 옮겼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젓고 다시 노를 젓는 백영.
힘이 더해짐에 따라 여웅도 조금 더 힘을 가했지만, 너무 과하게 힘을 주진 않았다.
백영과의 근력 차이가 상당한 편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무인이 달려들어 노를 젓는 배.
강물 위를 쭉쭉 나아가던 배는 이내 목표로 했던 곳에 도착했다.
거센 급류가 길 곳곳을 막은, 강 위의 작은 섬.
이번 목표인 소룡채다.
소룡(小龍)이라니, 이름이 거창한 건지 소박한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 내실은 일전에 소탕했던 적호채와 비슷하거나 그 밑.
“전원 준비.”
“예!”
“부대주는 나와 백영이 챙긴다.”
“예!”
급류에 가까워질수록 배의 난간을 넘어온 물이 옷을 적셨지만, 불살대는 흔들림 없이 앞을 응시했다.
실전의 기회는 소중하다.
설령 그것이 누군가의 비호 아래 이루어지는 반쪽짜리 실전이라고 해도 그 경험은 성장의 큰 밑거름이 된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서…….
“조장님! 낌새가 이상합니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던 여웅은 부하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 조금 늦긴 했지만, 여웅도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이미 내뺀 것 같은데요?”
“단전을 부숴 관에 넘겼으니 겁먹고 도망치는 게 당연하긴 한데…….”
자존심이라곤 터럭만큼도 없는 행동이군.
아니, 수적 놈들이니 자존심이란 게 없는 것이 당연한가.
부하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는 와중에도 여웅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했다.
“적의 매복일 수도 있다! 끝까지 경계하도록!”
“예!”
도망친 척하고 매복한 뒤 적이 덫에 들어오면 기습한다.
기본적인 전술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부하들의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여웅은 배를 몰았다.
적의 방해가 있다면 그 방해를 피하느라 급류에 휩쓸려 버렸겠지만, 아무런 방해도 없다면 어떻게든 급류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옷이 흠뻑 젖기는 했지만, 결국 배를 섬에 닿게 하는 데 성공한 여웅은 조심스럽게 배에서 내렸다.
키우던 가축까지 싹 끌고 간 모양인지 정적만이 내려앉은 섬.
부하들이 전부 배에서 내리고 나서야 여웅은 천천히 전진을 시작했다.
경계심을 잃지 않고.
천천히 확실하게 주위를 살피며 나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원 전투 준비.”
기이할 정도로 싸늘해진 공기에 여웅이 경고했고.
불살대는 일제히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거 참, 조심성 많은 사람은 이래서 싫다니까?”
쩡!
장난스러운 목소리.
그와 함께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른 여웅의 주먹에서 강렬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손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강한 충격.
미리 끌어올린 내공을 주먹에 한껏 둘렀는데도 이만한 충격이라니.
‘……초절정!’
상대의 실력을 직감한 여웅은 즉시 움직였다.
“전원! 원진!”
여웅이 전방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불살대가 일제히 모여 원을 만든다.
등을 적에게 내주지 않기 위한 방어 진형.
다만 너무 밀집한 결과 서로의 움직임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불살대가 어떤 곳인가.
수련귀들이 잔뜩 모인 흑룡단 소속의 대(隊) 아닌가.
그 정도 단점은 훈련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다.
불살대가 순식간에 원진을 형성한 덕분에 뒤늦게 파고든 적들의 공격은 불살대를 꿰뚫지 못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금속성과 기합성.
하지만 비명은 울려 퍼지지 않는다.
불살대는 뚫리지 않았고, 적들은 뚫지 못했기에.
짧은 공방이 오가고, 순식간에 교착상태가 찾아왔다.
어느 쪽이든 서로의 목숨이 아까워 쉽사리 길을 뚫을 수 없는 상황.
“거참.”
조금 튀어나와 보다 많은 적을 막고 있던 여웅의 몸이 충격에 흔들린다.
거칠면서도 예리하기 그지없는 공격.
받아 낸 손이 저릿저릿하게 울리고 관절이 삐걱댄다.
필시, 그리 오래 버틸 수 없는 상태.
그렇기에 여웅은 이를 악물고 불렀다.
“부대주!!”
쩡!!
여웅의 외침과 함께 들려온 귀가 찢어질 듯한 금속성.
허나, 여웅은 이미 숨을 돌리고 몸을 뒤로 뺀 상태였다.
그녀를 대신해 적과 무기를 마주한 것은 당연하게도.
“그렇게 소리치지 마라. 머리 울린다.”
겨우 멀미의 여파에서 몸을 추스르고 도를 뽑은 정규철이었다.
그의 실력은 절정.
여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여웅은 기꺼이 그에게 부대주 자리를 넘겼다.
물론 조장 겸 부관 겸 부대주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하튼 공식적인 부대주는 정규철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호오?”
날카롭게 파고든 정규철의 도가 상대의 검을 거둬 내고 여유를 찾는다.
단순히 힘과 초식으로 상대의 검을 거둬 낸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허초가 섞인 속임수로 만들어 낸 여유.
“이 검 백절생사단(百絶生死團)인가?”
입꼬리를 올리며 상대를 향해 도를 겨눈 정규철.
정규철과 여웅의 비무 전적은 약 9할 정도의 승률로.
정규철이 우위에 있었다.
절정이면서도, 무해를 상대로 백 합 이상 버틸 수 있는 풍부한 실전 경험.
“땀 한번 시원하게 뺄 수 있겠군.”
그것이 정규철이 여웅을 밀어내고 불살대의 부대주가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