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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38화 (338/624)

제338화

337화-수적도 사파지 (5)

부서진 단전을 붙잡고 고통스럽게 몸을 비트는 무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훌륭하네.”

“이, 이 악독한……!”

무인의 또 다른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단전을 거침없이 부숴 버린 무해의 악독함에 적호채주가 치를 떨었지만, 설천위는 무시했다.

뭐, 내공이란 것이 그렇다.

무인에게는 제2의 심장, 제2의 손쯤 된다.

내공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장난이 아니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무인들도 있을 정도다.

물론 보통 단전이 깨지면 그 충격으로 죽는 숫자가 더 많다.

몸 내부에 있는 무형의 그릇이 깨질 정도의 엄청난 충격인데, 목숨에 지장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단전이 부서지면 상당한 내상을 입고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실 무해도 처음에는 설천위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불살대를 훈련시키는데 단전을 부수는 수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겠다니.

그게 어디 말이 되는가.

무해 본인이 직접 소림의 무학을 제압을 중심으로 개조한 수법들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아니, 그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적을 죽이지 않기 위해 단전을 부수는데, 적이 반반의 확률로 죽어 버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무해는 이 단전 부수기를 설천위에게 배우기만 했을 뿐 대원들에게 전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아미타불.”

거칠게 공격해 오는 적의 단전을 직접 부순 무해는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찬찬히 적을 살폈다.

어차피 주위는 부하들이 막아 주고 있으니 이 정도 여유는 부릴 수 있었다.

‘이건 단주님이 말씀하신 대로군요.’

피거품을 물긴 했지만, 그건 극심한 내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산공(散功)의 충격에 상대가 실수로 자신의 혀를 깨물어서 난 피가 발작에 의한 거품에 섞인 것뿐이다.

호흡은 안정적이고, 심박도 정상이다.

몸 안의 내공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는 것도 느껴지니, 단전도 확실하게 부서진 상태.

상대의 완전한 제압을 확인한 무해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순간 주위의 적들이 일제히 움찔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는가.

저 비정하기 그지없는 중놈이 행동대장의 단전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리는걸.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으니 곧 있으면 죽지 않을까?

아니, 이미 죽은 게 아닐까?

단전이 부서질 때 그렇게 고통스럽다는데.

그 고통을 못 이기고 숨이 끊어진다던데…….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그 순간.

“아미타불……. 이리도 반항이 지속된다면, 저 또한 손을 멈출 수 없게 됩니다. 시주님들.”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귓가에 새겨지는 무해의 경고.

혼란스러웠던 전장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기에 몇몇 수적들은 고개를 돌렸다.

이쯤 되면 채주가 직접 나서서 부하들의 등을 떠밀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음이 코앞에 왔다고 믿고 있는 저 머저리들이 움직이지 않을…….

“채, 채주님?”

누군가의 당황한 음성과 함께 수적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참담하기 그지없는 풍경.

젊은 남자의 손에 들려 허공에 떠 있는 채주의 꼴사나운 모습.

“나, 나는 그만둘 거야!”

“나, 나도!”

“살려 주십시오!”

수채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끽해 봐야 이류, 정말 말단은 삼류도 흔한 것이 수채다.

그나마 장강수로십팔채에 들어가는 적호채쯤 되니까 불살대와 싸우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들의 특기는 물 위와 물 아래에서의 전투이지 단단한 땅을 밟고 하는 전투가 아니니까.

적들이 온전히 섬에 당도한 시점부터 크게 불리해진 전투인데, 채주까지 붙잡혔다?

전투를 지속할 의지를 크게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항복과 도주가 시작됐다.

중간 관리를 맡은 간부들이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큰 혼란에 빠지는 수채.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수적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강으로 몸을 던지는 수적도 있었다.

“쯧, 근성 없기는.”

다만, 도주라는 그들의 소원은 성취될 수 없었다.

강 위에 생겨난 검은 벽이 그들을 가로막았기 때문.

그리고.

“이, 이게 무슨……!”

정신을 차린 순간, 이 섬 전체가 거대한 검은 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수적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칼밥이나 먹고살던 이들에겐 사방을 가로막은 검은 벽은 전설에나 나올 법한 괴현상이다.

물론.

“아미타불…….”

불살대에게도 믿기 쉬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설천위의 능력을 얼추 알기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불살대는 빠르게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

“네놈도 단전이 부서지고 싶은 거냐!”

“도망치려고 하면 다리를 부러트릴 거다!”

혼란에 빠진 적호채의 수적들을 하나하나 제압하고 속박한다.

“쯧, 아쉽게 됐네.”

조금 더 싸우길 원했는데.

빠르게 제압되는 수적들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찬 설천위는 적호채주를 내려놨다.

도망칠까 봐 제압해 놨더니 예상보다 수적 놈들이 더 똘똘했다.

이렇게 빨리 항복할 줄은 몰랐는데.

불살대라는 이름에 묶인 부하들은 아직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르지 못했다.

전투가 거듭되면 무해는 몰라도 그 밑의 부하들은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반드시 직면할 터.

강한 놈들을 상대로 망설이다간 되레 자신이 죽을 테니 수적들을 상대로 그 망설임을 지우려 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

“역시 단전 부수기를 전수해야겠어.”

[좋은 선택이다.]

[무림에 지독한 무력대(武力隊)가 탄생하겠구나.]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군.]

전투가 벌어지면 상대의 단전만 깨부수는 무력대라니.

웬만한 광인도 상상하지 못할 방식이다.

힘들게 단전을 부술 바엔 차라리 목을 베고 말지.

끔찍한 상상에 있지도 않은 몸을 부르르 떤 암영의적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신의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설천위가 뜬금없이 단전만 부수는 방법을 개발해야겠다고 했을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 아닌가.

의술(醫術)은 한 끗만 뒤집으면 살인술(殺人術)이 된다더니…….

정말 지독한…….

‘아니, 이 경우에는 활인술인가?’

일단은 사람을 살리긴 하잖아.

어차피 싸우다 죽을 인간, 단전만 부수고 살려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활인술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고민을 시작한 암영의적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무, 뭐 하려는 거냐!”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적호채주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설천위의 모습에 놀라 말을 더듬었다.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뒤로 움직였지만, 금세 설천위의 발이 그의 앞에 닿았다.

“뭘 하긴, 방금 봤잖아?”

“이, 이놈! 무인 간의 전투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거늘!”

“에헤이, 싸우면 둘 중 하나 죽는 게 보통인데, 정도는 무슨?”

허리춤에 있는 도를 허겁지겁 꺼내려는 적호채주를 보며 피식 웃은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어, 없어?’

어느새 자신의 허리춤에 있었던 도가 없어진 걸 깨달은 적호채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몇 걸음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도(刀).

필시 저 괴물 놈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떨어트려 놓은 것일 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적호채주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이 괴물 놈은 자신을 순순히 놔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비, 빌어먹을!!”

있는 힘을 쥐어짜서 자리에서 일어선 적호채주는 그대로 설천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대로 허리에 어깨를 부딪치고 개싸움으로 몰고 간다.

상대는 명문 정파의 무인.

그런 개싸움으로 가면 희망이 조금 생길지도 모르는…….

“컥!”

명치가 움푹 들어갈 정도의 강한 충격.

자신의 가슴을 파고든 설천위의 발에 채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힐끗 무언가가 보였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호흡이 막혔다.

무림맹의 단주(團主).

애초에 자신이 비벼 볼 상대가 아니었다.

하물며 무기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어서 될 상대가…….

“성격 참 급하네.”

상대의 명치에 박은 발을 그대로 굽혀 무릎으로 그 턱을 쳐올린 설천위는 훤히 드러난 상대의 복부를 향해 그대로 발을 찔러 넣었다.

쩡!

“끄아아악!”

단전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고통스럽게 몸을 비트는 적호채주.

“그렇게 안 달려와도 알아서 해 줄 텐데 말이야.”

한 호흡 만에 상대의 단전을 부순 설천위.

[음?]

[이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신의와 천마가 고개를 갸웃했고.

“아.”

설천위는 혼들이 그렇게 반응한 이유를 깨달았다.

“끄륵!”

복부를 움켜쥐고 몸을 굽힌 적호채주의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실패했구나.]

[실패했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신의와 천마.

그런 혼들의 말을 무시하고 재빨리 적호채주에게 달려간 설천위는 그의 뺨을 때렸다.

“야야!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나, 나는……. 쿨럭!”

“야야! 이러면 내가 실수한 것 같잖아!”

[실수한 게 맞지 않느냐.]

[거, 손으로 하는 것도 겨우 숙달한 녀석이 겉멋 좀 부리겠다고 발로 했으니 실수하지 않고 배기겠느냐?]

[천위, 너의 재능을 생각하면 너무도 오만한 행동이었다.]

“아오! 지금 그게 중요해요?”

혀를 끌끌 차며 자신을 놀리는 혼들의 반응에 발끈한 설천위는 이내 침착하게 적호채주의 상태를 살폈다.

“끄륵!”

입가에 흥건하게 묻어 나오는 피거품.

뒤집히는 눈동자.

“……안 되겠는데?”

아, 이건 안 돼.

응.

무리야.

못 살리겠다.

“아니! 그게 아니지! 신의!”

[에잉, 똥을 네가 싸 놓고 왜 치우는 건 나냐?]

“원래 의원이 사람 살리는 직업이잖아요!”

[그거 그만둔 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뭐라는 거야, 신의(神醫)가!

혀를 차며 결국 적호채주를 치료해 주는 신의.

그에게 살짝 몸을 맡긴 설천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해에게 사람을 안 죽이고 제압할 수 있다고 설득해서 겨우 가르쳐 놨는데, 까딱했으면 전부 물거품이 될 뻔했다.

물론 게임 속에서 무해가 쓰던 기술을 베낀 거니 언젠가는 자력으로 익혔겠지만…….

빨리 익혀서 숙련도를 쌓아 놓으면 서로 좋지 않겠는가.

게임 속에서도 무해가 연구를 거듭하느라 꽤나 시간이 흘러 얻을 수 있었던 기술이니까.

좋은 건 빨리 얻으면 좋지.

거기다 익숙해지면 무해가 불살대에게도 전수할 게 뻔하다.

언제 사파랑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사용할 수 있는 수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지.

단전 파괴는 거의 일격필살의 기술이나 마찬가지니까.

사람은 죽지 않지만, 무인은 죽는 기술.

불살(不殺)에 딱 맞지.

[됐다.]

“오! 고마워요.”

[다음에는 얌전히 손으로 쓰거라.]

“예이.”

신의의 말에 히히 웃으며 몸을 일으킨 설천위는 이미 제압이 끝난 적호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자!”

* * *

“적호채? 처음 당한 놈들?”

“그놈들은 천호채입니다.”

“아, 에이씨! 뭔 이름이 그리 비슷해?”

“산적이나 수적이나 먹물과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용(龍)이나 호(虎), 사파이니 사(蛇) 정도?

자신들의 이름을 지을 때 그들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지혜다.

그 앞에 뭐 천(天)이나 색 정도를 쓰는 거지.

수채나 산채의 이름이 비슷비슷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나저나 네가 웬일이냐? 평소에는 저기 서쪽으로만 눈을 부릅뜨고 있던 녀석이.”

비슷한 수채의 이름을 욕하던 사내의 물음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사내, 유허정은 작게 웃었다.

“조금 연이 있습니다. 이번 목표와.”

“연? 아……. 설천위 그 녀석이 학관생일 때?”

“예. 조금 아쉽게 놓쳤던 전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따라왔다고? 죽고 싶으면 다른 방식도 많은데 굳이?”

학관의 학생일 때의 설천위와 지금의 설천위는 격이 다르다.

무려 무림맹의 단주(團主).

옛날 기억 때문에 모가지가 위험할 것 같은데?

사내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유허정은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단주님이 있지 않으십니까?”

“날 믿고 왔다?”

“옆에서 그 녀석의 부하들이라도 썰겠습니다.”

“하, 새끼.”

고개를 숙이는 유허정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단주는 유허정의 등을 탁 치고 웃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입꼬리를 올리며 배의 선두(船頭)에 선 사내의 어깨에 걸쳐진 흑색 장포가 강바람에 휘날린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따라 장포의 등 부위에 수놓인 흰색의 글씨 또한 거칠게 흔들렸다.

[백절생사단(百絶生死團)]

사천맹의 단주가 흑사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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