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35화 (335/624)

제335화

334화-수적도 사파지 (2)

상선을 털어라.

그 말도 안 되는 지시에 대원들이 머뭇거리는 그때.

여웅은 거침없이 달렸다.

이 작은 섬에서 몇십 걸음이나 떨어진 상선을 향해 망설임 없이.

“흐읍!”

달려간다.

단숨에 땅을 박찬 여웅이 거침없이 물 위로 발을 내디딘다.

“……허어?”

그러나 그 모습에서 대원들이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였다.

첨벙거려야 할 소리가 나지 않았고.

가라앉아야 할 발이 수면 위를 내달린다.

마치 설천위가 느긋하게 땅 위를 걷듯이 강을 건넜던 것처럼.

여웅은 거침없이 물 위를 달리고 있었다.

“크하!”

그리고 그 모습에 몸을 일으킨 정규철이 호쾌한 웃음과 함께 땅을 박찬다.

별다른 소리 없이 일어난 무해는 이미 그의 앞을 달리고 있는 상태.

“뭐 하냐! 늦는 놈은 헤엄쳐서 와야 할 거다!”

생각 없이 뛰쳐나간 대주와 조장을 대신해 부하들을 재촉한 정규철은 그대로 물 위에 발을 내디뎠다.

‘하!’

발에 닿는 단단한 감촉.

확실했다.

저 단주란 인간의 짓이다.

전설로나 취급되는, 초인들의 전유물인 수상비를.

‘말도 안 되는군.’

어떤 사람이라도 평등하게 누릴 수 있게 만들다니.

그냥 괴물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기에 정규철은 도를 쥐고 거침없이 상선에 올랐다.

저런 괴물이 단순히 돈이 탐나서 상선을 털 리가 없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설령 돈을 탐해 상선을 터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미타불.”

재화의 손실 따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만 지킬 수 있다면 말이다.

불살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길을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대주의 뒤통수를 보며 정규철은 도를 움직였다.

도에 두른 도기(刀氣)가 형형하게 빛난다.

물론, 그가 원래 쓰던 것과는 전혀 다른 도기다.

“컥!”

도에 베였어야 할 선원이 마른기침과 함께 날아간다.

날붙이의 성질을 역행하는, 예기를 역으로 죽이는 도기(刀氣).

다른 대원에겐 베어도 죽지 않는 곳을 가르쳐 주던 무해는 정규철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정규철은 애초에 사람 몸에서 죽을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할 능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도기(刀氣)를 다룰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 사람을 살릴 거라면, 어디 하나 칼침을 놓지 않고 살리는 게 더 낫지 않은가?

그런 대주의 억지에 어울리며 익힌 무딘 도기(刀氣).

정규철은 그 도기로 확실하게 선원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과는 다르다.

도기에 맞는 순간, 그 부위로 스며든 도기가 상대의 움직임을 막고 고통을 가중시킨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통증에 몸을 비틀며 주저앉아야 할 수준.

“끄악!”

실제로 그러고 있고.

정규철이 지나가는 길 위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늘어난다.

“아미타불.”

그리고 그건 무해도 엇비슷했다.

구태여 고통을 억누르지 않은 손속으로 적들을 제압해 나간다.

뒤늦게 따라온 대원들이 배 위로 기어올라 손을 보태기 시작하자, 배는 빠르게 점령되어 갔다.

“호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이지만 자신의 공격을 막은 적들과 마주한 정규철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냥 상선은 아니다.

이런 습격이 있으면 보통은 항복하거나 거래를 제안한다.

그런데 지금 이 배 위에 있는 적들은 마치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덤벼들고 있었다.

이길 희망이 없음을 뻔히 알고도 말이다.

거기다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 일류급의 고수들.

이런 중간 규모의 상선에서는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고수들이다.

확실하게 그냥 상선은 아니다.

“역시 안 죽이니 오래 걸리네.”

어느새 배 위로 올라온 설천위가 배의 난간에 앉아 있음을 발견한 정규철은 도를 거뒀다.

“단주.”

“응?”

“묻고 싶은 게 참으로 많습니다만…….”

여러 가지 질문을 삼킨 정규철은 이내 단 하나의 의문만을 골랐다.

“제대로 된 길이 맞습니까?”

단단한 눈빛.

대답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행동할 각오가 되어 있는 그 눈빛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단주라고 할지라도 도를 겨누겠다는 의지.

그래.

저 정도는 돼야 흑룡(黑龍)이지.

“나한테 묻지 말고,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그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본인이 판단하는 거니까.”

설천위의 대답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정규철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그 말대로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 이런 미친놈들이!”

그리고 그 순간,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규철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선실에 가까워질수록 올라오는 악취.

대체 이런 곳에서 선원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악취를 지난 순간.

정규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참한 몰골로 늘어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해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해 갑작스레 찾아온 자신들을 올려다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이들.

어린아이부터 성인 남녀까지.

손발에 채워진 쇠사슬.

아예 풀어 준 적이 없는 듯, 그 주위에 가득한 오물에서 강렬한 악취가 올라왔다.

“아미타불…….”

옆에서 들려오는 불호에 정규철은 미간을 찡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대주.”

“안 됩니다.”

칼 같은 거절.

그 반응에 정규철은 더욱 크게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이내 말을 삼켰다.

무슨 말을 해도 무해가 뜻을 바꾸지 않을 거란 걸 알아서다.

“아미타불……. 먼저 이분들의 상태를 살피는 게 우선입니다.”

오물 사이를 거침없이 걸어간 무해가 사람들을 풀어 주고 그들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하자, 머뭇거리던 대원들도 눈을 감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규철은 이내 한숨과 함께 도를 들고 오물 사이를 걸었다.

그가 휘두른 도가 잡힌 사람들의 쇠사슬을 끊어 낸다.

그리고 배 위에서 전투의 마무리를 하던 불살대 사이에서 여웅은 세 사람을 골라 설천위의 앞까지 끌고 갔다.

“명령을 내리던 자들입니다.”

“고생했어.”

한껏 겁을 먹은 얼굴로 벌벌 떨고 있는 이들.

일류나 되는 고수가 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 하나.

일반인은 물론 무인조차도 공포에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겁에 질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강 위에 서서, 배를 멈추고, 부하들조차 강 위를 뛰어오는 수상비로 배 위에 올라타 단숨에 배를 점령했다.

‘괴, 괴물이다……!’

‘이, 이게 흑룡단주……!’

허리춤에 있는 도와 검.

기이한 분위기를 흘리면서도 철저하게 단련된 육체.

젊은 나이와 뛰어난 외모.

지금 무림에 소문이 자자한 무림맹 흑룡단주의 특징과 전부 일치하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을 하며 먹고살기 위해선 강한 무인들에 대한 정보 파악은 기본이 아니던가.

“먼저 입을 여는 녀석은 특별히 고문을 생략해 주지.”

고문을 생략?

순간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에 무인들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

셈이 빨랐던 일반인인 상인만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저, 저희는 천호채에서 운영하는 상선입니다!”

“오, 상인이라 그런가? 셈이 빠르네. 좋아, 이런 신속함. 아주 마음에 들어.”

설천위의 긍정적인 반응에 상인은 속으로 작게 안도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줄줄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뱉어 냈다.

천호채에서 일반 상선으로 위장한 배를 운용하고 있다는 것.

주로 밀수나 인신매매 등등 불법적인 유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들어온 의뢰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는 것까지.

다만 그들이 어디로 팔려 가는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선수를 친 상인의 모습에 무인들도 다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여웅의 손에 조용해졌다.

죽인 건 아니고, 아혈을 짚었다.

너무 시끄러워 오히려 듣기 불편해졌으니까.

“뭐, 대충 짐작했던 대로네.”

상인이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뱉어 내고 눈치를 보는 사이.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약속은 잘 지키는 편이거든.”

상인의 양옆에 있는 무인들에게 다가간 설천위는 가볍게 그 둘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 가벼운 행동에 상인이 의문을 삼키는 순간.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살려 줘!!”

여웅이 풀어 준 아혈이 설천위의 손에 의해 풀린 두 무인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몸을 마구 비틀기 시작했다.

그들의 어깨를 타고 올라간 검은 용의 문양이 그들의 목과 가슴을 집어삼켰다.

“뭐, 가볍게 이 정도로 할까. 관에 넘기려면 살려 두는 게 나으니까.”

이, 이게 가벼운 거라고?

얼굴에서 흘릴 수 있는 건 전부 흘리며 몸부림치다 못해 바닥에 몸을 긁어 피가 흐를 정도로 저렇게 아파하는데.

이게 가벼운 거라고?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시, 시키는 거라면 전부 하겠습니다!”

“응? 내가 널 왜 죽여?”

바닥에 머리를 박고 비는 상인의 모습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그 등을 두들겼다.

“안 죽여. 말했잖아? 고문도 안 한다고.”

“그, 그러면?”

“뭐, 어차피 관에 넘기면 목이 날아갈 테니 너무 희망은 가지지 말고.”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에이, 저렇게 폐인처럼 몸을 비틀다 죽는 것보단 낫잖아? 유언이나 생각해 둬.”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비는 상인의 손을 가볍게 밟아 떨어트린 설천위는 그대로 일어났다.

배 안에 있던 이들을 불살대가 구출해 내는 것이 보였다.

제압된 적들은 다른 이들이 묶어 배 위에 모아 놓은 상태.

깔끔하게 정리됐다.

“응, 이제 갈까?”

“그럼 제가 돌아가서 관에 연락을…….”

“아니, 왜 굳이 일을 귀찮게 해?”

당장에라도 강에 뛰어들려는 여웅의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에 배가 있는데 왜 일을 그리 귀찮게 한단 말인가.

[암천룡(暗天龍)]

설천위의 몸에서 빠져나온 패융이 단숨에 거대하게 몸을 부풀리고.

설천위의 힘을 받고 나타난 흑사의 실이 그런 패융과 배를 잇는다.

그리고.

“……미친.”

“이, 이게 뭐시당가.”

거대한 흑룡에게 연결된 배는 바람과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무혈시(武穴市).

호북의 동남쪽 끝, 강서와 호북을 나누는 장강의 북쪽에 있는 도시.

강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한 무혈시의 부둣가는 때 아닌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거대한 흑룡이 끌고 나타난 배.

전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모습에 부두에 사람들이 모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실체가 공개되고 소문이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아니, 흑룡단주라더니 정말 흑룡을 부리는구먼…….”

“거기다 사람을 파는 아주 몹쓸 놈들을 이렇게 단숨에 때려잡다니, 정파에 새로운 협객이 나왔어.”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문은 별달리 크게 부풀려지지도 못한 채 퍼져 나갔다.

아니, 흑룡이 배를 끌고 나타났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린데 거기서 더 부풀릴 게 뭐가 더 있겠는가.

흑룡이 배를 끌고 나타나는 충격적인 광경.

흑룡단주가 직접 움직여 인신매매를 하던 놈들을 붙잡았다는 영웅적인 행보.

사람들은 뜨겁게 열광했고.

당연히 그 반대편에 선 이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체가 없던 범죄의 정체가 탄로 났다.

인신매매는 몰라도 밀수는 관에서도 움직이는 중대 범죄다.

황실의 재산을 갉아먹는 범죄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은밀하게 상선을 움직이던 수채들은 당연히 상선의 내용물을 정상화시켰다.

위장용으로 내세웠던 양지의 상품만을 싣고 손해투성이인 상행에 나섰다.

자신의 상선 하나를 통째로 뺏긴 천호채조차 몸을 낮추고 손해를 감수했다.

“빌어먹을!”

그렇기에 천호채의 채주는 목이 탈 정도로 독한 화주를 마시며 화를 삭였다.

이번에 입은 손해가 얼마인가.

거기다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게 됐으니…….

“개잡놈의 흑룡단주 같으니!”

그 화가 쉬이 가라앉질 않았다.

“내가 개잡놈까지는 아닌데.”

아니, 가라앉지 않을 줄 알았다.

“히끅.”

자신의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히죽히죽 웃으며 안주를 집어먹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너한테는 맞을지도?”

뒤틀린 사신의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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