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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325화 (325/624)

제325화

324화-선검단 (1)

“씁…….”

멍하니 앉아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는 설천위.

그 모습에 서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나요?”

“없어…….”

“있는 표정인데…….”

“아무것도 없어…….”

우리 먹을 밥도 없다고…….

서하영의 의문스러운 시선에 살짝 훌쩍인 설천위는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고쳤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고로 무리의 머리를 맡고 있다면, 무리의 식사 정도는 책임져야 하는 법!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임무라도 맡아서 급한 불 정도는 꺼야 했다.

“핫! 핫!”

……조금만 더 굴리고 갈까.

오늘 먹는 밥은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줘야지.

음.

고기는 안 나오겠지만.

노력한 자는 맛있는 밥을 먹을지어다.

부하들의 완벽한 공복을 위해 영역을 유지하던 설천위는 영역으로 들어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성 누님?”

“오늘도 열심이구나.”

엷은 미소와 함께 자리에 앉는 성화린.

“그렇게 힘을 쓰고도 영역을 또 사용하면 지칠 텐데.”

“뭐, 이것도 수련이니까요. 그리고 생각보다 별로 안 힘들어요.”

솔직히 별로 안 힘든 수준이 아니라 거의 안 힘든 수준이다.

그냥 천천히 걷는 수준의 체력 소모?

몇 시간 정도는 살짝 피곤한 정도로 해낼 수 있다.

초기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숙련도가 높아지고 스탯이 높아지다 보니 점점 쉬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별로 안 힘들다는 말에 눈빛이 묘해진 성화린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고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입실한 사람들이 네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해서 찾아왔단다.”

“아, 다들 괜찮대요?”

신의가 봤을 때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겠지만.

“딱히 큰 문제는 없다더구나.”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 사람이라도 구했으니 그게 어디냐.

음, 이건 좀 위안이 되네.

……내 돈은 안 돌아오겠지만.

“표정이 어둡네. 무슨 일이라도 있니?”

무슨 일이냐는 물음.

성화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은 처지인데.

이 누님한테라도 말해야 조금 위로를 받지.

“씁, 그 의뢰인 녀석을 제가 죽였잖아요?”

“그렇지?”

직접 목을 치는 것을 봤으니까.

심지어 그 혼까지 거둬 아이를 위해 쓰지 않았던가.

그걸 위해 직접 관리를 찾아가 협박까지 했고.

관리는 이쪽에서 황실에 연락을 넣었으니 그쪽에서 일 처리만 제대로 해 주면 금세 목이 날아갈 거다.

“의뢰인을 죽였으니 성공 보수는 물 건너가서 흑룡단의 재정은 여전히…….”

“에에?! 그런 거였어요?!”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던 서하영의 외침에 설천위가 움찔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

“후후후.”

“누님, 저희는 진짜 곳간에 쌀이 없어요…….”

“아, 별거 아니야.”

아니, 이 누님이?

웃으며 입가를 가린 성화린이 이내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이 이야기, 부단주에게도 했어?”

“유 매요?”

“그래, 했다면 해결책을 알려 줬을 텐데.”

“의뢰인이 죽었으니 돈을 못 받을 거라는 생각을 유 매 덕에 할 수 있게 된 건데요…….”

음울하게 대답하는 설천위.

그 뒤에서 배를 어루만지는 서하영.

“……살 뺄 필요는 없는데.”

가진 돈으로 밖에서 먹을 생각 없이 부하들과 함께할 생각만을 하는 서하영.

그 모습에 설천위가 살짝 뿌듯해지는 순간.

“후후, 아무래도 부단주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네.”

“네?”

그게 무슨 말이세요?

“무림맹은 의뢰를 받을 때 절대 의뢰금을 후불로 받지 않아요. 설 단주님.”

성화린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예?”

“성공 보수마저 전부 선불로 받은 뒤 의뢰가 실패하면 그 뒤에 돌려주는 방식을 취하지.”

……그런 양아치 같은 방식을?

아니, 성공 보수라는 말의 뜻을 모르나?

그걸 선불로 받는 양아치들이 있었단 말이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나름대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사정?”

설천위의 묘한 표정에 작게 헛기침한 성화린이 무림맹을 변호했다.

“정파라는 입장 때문에 성공 보수를 돈이 없다고 떼먹으려는 이들이 많았거든.”

“체면 때문에라도 힘으로 빼앗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구나.”

“물론 그런 경우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든 받아 내긴 했지만…….”

받아 내긴 했구나.

역시 무림맹.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깡패 집단.

“아무래도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고 인력이 추가로 투입되기 때문에 아예 이런 방식을 채택했다고 했어.”

“……역시 무림맹.”

이 무림의 대표 깡패답군.

성공 보수를 선불로 받아 버린다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잠깐, 그럼?”

“의뢰인을 죽였다곤 하나 그건 적법한 과정이었으니 성공 보수가 지급되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

애초에 관리가 형을 선고한 것을 설천위가 집행한 것뿐이니까.

명분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심지어 천 대인은 평판이 워낙 안 좋아서 주변에서는 그의 죽음에만 관심이 있지 누가 죽였는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으니까.

“이걸 유 부단주가 몰랐을 리가 없으니…….”

살짝 말끝을 흐리는 성화린의 모습에 설천위는 눈을 감았다.

‘……당했다.’

벌이란 게 이거였나.

볼을 꼬집는 게 아니라.

“유 부단주가 설 동생을 많이 아끼나 보네?”

설천위의 표정에 일의 과정을 전부 파악한 성화린은 웃으며 서하영이 건네준 차를 받았다.

배고프다고 배를 문지르던 녀석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 참…….

“부단주는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동생이 직접 의뢰금을 받으러 가야 할 것 같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와.”

“다녀오세요!”

* * *

“……하아.”

만금당(萬金堂)을 나서며 설천위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만금당(萬金堂)에 도착해, 업무를 담당하는 이를 찾아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진행되는 일 처리.

단주가 직접 왔다는 사실엔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그 외에는 순식간에 일 처리가 되었다.

단주패를 인증하고, 보수를 받고.

그 보수 중 일부를 단의 유지비로 지불하고.

의뢰인을 죽였다는 것을 문제 삼기는커녕 아예 이야기도 안 나왔다.

돈은 이미 받았고, 의뢰는 완수했으니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거겠지.

만금당 직원이 애초에 돈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나.

그나저나 게임에서는 이런 설정을 못 봤는데…….

“여러모로 허술해.”

게임 속에서 나왔던 설정, 에피소드가 도움이 되긴 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현실의 시간과 게임의 시간은 다르니까.

[수련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했다.]

이러고 끝나는 하루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게 게임 아닌가.

거기다 육도(六道)는 게임 속 에피소드가 전부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앞에서 어떤 임무를 했느냐에 따라 시간대가 바뀔 수도 있고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유저의 선택 이외의 랜덤 요소에도 영향을 받으니 대략적으로 언제쯤 일어난다는 것 정도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쓸데없이 잘 만들어 유저를 엿 먹이는 랜덤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이상할 정도로 디테일한 부분들을 떠올리면 그냥 만들어진 게임 같은 건 아닌데…….

급한 불을 꺼 버린 덕일까.

한껏 여유가 생긴 설천위는 이 세상에 관한 고찰과 함께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그렇게까지 부하들을 배고프게 만들지 않아도 맛있는 밥이 나올 테니 조금 늦게 돌아가도 상관없다.

물론, 철백이 알아서 굴려 줄 테니 이러나저러나 비슷하겠지만.

보니까 무해 그 양반도 애들 장난 아니게 굴리던데.

수련에는 딱히 깊게 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해가 좀 지나면 무림학관에서 키웠던 잠룡대도 합류하고, 소윤혜랑 주현운도 합류할 터.

‘……생각보다 엄청 강해지겠는데?’

주현운은 정상적으로 성장만 하면 갑(甲) 졸업이 거의 당연시되는 치트캐고.

잠룡대에서 열심히 키워 놓은 문율도 무림맹에서 조금만 구르면 화경을 바라볼 수 있는 주인공급 캐릭터다.

거기다 불살현불(不殺顯佛)이라 불리게 되는 무해까지.

주인공급을 무려 셋이나 이쪽으로 끌어들여 놨으니 몇 년만 지나면…….

‘무림맹이랑도 해 볼 만하겠는데?’

반역 쌉가능일지도?

현경(玄境)인 맹주만 어떻게 하면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뭐, 웬만하면 그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진 않을 거지만.

무림맹의 힘을 깎으면 후반에 인외의 적들이 나올 때 상대하기 너무 힘들어진다.

무림맹이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그 뿌리는 결국 인간.

그 괴물들과 싸울 때 도움이 되는 녀석들이 반드시 있으니 최대한 끌고 가는 게 맞다.

그 외의 문제는…….

‘가족인가…….’

냉정, 냉혈을 뿌리로 삼는 가문.

아직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설천위의 부모.

친모는 병으로 사망했으나, 다른 어머니는 살아 있다.

아버지인 가주의 경우는 어느 정도 정보가 있다.

무려 오존(五尊) 중 일인인 북존(北尊) 설주철이다.

당연히 게임에서도 조력자로 나온다.

호남(湖南)에 살고 있는데, 별호가 북존(北尊)인 이유는 그가 이미 멸문했다고 알려진 북해빙궁 출신의 무인이기 때문이다.

설가(雪家)가 빙공을 쓰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설천위는 배우긴 했지만, 재능이 더럽게 없어서 못 쓰지만.

속성을 다루는 무공이란 건 상당히 아득한 재능을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다.

근성으로 배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서.

육체의 단련은 근성과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내공의 성질과 그것을 다루는 감각은 노력과 근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정말 순수하게 재능의 영역이란 소리.

여하튼, 그래서 설천위는 빙공을 익히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설가(雪家)는 강하다.

천부적인 재능을 기본으로 요구하는 무공.

그런 무공이 이어져 내려올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다.

재능이 합격선에 서서 그 무공을 갈고닦을 수만 있다면 그 강함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괜히, 설천위의 위 형제 중 무림맹에 들어온 이들이 전부 한자리씩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가는 반드시 포섭해야 할 아군인데…….

‘씁. 무섭단 말이지.’

과연 설주철이나 되는 인물이 아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까?

뭔가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알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괜히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본가에 돌아가지 않은 게 아니다.

좀 불안해야지.

설주철은 기본적으로 차가운 인물이지만, 가족에게는 어떨지 모르는 일이니까.

물론.

‘……타락 루트에서는 무섭지.’

설천위가 어둠으로 빠지는 루트.

그곳에서 강령술을 손에 넣은 설천위는 꽤나 강한 중간 보스가 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거기에 설주철을 끌고 가면?

통째로 얼려 버린다.

진짜 말 그대로 그 일대 전체를 얼려 버린다.

솔직히 개멋있었지.

이게 바로 중년 간지인가 했지.

그걸 나한테 쓸지도 몰라서 문제지.

“끙.”

고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결국 직접 부딪쳐 보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찾아가야지.

물론, 현경의 고수인 가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전에는 가지 말아야지.

작은 다짐과 함께 느긋하게 걸어가던 설천위는 묘한 광경에 걸음을 멈췄다.

“……뭐 해?”

“누구……. 히익?!”

“오, 오랜만?”

담벼락에 붙어 있던 남자는 설천위를 보자마자 손을 떨었다.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 설 단주님.”

“응, 오랜만이네. 영락없이 쫓겨났을 줄 알았는데, 잘 붙어 있었네?”

그대로 가슴을 후려치는 설천위의 돌직구에 살짝 헛기침을 한 남자, 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隊)를 잃은 상태로 떠돌아다니다가 겨우겨우 배치를 받아서 들어갔습니다.”

“오, 그래?”

자신이 있던 대(隊)를 고발하는 데 도움을 줬으니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받아 줄 곳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천위의 눈빛에서 그 생각을 읽은 소천은 쓰게 웃었다.

“죗값을 갚기 위해 어떻게든 붙어 있습니다.”

“그래?”

솔직한 그 대답에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소천이라는 이름이 좋은 이름인가?

근성 있네. 그 아이나 이 녀석이나.

“소가 웃을 소(笑)인가?”

“예? 아닙니다만…….”

응, 그건 아니구나.

그럼 뭐, 상관없고.

“그래서, 여기서 뭐 하고 있는데?”

구역을 나누는 담벼락들 사이로 난 길.

그곳에서 담벼락에 딱 붙어 있을 이유는 몇 가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도 없는 길에서 그러고 있단 이야기는…….

“……아무래도 저한테 액(厄)이 낀 것 같습니다.”

슬쩍 고개를 돌린 남자는 담벼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새롭게 들어간 대(隊)에서 횡령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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