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4화
333화-수적도 사파지 (1)
호북의 남동쪽.
사파의 영역인 강서와 맞붙는 그곳은 장강이 그 위아래를 나누고 있었다.
호남설가의 등장으로 밀려난 장강수로십팔채가 있는 곳.
예전처럼 호남과 호북 사이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채들도 있지만, 꽤나 많은 수채들이 이곳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장강수로십팔채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부르고 있긴 하지만, 실제론 십채와 팔채 같은 느낌?
가끔 망하는 곳도 있어서 이마저도 정확하진 않다.
당연히 힘은 상당히 약해진 상태.
옛날에는 수틀리면 배 위에 있는 이들을 전부 죽이고 아예 통째로 약탈해 가는 경우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냥 적당히 서로 웃으며 상납금 정도만 받는 수준?
배를 운용하는 상단도 괜히 인명 피해가 생겨 나쁜 소문이 나는 것보단 나으니 적당한 돈을 쥐어 주고 있었다.
수채와 상단 간의 상부상조.
사파와 정파 사이의 완충지대라는 점도 있어서 수채들도 크게 정파를 신경 쓰지 않고 수적질을 해 먹는 곳.
그곳에.
“오오.”
설천위가 찾아왔다.
목적은 최근 일어나는 사파인과의 갈등 해결 및 사천맹을 향한 견제.
……는 사실 명목이고, 구파일방의 시간 벌이를 위한 파견이다.
물론.
“수채라…….”
설천위는 그런 쓸데없는 이유로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무식하게 수채를 공격하러 간다거나 하진 않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수상전의 경험도 없이 수채를 상대하러 들어가는 건 너무 무식한 방법이니까.
술법과 힘으로 어떻게 밀어붙일 수야 있긴 하겠지만…….
“아미타불,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지는 곳이군요.”
“흥, 사람 사는 곳이 다 이렇지.”
이 사람들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다.
흐뭇하게 웃으며 시장을 둘러보는 무해와 삐딱하게 반응하는 정규철.
대주와 부대주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등해 보이지만.
둘의 성격 자체가 저러니 뭐.
이번 파견.
설천위는 흑룡단의 새로운 전력인 불살대를 끌고 왔다.
훈련이 꽤 진행된 상태라 실전에서 합을 맞출 필요가 있기도 하고.
‘실제로 좀 봐 둘 필요도 있고.’
무려 불살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무해가 직접 지도한 대다.
그 실력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훈련을 지켜보는 것으로 대충 감을 잡긴 했지만, 실전은 또 다른 법이니까.
“제대로 된 충돌도 없을 텐데……. 시간 낭비야.”
불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정규철.
뭐 그럴 만하다.
정규철은 애초에 설천위가 내세운 흑룡이라는 이름에 흥미를 느끼고 들어왔으니까.
최근에 있었던 진의단의 첩자 수색.
그 수색에 발 벗고 나서서 한 손을 거들었던 정규철이다.
보아하니 부패한 정파인에게 상당한 반감이 있어 썩은 녀석들 두들겨 패다 쫓겨났는데 불만이 없을 리가 없지.
“아미타불, 민생을 챙기는 것이야말로 정파의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 시주.”
“그걸 왜 우리가 챙겨? 여기에서 일하는 놈들이 챙겨야지.”
“서로 도우면서 살기에 무림의 동도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만을 대놓고 드러내는 정규철을 미소 한 번 흐트러트리지 않고 토닥이는 무해.
그리고 그 모습에 피식 웃는 대원들.
“밖으로 나와도 여전합니다.”
“그래? 훈련 중에도 저러나 보지?”
“비살상 훈련을 할 때면 꼭…….”
옆에서 웃으며 설명해 주는 여웅의 말에 설천위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불살대는 그 이름답게 무해에게 따로 비살상 초식을 배우고 있다든가.
살펴본 천마의 말로는 소림의 무학 중에서도 제압을 위한 무공의 정수를 뽑아 개량한 것이라고 하던데.
그런 걸 막 가르쳐 줘도 되나 싶네.
허허롭게 웃으며 정규철을 달래고 있는 무해를 가만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지금 신경 쓸 건 아니니까.
나중에 소림에서 딴지를 걸면 무해가 알아서 막아 주겠지.
그 전에 그럴 만한 위치까지 무해가 성장해야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단주님.”
“응?”
“수채를 공격할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럼 대기하면서 순찰만 돌면 되겠습니까?”
주변 구경에 정신 팔린 무해나 다른 불살대원과 달리 순수하게 임무에 집중하고 있는 여웅.
그녀의 질문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순찰이 아니라 수색을 할 거야.”
“수색 말입니까?”
“응. 수색.”
설렁설렁 움직이면서 통행료나 뜯는 놈들이랑 아웅다웅할 생각은 없다.
노릴 거라면, 제대로 큰 놈을 노려야지.
* * *
강을 이용하는 운송.
강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만 빼면, 그 이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배에서 내린 뒤의 운송은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강을 타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운송비와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절약된다.
수적이라는, 강 위에서 언제 목숨을 앗아 갈지 모를 위험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이점이다.
그렇다면 그 이점을 과연 상단들만 쓸까?
“……이게 맞는 일인가?”
“아미타불…….”
정규철의 중얼거림에 무해조차 그저 불호를 외는 상황.
그들과 함께 몸을 낮추고 숨어 있던 여웅은 차마 그들을 힐난할 수 없었다.
왜냐고?
‘……진짜 이게 맞을까?’
그녀도 같은 심정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게 맞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수적을 잡으러 왔지 수적질을 하러 온 게 아닌데…….”
누군가가 중얼거린 한 마디에 흠칫 몸을 떤 여웅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적당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설천위.
그가 들었을까 봐 흠칫 놀라서 봤지만…….
‘못 들었을 리가 없지.’
단주급 고수가 이 정도 거리에서 그냥 중얼거리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있나.
그런데도 별말 없이 가만히 있다는 것은…….
‘단주님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하긴 하지.
수색하러 간다는 말과 함께 장강을 맨몸으로 헤엄쳐 건너서 강 위에 있는 작은 섬에 도착.
그곳에서 잠복이라니.
이게 수색인지 똥개 훈련인지 모를 지경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당히 놀랄 만한 일이 있긴 했지만…….
그런 놀람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줄어드는 법.
이젠 놀람보다는 이 따분한 시간이 솔직히 아까웠다.
이 시간에 훈련이라도 한다면…….
여웅이 속으로 작은 한탄을 하는 그 순간.
가만히 앉아 있던 설천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첫날부터 당첨일 줄은 몰랐는데.”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
당첨이라면 분명 좋은 일일 텐데.
왜 짜증이 섞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설천위의 움직임에 반응한 불살대는 일제히 입을 다물고 몸을 일으켰다.
불만으로 입이 툭 나와 있던 정규철마저 자신의 애도(愛刀)를 쥐고 전투를 위한 기세를 끌어올리는 그 순간.
“아, 조금 기다려.”
불살대의 기세를 살포시 꺾는 한마디와 함께 설천위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 한복판을 향해.
그 무식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본 사람이라면 말려야 정상이지만, 불살대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헤엄쳐 오면서 본 게 있으니까.
“……아미타불.”
“다시 봐도 놀랍군.”
무해와 정규철의 감탄.
그 감탄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여웅의 시야에 강을 걷고 있는 설천위가 들어왔다.
‘……단주급이 되면 저런 게 다 가능한 건가?’
아니,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너무도 담담하게 강 위를 걸어가는 설천위.
그 뒷모습이 너무 여유로워서 강이 아니라 그냥 땅 위를 산책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너무나도 편안하게 강의 한가운데에 도착한 설천위.
그 모습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이내 여웅은 물론 무해와 정규철마저도 눈을 크게 떴다.
“단주님!”
자신도 모르게 땅을 박차고 나서려던 여웅은 이내 현실을 깨닫고 걸음을 멈췄다.
아무리 자신이 단주님을 존경한다고 해도…….
‘저, 저건.’
강 위에서 다가오는 배를 막아 줄 수는 없다.
강 한복판에 서 있는 설천위.
그를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는 배.
사실 당연하다.
설천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해도 배라는 것이 갑작스레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해 봤자 방향을 트는 것 정도가 최선이겠지만…….
‘……이상한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여웅은 이상함을 깨달았다.
보통의 상선이라면 강 한복판에 사람이 나타나면 기겁을 하면서 배의 방향을 트는 게 정상이다.
강 위에 서 있는 존재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유령이겠거니 생각하고 기겁하며 최대한 피해야 정상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가 전설 속에나 나오는 무림인일 것이 분명한데 그대로 배로 박아 버리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저 상선은 그대로 직진했다.
강 위에 서 있는 설천위를 못 볼 만한 상황도 아닌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여웅이 설천위를 향해 경고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쿵!!
굉음과 함께 배가 정지했다.
마치 무형의 벽이 그 앞을 가로막기라도 한 것처럼.
“무, 무슨 일이냐!”
그제야 다급한 목소리가 배 위에서 튀어나왔다.
마치 설천위를 눈치챈 적이 없었던 것처럼 혼란스러워진 배 위.
그 모습에 여웅은 단주님이 설마 기척을 지우고 있었나 의심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약 술법으로 그랬다면 혹시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단주님은 그런 기예가 불가능하다.
부단주님이라면 모를까.
아군에게는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적들에겐 숨기는.
그런 극에 이른 은신술은 아무래도 단주님의 영역은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여웅이 도달한 답에 마찬가지도 도달한 무해와 정규철은 조용히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자신들의 단주는 분명 저곳으로 가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즉.
“응, 이제 됐네.”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린 설천위의 눈과 세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뭐 해? 털어.”
씩 웃으며 말하는 설천위의 목소리는 너무도 상쾌했다.
* * *
무림 아니, 중원에 존재하는 수많은 금지(禁地).
누군가의 탐욕을 위해.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혹은 누군가의 걱정 때문에.
이 세상에는 수많은 금지가 존재했다.
그 안에는 금은보화가 잠들어 있기도 하고, 결코 깨워선 안 될 존재가 잠들어 있기도 한다.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한 곳이 바로 금지.
그런 금지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은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금지들이다.
탐욕(貪慾)을 위해 금은보화(金銀寶貨)를 숨겼든.
백성(百姓)을 위해 천재지변(天災地變)을 숨겼든.
무려 황실이 직접 나서서 숨긴 것들은 그 크기와 격이 남달랐다.
금은보화라면 거지조차 거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했고.
천재지변이라면 대도시도 한순간에 지옥이 될 정도로 끔찍했다.
당연히 그런 것들을 틀어막아 놓기 위해 해 놓은 준비는 대의(大義)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쯤은 망설이지 않을 정도로 악랄하고 지독하다.
그런 황실의 금지(禁地) 중 하나.
비천홍련정토(沸天泓煉淨土).
보통 사람은 입구에 들어서는 것조차 힘든 열기로 가득한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담담하게, 마치 마실이라도 나온 것처럼 뒷짐을 쥔 채로.
“이곳은 손님을 이렇게 방치하나?”
잔잔한 어조로 자신을 초대한 사람을 향해 묻는다.
다만, 질문을 던지면서도 정확히 확신할 순 없었다.
그가 정말로 사람인지, 아니면 사람의 탈을 쓴 무언가인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런 곳까지 불러내서.”
작게 웃으며 곳곳에서 나온 열기에 일렁이는 공기를 뚫고 등장한 사내.
너무나도 느긋한 그의 모습에 아까 전부터 서 있던 사람은 미간을 찡그렸다.
“네 녀석이 불러 놓고 반 시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무슨 생각이냐, 비후(悲吼).”
“아하, 그게 문제였구나. 미안. 금지에 들어오면 시간 감각이 무뎌져서 말이야.”
친구를 대하는 것 같은 가벼운 태도로 사과한 비후는 닿는 순간 살이 익어 버리는 바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비후도 그 상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로 비후에게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바위에 앉은 비후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거래할 마음이 든 거겠지?”
씩 웃는 비후.
그와 눈을 마주한 상대는 말없이 비후를 바라봤고.
“구령학.”
사존(邪尊) 구령학은 비후를 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용건만 말해라. 비후. 나는 너처럼 시간이 넘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