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27화 (327/624)

제327화

326화-선검단 (3)

비명이 울려 퍼진다.

무림맹 본단이라는 안식처에서 일어난 기습.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공격.

이곳으로 적이 침입할 거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생긴 빈틈.

그 빈틈을 찔린 대가는 실로 컸다.

“적습이다!!”

“크악!”

“빌어먹을!”

준비가 안 되어 있던 이들은 적의 검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방심하고 있었기에 검을 뽑는 것조차 느렸고.

생각도 못 했던 동료의 혈향은 근육을 경직시켰다.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선검단.

허나.

“이놈들!!”

“단주님!”

그 같은 혼란은 단 한 명이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순식간에 진정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는 강자.

화경(化境).

이 무림에서도 몇 안 되는 초고수.

자신의 검조차 제대로 못 쥐고 후퇴하던 이들이 그제야 호기롭게 검을 치켜든다.

전장의 판도란 기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 법.

‘됐다!’

다급하게 대원들을 이끌던 선검단 휘하 제2번대 대주(隊主), 휘언은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적들이 무슨 목적으로 쳐들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주가 이곳에 있음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놈들의 패착이다.

화경급 고수의 등장이다.

당연히 적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이쪽은 그 기세를 몰아…….

단주의 등장과 함께 생길 수밖에 없는 적들의 빈틈.

그 빈틈을 노려 정비하려 했던 휘언은 이어지는 풍경에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무슨!’

멈추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땅을 박찬다.

자신들이 상대하던 선검단원들을 쳐 내고, 전진한다.

단원들을 지키기 위해 가장 앞으로 나선 단주를 향해.

동시에.

쾅!!

생각지도 못한 굉음이 터져 나온다.

단주의 검과 그에게 돌진한 적의 검이 부딪치면 난 굉음.

‘그럴 리가?!’

무려 선검단주다.

이 무림맹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이들 중 하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약해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는 하나, 정종의 무공을 익힌 문파는 그 숙명조차 비껴간다.

세월을 거듭하며 쌓아 온 심후한 내공이 그 숙명을 거스를 힘을 주기에.

자신들과 검을 나누던 상대가 저렇게 단주의 검을 맞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정도 실력자였다면, 자신들은 진즉에 피를 뿌리며 바닥에 누웠을 테니까.

기습을 당하며 많은 단원들을 잃었지만,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단주님께서 싸우신다!”

“우와아아!”

그나마 상황을 읽어 낸 휘언과 달리 단원들은 단주의 등장에 흥분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휘언이 뒤늦게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이미 한발 늦었다.

“커헉!”

“무, 무……! 크악!”

조금 전과는 명백하게 다른 힘과 속도.

거기다 탁해진 눈동자.

‘약!’

혹은 술법!

강제로 신체 능력이나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놈들이 약을 쓰고 있다! 전원 방어에 집중해라!!”

휘언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의 비명 소리는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단주님의 상태가 이상하다!’

아무리 상대가 약으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렸다고 해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일류 수준.

잘해야 절정일 터인데.

적들의 합공에 단주의 손발이 묶여 있다.

본래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상황.

단주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깨달은 휘언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곳에서 단원들을 이끌 만한 급을 가진 무인은 자신뿐.

부단주는 자리를 비웠을 터.

워낙 바빠서 단에 붙어 있는 일이 드문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버틴다!’

이곳은 무림맹의 본단이다.

아무리 구획을 나눠 단마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비명과 혈향이 퍼지면 다른 단도 반드시 이변을 눈치챌 수밖에 없다.

그리 긴 시간을 버티지 않아도 곧 지원군이 올 터.

“버텨라!! 우리는 선검단이다!!”

그렇기에 휘언은 악을 쓰며 검을 휘둘렀지만, 그럼에도 솟구치는 불안감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리도 당연한 것을, 적들이 과연 몰랐을까?

도망친다는 선택지 자체가 없음이 분명한데, 자신의 묫자리를 찾아온 거나 다름없는 이런 기습을 감행한 저들이.

‘……고작 이 정도로 끝날 것인가?’

그리고 휘언의 불안감은 이내 현실이 되어 그를 찾아왔다.

“커억!”

“내공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그리고 그 순간, 뻑뻑해진 내공의 움직임.

서서히 느려지는 내공의 속도는 곧 무공의 불발로 이어진다.

이어져야 할 초식이 이어지지 않고.

닿아야 할 거리에 검이 닿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흡!”

겨우 검을 들어 막아 냈으나, 제대로 흘려 내지 못해 어깨에 상처를 입은 휘언은 이를 악물었다.

산공독이라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대체 언제?

“이놈들!”

거칠게 검을 휘두르는 단주.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휘언은 깨달았다.

단주도 이 독에 당했음을.

고강한 내공을 지닌 만큼 단원들처럼 완전히 내공이 묶인 건 아닐 테지만, 분명 영향을 받고 있었다.

자신만 해도 급격하게 내공의 움직임이 느려져 적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휘언은 가장 최악의 가정을 떠올렸다.

단주의 등장에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적들.

독에 중독됐다곤 하나 화경급 고수를 압박할 수 있는 수준의 합격술.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준비된,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라면.

‘……단주님?’

저들의 목표가 선검단이 아니라 선검단주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저들이 이 무림맹 본단에서.

단주의 암살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순간.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어깨에 입은 상처와 생각을 하느라 생긴 빈틈.

그 빈틈을 상대가 힘으로 비틀어 열어 버린 것이다.

어깨부터 가슴을 지나 옆구리까지.

차가운 금속 뒤에 따라오는 아찔하고 타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문다.

피부와 살이 갈라졌을 뿐이다.

마지막 순간에 몸을 뒤로 물렀기에 얻은 기회.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휘언은 이를 악물고 검을 뻗었다.

적을 쳐 내고, 자세를 잡는다.

“이를 악물고 버텨라!!”

단원들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

이를 악문 휘언이 검을 휘두르고.

전투는 더더욱 거칠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피와 살이 튀고.

고통으로 열기가 사라지지 않은 육체가 땅 위로 허물어진다.

“이놈들!!”

문파의 아이들처럼 아끼던 단원들이 하나둘 땅에 그 몸을 누인다.

적들의 숫자도 조금 줄어들긴 했으나, 이쪽 숫자와 차이가 너무도 크다.

이쪽은 약에 당해 내공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적들은 약으로 그 힘을 크게 끌어올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어떤 놈들이냐……!’

그렇기에 선검단 단주 현성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숨길 수가 없었다.

무림맹 본단에서 이만큼 준비된 기습이라니.

내부에 협력자가 있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적들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세.

정직하면서 동시에 살기에 너무 치우치지 않은 검로.

명백하게 사파의 것이 아니다.

독기를 품고 억지로 적을 죽이기 위해 적들 스스로 검로를 비틀어 오히려 위력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

그 정도로 깊이 있는 정공의 무학이다.

정파 내부에 있는 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배신자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다.

‘……이놈은 끝에 도달했군!’

자신을 압박하는 적들 사이에 끼어 있는, 유일하게 두 눈에 총기가 남아 있는 적.

검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 약을 쓰기 전에도 절정 이상의 경지였을 터.

자신의 손발이 묶인 가장 큰 이유다.

‘알아채는 것이 늦은 탓이다.’

상자를 들고 있던 단원을 만나 훈계를 하면서 독을 너무 많이 흡입했다.

뒤늦게 알아채고 그것을 저지하긴 했으나, 독은 이미 몸속에 파고든 상태.

거기다.

‘단순한 독이 아니다.’

내공만으로 밀어내는 데 실패했다.

단순 산공독이 아니라는 증거.

술사 혹은 괴이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단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보통의 산공독이라면 이렇게 일제히 그리고 갑자기 독에 중독되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서서히 퍼지던 독이 특정한 조건을 채우자 일제히 발동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성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미 부하들의 피가 너무 많이 흐른 상황.

내공을 억지로라도 쥐어짜서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독의 영향과 적들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힘을 아끼고 있었으나, 이제는 끝이다.

최대한 짧게 끝내는 것.

그게 최선이다.

약으로 그 힘을 강제로 끌어올렸다고는 하나, 그 뿌리는 고작해야 절정에서 일류.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 토해 내야 할 게야……!”

두 눈을 부릅뜬 현성의 몸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흘러나온다.

그 기세는 이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 그의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적이 뻗은 검이 그 흐름에 휘말려 허공으로 튕겨 나간다.

활짝 열린 가슴.

억지로 힘을 써서 자세를 고치려고 했지만, 약으로 얻은 어설픈 힘 따위로 넘을 수 있는 벽이 아니다.

“커헉!”

이성 없이 달려들던 적의 가슴을 현성의 검이 관통한다.

적의 몸이 허물어지며 현성을 향해 쓰러진다.

그것을 밀어내든, 아예 당겨 받아 내든 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말의 기색도 없이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적들의 검이 사방을 점한다.

단숨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허나, 현성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움직였다.

쓰러지는 적의 시체를 통과하듯 빠져나온 검은 강이 되어 그를 향해 날아오던 모든 검을 쳐 낸다.

아니, 집어삼킨다.

현성의 검에 깃든 흡결(吸訣)의 묘리에 빨려 들어가는 검 때문에 적들의 자세가 일제히 흐트러진다.

그 와중에 홀로 검을 놓은 절정급의 무인만이 자세를 겨우 다잡았으나, 이미 늦었다.

후웅!

적들의 검을 빨아들인 현성의 검이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다.

바람 자체를 갈라 버리는 듯한 일격.

그 바람에 휘말린 적들의 목과 몸에서 피가 마구 솟구친다.

죽음의 순간, 억지로라도 서서 자신을 향해 달려들려는 적들의 독기에 현성은 그만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화경의 상징.

검강(劍罡)을 두른 검은 흐르는 강이 되어 그 모든 것을 차단한다.

적들의 사소한 발악조차 허용하지 않는 압도적인 격류가 되어 적들을 그대로 집어삼킨다.

다가오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달려들던 이들은 감히 그 기세를 뚫어내지 못하고 이내 허물어지고.

이제는 검조차 잃어버린 유일한 적만이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든다.

치밀하게 준비한 것에 비해 허망하기 그지없는 결말.

화경급 고수의 힘을 우습게 봤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근육과 내공을 쥐어짜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적을 보며 현성은 검을 움직였다.

고작해야 내공의 흐름을 방해할 뿐인 이런 산공독으로 단주를 암살하려 한 그 헛된 욕심을 이곳에서 끊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

현성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적이 쥐고 있는 물건이었다.

진천뢰(震天雷).

‘雷(우레 뢰)’ 자가 새겨진 철구(鐵球).

그 화력은 능히 그 일대를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하기 그지없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발과 파편은 인간을 순식간에 처참한 고기 조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유일한 흠은 너무나도 강대한 위력에 제작자가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안전장치뿐.

발동하기 위해선 특수한 방법으로 조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몇 호흡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빠르게 상황을 인지한 현성이 검을 움직이는 그 순간.

이미 조작이 끝난 진천뢰가 비틀린다.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를, 압도적인 조작 속도.

그것만으로 격발까지 두 호흡이 줄었다.

현성의 검이 상대를 벤다.

진천뢰를 쥐지 않은 왼손에 가득 담긴 내공이 검을 막아 낸다.

그 결과 왼손은 처참하게 갈라져 망가졌으나, 개의치 않는다.

계속해서 거리를 좁히는 무인을 막아 내기 위해 현성의 검이 허공에서 궤적을 비튼다.

보통의 무인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놀라운 기예.

허나, 망가진 왼팔을 휘두르는 것으로 그것조차 막아 낸다.

자신의 몸조차 방패로 삼아 달려드는 적.

그러나 현성의 연륜은 그 방패조차 단숨에 치워 내고 목표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베어 낼 생각은 없다.

단숨에 내공으로 휘감아 저 하늘 높이 던져야 한다.

그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

이를 악문 현성의 검이 적의 방어를 뚫고 진천뢰에 닿는 순간.

‘내공이……!’

섬세하게 진천뢰를 감싸야 할 내공의 움직임이 뻑뻑하게 그 과정을 틀어막는다.

이미 몸에 배어 버린 내공의 흐름이 아닌, 생소한 방식을 사용하기에 생긴 오차.

억지로 내공을 쥐어짜 진천뢰를 휘감았지만.

진천뢰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한 섬광에 현성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거기까지.”

[흑관(黑棺)]

그 죽음을 검은 관이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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